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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한국계 입양아 출신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 인생 역전

글·구희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제공

2013. 05. 16

부모의 양육 포기로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던 아이는 40년 후 프랑스 장관이 되어 고국을 찾았다. 한국 이름 김종숙, 플뢰르 펠르랭의 인생 역전 이야기.

한국계 입양아 출신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 인생 역전


한국에서 태어난 지 3일 만에 길에 버려진 아이는 프랑스에서 ‘꽃’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입양 후 40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플뢰르 펠르랭(40·한국명 김종숙) 프랑스 중소기업 디지털 장관 이야기다.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아이에게 양어머니는 ‘플뢰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프랑스어로 ‘꽃’이라는 뜻이다.
3월 23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그는 단발머리에 검정 치마 정장 차림이었다. 한국을 찾은 건 프랑스 중소기업 디지털 장관으로서 제4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들어선 그에게선 특유의 프렌치 시크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날 인천공항은 국내외 언론사에서 나온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전까지 일 때문에 중국을 찾거나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등 지척까지 온 적은 있었지만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펠르랭 장관. 이유는 단순했다. 올 기회가 없었다고. 펠르랭 장관은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번도 출생지를 방문한 적이 없다. 나는 완전한 프랑스인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프랑스와 한국은 IT 강국이라는 점과 인구 고령화라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닮았다”며 “이 같은 고민거리를 함께 나누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입국 소감을 밝혔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버려졌지만 양부모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원자물리학자인 양아버지와 주부인 양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는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양성기관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병사했고 대신 부부는 한국에서 펠르랭 장관과 그의 동생을 입양해 키웠다. 그는 남들보다 2년 빠른 16세 때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에 합격했고,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세크와 정·관계 엘리트 코스인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를 거쳤다.

양부모의 사랑으로 엘리트 교육 수료
정치적 성향도 부모의 영향을 받았다. 펠르랭 장관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부모에 대해 “매우 좌파적인 분들이었다”라고 적었다. 감사원에서는 문화·시청각·미디어·국가교육 담당자로 일하던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02년 사회당 대선 후보 조스팽의 연설문을 담당하면서부터다. 2007년 대선 때엔 루아얄 후보의 IT 정책보좌관으로서 디지털경제전문가로 활약하며 대(對)언론 업무를 담당했다.
현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사회당 후보 대선 캠프에는 2011년 11월 합류했다. 그곳에서도 전문성을 살려 문화·방송·디지털경제 문제를 담당했다. 지난해 5월 올랑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는 프랑스 중소기업 디지털 장관에 임명됐다.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 주요 국가에서 한국계가 장관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 언론 ‘르 피가로’와 ‘르 몽드’의 기사에서 정치인으로서의 펠르랭 장관의 캐릭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르 피가로는 촉망받는 정치인 후보 7명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에서 펠르랭을 “초대받지 않은 회의에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참석하는 배짱 있는 여성”이자 “가장 날카로운 인물”로 묘사했다. 르 몽드는 그를 “끊임없이 노력하는 뛰어난 정치인”으로 서술했다.

한국계 입양아 출신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 인생 역전

1 3월 25일 ‘혁신적인 성장을 위한 중소기업 협력’을 주제로 강연하는 펠르랭 장관. 2 3월 26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한 펠르랭 장관. 3 어린 시절 펠르랭의 모습.



그는 2010년부터 2012년 초 신임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전까지 프랑스 여성 엘리트·정치인 모임인 ‘21세기 클럽’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3년 설립된 이 클럽은 프랑스 및 유럽 사회 전반의 다양성 제고와 기회의 평등, 교육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단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여성, 평등, 다양성의 아이콘이 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기억도 없고 한국말도 거의 못하는 그는 지나온 시간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를 살아간다. 펠르랭 장관은 “생후 6개월 후 바로 프랑스로 떠났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없다”며 “프랑스어로 말하면서 프랑스 사람으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껄끄러운 감정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이번 방문이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우호를 위한 가교가 될 좋은 기회”라고 했다.
공무원인 남편(로랑 올레옹)과 딸 베레니스를 둔 펠르랭이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노래방’. 취미가 요리와 그림 그리기,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기라는 그는 입국 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번에 한국에 가면 노래방에 가보고 싶다”고 답한 바 있다. 공항에서 마주친 취재진이 내용을 언급하자 “공항에서 노래 부르라는 건 아니죠?”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도 보였다.
올해 초에는 월드스타 싸이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화제가 됐다. 1월 26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NRJ 뮤직어워즈 2013’에 수상자로 참석한 싸이는 자신의 트위터에 펠르랭 장관과 나란히 서서 밝게 웃으며 찍은 사진을 올리고 “만나서 반가웠다. 우리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펠르랭은 “최근 K팝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프랑스의 많은 학생이 K팝 가사를 알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해요. 그래서 한국어 강좌도 개설됐죠. 한국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힘이 될 수 있고,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인 3월 27일 오전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송도국제도시를 둘러본 그는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에 탑승했다. 개화역에서 김포공항역 구간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와이파이와 4G를 체험한 펠르랭 장관은 한국 방문 일정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을 묻는 취재진에게 “와이파이와 초고속 인터넷”이라고 답하며 “앞으로도 프랑스와 한국의 협력이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친 펠르랭 장관은 김포공항을 통해 다음 목적지인 일본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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