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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마린보이 끝나지 않은 레이스

박태환 부모 박인호·유성미 부부 인터뷰

글·진혜린 |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3.05.15 16:31:00

박태환 선수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또다시 메달 두 개를 안겨준 지도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차가운 물속에서 온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불타오르게 했던 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세계의 정상에서 외로운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박태환.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것은 늘 그렇듯, 부모님이다.
영원한 마린보이 끝나지 않은 레이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박태환 선수의 아버지 박인호(64) 씨가 꾸린 사무실은 온통 박태환의 기록 도표와 상장으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박태환 선수를 지원하는 전담팀을 운영하고 박 선수가 치료를 받기도 한다. 작년에 경비 절감을 위해 삼성동에서 이곳으로 이사했다.
“태환이가 최근 인천시청에 입단했는데, 지자체 선수로 전국체육대회만 바라본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내년 인천에서 열릴 아시아경기대회를 바라보는 거죠. 더 나아가서는 유소년팀을 이끄는 데 일조하는 게 좋겠다는 장기적 비전을 말씀해주셔서 입단을 결정했어요.”
인천시청 입단 소식이 전해지기 전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어딘가에서 물살을 가르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박태환 선수가 TV 홈쇼핑에 출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우리의 수영 영웅이 왜? 박태환 선수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다. 그는 방송 후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며 머쓱해했다. 결국 “특허받은 어린이용 영양제를 판매하는 중소기업이 5년 장기 후원을 약속해 홈쇼핑 1회 출연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홈쇼핑 출연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이를 계기로 국민들은 박태환 선수가 잘 지내고 있는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됐다.

세계 정상급 선수가 훈련할 수영장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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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선수의 전담팀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무실의 소품들. 박태환 선수를 향한 팬들의 뜨거운 응원이 느껴진다. 최근 팬들은 박 선수를 위해 펀딩사이트에서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박태환 선수의 아버지 박인호 씨는 요즘 아들이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에도 4시간에 걸친 발표를 준비한다고 부산스러웠다고. 2012년에 단국대를 졸업한 박태환 선수는 작년 런던 올림픽 이후 단국대 교육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그 당시, 현역 선수가 학업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태환 선수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했다.
“은퇴 후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후배들에게 주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주변에서 천천히 해라, 은퇴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말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태환이에게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물어봤죠. 그런데 훈련과 학업을 동시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요.”
하지만 지난해 9월 30일, SK텔레콤과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훈련 일정에 큰 차질이 생겼다.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지만 그 밖의 일정은 여느 때와 같이 훈련 일정으로 빼곡히 채워져야 하는데 거기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간 박태환의 훈련을 책임지던 ‘전담팀’을 꾸려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는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지만 박태환 선수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부터 전담팀을 꾸려 독자적인 훈련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 7년간 훈련 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기록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아들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이전 후원사와 계약이 만료될 무렵 몇 군데와 이야기가 있어서 금방 새로운 후원사를 찾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 후원사가 결정되지 않으니까 하루는 태환이가 그러더군요. ‘선수 생명이 다해서 후원사가 안 생기는 건가?’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는데 그 속은 오죽하겠어요. 그래서 ‘그동안 열심히 한 덕에 우리 힘만으로도 전지훈련을 갈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라고 했죠. 운동선수는 운동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후원사가 없다고 운동을 쉴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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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박태환 선수는 후원사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담팀을 다시 꾸려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2010년부터 4년째 함께해온 마이클 볼 감독과 현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지원팀장, 코치, 물리치료사, 웨이트트레이너 등 5명의 전담팀이 묵을 숙소, 비행기 티켓, 지원팀에게 줘야 할 임금 등 6주간의 전지훈련 비용은 모두 박태환이 부담했다. 수천만원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첫 물살을 가른 후 이렇게 오래 수영을 쉰 적은 처음이었다고 할 만큼 오랫동안 물을 잡아보지 못했지만 몸 상태와 기록은 금방 회복됐다. 이 상태라면 올 7월에 열리는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권 진입은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자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자비로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박 선수가 훈련할 만한 수영장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국에 국제경기 규격을 갖춘 수영장이 손에 꼽힐 정도로 부족해 아침에는 이곳에서, 오후에는 저곳으로 서울을 횡단하며 뜨내기 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마저도 훈련에 딱 맞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요즘 훈련하고 있는 수영장이 두어 군데 되는데, 한 곳은 수온이 너무 높고, 한 곳은 수온이 너무 낮아요. 수온이 별거냐 싶겠지만 물이 너무 따뜻하면 금방 지치고, 물이 너무 차가우면 힘을 낼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다른 일반 회원들도 있는데, 태환이를 위해 수온을 맞춰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더욱이 인천시청 소속이 되면서 서울에 있는 수영장은 이용할 수 없게 됐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와 이메일로 훈련 스케줄을 체크하는 마이크 볼 감독이 이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라더군요. 어떻게 세계 정상급 선수에게 훈련장이 없을 수 있냐고요.”
결국, 박태환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불참이라는 쓰디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 볼 감독이 “도저히 지금과 같은 훈련 환경에서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겨울 전지훈련 결과가 워낙 좋아서 올여름 집중 훈련을 받고 출전할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한국에서의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포기했죠.”

박태환 선수가 정점을 찍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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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선수의 올해 나이 스물다섯. 생물학적 나이만으로도 선수의 생명력이 다했다고 보기에 많이 이르다. 성적을 놓고 보자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밖에 못 땄다는 걸 실력 부진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그간의 화려한 성적과 비교해보자면 말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수영 금메달을 따냈던 박태환 선수에게 은메달이란 성과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2009년 다소 부진한 성과를 보이기는 했지만 마이크 볼 감독과 만난 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 2011년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자, 2012년 런던 올림픽에 거는 기대감은 하늘까지 치솟았다. 박태환 선수가 출전하면 당연히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분위기.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당연한 금메달은 없다지 않던가.
사실 런던 올림픽에서 그가 딴 은메달은 온 세계인이 기억하는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이었다. 아연실색할 실격 해프닝을 딛고 의연하게 레이스를 펼친 그의 모습에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몇 시간 만에 판정이 번복되기는 했지만 400m 본선에서 1등으로 들어온 박태환 선수가 부정출발을 이유로 실격 판정을 받은 직후, 특유의 미소 띤 얼굴로 인터뷰를 했던 장면에 온 국민이 울분을 터뜨렸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게 선수에게는 중심을 잃을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죠. 실격 판정이 번복됐더라도 다음 레이스의 스타트에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억울한 마음도 들었을 거고요. 저희 부부는 2층 맨 앞줄에서 결승 경기를 지켜봤는데 스타트할 때부터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힘은 힘대로 더 들고 속도는 잘 나지 않아요. 긴장한 거죠. 그 상태로 결승점까지 갈 수나 있을까 걱정될 만큼이었죠. 그런데 2등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이에요.”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과는 상관없이 지금 박태환 선수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행여 아들에게 해가 될까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모두 꺼내놓지는 못하지만 아들이 이겨내야 할 것이 ‘기록’만은 아니어서 안타까울 뿐이란다.
“내색은 안 하지만 태환이가 요즘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공부는 그동안 안 했던 거니까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동안 잘 해왔던 운동까지 제대로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예요. 그래서 태환이한테 ‘이제 할 만큼 다 했으니까 힘들면 (운동을) 그만둬도 된다’고 말했더니 ‘아빠도 참, 언제는 선수 IOC 위원에 도전해보라면서요’라고 하더라고요. 태환이는 자신이 ‘다 된 선수’로 끝을 맺는 것이 싫은 것 같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도 혼자 열심히 하겠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죠.”
물론 박 선수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는 아들은 아니었단다. 국가대표가 되기 전까지는 부모의 손길 없이 그 고된 훈련을 아이 혼자 스스로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거니까. 더욱이 물속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네 살짜리 어린 아들과의 기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 유성미 씨의 강단이 지금의 박 선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 살 때 수영장에 데리고 갔어요. 그때는 강습을 받기 전에 그냥 제가 데리고 들어간 거였죠. 그런데 태환이가 아예 물에 안 들어가려 하는 거예요. 유아들을 위한 얕은 풀장에서 다른 아이들은 개구리 수영이라도 하는데, 왜 우리 아들은 못하지? 등짝을 세게 때렸다니까요. 그걸 며칠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물속에 1백원짜리 동전을 던졌어요. 그랬더니 태환이가 잠영으로 동전을 주워 오더라고요.”
아들 둘을 키우며 비슷한 경험이 있는 기자가 결국 아이에게 백기를 들었다고 했더니 유성미 씨는 “작은 보상으로 큰 동기를 마련할 수 있다”며 “아이에게 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까지는 ‘아침에 일어나면 수영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는데 중학생이 되자 ‘가자’ 하면 ‘척’ 하고 따라붙지 않았단다. 새벽 5시, 여느 아이들처럼 ‘5분만’을 반복하다 눈 비비며 일어나는 아이를 차에 태워 수영장에 데리고 가고, 강습이 끝나면 차 안에서 아침을 해결한 후 학교에 보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차를 대령해 수영장으로 향하던 것을 몇 년간이나 반복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3학년 때부터는 은메달도 안 땄어요. 나가면 그냥 금메달이었죠. 중학교 3학년 때 한국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가 됐으니까요. 되돌아보면 그런 성과는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하고, 자고 일어나면 이불이 흥건해질 만큼 땀을 흘리면서도 싫다는 소리 한 번 없이 잘 따라와 줬으니까요.”

아들이 진짜 짝 찾기 바라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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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호·유성미 부부가 가장 큰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부상 없이 지금까지 왔다는 점이다. 박태환 선수와 함께 훈련을 받던 선수 중에는 앞날이 기대되는 선수도 많았지만 무릎, 어깨, 허리 등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래도 응급실을 네댓 번 정도 갔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초등학생 때 운동이 끝나고 허리를 펴지 못하고 끙끙거리더라고요. 맹장이 터졌나 싶어서 응급실에 갔더니 너무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면 장이 꼬인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주사 한 번 맞고 다음 날도 태연히 수영장에 가요. 그게 태환이에요.”
2006년 중국에서 열린 범태평양대회를 앞두고는 맹장 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불과 2주 남짓 후 열리는 대회의 참가를 반대했고, 참가하더라도 어차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 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도 박태환 선수는 기어이 가겠다고 우겼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대한민국 수영사상 최초의 국제대회 금메달을 땄다.
“제가 태환이 엄마지만 어떨 때는 놀랄 만큼 어른스러울 때가 많아요. 항상 형들이랑 경쟁하고, 어린 나이에 선수촌에서 생활하면서 더 점잖아졌던 것 같아요. 이제는 사람들이 다 알아보니까 자기 행동에 자제를 더 많이 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여자 친구가 없나 봐요(웃음).”
요즘 박태환 선수 부모의 남다른 고민이 바로 아들이 연애를 못한다는 것. 오전 훈련만 있는 토요일도 부모님을 대동하고 영화를 보러 갈 정도니 여자 친구가 없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최근 아들과 영화 ‘신세계’를 함께 봤다. 박태환은 집에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식탁에 차려놓고 부모님을 부를 정도로 다정한 아들이다. 그도 아니면 자신의 방에서 피규어에 폭 빠져 지낸다.
“런던 올림픽까지는 집에서 태환이와 함께 지낸 적이 거의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 아들이 있다는 게 무척 든든하고 좋았어요. 아~ 그런데 이제는 미치겠어요. 사랑도 해보고 실패도 해봐야 자신의 진짜 짝을 만날 수 있을 텐데, 걱정이에요(웃음).”
2009년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박태환 선수는 자유형 200m, 400m, 1500m 전 경기의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웠다’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의 영광을 안았다. 위기에서 다시 일어났던 그때처럼, 지금 다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도전하고 있는 박태환 선수의 끝나지 않는 레이스가 기다려진다.

여성동아 2013년 5월 5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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