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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다고?

글·김영희 전 주세르비아 대사

입력 2013.05.07 15:56:00

모처럼 인사동의 단골 찻집에서 친구를 만났다. 지난겨울 3개월간 남편이 있는 미국에 가 있다 귀국해 친구와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찻집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어디가 아픈가 물으니, 긴 한숨을 내쉬며 장사는 안 되고 자식들은 취직이 안 돼 살고 싶은 의욕이 없다고 했다. 주인아주머니에겐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데 모두 알아주는 대학을 졸업하고 온갖 자격증(소위 ‘스펙’)을 갖췄지만 아무리 지원서를 내도 취직은 안 되고 학자금 융자는 갚을 길이 없어 막막하단다. 간혹 든든한 배경을 가진 집 아이들이 취직하는 걸 보면 허탈감과 사회에 대한 배신감에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섬뜩했지만 오죽하면 저런 말까지 할까 싶어 그 엄마의 절박한 심정이 가슴에 와 닿았다.
청년 실업은 개인의 불행이자 국력의 손실이다. 한창 경제 활동을 하면서 미래를 설계해야 할 나이에 좌절과 방황의 나날을 보내는 젊은 세대들의 문제는 사회와 국가 전체가 나서서 풀어야 할 과제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인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것인가?
나는 지난 30여 년 독일에 사는 동안 일시 귀국할 때마다 계속 바뀌는 한국의 입시 제도와 이에 얽힌 학부모와 아이들의 혼란을 목격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한국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있으면 “노벨 평화상감”이라고 농담을 했지만, 한국의 교육 문제가 복잡하고 심각하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계의 최빈국이던 우리나라가 지금의 경제 성장을 한 주요 원동력이 높은 교육열이었음은 누구나 안다. 가난 때문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부모 세대는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러나 지금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온 국민을 전문가로 키우는 독일의 듀알 시스템
독일은 대학 진학률이 40%가 안 된다. 대학 등록금이 아예 없는데도 그렇다. 덴마크나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왜 그럴까?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장을 찾을 수 있고, 월급의 차가 크지 않아 굳이 대학을 가려고 발버둥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구 8천2백만 명의 독일은 지하자원이 풍부하지 않으나, 세계 수출 1위 국가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현재 유럽 각국이 재정 위기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지만, 독일의 막강한 경제는 유럽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의 고학력 청년들이 독일로 일자리를 찾아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나라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대학까지 교육시킨 청년들을 독일에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일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30년 동안 독일에 살면서 항상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독일 국민의 전문성’이다. 다시 말해 ‘독일의 직업 교육’이다. 독일인들은 남녀 불문하고 각자 한 가지 이상의 자격증이 있다. 그 자격증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철저한 교육과 시험을 치른 후에 주어진다. 청소미화원도 직업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획득해야 종사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듀알 시스템(Dual System)이다.
내가 독일 쾰른대에서 공부할 때 독일 학생들 중에는 빵 굽는 자격증을 가졌거나, 인쇄 기계공 자격증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다. 수백 년째 내려오는 가업을 잇기 위해 형제 중 누군가가 그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자신도 언제든 그 일에 뛰어들 수 있도록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직업학교를 다닌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학생들의 집이 대단히 부자(백만장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는 여전히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한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가업을 이어받아 기술을 전수하고 또 계속 혁신한다. 이러한 독일의 튼튼한 기술력이 어떠한 경제 위기를 맞아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된다.
독일의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인데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담임선생이 동일인이다. 한 학급의 학생은 25명 이하이고, 같은 교사가 4년을 계속 담당하면서 아이의 능력과 개성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초등학교를 마치면 중등학교 과정은 세 종류로 분리된다. 초등학교 성적과 개성에 따라 5~9학년 과정, 5~10학년 과정, 5~13학년 과정의 학교를 선택한다. 이들 학교는 교과 과정과 난이도에 차이가 있다. 아이의 진로 선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4년 동안 아이를 가르친 담임선생이다. 물론 부모와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 단 너무 빠른 진로 결정을 수정하기 위해 모든 중등학교 5~6학년 과정은 모색 단계로서 그 과정 후 학생의 능력에 따라 학교를 변경할 수 있다. 5~13학년 과정인 김나지움(Gymnasium)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초등학교 졸업생의 40% 정도가 간다. 별도의 대학입시 없이 김나지움 졸업시험인 아비투어(Abitur) 성적에 따라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대학 진학생의 절반 정도는 중도하차해 다시 직업전문학교로 간다. 나머지 60%는 각종 직업학교에 들어가 2~4년의 직업교육을 받는다. 직업교육은 학교와 기업이 공동으로 실시하며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는 듀알 시스템이다. 학교에서 1주일에 1~2일 이론 수업을 받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직접 실기교육을 받는다. 특이한 점은 이 직업교육에 기간 급료를 받는 것이다. 급료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직업학교 졸업 후에는 자격증을 획득하고 대부분 자신이 실무를 익혔던 기업에 취업한다.‘장인(Meister)’이 되려면 직업 자격증 취득 후 마이스터 밑에서 수년간 수련생활을 한 후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그 시험이 매우 까다롭다. 독일에서 집 안에 고장 난 곳이 있어 기술자를 부르면 항상 마이스터가 수련생 생을 데리고 와서 설명을 하며 고치곤 했다.

21세기 창조적 인재를 키워내려면
이제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인 글로벌 시대이고 지식기반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도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이어야 한다. 양적인 교육에서 질적인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지식 습득만을 위한 공부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다. 인재 경쟁력은 바로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국 청소년의 80%가량이 대학에 진학한다. 최근 진학률이 조금 낮아지는 경향이 있으나, 아직도 좋은 대학 진학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사교육비는 세계에 유래가 없을 만큼 비중이 크다. ‘학력 인플레’는 국력 낭비다. 한편에서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못해 백수 생활을 하고, 중·소기업의 산업 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해 동남아 외국인을 모셔온다. 50대에 이미 정년퇴직을 한 부모 세대는 ‘알바’를 하며 몇 년째 취업 준비 중인 나이 든 자녀들의 생활비를 대준다. 취업을 한 젊은 세대라도 인턴과 임시직이 많아 장래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는 개인의 불행이고 나라 발전을 저해하는 재앙이다.
문화와 전통이 다른 우리가 독일식 제도를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모두가 대학에 갈 필요가 있는가? 모든 직업에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가? 대학 역시 바뀌어야 한다. 상당수 대학들이 직업 전문학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직업 전문직을 양성하는 문호를 개방하고, 대학 졸업생과 임금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숙련된 전문가를 50대에 퇴직시키고 그 자리를 젊은 세대 인턴으로 채우는 것은 국가 경쟁력만 약화시킨다. 한편 창의적 인재 양성을 하려면 주입식 교육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하고 자율적인 주관식 교육의 방법도 점차 확대해야 한다. 어린 세대의 교육과 젊은 층의 취업 문제는 국가의 앞날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부모와 교사, 기업과 정부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다고?


김영희 전 대사는…
1972년 독일 파견 간호보조원으로 독일로 건너가 3년간 정형외과 병동에서 일하며 공부를 계속해 쾰른대에서 교육학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쾰른대 6백 년 역사에서 ‘전공 과목을 강의한 최초의 외국인 여성’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독일 통일 직후 1991년 당시 외무부에 특별채용돼 주독일 한국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부터 공사까지 역임한 뒤 2005년 세르비아 대사로 임명됐다. 공직 생활에서 은퇴한 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20대, 세계무대에 너를 세워라’(동아일보사)가 있다.

여성동아 2013년 5월 5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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