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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in Hokkaido

지옥과 도깨비의 나라 노보리베쓰 온천 체험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입력 2013.05.07 14:30:00

자욱한 수증기에 유황 냄새로 가득한 노보리베쓰.
커다란 방망이를 든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지키고 있는 지옥계곡으로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몰려간다.
지옥과 도깨비의 나라 노보리베쓰 온천 체험

여기저기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유황 냄새로 가득한 지옥계곡의 정경.



온천을 열원에 따라 분류하면 화산성 온천과 비화산성 온천이 있다. 화산성 온천은 화산 아래 마그마를 열원으로 하는 것이고, 비화산성 온천은 지하로 깊이 파내려갈수록 높아지는 지열에 의해 데워진 심층열수를 이용한 것이다. 일본에는 2011년 현재 활화산으로 인정된 곳이 1백10개소가 있고, 그 가운데 홋카이도에만 20개소가 있다. 그만큼 화산성 온천이 많다는 이야기다. 사실 홋카이도 전체가 온천 마을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지역마다 화산이 있고 그 주변에 다양한 온천이 형성돼 있다. 그 가운데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해외의 온천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온천이 노보리베쓰(登別)다.
노보리베쓰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한자리에서 다양한 종류의 온천수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접근성이 좋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다. 홋카이도의 관문이자 최대도시인 삿포로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면 노보리베쓰에 도착한다. 거기에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 문화의 거점으로 유명한 시라오이 초(白老町), 일본 최북단의 부동호(不凍湖)이자 일본에서 두 번째로 수심이 깊고 최근 수질조사에서 전국 최고로 인정받은 시코쓰호(支笏湖), 정상회담이 열렸던 도야 호(洞爺湖),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보리베쓰원시림 등 주변에 유명 관광지가 널려 있다. 우리 가족이 홋카이도에 산 지 9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노보리베쓰와는 인연이 없었다. 몇 번의 기회를 놓친 끝에 드디어 이번 겨울의 끝자락에 노보리베쓰에 발을 내디뎠다.
삿포로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 노보리베쓰 역에 내려서자 제일 먼저 도깨비방망이를 든 관광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역에서 온천마을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다 보면 도로변에도 마치 불상처럼 커다란 진홍색 도깨비상이 버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도깨비가 이 도시의 상징이 된 것은 노보리베쓰 지고쿠다니(地獄谷: 지옥계곡) 때문이다.
본격적인 온천마을 구경에 앞서 역 앞 식당에서 카레를 주문하고 주인으로부터 노보리베쓰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사이 인근 도시에 사는 지인이 들어왔다. 빠듯한 일정에 시코쓰 호를 거쳐 노보리베쓰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완수하려면 아무래도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지인의 차에 올라타 시코쓰 호로 향했다. 신선로 모양을 한 다루마에잔(樽前山)을 끼고 20여 분 정도 달리자 겨울 호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호반에는 분주한 여름을 기다리는 보트 선착장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고, 선착장 바로 앞에는 일본의 근대 건물 양식에 물과 아름다움을 콘셉트로 디자인했다는 리조트호텔 미즈노우타(水の歌)가 있었다. 이곳으로 안내한 지인은 미즈노우타의 아름다움에 반해 지난달 사흘간 이곳에만 머물며 세속의 피로를 말끔히 풀었다고 했다. 외관 자체도 볼거리인 호텔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나오자 방금 관광버스에서 내린 투숙객들이 줄지어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들과 함께 짙푸른 시코쓰 호의 물결을 바라보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가족과 함께 다시 오기로 하고 서둘러 노보리베쓰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옥과 도깨비의 나라 노보리베쓰 온천 체험

1 다루마에 산이 보이는 시코쓰 호반. 2 노보리베쓰 역 플랫폼. 3 지옥계곡에서 가장 큰 간헐천.



‘날마다 지옥’에서 보낸 유쾌한 하루
노보리베쓰 온천마을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의 햇살이 산허리를 부챗살처럼 갈가리 내리비치는 때였다. 구불구불한 산길도로를 달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빌딩군이 나타났다. 산속에 이런 고층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잰걸음으로 유명한 지옥계곡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입구에 들어서자 여느 온천과 비슷하지만 왠지 싫지 않은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참고로 이 냄새는 일본의 환경청이 뽑은 냄새 1백 선에 들어 있다. 계곡을 배경으로 시코쓰토야국립공원(支笏洞爺國立公園)이라는 큼지막한 푯말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기에 분주했다. 이 지옥계곡은 450m 폭발화구의 흔적지로, 지금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분기구에서 쉴 새 없이 최고 98℃에 이르는 뜨거운 물과 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이런 고온의 물을 하루 1만t이 넘게 분출하고 있어 지옥계곡은 홋카이도의 자연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특히 주요 분기구에는 각각의 명칭이 붙어 있는데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열다섯 곳에 이른다. 100℃에 가까운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양이 마치 지옥의 가마솥 같다 해서 지옥계곡이라 불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옥과 도깨비의 나라 노보리베쓰 온천 체험

1 노보리베쓰의 상점가. 2 홋카이도대의 명물 포플러 가로수길. 3 지옥계곡 쪽에서 바라본 노보리베쓰 온천가. 4 휴일 아침 홋카이도대 캠퍼스를 산책하고 있는 시민.





그러나 지옥계곡이 짙은 유황 냄새에 괴기스러운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히 물감으로 채색해낼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이 수만 년에 걸쳐 빚어낸 색채의 향연이 거기에 있다. 적갈색 바위와 유황 그리고 주변의 토질과 기후가 빚어낸 자연 그대로의 색채다. 심산의 이끼 낀 고목의 밑동을 연상케 하는 코발트색, 분기구 주변을 감도는 비취색, 여기에 차마 녹지 못한 잔설의 강렬한 대비가 초대작 그림처럼 보는 이의 시야를 채워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감동을 억누르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 목재 보도를 따라 지옥계곡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최대 간헐천(間歇泉: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온천)으로 향했다. 지하의 열기를 토해내듯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보려고 간헐천을 둘러싼 목책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이 참을성 없이 돌아선 순간 이내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함께 뻥튀기 기계의 좁은 문을 밀고 나오는 연기처럼 일시에 수증기가 간헐천을 감싸버렸다. 시야에서 사라진 간헐천을 찾아 두리번거릴 때 계곡 사이로 불어온 강한 바람이 수증기를 밀어내 다시 간헐천의 구멍이 드러났다. 짧은 순간 나는 지구의 거친 숨소리와 열기를 목격한 것이다.
뉘엿뉘엿 옅은 어둠이 계곡에 내려앉기 시작하자 차가운 눈바람까지 몰아쳤다. 적당히 한기를 느끼며 몸을 녹일 온천을 찾았으나 노천온천 등을 개방하는 호텔의 영업시간이 대부분 끝나 할 수 없이 상점가 중심에 있는 대규모 당일온천탕 사기리유(さぎり湯)라는 곳에 들어갔다. 당일온천은 숙박은 하지 않고 온천만 체험할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사기리유의 실내는 후끈했고 나처럼 당일온천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곳은 지옥계곡에서 내려오는 온천수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늘 흘려보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이용해도 늘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다. 온천수의 색깔은 우윳빛과 투명한 것 두 종류가 있고 탕 바닥은 유황의 영향인지 주황색을 띠고 있었다. 이 탕 저 탕 옮겨 다니며 몸담그기를 반복하자 어느덧 차가웠던 몸은 달아오르고 쌓인 피로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온천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 전 몇 군데 상점을 기웃거리다가 등에 재미있는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발견했다. ‘날마다 지옥.’ 다른 곳에서라면 기분 상하게 할 저주지만 노보리베쓰에서는 유쾌한 농담이다. 이렇듯 이 마을은 지옥과 도깨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 덕에 먹고산다. 부정적인 대상도 이용하기 나름 아닌가. 상점가를 조금 걸어가자 한글 등으로 메뉴를 소개한 선술집이 눈에 띄어 호기심에 들어가보았다. 숯불에서 구운 양고기를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곁들이자 심신의 상쾌함이 절정에 이른다.
사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관광상품인 곰 목장도 구경하고 케이블카도 타보았을 것이지만 이런 즐거움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또 노보리베쓰에서는 매년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특히 8월의 마지막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 개최되는 ‘노보리베쓰 지옥축제’가 대표적이다. 이 시기에 노보리베쓰 지옥계곡의 솥뚜껑이 열려 염라대왕이 도깨비들을 데리고 노보리베쓰 온천을 찾아온다는 전설을 토대로 한 축제다. 6월 초에서 8월 초까지 이어지는 ‘지옥계곡 도깨비불’ 축제도 놓치기 아깝다. 하루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삿포로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는 오른편 차창 너머 태평양의 어둠도 깊어가고 있었다.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홋카이도대 캠퍼스
내가 사는 나요로에서 홋카이도의 남쪽이나 동쪽을 여행하려면 일단 삿포로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 덕분에 삿포로 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호텔에 자주 묵게 되는데 그 호텔과 마주 보고 있는 곳이 바로 홋카이도대 캠퍼스다. 노보리베쓰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밤늦게 삿포로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산책 삼아 홋카이도대 캠퍼스를 천천히 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홋카이도대는 도심 속 공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고, 캠퍼스 도처에 1백여 년 전에 세워진 근대 건축물이 보존돼 있어 여느 대학들과는 다른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한다. 대학 건축물들 대부분이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대학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현대식 건물 안에 마련된 안내소에서 ‘홋카이도대의 문화재건조물’이라는 리플릿을 받아 돌아보면 유용하다.
이날은 홋카이도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천영주 선생의 안내를 받아, 마침 제주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유학생과 함께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휴일이어서 조깅하는 이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한결 여유로웠다. 또한 대학 캠퍼스지만 지역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용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홋카이도대의 근대 건축물 가운데 구 곤충학 및 양잠학교실 건물과 구삿포로농학교도서관독서실 및 서고 건물 등을 구경한 뒤 마지막으로 홋카이도대의 상징인 초대형 포플러 가로수길에 도착했다. 9년 전 홋카이도에 강력한 태풍이 상륙해 포플러 50여 그루 가운데 19개가 쓰러지자 전국적으로도 큰 뉴스가 될 만큼 홋카이도의 명물이다. 이후 많은 이들이 기부를 하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위원회까지 구성돼 오랜 시간 토론을 거쳐 나무들을 살릴 방법을 모색했으나 재생 가능한 단 한 그루만 남기고 나머지는 어린 포플러 나무들을 위해 흙으로 되돌려보냈다고 한다.
수천의 가녀린 가지로 하늘을 가리고 서로의 몸을 의지한 채 의연히 봄을 기다리는 포플러의 모습이 왠지 정겨운 까닭은 우리네 인생도 이렇듯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고 감싸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오버랩됐기 때문일까. 여름날 무성한 푸른 잎새를 팔랑거리며 맞아줄 포플러 가로수길을 기대하며 조용히 뒤돌아선 내 앞에, 원색의 조깅복으로 한껏 멋을 부린 커플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지옥과 도깨비의 나라 노보리베쓰 온천 체험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여성동아 2013년 5월 5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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