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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독일의 왕따 예방법

글&사진·김지숙 독일 통신원

2013. 05. 07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도 왕따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베를린 시 교육부와 보험회사가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왕따 예방법


베를린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기 때문에 소수 인종에 대해 우호적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남에게 상처를 받은 적 있는 아이들이 자기가 당했던 아픔을 다른 아이들에게 되돌려주기 때문에 소수 인종이 또 다른 소수 인종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독일 학생의 10% 정도가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독일에선 어떤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까. 한 인문 중·고등학교 왕따 예방 프로그램에서 그 답을 찾아봤다.
베를린 시 북동쪽 리히텐베르크 구에 위치한 임마누엘 칸트 김나지움은 5~12학년 아이들 9백여 명이 다니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베를린 시 교육부가 실시하는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칸트 김나지움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좀 더 분위기 좋은 학교, 즉 학생들 간의 관계가 돈독한 학교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왕따 문제가 거의 없는 학교인데 예방 차원에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역할극과 멘토로 친구에게 열린 마음 가져

독일의 왕따 예방법

왕따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베를린 임마누엘 칸트 김나지움 학생들.



이 프로그램은 학기 초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5일 동안 진행된다. 독일의 학제는 4학년까지가 초등학교이고, 5~12학년(13학년)이 중·고등학교다. 그래서 5학년이 되면 새로운 김나지움에 입학하는데, 5학년 학기 초는 아직 서로 어울리는 그룹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여서 학교 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라고 한다.
프로그램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학급에서 지켜야 할 규칙 만들기, 왕따를 주제로 한 역할극, 영화 감상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신입생이 상급생과 결연을 맺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는 제도도 포함돼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그중 인상에 남는 학생은 톰과 루카스다.
11학년에 재학 중인 톰은 초등학교 때 친구들로부터 성 정체성을 의심받았다고 한다.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으면서 친구들이 함께 놀기를 꺼려했다. 톰이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늘 자신을 믿어줬던 엄마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몇 명의 친구들 덕분이었다. 톰은 현재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왕따 프로그램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6학년에 재학 중인 루카스는 아빠가 아프리카인, 엄마가 독일인이다. 루카스에게 “외모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자신만만하게 “아니오”라고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이 예방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과 다른 아이들을 이해하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 덕분이라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왕따로 인한 학생들의 우울증과 무기력증의 심각성을 파악한 한 보험회사가 예방 차원에서 고안한 것이다. 2008년 함부르크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현재 독일 전역 16개 주 중 15개 주에서 실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운영자들은 왕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매일 저녁 식사 시간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교사, 친구, 그리고 다른 학부모들과 자주 연락하면서 아이의 변화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왕따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독일처럼 학교 차원에서의 예방 프로그램과 사회의 관심, 부모의 노력이 곁들여진다면 문제 해결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지숙 씨는…
쾰른대 독문학·교육학 박사 수료. 2002년부터 베를린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방송 프리랜서와 코디네이터로도 활동한다. 세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을 밝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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