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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With specialist | 아이 받는 여의사의 진료실 토크

새 생명 탄생의 순간 소외당하는 남편들

글·이용주 | 사진제공·REX

입력 2013.04.03 13:35:00

요즘은 산전 진료 때 남편과 친정부모까지 대동하는 임신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느 집은 첫 진료부터 4주 또는 2주마다 돌아오는 정기 진료 때마다 4명이 우르르 몰려와 초음파 화면을 보며 온갖 감탄사를 남발하고 임신부 대신 친정부모가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태교 훈수까지 한다.
새 생명 탄생의 순간 소외당하는 남편들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를 보면 4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족 관계가 나온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전형적인 고부간과 유별난 모녀간이다. 첫 임신으로 심한 입덧을 하는 조실부모 외며느리에 대해 시어머니는 ‘쯧쯧’ 혀를 차면서도 마음속으로 신경 쓰며 친정엄마처럼 보살펴준다. 밥상의 김치 냄새에 구역질하는 며느리 때문에 시부모는 서재에서 따로 밥을 먹고, 짠순이로 유명한 시어머니가 임신한 며느리를 위해 비싼 과일을 사고 전복죽을 끓여주는 모습. 결국 그런 따뜻함에 꼬이고 얽혔던 고부 관계가 화해 무드로 돌아선다.
이처럼 임신 초기 입덧은 평소 미운 며느리도 측은해질 만큼 힘든 경우가 많다. 물론 이때 임신부를 병원으로 데려오는 사람은 대부분 친정엄마다. 고이고이 키운 딸을 시집보냈더니 입덧으로 힘겨워해 친정으로 불러서 먹고 싶은 거 해먹이고 병원에서 주사라도 맞히고 싶은 게 모든 엄마의 마음일 터. 하지만 의사로서 입덧하는 ‘마마걸’을 모시고 온 막무가내 친정엄마를 만나면 난감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떤 친정엄마는 무조건 입덧을 싹 가시게 하는 약을 달라고 조른다. 약으로 입덧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너무 독한 약은 태아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면 친정엄마는 목소리를 높이며 이렇게 말한다.
“뱃속 손주보다 내 딸이 더 중요하지, 사위의 자식이 중요해요? 태아고 뭐고 상관없으니 내 딸이나 좀 살게 해줘요.”
심지어 당신의 ‘알파걸’ 딸이 임신·출산으로 인해 커리어에 지장이 많으니 아기를 지울 수 없겠느냐는 황당한 말까지 당당하게 꺼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비하면 직장 다니는 딸이 입덧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니 석 달가량 병가를 낼 수 있게 진단서를 끊어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친정엄마의 지나친 참견이 부부 갈등 일으킬 수도
실제로 마마걸의 가족은 분만 때도 유난스럽다. 가족분만실의 산모 곁에 친정엄마를 비롯해 친정 식구들이 진을 쳐서 도무지 남편이 있을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진통을 겪는 마마걸은 남편보다 친정엄마를 먼저 찾는 경향이 있다. 첫 아이를 만나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던 남편은 장모에게 밀려 소외감을 느끼고 엄마만 찾는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끼며 분만대기실 입구 의자에 앉아 울분을 삭인다. 그러다 저녁 무렵 시댁 식구들이 산모를 면회하러 나타났을 때 폭발한다. 분만실 직원이 나와 “원칙대로 산모와 같이 계신 보호자가 나오면 한 명씩 들어가 면회하세요”라고 설명하는 순간 그동안 무시당한 설움과 분통을 엉뚱한 직원에게 터트리는 것이다.
고부 갈등 못지않게 장모과 사위 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세상이다. 그럴수록 딸은 친정엄마와 남편 사이에서 현명하게 처신해야 할 텐데 마마걸은 결혼 후에도 누구의 아내가 아닌 친정엄마의 딸로 살려 하니 남편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친정엄마 역시 힘든 입덧, 죽을 것 같은 산통 다 겪고 낳은 자식이라도 모성애가 지나치면 내 자식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립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내 자식도 아이 낳고 부모가 돼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 그리고 두 남녀가 만나 한 가족을 이루는 데는 전적으로 두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중심이 돼야 한다. 입덧과 산통을 겪는 딸이 아무리 안타까워도 친정엄마가 대신 아이를 낳아줄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출산은 부부의 몫이다.

새 생명 탄생의 순간 소외당하는 남편들


이용주 아란태산부인과 소아과의원 원장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15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직장맘이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밤낮으로 새 생명을 받으며, 올바른 산부인과 지식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여성동아 2013년 4월 5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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