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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Trend Report | 구 기자의 캐치 업

전자책 전집 열풍의 실체

도서 수백 권을 핸드백에 쏙

글·구희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2013. 04. 03

전자책 전집 열풍의 실체


올해 2월 17일 도서출판 열린책들에서 내놓은 ‘세계문학’ 애플리케이션이 출시 나흘 만에 다운로드 2만 건을 돌파한 건 전자책 시장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자책 단말기 킨들이나 아이패드를 끼고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독서하는 모습이 일상적인 미국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소셜 게임도 아닌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이 다운로드 상위권을 차지한 비결은 뭘까.
정답은 파격적인 책값이었다. 괴테의 ‘파우스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열린책들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 전권을 3월 11일 정오까지 오픈 파트너에 가입하는 이들에 한해 1백49.99달러(약 16만원)에 판매한 것. 오픈 파트너가 되면 지금까지 전자책으로 출간된 책을 비롯해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작품 위주로 매주 새로 펴낸 책을 평생 소장할 수 있다.
다른 출판사도 이런 전집 출판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도서출판 세계사는 앞선 1월 22일 박완서 작가 1주기에 맞춰 ‘박완서 소설전집’ 애플리케이션을 내놨다. 다양한 조합으로 이뤄진 작품을 54.99~94.99달러(약 6만~1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온라인 서점 YES24에서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한강’을 담은 ‘박경리·조정래 에디션’을 16만8천원에 내놨다. 41권을 종이책 3분의 1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셈이다. 살림출판사의 대표적인 인문교양 시리즈인 살림지식총서 1백 권은 종이책으로 사면 30만원이 넘지만 전자책은 9만9천원에 구입할 수 있다.
‘그래도 책은 책장에 진열해두고 넘기며 보는 맛 아니냐’며 전자책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비자에게 ‘권당 1천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양질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 하지만 여기에는 출판업계의 안타까운 속내가 있다. 기껏 발굴한 신작이 시장에서 통하지 않고 베스트셀러만 계속 팔리니 이미 긴 시간에 걸쳐 검증된 고전 콘텐츠로 승부수를 던진 것. 그마저도 대폭 할인해야 팔린다. 고전 전집의 구매력이 다른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지도 의문스럽다.
그럼에도 전자책 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낸 ‘세계 전자책(e-book) 시장의 현황과 이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종이책 시장은 2016년까지 연평균 2.3%씩 감소해 9백49억 달러가 되는 반면, 전자책 시장은 2016년까지 연평균 30.3%씩 성장해 2백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전자책 단말기의 확산과 전자책 수요 증가는 1인 출판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로맨스, 판타지, 무협 소설 등 장르 문학에서는 전자책 1인 출판 스타일이 확실히 자리 잡았고,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자책으로 독자와 만나는 기성 작가도 늘었다.
장기적으로는 전자책 공급사별 표준을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보문고와 YES24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달라서 책을 살 때마다 각 사에서 제공하는 뷰어를 다운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뷰어가 구동 시간이 길고 자잘한 오류도 많다. 이러한 환경이 전자책 확산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간편함 때문에 이용하는 전자책. 그러나 볼 때마다 컴퓨터 전원을 켜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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