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스마이셋케이샤는 옛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작업장으로 쓰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무엇으로 축복해줄까? 아이가 커서도 추억으로 남을 선물은 무엇일까? 부모라면 한 번쯤 해보았을 고민이다. 홋카이도 중앙부에 있는 소도시 히가시카와 초(東川町)에서 이런 부모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독특하고 기발한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일명 ‘너의 의자(君の椅子)’ 프로젝트. 히가시카와 초의 공방에서 해마다 그해에 태어난 아기들을 위한 새로운 디자인의 의자를 선보여,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 의자를 선물하면 의자만 봐도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른이 돼도 좋은 추억이 된다는 취지다. 의자마다 아기의 이름과 로고 및 일련번호가 새겨져, 말 그대로 세계에서 하나뿐인 의자가 만들어진다.
새 생명의 탄생 축복하는 ‘너의 의자’ 프로젝트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낸 것은 홋카이도 부지사를 지낸 아사히카와 대학의 이소다 겐이치(磯田健一) 교수와 그의 대학원 세미나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2006년 히가시카와 초가 이 취지에 찬동하여 새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에서 초(町) 내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에게 의자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점차 주변 지자체로 확대됐고, 지금은 전국에서 개인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너의 의자 클럽’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또 삿포로 시 중심부에 있는 오오도오리 공원 부근에 ‘너의 의자’ 공방학사(工房學舍)가 마련돼 2006년부터 매년 새롭게 디자인된 의자들을 전시하고 있다. 홋카이도 여행 코스에 추가해도 좋을 듯하다.
사실 ‘너의 의자’ 같은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은 아사히카와 시(旭川市)를 에워싸듯 홋카이도의 중앙에서 북부에 걸쳐 있는 가미카와종합진흥국(上川綜合振興局)의 관내가 대규모 삼림지대여서 질 좋은 목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특히 관내 중심부에 위치한 아사히카와 및 히가시카와 지역은 목재를 활용한 가구 제작과 수공예 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사히카와 하면, 미우라 아야코(1922~1999)가 쓴 소설 ‘빙점’의 무대가 된 도시, 또는 뒤뚱뒤뚱 열을 지어 걸어가는 펭귄으로 유명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떠올리거나, 유럽풍의 언덕이 아름다운 비에이(美瑛)나 라벤더 꽃밭으로 유명한 후라노(富良野)로 가기 위한 관문 정도로 기억한다. 얼마 전까지는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으니, 등잔 밑이 어두웠다고나 할까. 그러나 매년 3월 ‘아사히카와 가구 축제’가 열릴 만큼 가구 공예는 이 지역의 특산품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히가시카와 초의 가구 공방이다. 여행에는 나요로시립대학의 동료 교수인 이에무라 아키노리(家村昭矩) 선생이 가이드 겸 운전기사를 자청했다. 이에무라 선생은 대학에서 가장 존경받는 교수일 뿐 아니라 홋카이도를 구석구석 꿰뚫고 있어 최고의 길동무였다. 아내가 마련해준 커피와 간식거리를 한보따리 들고 차에 올라 설레는 마음으로 이에무라 선생을 따라 나섰다. 마치 목적지도 모른 채 주인을 따라 산책을 나가는 강아지처럼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분명히 하늘은 파란데 차창에는 가볍게 눈발이 부딪힌다. 홋카이도에서는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풍경이다. 창밖으로 전개되는 설경을 즐기며 커피를 홀짝이는 동안 어느새 아사히카와 시내에 들어섰나 했더니 차는 다시 교외로 벗어났다. 아사히카와 동물원 부근을 지나 나지막한 산자락에 진입하자 여느 민가와는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펜션 같기도 하고 별장 같기도 한 아기자기한 건축물들. 가끔 눈에 띄는 간판에는 저마다 ‘OO공방’이라고 적혀 있다. 지역 공예품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1 ‘너의 의자’ 프로젝트를 알리는 포스터.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가 앉을 자리는 여기”라는 말이 적혀 있다. 아사히카와 대학 홈페이지 제공. 2 와타나베 씨와 딸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전경. 3 기타노스마이셋케이샤 전시장 건물 뒤에 있는 카페 앞에 선 와타나베 마사미 씨.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함에 눈과 머리가 저절로 맑아지는 것이 홋카이도의 겨울이 주는 선물이다.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 부근이라는 음성 안내가 나오는 동시에 시력검사기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 점 빛처럼 시선을 끄는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껍게 바른 벽면의 검정색 페인트가 주변에 쌓인 하얀 눈과 절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 한눈에 오래된 초등학교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 ‘기타노스마이셋케이샤(北の住まい設計社: 북쪽 주거 설계사)’의 본거지였다.
의식주를 디자인하는 와타나베 씨 부부
회사 앞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카페와 전시 공간, 작업장이 어우러진 공간의 배치나 형태에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자체는 27년 전 폐교를 결정하면서 이곳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었고, 때마침 환경이나 비용 면에서 이런 장소를 찾고 있던 와타나베 씨 부부와 인연이 닿았다.
와타나베 씨 부부는 디자인과 인테리어 전문가로 호흡을 맞추어 ‘기타노스마이셋케이샤’를 만들었다. 제일 먼저 전시장 입구 카운터에 일어판, 영어판 성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에 눈길이 갔다. 지금까지 홋카이도, 아니 일본 어디를 가도 일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성서를 진열해놓은 것을 본 적이 없어 의아했다. 당연히 경위를 물어보았다. 경건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 부부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가구 공방인 줄만 알았는데 전시장에는 탁자, 의자, 소파, 침대와 같은 가구 외에도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의식주와 관련된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셋케이샤의 제품은 실용성을 우선으로 한 소박하고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나무라는 재료의 특징을 잘 살려 독특한 홋카이도만의 멋을 지니고 있었다. 전시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이런 취향으로 집을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에 젖어드는데 와타나베 마사미(渡邊雅美) 씨가 도착했다. 우리가 선약도 없이 불쑥 찾아왔음에도 외출 중 직원들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돌아온 것이었다.
와타나베 부인은 전시장 뒤편의 오솔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카페로 우리를 안내했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숲 속 카페 건물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 자작나무 가지에 소복하게 쌓인 눈과 눈 속에 묻힌 카페 건물이 크리스마스 카드에 등장하는 그림처럼 보였다. 카페 2층에서 내려다본 숲 속 정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와타나베 부인은 부부가 시작한 이 회사를 지금은 스웨덴에서 공부한 딸과 건축 전문가인 사위도 함께 참여해 운영하고 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 전시장을 둘러보며 품었던 의문 즉, 가구 공방임에도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선보이고 있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와타나베 부부는 창업 초기부터 자신들의 전공인 건축 설계와 가구 공예에 그치지 않고 각종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의식주에 관한 모든 것을 토털 디자인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즉 소비자에게 맞추기보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고 동의를 얻어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때로는 디자인이나 제품 선정을 놓고 부부간 이견이 있을 때 서로 한 발짝도 양보하기 싫어하기도 하지만 그런 가운데 얻어진 타협이 새롭게 제품에 반영된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녀와의 대화 곳곳에서 유익한 창조는 기성의 가치에 대한 적절한 비판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태어난다는 확신이 생겼다. 카페를 나오면서 문득 회사 홈페이지 말미에 적혀 있던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세월만큼 가구로서도 그만큼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이들 부부의 기도가 뇌리를 스쳐갔다.
1 기타노스마이셋케이샤의 전시장. 2 매년 3월 아사히카와에서 열리는 가구 축제. 3 미야치 공방에서 미야치 씨(왼쪽)와 이번 여행에 함께해준 이에무라 선생.
섬소년 가구 공예의 장인이 되다
셋케이샤를 나와 두 번째로 들른 곳이 미야치 시즈오(宮地鎭雄) 씨의 미야치 공방이다. 규모나 경영 철학 등에서 셋케이샤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미야치 씨는 인적이 드문 허허벌판에 있는 작은 공방에서 직원 한 명 없이 혼자 묵묵히 작품을 만든다. 미야치 공방을 두세 번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이에무라 선생조차 헷갈릴 만큼 외진 곳에 있어서 내비게이션도 무용지물이었다. 눈 덮인 설원 저 멀리 드문드문 집들이 보이는 농촌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미야치 공방은 의자 모양의 간판만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농가였다.
미야치 시즈오 씨는 아이치 현(愛知縣: 일본 혼슈의 현)의 작은 섬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쿄 공예대학에서 사진공학을 공부했으나, 목공예에 관심을 갖게 돼 다시 직업훈련학교에서 기초를 배우고 유명 가구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후, 의자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1991년 이곳에 미야치 공방을 열었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 여행을 위해 처음 홋카이도 땅을 밟았던 그가 평생의 업으로 목공예를 선택하면서 목공예의 도시 아사히카와를 선택한 것은 필연이었다.
그는 독립 후 유럽 여행을 통해 기능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 가구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오로지 의자에 집중하기로 했다. 요즘 그가 만들고 있는 의자는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 씨를 위해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일본의 ‘국민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우라 아야코 씨는 만년에 파킨슨병으로 고생했는데, 미야치 씨는 그를 위해 신체적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특별한 의자를 제작해주었다고 한다. 미야치 씨는 이에무라 선생과 내게 제작 중인 의자에 앉아보라고 권했다. 나는 의자에 앉으며 두 번 놀랐다. 등을 딱 받쳐주는 의자의 편안함에 놀랐고, 수백만원 대의 평범하지 않은 가격을 듣고 놀랐다. 이러한 특수 의자 하나를 만드는 데 한두 달씩 걸리기에 지금은 의자를 주문해도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미우라 아야코 의자가 알려지면서 그는 지금까지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특수 의자를 1백 개 정도 만들었다. 이런 미야치 씨의 이야기가 지난해 10월 일본 NHK에서 방송돼 더욱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의 유명 건설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이 의자를 만들어갔다고 귀띔했다.
미야치 씨의 경영 철학은 앞에서 소개한 와타나베 씨와는 상반된다. 즉 “철저하게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의자를 만든다”는 것. 그는 대학생 때 우연히 인체공학에 관한 책을 읽고 의자 디자인의 방향과 신념을 세웠다. 즉 편하게 앉는 의자보다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의자가 좋은 의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만든 의자는 ‘등으로 앉는 의자’라고 설명된다. 이처럼 주문이 밀려 있는데도 왜 제자나 직원을 두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냥 자유롭고 싶어서요.”
진정한 자유인을 또 한 사람 만났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야치 공방을 나서는데 머리 위로 한 쌍의 새가 날아간다. 그들도 자유를 찾아 나선 것일까!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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