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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엄마표 영어 꿈꾸는 초보 맘 실전 가이드②

엄마의 ‘된장 영어’가 네이티브 CD보다 낫다

글 & 사진·오미경

입력 2013.04.02 11:40:00

영국 생활 초기에 우리는 언제쯤 아이들의 입에서 영어가 튀어나올까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국 두 아이 모두 말문이 트이기까지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중요한 과정이 필요했다.
바로 ‘충분한’ 시간 동안 ‘반복해서’ 영어를 ‘듣는’ 과정이다.
엄마의 ‘된장 영어’가 네이티브 CD보다 낫다

친구들과의 생일 파티. 아이들은 함께 노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어 듣기 훈련을 한다.



우리 가족이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정현이는 세 살 8개월, 준용이는 한 살 3개월이었다. 정현이는 당장 다음 해 가을부터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였다. 영국 초등학교의 취학 연령은 만 네 살. 우선 유치원이라도 보내 영어를 익히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영어라고는 알파벳 A의 ‘아’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유난히도 억센 영국식 발음을 구사하는 유치원 선생님들과 금발머리 아이들 사이에 정현이를 남겨두고 왔던 등원 첫날을 7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정현이가 울고불고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잡지는 않았지만 입을 삐죽거리며 가까스로 눈물을 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담임 교사인 소피(Sophie)는 걱정하지 말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다행히 정현이는 이 유치원을 매우 좋아했다. 대학교 구내 유치원이라서 같은 기숙사에 살던 한국 부부의 자녀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정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날 선생님, 친구들과 무슨 놀이를 했는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물론 유창한 한국어로 말이다.
사실 엄마의 관심은 정현이가 유치원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가 아니었다. 하루하루 아이의 영어가 얼마만큼 늘었을까만 궁금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정현이는 가끔 “Hurrah!(신난다, 만세라는 뜻)” 하는 감탄사만 사용할 뿐 영어로 말문이 트일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올수록 불안감도 커졌다. 아이가 영어로 말하지 않는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 우리 부부는 당시 학교 기숙사에 살던 한국인 자녀들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기숙사 단지에는 한국인 가족이 대여섯 가구 있었다. 자연스레 한국 아이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한국말로 놀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황당한 일도 생겨났다. 한국 아이들 틈에 끼여 밤낮으로 뛰어놀던 네 살짜리 영국 여자아이 입에서 “하지 마!” “내 거야!”라는 한국말이 튀어나온 것.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에서도 이 코리언 보이들이 틈만 나면 몰려다닐 것을 생각하니 수업료가 아까웠다. 실제로 영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이 서툴던 이웃집 한국 아이는 이 유치원에 다니면서 한국말 실력이 쑥쑥 늘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유치원 원장을 찾아가 대략 사정을 설명하고 오전반을 오후반으로 옮겨서라도 정현이를 한국 아이들이 없는 시간대에 넣어달라고 졸랐다. 50대 후반의 원장 데비(Debbie)는 20년 가까이 대학 구내 유치원을 맡아온 베테랑이다.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비영어권 국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에 온 부모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많았다. 데비 원장은 우리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친구 관계나 정서적 측면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상 아이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그대로 두라는 암시였다. 그러나 오직 영어에 급급했던 우리는 고집을 피웠고 결국 정현이를 한국 아이들에게 떼어놓는 데 성공했다. 반을 옮겼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현이는 다시 유치원 오전반으로 돌아갔다. 취학 준비 프로그램이 더욱 풍부한 오전반을 권했던 담임 선생님의 의견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Max! Helen, No!”라는 영어가 나오기까지
정현이의 말문이 트인 것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였다. 유치원에는 ‘헬렌(Helen)’이라는 영어 이름을 쓰는 한국 소녀가 있었는데 정현이와 마음을 주고받는 단짝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녀석이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썽꾸러기로 유명한 막스(Max)라는 아이가 헬렌을 자꾸 놀리고 못 살게 굴기에 보다 못해 자기가 나서 해결했다는 것이었다. 유치원에 다닌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입도 벙긋 못하던 녀석이 도대체 영국 아이를 상대로 무엇을 해결했다는 것인가. 어이가 없었다.
“네가 막스에게 뭐라고 했는데?”
“너, 앞으로 헬렌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요!”
“그걸 영어로 했어?”
“네!”
“도대체 뭐라고 했는데?”
“Max! Helen, No!”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순간 나는 코끝이 찡해지는 걸 느꼈다. 정현이는 막스라는 악동의 코앞을 가로막고 자기가 가장 절실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웃음과 함께 영어 못하는 아들에 대한 근심이나 조급증은 다 날려버리기로 했다. ‘헬렌 노’ 사건은 정현이가 영어로 무언가를 표현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엄마의 ‘된장 영어’가 네이티브 CD보다 낫다

1 코벤트리 로드쇼에 전시된 차 앞에서 준용이의 모습. 2 축구장에 간 정현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새로운 단어를 들으면 무슨 뜻이냐고 묻기 시작하면서 영어 실력이 크게 늘었다.



영어 학습자가 말하기 능력을 보여주기까지 일종의 준비 기간을 가리켜 언어학자들은 ‘침묵 기간(silent period)’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정현이는 말문이 트이기까지 7~8개월 동안 유치원에서 시간과 돈만 낭비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언어학자들은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외국어 습득 능력이 우세한 이유를 이 ‘침묵 기간’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다독(多讀)을 통한 영어 학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학자가 남캘리포니아대 스티븐 크라셴(Stephen Krashen) 명예교수다. ‘입력 가설(Input Hypothesis)’이라는 학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크라셴 교수에 따르면 아이들은 새로운 언어를 습득할 때 일정한 ‘침묵 기간’을 가지며, 이 기간 동안 아이들은 ‘말하기’가 아닌 ‘듣기’에 집중하며 점차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배우고자 하는 언어를 듣고 이해하지만 아직 입 밖에 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언어학자들은 이렇게 듣기를 통해 형성된 언어 이해 능력이 말하기로 전환되는 순간을 ‘발화(utterance) 시점’이라고 한다. 바싹 마른 짚에 성냥불을 그어대야 불이 확 붙는 것과 마찬가지다. ‘침묵 기간’은 젖은 짚단을 잘 말려 불이 붙도록 준비하는 기간인 셈이다.
이 기간에 아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듣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차곡차곡 기억해둔다. 단지 말이 나오지 않을 뿐, 사실은 활발한 언어 습득 과정에 돌입한 상태다.
한 살이 조금 넘어 영국에 온 둘째 준용이는 형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영어를 선보였다. 영국에 도착한 뒤 준용이는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매주 수요일 동네 교회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놀이교실에 가서 한두 시간씩 놀고 오는 것이 유일하게 영어를 접할 기회였다. 그 대신 준용이는 집에 머물면서 BBC 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 몇 개를 시청하거나 DVD로 영화를 보았다. 특히 같은 DVD를 수도 없이 반복해 보았다. 당시 우리 집의 유일한 DVD는 에디 머피 주연의 영화 ‘대디 데이 케어(Daddy Day Care)’였는데 준용이는 각 장면은 물론 배경음악까지 모두 외워버렸다.
이렇게 1년이 흘렀지만 준용이가 입을 열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을 만나 준용이가 아는 영어라곤 ‘baby’라는 단어 하나뿐이라는 걸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준용이는 첫날부터 자신이 처한 환경의 변화를 확실하게 알아차린 것 같았다. 즉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현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림책에 있는 나비를 가리키며 “이게 뭐야?”라고 묻자 “나아~버터플라이”라고 대답한 것이 증거 아닌 증거였다. 준용이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구사하는 말이 한국어에서 영어로 완전히 바뀌는 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말이 빨리 터졌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데서 이상한 변화가 감지됐다.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말 이외에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유치원에 다니기 전 집에서 엄마와 했듯이 한국말로 조잘거리는 일도 없고 유치원에 다녀와서 엄마나 아빠가 묻는 말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일상 언어가 한국어에서 영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묵한 아이가 됐다.
“유치원에서 뭐 했니?”라고 물으면 “Don’t know” 아니면 “Forgot”만 반복했다. 몰라, 까먹었다는 거다. 그러다가 기분 좋으면 한마디 더 했다. “Play.” 놀았다는 걸로 끝이다.
초등학교 입학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절반은 체념 상태로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터졌다. 유치원에서 영국인 친구가 손톱으로 준용이의 얼굴을 할퀴어 여러 군데 깊은 상처를 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영국 교사들이 대처하는 방법은 한국과 전혀 다르다. 우선 피해 어린이의 부모에게 가해 어린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당신 자녀가 집에 가서 이야기할 수도 있으니 그리 알라”고만 통보한다. 부모 앞에서 “누가 누구를 때렸다”라고 하면 아이들끼리 좋지 않은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구석도 있지만 여하튼 영국인들의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속이 상한 나는 준용이를 앉혀놓고 캐물었다. 그때 준용이가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줄 처음 알았다. 육하원칙에 맞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목조목 영어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남편도 나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 살짜리와 한 살짜리의 영어 습득 차이점
두 아이 덕분에 나는 영어가 발화(發火)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정현이가 7~8개월 정도에 걸쳐 그야말로 입을 다물고 ‘침묵 기간’을 보냈다면, 준용이는 자기에게 필요한 최소의 말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이 기간을 보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이 ‘침묵 기간’을 이해하는 것이 아이를 영어 학원에 보내는 엄마들이 명심해야 할 첫 번째 마음가짐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기간에 가장 강조돼야 할 것은 역시 ‘듣기’다. 아이는 아무런 뜻도 모르면서 귀로 들은 내용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으로 언어 습득을 시작한다. 영어권에서는 남을 잘 따라 하는 흉내쟁이를 표현할 때 ‘카피캣(copy cat)’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영어를 배울 때 누구나 ‘카피캣’이 된다. 나이가 어릴수록 특정 단어나 문장을 통째로 외워두었다가 똑같은 상황에서 이를 사용한다면, 상대적으로 조금 큰 아이들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말을 통째로 익혀두었다가 나중에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언어에 접근한다. 즉, 의미를 따지다가 소리를 놓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는 무시하고 소리부터 흡수한다.
준용이가 같은 DVD를 보고 또 본 것도 이러한 과정의 하나일 것이다. 어른의 눈에는 아이가 넘어지고 자빠지는 장면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나 어느 순간 그 영화에 나오는 간단한 표현들을 그대로 흉내 내서 사용하는 카피캣이 돼 있었다.

엄마의 ‘된장 영어’가 네이티브 CD보다 낫다

1 2 윈저 성에 놀러 갔을 때 정현이와 준용이. 두 살밖에 차가 안 나는데도 두 아이의 영어 습득 과정은 사뭇 달랐다.



반면 정현이는 단순한 카피캣이 아니라 새로운 단어에 대한 호기심이 좀 더 강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축구를 하고 돌아온 날 정현이는 ‘스퀄리파이드(sqaulified)’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내가 아는 한 그런 영어 단어는 없다. 어디서 그런 단어를 들었는지,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하나씩 확인한 끝에 무릎을 칠 수 있었다. 축구를 하다가 한 친구가 다른 녀석에게 “너는 실격이야(You are disqualified)”라고 한 말을 들은 것이다. 단어 맨 앞에 오는 자음을 워낙 약하게 발음하다 보니 ‘디’는 안 들리고 ‘스퀄리파이드’만 들렸던 것이다. 물론 정현이는 이런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나이는 아니었다. 단지 소리를 흡수했을 뿐이다.

오랜 침묵기간에 아이는 ‘카피캣’이 된다

엄마의 ‘된장 영어’가 네이티브 CD보다 낫다

정현이와 초등학교 친구들의 합창 모습.



침묵 기간에는 ‘정확하게’ 듣는 것보다 ‘많이’ 들어야 한다. 입력(input)이 없으면 출력(output)도 없다. ‘듣기’가 없으면 ‘말하기’도 없다. 물론 조기유학이라도 보내 아이들을 네이티브 영어 환경 속에 놓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듣기’ 교육은 없다. 문제는 95% 이상의 가정에서 이런 해법은 그림의 떡이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가 나서서 아이들에게 ‘듣기’ 양을 늘릴 수 있는 인위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영어 교육에 집착하는 많은 부모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우리나라가 ‘ESL 국가’가가 아닌 ‘EFL 국가’라는 것이다.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은 정부 문서에 영어를 사용할 만큼 제2언어(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로 사용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제2언어가 아닌, 순수 외국어(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에 불과하다. ‘EFL 환경’에서 아이들이 충분히 듣는 연습을 하려면 인위적 환경을 만들어줄 수밖에 없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때나 잠에서 깨어날 때 영어 동화가 담긴 CD를 들려준다. 이보다 1백 배쯤 더 효과적인 방법도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기계음보다 따끈따끈한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는 깊은 교감을 하며, 영어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자녀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것에 익숙한 부모들은 많지 않다. 부모에게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가 학교나 유치원에 간 사이 또는 자는 동안 따로 시간을 내서 CD를 들으며 엄마 혼자 연습을 해보자. 비슷한 또래의 이웃집 엄마와 함께 마주 앉아 읽으면 더욱 실감 난다. 마치 연극 리허설을 하고 무대에 나서듯이 아이들에게 실감 나게 읽어주고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감기에 걸린 사람만이 감기를 퍼뜨릴 수 있다고 했던가. 아이들이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어른들이 자연스러운 상황을 연출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설픈 발음에 대한 걱정은 잊어버리자. 낯선 사람의 유창한 발음보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접하는 엄마의 ‘된장 영어’가 5~6세 어린이들에게는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그럴 때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엄마의 영어를 흉내 낸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카피캣이다.
아이의 영어 습득을 위해 부모가 지켜야 할 두 번째 원칙은 아이에게 ‘침묵할 수 있는 시간을 허(許)하라’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침묵 기간’에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증에 걸린 부모는 아이에게 “학원에서 배운 것 해볼래?” 하며 억지로 말문을 열려고 한다. 우리의 경우는 더했다. 7년간 영어권에서 살다 귀국하자 친척들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영어 좀 해보라”며 채근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영어는커녕 서툰 한국말조차 입 밖에 내지 않는 침묵 시위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른들의 조급증이 아이들을 더욱 소극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저수지에 물이 충분히 고여야 찰랑거리기도 하고 흘러넘치기도 한다. 저수지에 물이 고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이 시간이 단순히 기다리는 기간은 아니다. 인위적 환경을 만들어놓고 꾸준히 ‘듣기’ 훈련을 통해 ‘말하기’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이다.
물론 이러한 환경을 만들려면 부모들이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맞벌이에 회식에, 시댁 방문에, 주말 골프에 어떻게 더 부지런해지라는 말이냐고 하소연하고 싶을 것이다. 나도 더는 해줄 말이 없다. 대신 ‘큰 소리로 책 읽어주기(The Read Aloud Handbook)’라는 밀리언셀러의 저자 짐 트릴리스(Jim Trelease)가 한 말을 전한다.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아이 키울 생각을 하지 마라(Parenting is time-consuming and time-investing, not time-saving)”. 다음 호에서는 엄마가 자녀를 상대로 영어로 대화하기에 도전하는 요령을 소개한다.

엄마의 ‘된장 영어’가 네이티브 CD보다 낫다


오미경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했다. 2005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6년, 다시 미국에서 1년을 살다 최근 귀국했다. 서강대와 영국 워릭 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각각 영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세 살과 한 살이던 두 아이는 열 살과 여덟 살이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성동아 2013년 4월 5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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