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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이 들려준 ‘그래도’라는 섬 이야기

딸 이민아 목사 떠나보낸 지 1년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입력 2013.03.15 14:03:00

이 세상에 드라마틱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어령의 삶은 특히 그렇다.
젊은 날 ‘우상의 파괴’라는 책을 펴내며 온갖 권위에 도전했던 그가 딸의 시련을 통해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고통은 계속됐다. 사랑했던 외손자와 딸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것. 온갖 고난에 시달리는 욥과 같은 삶 속에서도 그는 머리와 마음을 파고드는 말과 글로 세상을 따뜻하게 데운다.
이어령이 들려준 ‘그래도’라는 섬 이야기


어느 시인이 한국에는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고 우겼습니다…(중략)
불행한 일이 있을 때
살기 힘들 때
절망을 할 때
자신의 꿈과 소망이 산산조각이 나도
새로운 긍정을 만드는 섬이 있다고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그래도’라는 섬입니다.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느껴야 움직인다’ 중에서

이어령(79)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의 이름 앞에는 ‘시대의 지성’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명예롭지만 한편으론 그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싶다. 지성의 칼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항상 벼리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팔순을 바라보는(우리 나이로는 이미 팔순이다) 요즘도 중앙일보 상임고문, 세종학당 명예학당장, 생명자본주의포럼 위원장 등으로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는 걸 보면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최근에는 KBS에서 방영된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시공미디어)를 엮어 3권의 책으로 펴냈다.
사실 그를 만나기에 앞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책잡히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러웠다. 기자들 사이에서 그의 달변은 늘 화제가 됐다. 질문 두 개 했더니 두 시간짜리 인터뷰가 끝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비록 50년도 더 된 얘기지만 20대 초반 스승뻘 되는 선배들을 실명으로 비판해 ‘붓깡패’라고 불리기도 했다니 더욱 긴장됐다. 약속 시간보다 서둘러 그가 몸담고 있는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 도착해 딱 시간에 맞춰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컴퓨터 2대를 앞에 두고 열심히 원고를 쓰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반긴다. 그런데 양복바지가 허리춤 위로 올라와 있다. 시골 할아버지 같은 그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보통 사람들보다 한 옥타브 높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동서고금을 현란하게 휘저으며 열변을 토했다. 말에도 느낌이 있다면 그의 말은 도도한 강물 같기도 하고, 구수한 숭늉 같기도 했다.

딸을 떠나보낸 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요즘 하버드대에서는 정의, 행복과 함께 죽음에 관한 강의가 폭발적인 인기라고 한다. 어느 시대나 지적 호기심의 맨 꼭대기에 있는 것은 ‘죽음’이다. 살아서는 끝끝내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그래서 인간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체험한다. 이 이사장은 1년 전인 지난해 3월 15일 2남1녀 중 맏딸인 이민아 목사를 잃었다. 이민아 목사의 삶은 더없이 화려한 성공과 끝없는 시련이 공존했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 목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쿨 수료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LA 지역 부장검사까지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김한길 전 문화부 장관과 결혼했으나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둔 채 5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4년 후 재혼해 세 아이를 얻었지만 그중 큰아이가 자폐 판정을 받는 등 고통의 연속이었다.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아이의 증상은 호전됐지만 그 후엔 망막분리로 그 자신이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무신론자이던 이어령 이사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딸을 위해 “제게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이 있으니 딸이 앞을 보게 해주신다면 그 능력을 당신께서 이루고자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다”고 기도하며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후 이민아 목사는 기적처럼 시력을 회복했으나 불행은 계속됐다. 2007년 김 전 장관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성한 아들을 갑작스럽게 잃은 데 이어, 그 자신마저 암 선고를 받았다. 이민아 목사는 투병 중에도 아프리카, 중국 등을 돌면서 청소년 구제 활동과 복음을 전하는 등 신앙인으로서의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 곧 이민아 목사 1주기입니다. 많이 보고 싶으시죠?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사진도 안 보이는 곳에 뒀어요. 죽기 이틀 전만 해도 호텔에 머물며 ‘야경이 좋다’고 ‘하루 더 있을까’ 물어보기에 ‘그걸 뭘 물어봐’라고 할 정도로 밝았는데…. 우리 딸은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에 진 게 아니라 처절하게 싸우다 전사하거나, 그걸 치고 올라갔다고 봐요. 폐에 물이 차서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절대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죠. 지금쯤 하나님 곁에서 구제된 영혼으로 더없이 자유롭게 살고 있을 테니 슬퍼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처럼 서럽고 고통스러운 게 없어요. 별수 없이 그게 사실이에요. 딸도 그랬어요. 외손자를 잃은 후 어느 날 간증을 하면서 ‘제 살을 깎아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슬프다’라고 하더군요. 그게 인간이에요. 예수님 자신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영혼은 맑으나 육체는 한없이 떨리는도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쓴잔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죽음이 그만큼 슬프고 고통스럽고 단절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생을 찾는 겁니다. 딸을 잃고 보니 육체를 가졌다는 게, 생명이 육체를 통해 나타났다는 게, 살아서 눈을 보고 이야기하고 만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어요.”

▼ 이민아 목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선생님께 큰 깨달음을 남긴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딸에게 내 신용카드를 줬는데, 어디서 간증하기를 ‘미국에서는 늘 은행 잔고를 신경 썼는데 여기서는 아버지 카드 긁으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여러분도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님 카드 갖고 마음껏 긁으세요’라고 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걸 맡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야기죠. 외부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마음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져요. 영혼이나 마음을 바꾸는 건 천하를 바꿀 정도로 극적 대전환을 이룰 수 있죠. 바깥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안을 바꿔보세요. 그러면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어요. 죽음이 밖에 있을 땐 두렵지만 내 영혼 속에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우리 딸이 그걸 보여줬죠. 죽음 앞에 비굴하게 무릎 꿇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과 맞서서 끝내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모든 사람의 축복 받으면서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이어령이 들려준 ‘그래도’라는 섬 이야기

이어령 이사장의 맏딸 고 이민아 목사.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동시에 시련도 많이 겪은 그는 암 투병 중에도 꿋꿋함을 잃지 않았다.





▼ 딸을 떠올리면 특히 기억나는 추억이 있으신지.
“어느 해 여름에 집사람(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이 아이를 가져서 나 혼자 민아를 데리고 해수욕장에 놀러 갔는데 마침 같은 호텔에 문인 후배들이 묵고 있었어요. 그래서 민아를 재우고는 그 방에 가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죠. 밤에 아이가 깨서 캄캄한데 아무도 없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울며불며 아빠를 찾는데 아비인 나는 다른 데서 노닥거리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아이 일평생이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리 찾아도 제 아버지가 없으니 하나님 아버지를 찾은 게지.”
▼ 기독교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 외손자와 딸을 차례로 잃었습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지는 않나요.
“내가 세례를 받는다고 하니까 ‘이어령이 속세에서 가질 것 다 갖고 이제 사후까지 가지려 한다’고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인터뷰에서 ‘문 앞에 재앙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각오하고 신앙의 문을 두드린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든 순종하겠다는 의미였죠. 외손자는 제 엄마가 시험이다 뭐다 바쁜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집에 데려다놓는 바람에 제가 키우다시피 한 아이였어요. 정말 똑똑하고 착한 아이였기에 그 아이를 잃었을 때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러고 딸까지 그렇게 되니까 욥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흔들렸죠. 그렇게 충격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신심을 잃지 않은 이유는 앞을 못 보던 딸이 그렇게 환한 세상을 보게 됐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우리 딸은 암 선고를 받은 그날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가장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나 싶어요. 평생 외국을 떠돌다 부모 곁에 와서 전도도 많이 하고, 책도 3권이나 내고, 자식들 효도도 받고….”
▼ 자녀들을 키우면서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으신지.
“내가 어렸을 때 집안이 기울어 고등학교 때는 수업료도 못 낼 정도였어요. 내 자식들한테는 그런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글도 많이 쓰고 늘 일에 파묻혀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하고 스킨십이 부족했죠. 물론 집사람이 잘 키우기는 했지만. 우리 시대 아버지들이 다 그랬죠. 그래도 다른 아버지와 달랐던 게 결혼 문제에는 개입을 안 했어요. 저희들이 이 세상에 와서 최초로 하는 선택인데, 그것만큼은 본인에게 맡기자는 주의였죠. 물론 선택하는 안목을 키워주는 건 부모의 몫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모두 저희들이 짝을 선택했는데 기가 막히게 (배우자를) 잘 만났어요. 어디서 그런 짝을 구했는지.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니 며느리 자랑도 그렇겠지만 우리 며느리들은 정말 모범적이에요.”
▼ 이민아 목사가 김한길 전 장관과 결혼할 때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반대했던 건 아니고, 결혼하기엔 이른 나이이니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조언했죠. 물론 우리 딸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제 스스로 선택했으니 고통스러워도 후회는 안 했을 거예요. 절대 배우자나 결혼에 대해 나쁜 소리는 안 했으니까.”
▼ 장동건·고소영 부부가 결혼할 때 주례를 섰는데, 그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나요.
“하루는 왕에게 신하가 와서 하는 말이, 궁에 도둑이 들었는데 은수저를 훔쳐가고 거꾸로 그 자리에 은잔을 놓고 갔다고 하더래요. 손해 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득이라는 거지. 그게 결혼이에요. 요즘 사람들 손해 본다고 결혼을 안 하는 경향이 있는데 살아보면 결혼은 남는 장사예요. 그런데 참 재밌는 게 장동건 그 친구는 드라마에서 결혼하는 연기를 여러 번 했을 텐데 결혼반지를 끼워줄 때 보니까 손을 벌벌 떨더라고요(웃음). 아무리 명배우라고 해도 연기와 진짜는 이렇게 다르구나 싶더군요. 그렇게 살아야 해요. 쇼하지 말고 리얼하게.”
▼ 그래서 그들 부부는 잘 살고 있나요.
“그럼요. 내가 주례 선 커플치고 이혼한 사람들이 없어요. 이찬진·김희애 부부도 내가 주례를 섰는데 그렇게 잘 살 수가 없어요. 아이들도 보통 똑똑하게 잘 키우는 게 아니야. 보고 있으면 굉장히 흐뭇해요. 내가 아직 불패라서 그런가, 주례 서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웃음).”
▼ 주례를 부탁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그분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모범적이었나 하는 겁니다. 주례 요청이 많다는 건 그만큼 결혼 생활을 잘하셨다는 뜻 아닐까요.
“집사람이 글도 쓰고 여행도 좋아하고 그러니까 (남편이 바빠서 집안일에 신경을 못 써도) 잘 견딘 것 같아요.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는데 인격을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한몸 한마음이 되겠어요, 그건 위선자들이나 하는 말이고 사실은 이심이체죠. 이심이체지만 그 관계가 중요해요. 상대가 완벽하길 바라면 작은 흠집에도 크게 실망하게 되고 그 결혼은 100% 실패하기 마련이에요. 조금 부족하고 모자란 구석이 있어도 ‘내 남편이니까’, ‘내 아내니까’ 하고 받아들여야죠.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예요. 분명 이상은 있지만 운명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단 결혼 생활에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배우자가 모르는 자신 모습을 하나쯤은 남겨두라는 거예요. 그래야 신비성이 있거든. 성장하는 모습이든 창조적인 모습이든. 그게 있으면 늙어서도 매력이 있어요.”

문명의 추위 이기려면 잃어버린 집단 지성부터 회복해야

KBS를 통해 1년 넘게 방영됐고, 최근 책으로도 출간된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는 그가 평생 읽거나 듣거나 생각했던 것을 80초의 짧은 애니메이션과 글로 정리한 것이다.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지혜와 창조적 메시지는 유대인의 정신적 자산인 탈무드를 방불케 한다. 속된 말로 감동을 먹게 된다. 정신의 허기가 채워지는 것이다.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가 처음 방영됐을 때 왜 하필 80초일까 궁금했다. 이 이사장은 책 서문에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놓았다. 처음엔 자신의 나이를 의미한다고도 했다가 매번 같은 대답만 할 수 없어 조금씩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는 것. ‘80초의 8자를 눕히면 무한대를 의미하는 기호(∞)가 된다. 그러니까 80초의 짧은 순간에 무한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80초의 8자를 눕히면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안이 겉이 되고 겉이 안이 되는 이상한 띠. 안과 밖의 대립을 넘어서는 것이 80초 생각나누기의 로고라고도 말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80초는 젊은 세대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스마트폰 같은 최신 기기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어령이 들려준 ‘그래도’라는 섬 이야기


▼ 책 제목이 그냥 ‘생각’도 아니고 ‘생각나누기’입니다.
“우리는 은행에 돈을 넣으면 이자가 생긴다는 건 알지만 생각도 저축하고 나누면 불어난다는 걸 몰라요. 마음이나 생각도 나누면 증식이 돼서 그 공동체의 재산이 되는데 말이죠.”
▼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문명의 추위라고 정의하셨던데요.
“살림은 부유해졌는데, 마음은 오히려 예전보다 가난해졌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니까 혼란에 빠진 거죠. 희망의 봄, 노동의 여름, 수확의 가을을 지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힘든 시기예요. 문명의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선 집단 기억을 나누고 그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게 첫 번째예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죠? 불편하고 좁은 달동네에서도 이웃과 사이좋게 지냈는데, 지금은 편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도 하잖아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에요. 아프리카 산족들은 1만 년 가까이 마을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집을 짓고 광장 쪽으로 문을 내 공동생활을 했는데, 최근 화폐가 들어오면서부터 바깥쪽으로 문을 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서로 살림살이까지 훤히 알며 가족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이젠 완전히 남남이 된 거죠. 공동체가 붕괴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 사회가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것, 그리고 시급하게 되찾아야 할 것은 생명 존중과 사랑이에요.”
▼ 그걸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배고프다고 엄마 젖을 무한대로 먹는 건 아닌 것처럼 인간의 물질적 욕망은 한계가 있어요. 욕망을 물질로 채우지 말고 정신으로 채워야 합니다. 욕망이라는 게 정신의 허기거든요. 아이들 키우는 것만 해도 그래요. 가만히 내버려두면 충분히 행복한데 ‘엄친아’니 뭐니 해서 자꾸 남과 비교하니까 불행해지는 거예요. 왜 아이들이 커서 모두 의사, 변호사가 돼야 합니까. 하워드 라인골드라는 미국 테크놀러지 분야의 대가는 자신의 책 서문에 ‘내가 어려서 그림에 색칠을 할 때 선 바깥으로 나가도 야단치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께 감사한다’고 썼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죠. 엄마들이 자녀가 일류 대학 좋은 과에 들어가라고 닦달하지 않고 밥을 굶든 말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어령이 들려준 ‘그래도’라는 섬 이야기


▼ 선생님을 이렇게 키운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문학을 좋아하셔서 내가 글을 배우기도 전에 ‘아! 무정’ ‘암굴왕’ 같은 책을 다 읽어주셨어요. 나중에 보니 그게 ‘레미제라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더라고요. 숱하게 많이 읽어주셨지. 우리 어머니는 당시로선 흔치 않게 고등 교육을 받으셨기에 그런 게 가능했지만 지금 엄마들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아버지는 지적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물건 나오면 꼭 사서 써보셨어요. 병아리 부화도 하고, 비닐하우스도 만들고.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통해 말하자면 최신 트렌드를 익힌 거죠. 그 덕분에 새로운 기계에 두려움이 없어요. 지금 문인 중에 나만큼 컴퓨터를 많이 이용하는 사람도 없을걸요(웃음).”
▼ 부모님이 도덕적으로 강조한 부분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내가 너덧 살 무렵인데, 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니 은전이 가득 든 봉투를 주면서 ‘어머니 가져다드려라’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땅을 팔았는지, 봉투 안에 은전이 가득 있더군요. 어린 마음에 ‘이렇게 많은데 하나쯤 빼내도 모르겠지’ 싶더라고. 그래서 하나를 몰래 숨겨뒀다가 그걸 들고 읍내에 가서 사탕도 사고 뭐도 사고 하는데, 쓰면 쓸수록 돈이 점점 많아지는 거야(웃음). 은전이 큰돈이었던 터라 물건을 살수록 주머니에 잔돈이 그득그득 차는 거지. 결국 돈을 다 못 쓰고 해가 뉘엿뉘엿해져서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이 돈 어디서 났느냐’며 추궁을 하시더라고요. 내 딴에는 ‘누구 아버지가 귀엽다고 줬어요’ 등등 변명을 해봤지만 통할 리가 있나. 그날 어머니께 얼마나 맞았는지, 그다음부터는 거짓말을 하거나 남의 물건에 손대면 안 된다는 게 머릿속에 콱 박혀버렸어요. 지금도 결벽증이 있어 백화점 같은 데 가서 물건을 만지면 뭐라도 사서 나와야지 그냥은 못 나와요(웃음). 그런 것만 봐도 부모의 양육법이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죠. 우리 아이들이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유전자와 함께 정신적으로 최소한의 도덕성만이라도 심어주면 좋겠어요.”
▼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도덕만으론 부족하지 않을까요. 남들보다 경쟁력도 있어야 하겠고, 스펙도 중요하잖아요.

이어령이 들려준 ‘그래도’라는 섬 이야기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 창조적이고 따뜻한 메시지를 담은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



“스펙이란 말이 전자 제품의 ‘사양’을 뜻하는 ‘specification’에서 유래한 거예요. 기기의 특성은 어떻고 메모리는 얼마고 하는. 그걸 사람에게 쓰고 있으니, 인간이 전자 제품이 된 거야. 옛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생명화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것도 물질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만 해도 하늘에서 비가 오면 ‘비가 오시네’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놈의 산성비’하면서 귀찮아하지 않습니까. 물질적인 빈곤도 재앙이지만 모든 걸 물질화하는 것이야말로 재앙이에요. 칼 폴라니라는 학자는 ‘현대의 비극은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했죠. 생명을 상품화하고, 땅을 상품화하고. 아이들 기를 쓰고 공부시키는 것도 결국은 상품화시키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소유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시각으로 보면 우리 모두 부자예요. 아침에 일어나 해돋이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이런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런데 이런 걸 상품화하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거죠. 이것만 알아도 인간이 그렇게까지는 비참해지지 않을 텐데. 지금까지 생명을 물질화했는데, 이제부터는 물질을 생명화해야 합니다. 루이뷔통 핸드백보다 어머니의 손때 묻은 가방이, 남의 손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남편이 결혼할 때 준 실반지가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으면 지옥이 천당이 됩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편안해지는 법,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부자가 되는 법은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아귀가 딱딱 맞도록 논리정연하게 풀어놓은 그는 점심 약속에 늦었다며 서둘러 사무실 문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은 지혜를 전하려는 마음에 있어서는 큰 어르신이되 탐구하는 자세에서는 여전히 청년이었다.

여성동아 2013년 3월 5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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