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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어머니 이명희

한계 뛰어넘은 지젤의 꿈

글·구희언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3.03.15 11:31:00

2013년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가 2월 5일 막을 내렸다. 7백여 명의 관객 앞에서 ‘지젤’ 무대를 선보여 박수를 받은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 씨에게 발레란 차별의 시선을 인정으로 바꿔준 소중한 친구였다.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어머니 이명희


1월 30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 2013년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문화 행사 첫날 프로그램인 ‘발레·음악’ 무대가 열렸다. 2분가량 이어진 백지윤(21·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씨의 발레 ‘지젤’ 공연이 끝나자 관객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백씨가 소화한 안무는 ‘지젤’ 중 페전트 파드되(소작농 2인무)의 여자 솔로. 국립발레단이 주축이 된 행사에서 백씨는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다.
사람의 몸에는 21번 염색체가 2개 있어야 정상적인 신체 발달이 이뤄진다. 이 염색체에 문제가 생기면 발생하는 것이 다운증후군이다. 백씨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신체와 지적 발달이 모두 더디다. 운동 신경도 둔하고 말도 느리다.
올림픽 폐막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백씨와 어머니 이명희(48) 씨를 서울의 자택에서 만났다. 백씨는 예상보다 밝았고 표현력도 풍부했다. 질문의 대부분을 알아듣고 대답했지만, 어려울 때는 어머니가 쉬운 말로 풀어서 다시 물었다. 백씨는 인터뷰를 부끄러워하다가도 동경하던 선배 발레리나들의 사인을 받았느냐고 묻자 “내가 (그분들에게) 해줘야죠”라며 배시시 웃기도 했다.

장애 딛고 선보인 기적의 지젤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어머니 이명희

백지윤 씨는 발레를 통해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 자존감도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포기했던 발레를 다시 시작했다. 왼쪽 사진은 지윤 씨의 발.



“지젤은 음악이 경쾌해서 좋아요. 지젤이 로이스와 키스하는 장면은 정말 마음에 들어요.” (백지윤)
“이번 문화 행사는 지윤이에게 의미 있고 아름다운 무대였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리나들과 한자리에서 공연할 수 있었고, 분야는 다르지만 각자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선 전 세계 스페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 큰 기쁨이었죠.” (이명희)
백씨에게 스페셜올림픽 축하 무대에서 선보인 ‘지젤’의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지윤이 그날 지젤 몇 점 된다고 생각해?”라고 되묻자 백씨는 주저 없이 “100프로!!”라고 외쳤다. 이씨가 “그럼~ 1백 점이죠”라며 백씨를 안아줬다. 평소 딸과 스킨십을 많이 하느냐는 말에 “그럼요, 말보다 더 많이 해요”라며 이씨가 백씨를 끌어안자 딸은 “엄마가 너무 (스킨십을) 진하게 하는 스타일이야”라며 쑥스러워했다.
평형 감각도 부족하고 근력이 약한 일반적인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발레의 섬세한 동작을 따라하기란 무리다. 이씨는 “지윤이는 의외로 ‘다운’ 아이치고 근력이 조금 나은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백씨의 증세는 다운증후군에서도 심한 축에 속한다. 이씨는 “보통은 어머니들이 아이가 태어나고 두세 달 지나 발육이 늦으면 검사를 하는데, 지윤이는 태어나자마자 호흡을 못해 신생아실에서 곧바로 검사해보라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증상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은 백씨는 한쪽 눈에 난시, 원시, 근시가 다 있어서 무대에 설 때 콘택트렌즈를 끼는 건 꿈도 못 꾼다. 질식사의 위험을 줄이려 혀 절개 수술까지 받았다.
이씨가 딸을 처음 발레 학원에 보낸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하는 율동과 음악 치료의 일환이었다.
“발레를 6~7개월 했지만 아이가 발끝으로 서 있지도 못해서 그만뒀어요. 중학교에 가서는 왕따를 당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이 손에 살이 파일 정도였죠. 그때 지윤이가 한 말이 ‘엄마, 발레를 하면 좀 나아질 것 같아요’였어요. 음악을 듣고 연습할 때는 스트레스를 잊어버릴 수 있대요. 다시 발레를 시킬 수밖에 없었죠.”
고등학교 2학년 때 백씨는 매년 5월 열리는 전국 장애인 댄스 대회에 나갔다가 그를 눈여겨본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으로부터 국립발레단 아카데미 오디션 참가를 제안받았다. 아카데미에 합격한 백씨는 비장애인들과 함께 연습하며 발레를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인터뷰를 하던 중 키 큰 청년이 방에서 나왔다. 백씨의 동생 호성(19) 씨였다. 백씨보다 큰 키에 “지윤 씨의 오빠냐”고 묻는 기자에게 그는 “오빠 아니에요. 동생이에요. 네 살 차”라고 답했다. 이씨가 “두 살 차”라고 정정하자 백씨는 “네 살 아니야?”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생이 부모보다 더 훌륭해요. 저희도 나름대로 지윤이를 엄청 예뻐하지만 살다 보면 지칠 때가 있잖아요. 한번은 지윤이를 돌보다 힘들어서 제가 화를 낸 적이 있어요. 그때 호성이가 여섯 살이었는데 저더러 ‘엄마, 누나에게 장애가 있는 건 우리 가족이 다 알잖아. 엄마가 참아야 돼’라고 해서 깜짝 놀랐죠. 물론 지윤이도 동생을 잘 챙겨줬고요.” (이명희)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어머니 이명희

1 백씨의 든든한 지원군인 어머니 이명희 씨와 동생 호성 씨. 촬영하는 날 아버지는 지방 출장 중이었다. 2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씨와 함께. 3 이씨는 애교 많은 딸을 보며 활력을 얻는다.



백씨는 발레 외에도 춤추고 노래하는 걸 즐긴다. 4~5시간씩 노래하고 춤춰도 지칠 줄 모른다고. 이씨가 “하루 생활의 80%는 노래와 춤이다”라고 귀띔하자 옆에서 백씨가 “아우! 엄마!”라며 민망해했다. “부끄러워~ 싫어~” 하던 백씨는 춤을 보고 싶다는 기자에게 휴대전화로 원더걸스의 춤추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즉석에서 전체 안무를 외워서 선보였다. 평소 수영을 하며 체력을 기르는 백씨. 제일 좋아하는 운동을 묻자 “발레”라던 그는 “수영 빼면…(발레가 좋아요)”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상처 치유와 성장의 원동력은 사랑
이씨는 딸이 발레를 배우면서 훨씬 밝아지고 수다스러워졌다고 했다. 그러나 꼭 발레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분야든 아이가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발레를 시킨 1차 목적은 아이의 심리적 안정이었어요. 그 후 아이가 무대에 서겠다는 목표가 생겼죠. 목표가 생기면 그걸 향해 나아가는 게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시선이 차별과 따돌림이었다면, 무대에서 처음으로 사람들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았거든요. 아이가 ‘엄마,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었잖아. 박수를 쳐줬잖아’라고 하더니 무용을 계속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지윤이의 발레 실력이 월등히 좋은 건 아니에요. 발레가 아이에게 좋았던 게 아니라 발레를 통해 인정받았기에 거기에 매력을 느낀 거죠. 정상인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면 위축되게 마련이고, 없는 장애도 생겨요. 어떤 분야든 사람들이 그걸 하는 아이를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씨는 딸의 공연을 앉아서 본 적이 거의 없다. 혹시나 무대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조바심 내며 장막 뒤에 서서 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관객의 반응에는 신경 쓸 틈이 없어요. 오로지 무대 위에서 아이가 끝낼 수 있을지, 실수하지 않을지, 아이의 행동에 온통 초점을 맞추고 있죠. 잠깐이라도 제 관심이 아이로부터 멀어지면 안 될 것 같고, 늘 에너지를 주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크죠.”
인터뷰 내내 편안하고 솔직한 이씨를 보며 궁금해졌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20년 넘게 키우면서 어쩌면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을까. 그를 웃게 한 에너지의 원천은 뭘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를 이끌었어요. 사랑을 준 만큼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마음도 커지더라고요. 아이들이 잘 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생기는 힘도 있었고요. 저는 딸의 꾸밈 없는 모습을 사랑해요.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제가 한 고생은 다른 부모들이 자식 키우며 겪는 것과 마찬가지죠.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힘들게 뒷바라지를 해도 뿌듯하고, 자식 바라보면서 버틸 수 있는 게 부모들이잖아요.”
이씨는 “선천적인 장애보다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또래와 사회로부터 받은 차별과 소외가 더 큰 장애를 만드는 것 같다”라며 “지윤이가 발레를 해서 당당해진 게 아니라, 발레로 받은 인정이 자존감을 키워줬고, 그 자존감이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 됐다”고 했다.
“일반인보다 더 큰 사랑이 필요한 게 장애인 같아요.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성장하게 하는 자원은 사랑뿐이라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어요.” (이명희)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어머니 이명희


백씨에게는 발레리나 이후의 꿈이 있다. 수녀가 돼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것이다. 요즘도 어머니와 자신보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장애 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이씨는 “지윤이가 우리 집에서 신앙심이 제일 깊다. 이번 평창에 내려가 있으면서도 기도 모임을 못 갔다고 난리였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말에 “잘 모르겠어요, 어려워요…”라던 백씨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해놓고 도전하는 게 좋겠어요. 포기하지 말고요. 부모님은 아이한테 ‘잘할 거야’라고 응원해주세요”라고 말하곤 다시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 이씨는 “이렇게 예쁜데 힘들 틈이 있겠어요”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성동아 2013년 3월 5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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