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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엄마표 영어 꿈꾸는 초보 맘 실전 가이드①

영어 공부 첫걸음은 무조건 듣기부터

“아이는 ‘스토리’ 했는데 아빠 귀에는 ‘쏘리?’ 한국 영어의 현실”

글 & 사진·오미경 | 사진제공·REX

입력 2013.03.05 17:19:00

영어 학원에 아이들을 보낸 엄마들은 궁금하다. 내 아이가 도대체 뭘 배우고 오는지. 또 궁금하다. 언제쯤 저 조개껍질 같은 입에서 꼬부랑 영어 단어가 튀어나올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궁금하다. 이 돈을 들여 내 아이를 굳이 영어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10년 넘게 교단에서 ‘수험 영어’만 죽어라고 가르치던 한 교사의 ‘본토 영어’ 경험담은 이런 궁금증을 조금은 해소해줄 것이다. 오미경 씨는 세 살과 한 살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7년 동안 영어의 본고장에서 살며 깨닫고 터득한 내용을 엄마표 영어를 꿈꾸는 초보 맘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영어 공부 첫걸음은 무조건 듣기부터

영어를 못하는 아이도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교사의 발음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한다.



영국에서 우리 가족이 즐겨 찾던 곳 중 하나가 주말 벼룩시장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웬만한 동네 공원과 축구장에선 진풍경이 벌어진다. 저마다 차를 몰고 나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집에서 쓰던 중고 물품들을 펼쳐놓고 거래하는, 이른바 ‘카부트(car boot)’ 세일이 열리는 것이다(부트는 차의 트렁크를 뜻하는 영국식 표현).
물론 ‘카부트 세일’은 요모조모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하지만 평소 보기 어려운 신기한 중고 물품들을 뒤적거리면서 이웃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덤으로 가져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영국인들이 실생활에서 즐겨 사용하는, 교과서에 없는 표현들을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루는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예상치 못한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놀랍게도 돌로 만든 절구와 절굿공이였다. 마늘을 찧어놓고 양념으로 먹을 리도 없는 영국인들이 절구를 사용하다니. 우리는 그 물건을 들고 나온 영국인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 물건 정말 재밌네요.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하지요?”
“·*%$#%”
“뭐라고요?”
“·^)@%$”
익숙지 않은 단어였을 뿐 아니라 분명치 않은 발음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개 세 번 이상 물어보는 건 실례다. 영어 교사 출신이라는 자존심도 있으니 이쯤 되면 대략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한 번 웃어주고 돌아서는 수밖에 없다. 몇 걸음을 옮기고 나서 혼잣말 하듯 남편에게 툭 던졌다.
“무슨 말이야? 하나도 안 들리네.”

영어 공부 첫걸음은 무조건 듣기부터

영국 런던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윈저성 방문 때의 모습. 큰아이가 정현이, 작은아이가 준용이다. 오른쪽은 준용이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



아이는 들리는데 어른은 안 들려?
그때였다. 장난감 하나 사 들고 뒤에서 졸졸 따라오던 둘째 준용이(당시 4세)가 불쑥 끼어들며 한마디를 던졌다.
“어떻게 그걸 못 들을 수가 있어요? 그렇게 클로우즈(close)인데.”
어라, 이게 무슨 말일까? 순간 우리 부부는 얼굴을 마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영국에서 유치원 경력 2년 차라는 ‘관록’을 자랑하는 녀석이지만 절구와 절굿공이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를 알 리 없었다. 다시 물었다.
“준용아, 너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쳐다본다.
“아니요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준용이는 제 엄마의 “하나도 안 들린다”는 넋두리에서 ‘듣다’를 ‘(무슨 말인지) 이해하다(understand)’가 아닌 ‘(귀로 소리를) 듣다(hear)’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가까이에서 해준 말을 “안 들린다”고 하는 엄마를 아이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영어를 받아들이는 아이와 어른의 태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갈라진다. 어른들은 의미를 모르는 단어를 접하면 뜻은 제쳐두고라도 소리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어른들은 익숙한 소리만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전혀 다르다.

언어 습득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결정적 시기 이론(critical period theory)’이 있다. 새로운 언어를 이해하는 성인의 뇌는 이미 충분히 발달해 굳어질 만큼 굳어진 상태인 데 반해, 아이들의 경우는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른들의 뇌가 딱딱하게 감겨 있는 실뭉치 같다면 아이들의 뇌는 스펀지와 같아서, 어른들이 닫혀 있다면 아이들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적 시기’를 이미 지나버린 어른들과 여전히 ‘결정적 시기’ 안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 중 누가 더 언어 습득에 유리한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다.
단어나 구문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이들이 영어 발음을 들리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비밀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들리는 대로 따라 하고, 일단 머릿속에 이 단어 또는 구문을 입력하면, 여러 번 사용하면서 이를 수정해나가기도 한다.
영어를 배울 때 흔히 ‘귀가 뚫렸다’는 표현을 한다. 어른들은 대부분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말하지만, 아이들의 경우 의미와 관계없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귀에 들리는 대로 주워들은 영어를 집에 와서 하면 막상 어른들과는 소통이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영국 생활 초기에 주로 발생했던 일들이다.
특히 만 3세 무렵부터 하루 서너 시간씩 영국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준용이의 발음은 유별났다. 그래도 털끝만큼 한국 토종 분위기가 나는 큰아이의 발음과 달리 준용이는 종종 지나치다 싶은 영국식 액센트(아니 영국식으론 악센트!)를 선보여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사과는 ‘애플(apple)’이 아니라 ‘아쁠’, 개미는 ‘앤트(ant)’가 아닌 ‘안트’, 심지어 밥상 위에 구워놓은 햄을 보고서는 “아이 원트 모어 함(I want more ham)”을 외쳐댔다. 난생처음 학교에 가는 날이 되자 이번에는 아침마다 “웨어 이즈 마이 북 바그?(Where is my book bag?)”라고 소리 지르며 온 집 안을 뒤지고 다녔다.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준용이의 영국식 발음에 낄낄거리기만 했을 뿐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웃지 못할 일이 생겨났다.



영어 공부 첫걸음은 무조건 듣기부터

1 놀이에 빠진 정현과 준용. 2 유치원에서 연극을 위해 요셉과 마리아로 분장한 아이들.



“아쁠, 안트, 함” 그 후
아이들이 잠들기 전 영어 동화 한 편씩 읽어주는 것이 일과이던 시절. 우리가 아이들 정서 교육에 대해 유별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영국 엄마, 아빠들의 일상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귀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웬만한 영국 가정에서는 아예 3백65개의 짤막한 이야기를 담은 두꺼운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를 몇 권씩 갖추고 산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큰아들 정현이었다. 그날따라 정현이가 이불 속에 들어가면서 아빠에게 “쏘리!”라고 했다. 큰아이답게 ‘범생이’ 기질이 다분한 정현이가 매일 책을 읽어주는 아빠에게 립서비스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아빠는 주섬주섬 잠옷을 갈아입으며 “괜찮아 정현아, 쏘리 안 해도 돼!”라고 했다. 하지만 정현이는 다시 반복했다.
“쏘리!”
“정현아, 아빠가 가서 동화책 가져올게. 괜찮다니까.”
이번에는 정현이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노, 쏘리!”
“괜찮다니까!”
아빠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을 때쯤 옆방에 있던 내가 끼어들었다.
“아니 ‘스토리’ 읽어달라는데 왜 자꾸 괜찮다고 그러는 거예욧! 읽어주면 되지.”
남편의 반응은 “엥? 이럴 수가. 분명히 ‘쏘리’로 들었는데 그게 스토리였다니!”였다. 여느 때처럼 “책 읽어달라”는 말에 아빠가 “괜찮다”고 동문서답만 하니 아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이 영국인 교사의 발음을 듣고 그대로 흉내 내서 말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R이나 S 발음이 단어 또는 문장의 맨 앞에 올 때 들릴 듯 말 듯 발음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토리’라는 단어가 어른들 귀에 ‘또리’ 아니면 ‘쏘리’라고 들린다.
‘쏘리’ 사건이 있은 지 얼마 뒤의 일이다. 준용이와 차를 타고 가다 신호등 앞에서 멈추자 뒷자리에 앉았던 녀석이 신호등을 가리키며 보란 듯이 아는 체를 했다.

영어 공부 첫걸음은 무조건 듣기부터


“왯미인즈톱!”
“뭐라고?”
“왯미인즈톱!”
아하! 이번에는 다행히도 두 번 만에 알아들었다. 녀석이 빨간 신호등을 보더니 유치원에서 배운 것이 생각나 “레드 민즈 스톱(Red means stop)”이라고 일러준 것이었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차를 세워야 한다고 배웠는데 아빠가 실제로 빨간 신호등 앞에 차를 멈추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역시 녀석의 ‘레드’ 발음은 R을 생략한 ‘웨드’ 또는 ‘왯’에 가까웠고 ‘스톱’ 역시 ‘톱’으로 들렸다.
아이들의 영어 발음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정현이가 늦잠에 빠진 준용이를 흔들어 깨우며 “준용! 웨이껍(wake up)” 하는 소리를 우리는 “준용이가 웩했다(토했다)”로 알아듣고 화들짝 놀라 아이들 방으로 뛰어간 적도 있다.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이 상품으로 연필을 받았다며 준용이가 “데이 갓 펜썰(They got pencil)!”이라고 할 때도 ‘펜썰’이라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웬 패싸움(?)”이냐며 우리 부부가 얼굴을 마주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적도 있으니….
‘뚝딱뚝딱 밥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한국 어린이 시청자들에게도 선보였던 ‘밥 더 빌더(Bob the Builder)’라는 영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밥 더 뷔우더’에 가깝게 발음한다. 그때까지 아이들은 ‘builder’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모국어의 간섭 적을 때 듣기 훈련해야
아이들의 발음에서 초성 R과 S가 사라진 것을 계기로, 영어 교육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힌트를 얻었다. 아이들은 쓰기나 읽기에 앞서, 귀에 들리는 대로 영어를 받아들여 이를 흉내 내는 것에서부터 영어 학습을 시작한다. 특히 어린이들은 동요나 짧은 동시 등 일정한 높낮이와 운율을 가진 문장을 반복적으로 듣는 것을 선호한다. 우리말을 배울 때 동요를 통해 접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정한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며 의미와는 무관하게 통째로 외워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리를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말하기를 배우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기가 말하는 것을 글자로 써보려고 시도한다. 말하자면 귀와 눈을 통해 입력된 정보가 입과 펜을 통해 출력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어린이들에게 언어를 구성하는 네 가지 기능(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중 듣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뒤늦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성인들은 “도무지 영어가 안 들려서…”라고 답답해한다. 아이들과 달리 성인은 ‘모국어의 간섭(interference)’을 받기 때문이다. 이미 모국어에 익숙해져서 외국인의 발음을 액면 그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이다. 한국인들이 영어로 전화 통화를 할 때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있다. 상대방이 ‘024’라는 지역 번호를 “오우, 투, 포”라고 말하면 많은 한국인들이 ‘524’라고 받아 적는다. 자기도 모르게 ‘오우(0)’를 한국어 ‘5’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성인은 언어적 추론 능력이나 집중력이 뛰어나지만 ‘듣기’에서만큼은 아이들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아이들은 모국어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외국인이 하는 말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그대로 흉내 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듣기는 영어 교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듣기를 통해 기본적인 뼈대를 만들어놓은 다음, 읽기를 통해 풍성한 어휘와 표현력을 익혀 뼈대에 살을 붙이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런 교육은 영어 학원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엄마나 아빠가 의지만 있다면 학원에 보내지 않고도 아이들을 꾸준하고 충분하게 영어 환경에 노출시킬 수 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하고 나면 처음에는 일정한 영어 운율을 즐기는 것으로 시작해, 조금 지나 한두 개 단어를 입으로 발음하다가 일정한 시기가 되면 화산처럼 말이 폭발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을 기대한다면 당장 자녀가 좋아하는 주제를 골라서 반복해 듣는 훈련을 시작하라. 다음호에는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언제쯤 말문이 트이는지, 이때 엄마는 어떻게 아이를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영어 공부 첫걸음은 무조건 듣기부터


오미경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했다. 2005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6년, 다시 미국에서 1년을 살다 최근 귀국했다. 서강대와 영국 워릭 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각각 영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세 살과 한 살이던 두 아이는 열 살과 여덟 살이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성동아 2013년 3월 5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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