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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 아이 받는 여의사의 진료실 토크

첫아이도 ‘순풍’ 낳게 해주는 무통분만

글·이용주 | 사진제공·REX

2013. 03. 05

“으~, 아악!” 무시무시한 진통의 비명이 생생하게 들리는 가족분만실 바로 옆 당직실에서 쪽잠을 청하다 비몽사몽 눈을 비비며 나와서 아기를 받는 순간 “응애” 하고 터져나오는 그 청량한 울음소리는 그간의 노고와 피로를 싹 가시게 하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첫아이도 ‘순풍’ 낳게 해주는 무통분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아기의 첫울음을 듣기 전까지 기나긴 산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던 순간부터 출산의 고통이 시작됐다고 하지만 신이 아담을 편애하셨는지 하와에게 더욱 심한 벌을 주셨다. 이 세상에 어디 산고만 한 고통이 또 있을까. 옛날에는 아이 낳을 때 방문 틈으로 남편이 상투 튼 머리꼭지를 들이밀면 산모가 남편 상투를 붙잡고 힘을 줬다고 한다. 엄청난 산고를 겪는 아내 옆에서 상투가 뜯겨나가는 아픔을 겪으며 조금이나마 산고를 실감하라는 선조들의 지혜였을까.
대부분 둘째, 셋째 때는 자궁 경부가 쉽게 열려(한 번 열렸던 자궁 문이어서) 아프다 싶으면 폭풍진통이 오면서 ‘순풍’ 아기를 낳는다. 그러나 초산의 경우 완전히 닫혀 있던 자궁 입구가 10cm까지 열리고, 그 뒤로도 한참 힘을 줘서 아기의 머리가 내려와야 하기에 경산과는 진통의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어느 산모든 첫아이를 낳자마자 둘째 아이 출산 계획을 물어보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둘째는 안 낳아욧!” “제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또 낳아요? 어휴~.”

자연분만의 두려움 없애주고, 둘째 도전 용기까지
그런데 요즘은 가끔 “이 정도면 해볼 만해요”라거나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낳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산모도 있다. 어떻게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경막외마취를 이용한 무통시술 덕분이다.
예전에는 강력한 진통주사를 무통주사라고 하며 놔준 적도 있으나, 요즘 마취전문의가 있는 산과병원에서는 원하는 산모들에게 경막외마취를 이용한 무통시술을 한다. 간혹 무통시술이 허리 통증을 유발한다고 하고, 일부 자연주의 출산을 외치는 이들은 투약 자체가 아기에게 영향을 줘서 결과적으로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건 오해다. 무통시술은 척추 사이의 틈을 이용해 경막외강이라는 공간에 약을 주입할 가느다란 관을 거치해놓고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용량만큼 투약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덕분에 허리디스크나 척추측만증이 있는 산모들도 편안하게 분만을 한다. 진통이 오면 수술을 해달라고 외치던 산모들이 약이 들어가는 순간 “이건 지옥에서 천국으로 간 느낌이에요. 너무 좋아요~” 하며 수술해달라는 소리가 쏙 들어가니 자연분만 성공률도 높아진다.
이처럼 ‘진통지옥, 무통천국’으로 만드는 이 좋은 시술을 어찌 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실 현재 보험수가 체계에서는 야간에 이 시술을 하면 병원이 보험공단에 청구해서 받는 급여보다 마취의사에게 지급하는 비용이 더 많기 때문에 병원으로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원들은 산모를 위해 필요하면 이를 감수한다. 분만 전문 병원들은 대부분 숙련된 마취전문의가 시술을 하며, 항상 아기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무통시술을 한다. 간혹 응급제왕절개술이 필요한 경우 미리 거치돼 있는 관을 통해 마취약이 바로 들어갈 수 있어 아기를 재빨리 수술해서 꺼내야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또 하반신만 마취된 상태여서 산모는 아기가 나오는 전 과정을 보고 느낄 수 있을 뿐더러, 수술 후에도 이 관을 통해 무통약이 계속 들어가니 혈관으로만 진통제가 들어가는 것보다 진통 효과도 훨씬 좋다.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분만’이란 과정이 한 가족사에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분만이란 이벤트가 ‘고통으로 가득 찬 첫 출발’이 아니라 ‘새 생명과의 감동적인 첫 만남’이 되기까지 무통시술의 공로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첫아이도 ‘순풍’ 낳게 해주는 무통분만


이용주 아란태산부인과 소아과의원 원장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15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직장맘이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밤낮으로 새 생명을 받으며, 올바른 산부인과 지식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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