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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 위에서 행복을 구하고 사랑을 더하다”

여행 작가 오소희 아들과 함께한 오지 여행기

글·권이지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3.02.18 17:12:00

느릿느릿 세상을 걷는 자칭 ‘사람 여행 작가’ 오소희 씨가 듬직한 여행 친구인 아들 중빈과 함께 3개월간 남미 여행을 다녀와 그 이야기를 3권의 책으로 펴냈다. 국경을 넘으며 아들과 마음의 벽도 허물었다는 살뜰한 모자의 이야기.
“낯선 길 위에서 행복을 구하고 사랑을 더하다”


여행 작가 오소희(43) 씨와 아들 오중빈(12) 군은 최근 한꺼번에 세 권의 여행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오 작가는 앞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하쿠나마타타(스와힐리어로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라는 뜻) 우리 같이 춤출래?’ 등 세 권의 여행기를 펴낸 바 있다. 오 작가의 여행기가 매번 화제가 된 것은 오지 여행임에도 늘 어린 아들을 동반했기 때문. 모자는 2010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칠레를 순례했고 만남과 헤어짐, 삶에 대한 이야기를 꼭꼭 눌러 담아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 두 권으로 나누어 냈다. 또 아들 중빈 군은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어린이용 여행책을 따로 출간했다. ‘그라시아스’는 스페인어로 ‘고맙습니다’라는 의미다.
‘어린 아들과 오지 여행을 네 차례나 떠난’ 오소희 씨는 어떤 엄마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궁금증을 해결하러 인천 송도로 향했다. 약속 시간이 되자 허리까지 오는 긴 웨이브 헤어, 살짝 그을린 피부, 작은 체구의 여인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하고 웃는 그의 모습에서 보헤미안과 어머니, 소녀의 이미지가 골고루 느껴졌다. ‘저렇게 작은 체구로 아이까지 데리고 몇 달씩 오지 배낭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하고 의아했다. 인터뷰 전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데려간 건 아닐까?’라는 짓궂은 질문도 준비했다. 하지만 그는 기자가 할 질문들을 눈치 챘는지 빙긋 웃더니 지금까지 모자의 여행 과정을 마치 책 읽어주듯 털어놨다.
오씨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곧잘 해 선생님에게 예쁨 받는 학생, 친구들에겐 선망의 눈길을 받으며 엘리트란 꼬리표를 달고 살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공부와는 다른 빛깔의 불꽃이 있었다. 당장은 화르르 태울 수 없어, 애태우며 불씨로만 남겨뒀다.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같은 과 동기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남들처럼 졸업하자마자 광고회사에 취직했고, 나를 잊을 만큼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뭐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뭐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남편이 저와 연애하느라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고서야 군에 입대했어요. 신병교육대가 끝나고 휴가를 받았을 때 결혼 했고요(웃음). 남편 군 생활 뒷바라지를 한답시고 회사를 그만두고 충남 계룡대로 이사가 함께 살았죠. 그때부터 3년간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세 돌 된 아이 손잡고 떠난 첫 여행
인생의 주인공이 되자고 다짐하곤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봤다. 획일화된 교육과정을 받던 10대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20대 후반에 시작했다. 억눌림 속 상처를 치유하고, 나를 꼭 안아줬다. 흐느껴 울던 내 안에 어린아이의 눈물을 슥슥 닦아주니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했다.
“이제야 엄마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전역하고 둘이서 떠난 인도 여행에서 중빈이를 가졌어요. 원하자마자 아이가 생긴 거죠. 중빈이가 세상에 나온 뒤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이와 함께 치열하게 놀았어요(웃음).”
중빈이가 태어날 때 오씨 부부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살았다. 엄마와 아이는 골목길을 부단히 밟고 다녔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오씨는 그때부터 ‘사람 여행’을 하게 됐다고 한다. 아이가 만 세 살이 되던 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나라 터키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났다. 둘이서만 다녀온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남편은 회사일이 바빠 한 달씩 휴가를 낼 수 없었기 때문.

“낯선 길 위에서 행복을 구하고 사랑을 더하다”

1 오소희 씨의 책에는 아름다운 도시나 여행지의 풍경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더 많다. 2 아마존 강을 떠다니는 작은 배 위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주변을 구경하는 중빈.



“낯선 길 위에서 행복을 구하고 사랑을 더하다”

1 이구아수 폭포의 두 나라 국경에 선 중빈이는 사진에서처럼 모든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아이로 자랐다. 2 여행지에서 만난 아이들과 금세 친구가 되는 중빈. 말은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과 눈빛만 있으면 못하는 말이란 없다. 3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만난 일본인 히로. 볼리비아 전통악기인 차랑고 선생님이 돼줬다. 4 볼리비아 아타카마 사막에 위치한 ‘라구나 콜로라다’호수. 호수 저편에 분홍빛 새 플라밍고 떼가 유유히 노닐고 있다.





그는 아들과 다녀온 한 달간의 터키 여행기를 묶어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아이의 보폭은 좁고 일정은 늘어졌지만 아이는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작고 조용하고 낡은 것들이었다”라고 썼다. 체력적인 한계로 주저앉았을 때, 그는 중빈이의 시선을 따라갔다. 아이는 개미와 돌멩이 같은 하찮은 것에 의미를 부여했고, 엄마는 아이를 통해 사물을 새롭게 보게 됐다.
“아이와 함께 다니니 사람들이 중빈이에게 ‘힘내라’며 사탕을 주고, 제게도 말을 걸어줬어요. 이제까지 여행이라고 하면 중요한 곳만 쏙쏙 찾아다녔어요. 엄마가 돼서 떠나니 그동안 봤던 것과는 다른 세계가 보이더라고요. 맨발로 다녀 발바닥이 새카만 아이들, 다양한 표정의 현지 사람들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중빈이와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덧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갔다. 아이는 엄마보다도 더 쉽게 또래부터 할아버지 심지어 동물들과도 친구가 됐다. 그 덕에 친구들의 집에 초대돼 밥을 먹는 건 예삿일. 오씨는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로 흘러다니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유명한 도시라 해도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곳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요. 반대로 소박한 풍경이라도 웃음짓고 살고 있으면 아름다운 장소가 돼서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요. 여행 속의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게 된 거죠. 그래서 제 여행기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주를 이루게 됐어요.”
중빈이와 다녀온 곳은 주로 제3세계 나라들. 터키를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라오스, 동아프리카 등 물질적으로 빈곤한 나라다. 사람들이 “그런 곳은 다니기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을 때마다 오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오히려 선진국처럼 틀이 잘 짜여진 곳에서는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며 세상을 배우고 느끼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중빈이는 공 하나만 가지고도 그곳 아이들과 친구가 돼요.”

기적의 도서관 ‘하쿠나마타타 프로젝트’
터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오씨는 중빈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결론에 다다랐다. “우리는 가진 게 너무 많아”라고. 모자는 이제까지 자신들이 꾸린 짐들을 ‘이기적인 가방’이라 불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물건이 없으므로. 다음에 떠난 라오스 여행에는 학용품이나 풍선 등 현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을 넣었다. 그다음 아프리카 여행에서는 봉사를 덧붙였다. 중빈이는 바이올린을 배워 고아원 아이들 앞에서 연주를 들려줬고, 오씨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기본적인 옷가방에 악기까지 들고 다니는 게 쉽진 않았지만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음악은 좋은 매개가 됐다.
“아프리카는 사람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그 바닥을 실험하는 곳이었어요. 돌아보고 오면 누구나 성숙해지죠. 제3세계에 내가 진 빚을 얼마라도 갚자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하쿠나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의 인세 50%를 기부하기로 결정했죠.”
오씨는 열악한 아프리카 도서관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서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서관을 지어주기로 결심했다. 이름하여 ‘하쿠나마타타 프로젝트’다. 오씨의 인세 수입과 중빈이가 어릴 때부터 모은 돈이 종잣돈이 됐다. 실제 도서관 건립은 세계 각국에 지부가 있는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았다. 오씨의 블로그(blog.naver.com/endofpacific)를 방문하는 독자들의 성금과 도서 기부도 큰 힘이 됐다.

“낯선 길 위에서 행복을 구하고 사랑을 더하다”


“독자들은 도움의 손길이나 응원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세요. ‘책을 포장할 일손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리면 순식간에 30명이 모여요. 제게는 천군만마 같은 분들이에요.”
우간다, 라오스, 에티오피아의 도서관은 이미 문을 열었고 지금은 볼리비아에 네 번째 도서관을 준비 중이다. 언제쯤 완공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언제 지어질지는 알 수 없다.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야 끝나는 게 아니냐”며 미소 지었다. 현지 사정에 따라 일정이 바뀐다는 말이다. 그는 이번에도 중빈이가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오랫동안 토론한 끝에 중빈이의 책 인세를 고스란히 도서관 건립을 위해 월드비전에 기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JB’ 아들이자 친구 혹은 애인
이젠 잔소리도 잘 먹히지 않습니다.
“그니까 엄마가 뭐랬어?! %·^%$#@_#@+......!!!!!!!!!!!!!!!!!!!!!!!!”
제 말이 길어지면 끝날 때를 기다렸다가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죠.
“그거 알아, 엄마? 난 엄마가 잔소리할 때가 젤 귀엽더라.”
-오소희 씨의 블로그 글 ‘갈 때까지 가기’ 중
오씨가 아들과 함께 다닌 여행기를 발행된 시간 순서대로 읽어보면 중빈이가 자라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번 남미 여행기에서 중빈이는 한결 의젓해지고 ‘남자의 매력’이 느껴질 만큼 자라 있었다. 엄마는 이제 이따금 중빈이에게 의지한다. 떼를 쓸 때면 아들, 동등한 시선으로 대화를 나눌 때면 친구, 기대고 싶을 때는 애인 같은 존재다.
중빈이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다. 전에는 엄마에게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잘조잘 말하더니, 요즘은 입을 여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여행지에서 모자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오면 각자의 일상으로 바빠 대화할 틈도 없다. 오씨는 일부러라도 아들과 대화할 기회를 만든다.
“요즘 들어 중빈이에게 오늘 뭐했냐고 물으면 특별한 일 없다고 해요. 그러면 기다려요. 침묵이 흐르죠. 그러다 하나둘 떠오르나 봐요. 이처럼 서로가 보낸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꼭 가지려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하루는 아이와 내가 공유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날이 쌓이면 내 아이인데 낯설게 느껴지죠. 아이도 마찬가지겠죠. 아무리 숙제가 많아서 시간이 없다고 해도 이야기부터 하자고 해요. 별 이야기는 아니에요. 좋아하는 레슬링 선수가 무슨 대회에서 상을 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남편도 아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만큼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남편도 아들과 함께 남자들끼리 여행을 간다. 그때는 엄마가 자유인이 되는 날이자, 두 남자 역시 집에서 보지 못하던 TV를 보며 키득거리는 나름의 자유를 누리는 날이다.
몇 번의 험난한 여행을 경험한 중빈이는 이구아수 폭포가 있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들듯 세상의 경계를 손쉽게 넘는 아이가 됐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바깥세상은 위험하니 ‘마당에서 살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족제비가 아무리 무서워도 마당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 “내 이름은 JB라고 해요. 어디에서 왔어요?”라고 말을 걸며 친구가 되는 아이. 엄마 허리 아래만큼의 작은 키로 첫 여행길에 오른 중빈이는 어느새 엄마와 비슷한 눈높이를 가지게 됐다. 조만간에는 엄마의 키를 뛰어넘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이는 혼자 힘으로 홰를 치고 마당 너머 바깥세상을 자유로이 돌아다닐 것이다.

참고도서·‘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북하우스)
장소협찬·카페159(010-7774-2915)

여성동아 2013년 2월 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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