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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IN HOKKAIDO

‘동양의 생모리츠’ 니세코와 무인역 히라후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3.01.31 16:59:00

자전거로 홋카이도 무전여행을 하던 한 대학생이 무인역 히라후의 아름다움에 반해 몇 년 뒤 도시에서의 직장 생활을 접고 니세코로 돌아왔다. 18년째 에키노야도히라후를 지키고 있는 미나미타니 요시토시의 이야기다.
‘동양의 생모리츠’ 니세코와 무인역 히라후

외국인들로 붐비는 히라후 스키장. 특히 겨울에는 남반구에 사는 호주인들이 피서 겸 스키를 타러 몰려든다.



홋카이도 남서부에는 ‘홋카이도의 후지 산’으로 불리는 명산 요테이잔(羊蹄山)이 있다. 원추형의 활화산인 요테이잔 북쪽으로 니세코안누푸리, 니세코세누푸리 등 봉우리가 이어지는 산악 지역을 니세코라 한다. 행정구역으로는 니세코 초, 굿찬 초, 란코시 초 등에 걸쳐 있다.
니세코는 1964년까지 가리부토로 불렸으나 일본어로 가리부토(カリブト)가 남자 성기의 일부분을 가리키는 저속한 말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에서 개명 운동이 펼쳐져 오늘날의 지명이 됐다고 한다. 니세코는 니세코안베츠 강에서 따온 것으로, 원래 아이누어로 니세이코안페츠는 ‘계곡을 향해 있는 강’이라는 뜻이다.
니세코의 눈은 수분이 적고 파우더처럼 가벼워 스키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처럼 질 좋은 눈 덕분에 니세코는 유럽의 스키 명소로 알프스의 풍광과 어우러진 스위스 생모리츠(St. Moritz)에 견주어 ‘동양의 생모리츠’로 불린다. 또 ‘호주 마을’이 형성될 만큼 호주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 역사를 숙박 시설로 활용해 화제가 되고 있는 니세코의 무인역 히라후(比羅夫)를 확인하고, 호주인들이 파라다이스로 여기는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다.
기차로 니세코의 스키장까지 가려면 굿찬(俱知安), 히라후, 니세코 세 군데 역을 이용할 수 있는데,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은 역시 굿찬 역이지만 이번 여행의 거점을 히라후 역으로 선택했다. 이유는 이곳에 일본 전국에서 최초로 무인역을 숙박 시설로 만든 에키노야도히라후(驛の宿比羅夫)가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생모리츠’ 니세코와 무인역 히라후

1 숙박 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히라후 역사 내부. 2 에키노야도히라후를 18년째 지키고 있는 주인장 미나미타니 요시토시 씨.



숙박 시설로 변신한 무인역 히라후
히라후 역에 도착했을 때는 고장 난 소화기처럼 쉼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인기척 없는 역사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겨우내 땔감으로 쓰기 위해 수북이 쌓아둔 장작더미뿐이었다. 차곡차곡 쌓인 장작이 마치 서로를 부둥켜안고 추위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에 들어서자 가눌 수 없는 고요함과 적막함이 숨소리마저 삼켜버릴 듯했다. 고요하다 못해 으스스함이 느껴지는 역사 안을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초인종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곳 주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주인장은 지금 장을 보고 있으니 30~40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겨울철 이곳에 투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스키를 타러 왔기 때문에 주인은 아침에 손님들을 스키장에 데려다주고 저녁 9시쯤 스키장 문이 닫힐 때 다시 데리러 간다고 한다. 그사이 주인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내가 기차에서 내린 시간이 오후 2시 무렵이니 어중간한 시간이었던 것. 어쩌면 인기척 없는 숙소에서 기다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투덜거릴 틈도 없이 추위를 피해 역사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등 뒤에 인기척을 느꼈다. 등골에 한기를 느끼며 돌아본 좁은 역사 안 의자 밑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마타로라는 이름의 고양이였다. 원래 길고양이였던 시마타로가 이곳 주인인 미나미타니 요시토시(南谷吉俊·45) 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10년 전쯤의 일로, 미나미타니 씨는 역사 주변을 맴돌던 고양이 시마타로가 역사 안으로 들어와 생활하도록 배려했다.
요즘 고양이 시마타로가 꽤 유명해져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러 그를 보기 위해 오타루 등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금은 방문객이 늘 풍족하게 먹이를 주고 두꺼운 종이상자를 놓아주어 시마타로는 그곳을 보금자리로 알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단다. 어쨌든 꼼짝없이 빈집에서 주인을 기다리게 돼 따분해진 내가 심심풀이로 통하지도 않는 한국말로 몇 마디 물어보지만 그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시마타로와 서먹한 관계가 개선되기도 전에 주인 가족이 세 명의 노르웨이인 그룹을 포함한 7명의 투숙객을 위한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도착과 동시에 커다란 스토브에 장작불을 지피는 것으로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한 미나미타니 씨를 따라다니며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히라후역 숙박 시설의 운영 방침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원활한 운영을 위해 부부의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고. 아침 식사는 아내가, 저녁 식사는 미나미타니 씨가 준비하고 있다. 아직 돌봐야 할 세 명의 자녀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교토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대학과 직장 생활을 해온 미나미타니 씨가 니세코에 정착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자전거로 홋카이도 여행을 하다 굵은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히라후 역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1년 전부터 숙박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과 알게 됐다. 주인은 5년 동안 무인역으로 방치된 히라후 역을 갖은 노력 끝에 철도 회사의 민영화를 계기로 운영권을 위임받아 숙박 시설로 바꾼 지 1년이 되던 해였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미나미타니 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5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다시 히라후로 찾아오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1년의 도제 생활을 거쳐 주인은 모든 운영권을 미나미타니 씨에게 넘겨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에키노야도 히라후는 지난 18년 동안 홋카이도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동양의 생모리츠’ 니세코 호주 마을



‘동양의 생모리츠’ 니세코와 무인역 히라후

굿찬 초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만난 호주인 스콧 에드워즈 씨 가족.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친 뒤 스키장으로 투숙객들을 맞이하러 가는 미나미타니 씨를 따라갔다. 저녁 9시 조금 전이었다. 스키장 가까이 접어들자 한적하기만 하던 역 주변과 달리 갑자기 별세계가 펼쳐졌다. 서유럽의 유명 리조트에 온 것으로 착각할 만큼 원색 스키복을 입은 외국인들로 북적대고 있고, 영문 간판의 주점과 레스토랑, 호텔을 감싸는 네온사인과 일루미네이션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 산재한 펜션 또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최근에는 중국 자본이 밀려들어 그 화려함이 더해지고 있다고 했다.
니세코 히라후 지구에 호주인들이 몰려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20여 년 전 로스 핀들리라는 호주인이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정착한 데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지역 강을 고무보트를 타고 계류를 따라 내려가는 래프팅 명소로 정착시킴과 동시에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 좋은 질 높은 눈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찬했다. 이것이 계절이 정반대인 남반구에 사는 호주인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져 지금과 같은 붐을 몰고 온 것이다. 지금은 히라후 지구에 ‘호주 마을’이라 불릴 만큼 호주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집단 주거지가 생겨날 정도다.
여행객들이 니세코를 택했을 때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니세코로 가려면 삿포로에서 출발하는데, 도중에 오타루를 관광하는 보너스를 챙길 수 있다. 나도 오타루에서 니세코행 두 칸짜리 기차를 탔는데 객차 안에는 성인 키 높이의 스노보드와 스키를 휴대한 서양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내 옆에 선 커플은 처음 서울 구경을 하는 섬마을 학생들처럼 창 밖 설경에 연신 “판타스틱!”을 외쳐댔다. 멜버른 소재 멘톤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앵거스 스케인(Anguss Scanes) 씨 부부였다. 이들은 멜버른의 더위를 피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2주간 니세코에서 스키를 즐기러 왔다고 했다. 남반구인 호주에서는 12월에서 2월까지가 한여름으로 영상 40℃를 넘나드는 남반구의 호주인들에게 영하 10℃를 밑도는 홋카이도에서 스키를 즐기며 피서를 하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라고 했다. 앵거스 씨는 이번이 세 번째 니세코 방문인데 자신처럼 스키를 즐기러 오는 호주인이 한 시즌에만 1만 명은 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역전에 있던 안내인에게 받은 지역 관광협회 자료를 보니 니세코를 찾은 외국인이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앵거스 씨의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앵거스 씨에게 니세코의 인상을 묻자 품질 좋은 눈과 저녁 식사의 즐거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대로 관광협회 홈페이지에 올려도 좋을 만한 찬사였다.
저녁 식사를 위해서 굿찬으로 나가 찾아간 식당에서도 옆에 호주인 스콧 에드워즈(Scott Edwards) 씨 가족이 앉았다. 그들에게 어떻게 니세코에 오게 됐느냐고 묻자 유럽의 어떤 스키장보다 눈의 질이 좋고, 비용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거기에 니세코의 스키장과 숙박 시설, 음식 맛은 넘버원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홋카이도에 니세코라면 한국엔 평창이 있다
듣다 보니 나는 한국의 평창을 떠올리며 질투심마저 생겼다. 결국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평창을 방문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의중을 떠보자 에드워즈 씨는 “눈의 질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니세코와 비교해 눈의 질이 어떤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지만 올림픽 준비로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음은 자신할 수 있다고 전하며 한국에도 꼭 방문해줄 것을 부탁하자 그는 김치를 무척 좋아한다면서 그러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여행을 통해서도 크고 작은 지혜를 얻은 느낌이 들었다. 버려진 역사를 활용해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숙박 시설로 만든 에키노야도히라후. 이곳에서 잠재적인 관광 자원을 찾아내어 십분 활용하는 지혜와 노력을 배울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고자 할 때 이미 잘 돌아가는 곳을 기웃거리며 턱도 없는 예산 부족에 한숨 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잠재적인 자원을 줍다시피 재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한국적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횡재는 잘 다듬어진 값비싼 보석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원석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 사람의 차지인 것처럼.

‘동양의 생모리츠’ 니세코와 무인역 히라후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 @daum.net

여성동아 2013년 2월 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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