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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기회를! 교육 사다리 다시 놓는 중국

글&사진·이수진 중국 통신원

2013. 01. 31

중국에서도 갈수록 ‘개천에서 용 나는’ 광경을 보기가 어렵다. 개혁·개방 30년을 거치는 사이 눈부신 고도 성장의 반대편에는 갈수록 커지는 교육 격차와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의 그늘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무너져가는 ‘교육 사다리’를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기회를! 교육 사다리 다시 놓는 중국


야학이나 검정고시라는 말을 들으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진다. 요즘은 내신 때문에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르는 특목고 학생들도 있을 만큼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검정고시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는 희망의 사다리인 시절이 있었다.
중국에도 자학고시(自學考試)라는 학력 인증 제도가 있다. 한국의 검정고시가 중학교(고등학교) 졸업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고입(대입) 검정고시인 데 비해 자학고시는 대학을 다니지 않고도 대학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국가고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독학학위제와 유사한 개념이다.
각 성시별로 매년 3, 6, 9, 12월 네 차례 치러지는 자학고시는 모두 14과목으로 합격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일부 대학생들이 복수 전공 차원에서 보기도 하지만 자학고시 응시생의 대부분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이들이다. 난데없이 중국의 검정고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자학고시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어느 농민공 청년 때문이다.

한국의 검정고시, 중국의 자학고시

가난한 이들에게도 기회를! 교육 사다리 다시 놓는 중국

1 중국 푸젠성 푸저우의 자학고시(검정고시) 접수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최근 베이징대 남문 옆의 작은 식당에서 일하며 7년의 주경야독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27세 청년의 이야기가 많은 중국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주인공 양샤오핑의 고향은 베이징에서 기차로 39시간 거리인 쿤밍에서도 10시간 버스를 타고 들어가, 다시 3시간 마을버스를 달려, 오토바이로 바꿔 타고 4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원난의 산골짜기다. 양샤오핑은 2005년 대학에 합격했지만 스스로 포기했다. 부친이 사방팔방에서 어렵게 빌린 입학금을 들고 고향을 떠난 양샤오핑은 도시에 오자마자 그 돈을 도로 고향에 부쳤다. 여관 경비, 청소, 접객원, 식당 주방보조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던 그는 독학으로 자학고시를 준비해 법학 전문대 과정, 본과 과정을 차례로 마쳤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양샤오핑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고된 일과를 마치고 밤 늦게 가게 옆에 위치한 베이징대의 개방 자습실에서 2~3시간씩 공부했다. 2011년 처음 치른 사법고시에 한 차례 낙방한 이후 지난해에는 시험 한 달 전 식당에 휴가를 내고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말 드디어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발견했다. 농민공이던 그가 변호사의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양샤오핑과 같은 농민공의 사례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드문 경우다. 중국에서 농민공은 단순히 거주지나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신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 지역에 주민등록을 가진 도시 노동자인 ‘농민공’은 약 2억5천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본인 공부는 고사하고 아이들 교육도 사치에 가까운 처지다.
농민공은 도시 유지의 필수적인 인력이지만 임금과 일상생활, 사회보장 등에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고 있다. 도시에 아무리 오랫동안 살아왔어도 임시 거주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는 주택이나 차량 구입은 물론 의료보험 등의 혜택도 제한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교육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문제투성이다.
많은 농민공들은 고향의 늙은 부모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도시에 일하러 나온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지거나 혼자 시골에 남겨진 아이들은 류서우(留磵) 아동이라 불리는데 1년에 한 번 부모를 만날까 말까 하는 실정이다. 겨우 이산가족 신세를 면하고 자녀와 함께 살아도 학교가 문제다. 최근까지만 해도 외지인은 정규 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농민공 자녀만 다니는 임시 학교가 생겨났다. 문제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대학 입학 시험인 가오카오(高考)는 거주지가 아니라 반드시 후커우가 있는 본적지에서 치러야 한다. 부모를 따라 어려서부터 도시에 살았더라도 농민공의 자녀들은 고등학교 때 후커우 본적지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난은 대물림된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기회를! 교육 사다리 다시 놓는 중국

2 3 중국의 여공들과 한 공장에서 주경야독 하는 직장인들. 공부는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신분 상승의 사다리다.



교육 차별 해소의 대장정 시작
다들 심각성을 알면서도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이 문제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우선 ‘제2, 제3의 양샤오핑’을 만들기 위한 국가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최근 광저우에서 농민공 베이징대 반인 ‘꿈의 계획·베이다’ 개설 기념식이 열렸다. 이 프로젝트는 광둥 성 공청단과 베이징대가 공동으로 광둥 성 내 각 기업에서 선발된 1백 명의 신세대 농민공에게 사이버 교육 등을 통해 베이징대의 교과목을 이수, 학사 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다른 대학과 연계해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또 대표적인 교육 차별로 꼽히는 후커우 본적지에서의 가오카오 응시 제도에 대한 개혁이 시작됐다. 헤이룽장 성을 비롯해 안후이, 신장, 충칭, 허베이, 후난 6개 지역은 올해부터 부모가 현지에서 합법적인 직업에 종사하고 안정적인 주소가 있으며 3년 이상 현지에서 공부한 경우 입시를 치를 수 있게 했다. 산둥, 푸젠, 장시 성은 2014년, 광둥 성은 2016년부터 이주민 자녀도 고교 입시 및 대학 입시에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많고 명문 대학이 밀집해 있는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아직까지 가오카오 시험 개선 일정표를 제시하지 않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대학 경쟁률 상승을 우려한 도시민들의 거센 반발과 더불어 농민공이 아닌 부잣집 자녀들도 베이징 등 명문 대학 소재지로 ‘가오카오 이민’을 떠나 입시 과열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첫 단추를 꿴 중국 교육 차별 해소의 대장정에 각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수진 씨는…
문화일보 기자 출신으로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를 거쳐 CJ 중국 법인 대외협력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중2, 중1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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