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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노벨상의 산실, 뉴욕 공립학교의 힘

글&사진·김숭운 미국 통신원 | 사진제공·REX

입력 2013.01.31 16:23:00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뉴욕 출신이 포함되는 것은 뉴욕 시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당연한 일이다. 뉴욕 시가 거의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힘은 바로 공립학교의 교육 시스템에 있다.
노벨상의 산실, 뉴욕 공립학교의 힘


2012년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도 어김없이 뉴욕 시 출신이 포함됐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레프코위츠 듀크대 교수는 뉴욕의 특수목적 공립 고등학교인 브롱크스 과학고등학교(Bronx High School of Science) 출신이다. 로버트 교수의 수상으로 브롱크스 과학고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총 8명으로 늘어났다. 단일 고등학교에서 8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에 전 세계가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특별한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비싼 사립학교가 아닌,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공립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그렇다.
브롱크스 과학고는 공립학교임에도 엄격한 입학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평균 경쟁률은 20대 1. 소수민족 배려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등을 적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영어와 수학 시험 성적으로만 합격자를 결정한다. 심지어 대부분의 미국 학교에서 채택하는 내신조차 고려하지 않는다.
시험은 뉴욕 시 거주자로, 뉴욕 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만 응시할 수 있다. 과거 이 학교 학생의 대다수는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최근 아시아 출신 학생 수가 절반을 넘어섰다. 한때 한국인이 전체 학생의 30% 이상을 차지했던 적도 있지만, 요즘은 중국인에게 밀려서 10% 안팎이다. 아시아계의 싹쓸이 현상에 불만을 품은 흑인과 히스패닉계가 입학 시험에 인종적 고려를 해야 한다며 뉴욕 시 교육국을 고소했지만, 교육국의 태도는 완고하다. 이런저런 사정 봐주다가는 학교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철저한 경쟁만이 학교의 질을 보장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노벨상의 산실, 뉴욕 공립학교의 힘

1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고등학교를 방문, 학생들과 과학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입학 시험 성적과 대입 SAT 평균 점수 면에서 브롱크스 과학고보다 더 뛰어난 학교가 있다. 스타이븐센트 고등학교다. 그러나 이 학교는 브롱크스 과학고와 달리 졸업생들이 문과로 더 많이 진학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수는 4명으로, 브롱크스 과학고보다 적다.
뉴욕 시 고등학교 졸업자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특수고 출신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거지에 따라 임의로 배정되는 일반고 출신의 활약도 눈부시다. 노벨상 수상자를 3명 이상 배출한 미국 고등학교는 9개교인데 그 가운데 6개교가 뉴욕 시 소재 공립학교이고 일반고도 4개교에 달한다. 나머지 3개교는 1년 등록금이 5만 달러(한화 약 5천3백만원) 이상인 최고급 사립고들이다. 뉴욕 시의 일반 공립고가 1년 등록금이 수만 달러에 달하는 필립스 아카데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경쟁 통해 우열 가린 뒤 우수한 학생에게 전폭적 지원과 기회 부여



노벨상의 산실, 뉴욕 공립학교의 힘

2 뉴욕 웨스트 사이드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광장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3 브롱크스 과학고의 도서관 풍경. 이 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8명이나 배출했다.



브루클린의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와 에이브러햄 링컨 고등학교 그리고 퀸즈의 타운센드 해리스 고등학교와 파 라커웨이 고등학교가 바로 그런 일반 고등학교다. 엄격한 시험을 통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특별한 학교가 아니라 동네에 사는 일반 학생들을 받아서 그 가운데 우수한 학생을 자체 선발한 뒤 특수반을 편성해 가르친다. 뉴욕 시의 공립학교 학력 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타운에 거주하는 인종이 바뀌는 바람에 학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파 라커웨이 고등학교는 2011년 아예 폐교 됐다.
사실, 이들 학교의 학생 대부분이 특수고 입시에 낙방한 뒤 일반고로 진학했기 때문에 입학 당시 성적이 최상급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노벨상 수상자로 키워낸 것은 학생의 능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교육 시스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우수한 학생들에게 대학 수업을 듣게 하고, 방학 동안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함께 실험이나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 혹은 우수한 과학·수학 교사를 채용해 개인별 수업으로 창의력을 길러주는 것과 같은 제도들이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공립 교육은 문제가 많고 학력이 약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공부에 별 관심이 없고 대학 진학도 꿈꾸지 않는 중하위권 학생들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미국 학교가 슬슬 노는 것 같아 보여도 능력이 되고 필요한 학생에게는 창의력과 실력을 길러주는 개인적인 관심과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결국 엄청난 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뉴욕 시 교육의 힘은 끊임없는 경쟁과 전폭적 지원이다. 미국에서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지만, 기회를 통해 선발된 우수 학생에게는 더 큰 목표에 도전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뒷받침을 해준다.
미국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공부의 양이나 학업 수준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으며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 그 사실은 노벨상 수상자의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이런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다양성을 받쳐줄 공립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바로 뉴욕 시가 자랑하는 교육의 힘이다.

김숭운 씨는…
뉴욕 시 공립 고등학교 교사이자 Pace University 겸임교수. 원래 우주공학 연구원이었으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전직했다. ‘미국에서도 고3은 힘들다’와 ‘미국교사를 보면 미국교육이 보인다’ 두 권의 책을 썼다.

여성동아 2013년 2월 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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