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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금난새·정준호… star의 말 못할 속사정

글·김유림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3.01.16 17:41:00

최근 유명인들의 뒤늦은 고백이 화제다. 한동안 연예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와 루머, 혹은 지금껏 밝히지 않았던 파란만장 인생사를 토크쇼를 통해 진솔하게 풀어낸 것.
그동안 이들의 사생활을 기사로만 접했던 대중은 마음을 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정우성·금난새·정준호… star의 말 못할 속사정


1 과거 연인 이지아에 대한 무한 배려 ‘진짜 남자’ 정우성

정우성·금난새·정준호… star의 말 못할 속사정


정우성·금난새·정준호… star의 말 못할 속사정


연예인들 사이에서조차 ‘연예인’으로 불리는 조각 미남 정우성(40). 현재 작품으로서는 이렇다 할 만한 이슈가 없는 그가 난데없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유는 강호동과의 친분 때문이었다. 강호동과 정우성을 동시에 잘 아는 한 방송 관계자가 오랜만에 방송에 복귀하는 강호동을 위해 톱스타 정우성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했고, 그 역시 흔쾌히 출연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정우성이 토크쇼에 출연 한 건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다. 더욱이 2011년 이지아와의 스캔들 이후 대중은 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이런 갈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정우성은 방송에서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그리고 남자답게 모든 것들을 쏟아냈다. 강호동은 먼저 파리에서 이지아와 사진이 찍혔을 당시 상황부터 물었다. 두 사람은 KBS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 함께 출연하며 서로 이성적으로 끌렸고, 2011년 2월 드라마 종영 이후 본격적으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드라마를 하면서 외형적인 끌림보다는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가까워졌어요. 그러다 작품이 끝난 뒤 제가 계속 인연을 이어보자고 했고, 연애 감정을 가진 지 얼마 안 됐을 때 사진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둘의 관계가 알려졌죠. 드라마 끝나고 얼마 안됐을 때 그 친구(이지아)가 파리에 갈 일이 있다고 하기에 저도 잠깐 시간을 내서 같이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동행했어요. 여자와 단 둘이 해외여행을 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죠. 이 나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으시겠지만 계속 일만 하다보니 개인적인 여행을 다닐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이제는 나도 여자친구와 오붓하게 여행을 다녀와도 좋겠다 싶어서 파리로 간 거였어요.”
하지만 두 사람은 타국에서조차 세간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 누군가의 카메라에 포착됐고, 그 사진은 이내 한국으로 전송돼 곧장 열애설로 보도됐다. 파리에서 소속사 관계자를 통해 한국의 상황을 전달받은 정우성은 그저 담담했다고 한다.
“파리까지 갔는데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만 찾아다닐 수는 없잖아요(웃음). 물론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평소 사람들의 시선은 되도록 의식하지 말자는 주의라 크게 개의치 않고 돌아다녔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생각보다 크게 기사화됐고, 마침 얼마 뒤 팬 미팅이 잡혀 있어서 그 자리에서 팬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고, 행사가 끝난 뒤 간단하게 기자회견을 했죠.”



“이지아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싶다”
정우성은 이지아에 대해 “다방면으로 많은 걸 알고 있는 굉장히 똑똑한 친구”라고 평했다. 음악, 그림, 요리 등에 재능이 뛰어나고, 특히 책을 가까이 하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돼 떠들썩했던 연애사를 마감해야 했다. 정우성은 “자의가 아닌 여러 상황들 때문에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여러 상황에는 베일에 싸여 있던 이지아의 과거가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지아는 가수 서태지와 결혼했다 이혼했으며 2011년 4월, 두 사람이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결혼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대중은 큰 충격에 빠졌고 이제 막 이지아와 사랑에 빠진 정우성에게도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침묵했고, 얼마 뒤 두 사람은 헤어졌다. 정우성은 당시 자신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나의 말 한 마디로 그 친구에 대한 오해와 루머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재생산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루머가 너무 많았어요. 심지어 프랑스 여행도 그 친구가 계획적으로 꾸몄고, 기사도 일부러 보도되게 했다는 얘기가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까지 사람을 곡해된 눈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요. 오히려 그 사람에게 먼저 마음을 연 건 저예요. 감정이란 게 어떻게 계획적으로 꾸민다고 되겠어요. 또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그 친구의 과거가 알려지기 전에 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인 것 같은데, 사실 파리에서 그 친구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나는 긴 시간 동안 이런 사람과의 과거가 있다’고요. 솔직히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반가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이 친구가 나에게 마음을 열었구나’ 싶었고, 또 그 친구를 둘러싼 엄청난 루머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밝힐 명확한 단서가 있다는 생각에 다행이다 싶었죠. 이혼과 재산분할 소송에 대해서도 기사가 나가기 전날 그 친구에게 모든 내용을 직접 들었어요. 기자들이 기획사로 확인전화를 걸어왔고, 조만간 기사가 나갈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주 정중하게 미리 얘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만난 지 3개월도 채 안된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타이밍이라는 게 있잖아요. 어느 정도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밝힐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 건데,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했어요. 그렇게 긴박한 상황에서도 그 친구는 직접 제 얼굴을 보면서 제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를 다했어요. 그때 저는 ‘이 친구가 나 때문에 더 난처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친구한테도 ‘내 생각은 하지 말고 일단 지금 상황을 현명하게 잘 대처해 나가라’고 했죠. 사랑에는 타이밍이 있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그 친구한테는 저라는 사람이 적당한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정우성이라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게 죄인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죄가 되나요. 결국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줄 틈도 없이 제가 뭔가를 이야기하기라도 하면 이 상황이 더 우습게 돌아갈 게 뻔했고, 저 말고 두 분의 문제가 정리돼야 하는 부분이 컸기 때문에 저는 일단 침묵하기로 한 거예요. 그게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그 친구에게 덜 상처 주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는 강호동의 질문에 정우성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히 그 친구한테 밥 한 끼 사주며 ‘그동안 힘든 시간 잘 보냈다’고 격려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우성이 이지아에 대한 관심 어리고 세심한 배려를 드러내자 팬들은 “두 사람이 다시 잘되면 좋겠다”는 애정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지아는 그간의 오해를 풀어준 정우성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한편, 두 사람이 다시 만남을 이어갈 가능성에 “결코 그럴 일이 없다”고 밝혔다.

정우성·금난새·정준호… star의 말 못할 속사정

‘무릎팍 도사’ 재개업 첫 회 손님으로 등장한 정우성은 그간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이지아와의 열애 스토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판자촌에서의 생활, 꿈을 찾아 선택한 자퇴
정우성의 유년 시절 얘기 또한 새삼 그를 다시 보게 만든다. 연예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서울 산동네 판자촌에서 살았던 정우성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 후 무작정 사회로 뛰어들었다. 모델 일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방송국 3사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지만 중졸이라는 이유 때문에 서류 시험에서 모두 낙방했다. 결국 그의 진가를 알아봐준 곳은 충무로. 1994년 고소영과 함께 영화 ‘구미호’ 주연으로 발탁된 정우성은 3년 뒤 “나에겐 꿈이 없었어”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들썩이게 한 영화 ‘비트’로 최고의 하이틴 스타 반열에 올랐다. 당시 주인공 민이는 정우성 그 자신이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민이의 내레이션도 그가 직접 썼다고 한다.
“당시 지녔던 감성은 주인공과 거의 비슷해요. 내레이션은 감독님께서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쓰게 됐죠. 학교 다닐 때 키가 커서 늘 맨 뒤에 앉았는데 저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대부분이 다들 꿈이 없어 보였어요. 우리가 왜 교실에 앉아 있는지를 모르는 거죠. 학교를 그만두기로 하고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로 찾아갔을 때 그날의 고요함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어머니께 정말 죄송하더라고요. 가난을 원망한 적은 없어요. 지금의 가난은 제 부모의 가난이지 저한테까지 내려올 가난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꿈을 이루려 열심히 산다면 제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힘들었던 시기에도 꿈을 좇았지 돈을 좇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학창시절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퇴는 그가 선택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학창시절을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배움이 짧은 것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는 듯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험 보는 꿈을 자주 꿨어요. 저 혼자 답안지에 아무것도 채워 넣지 못하는 꿈이죠. 빨리 답안지를 내고 싶은데 답을 모르겠으니까, 꿈에서도 너무 괴로워요. 제가 가장 갖고 싶은 건 학창시절이에요. 학교 친구들과의 추억들이 너무 부럽고요. 참 아름다운 시간이잖아요. 학창시절이란 것이.”
몇 년째 그는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언제 영화로 탄생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영화감독에 대한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연기자로서의 최종 목표는 “원로 배우가 돼도 멜로를 할 수 있는 연기자로 남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 정우성, 일흔의 그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2 온화한 미소 뒤에 숨겨진 무서운 열정 세계적인 지휘자 금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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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금난새·정준호… star의 말 못할 속사정


1947년 작곡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금난새(66)는 어린 시절부터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의 인생에는 무려 세 번의 ‘낙방’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에서 모두 실패한 것. 지금이야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는 그이지만, 처음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는 반에서 영어 알파벳을 쓸 줄 모르는 몇 안 되는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영어교습소 간판이 그의 눈에 들어왔고, 그곳에서 영어 웅변을 배우기 시작한 금난새는 학원을 다닌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한번 꽂히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명문 고등학교 입시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결국 그를 받아 준 곳은 서울예술고등학교. 중학교 1학년 때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를 보고 큰 감명을 받은 뒤 그때부터 남몰래 지휘자의 꿈을 꿔온 금난새는 서울예고 진학 후 본격적으로 꿈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서울대 작곡과 재학시절, 그는 서울예고 동문들을 끌어 모아 ‘서울 영 앙상블’이라는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독학으로 지휘를 배웠다. 음대 학생회장 시절에는 외부 강사 수업을 듣는 건 학생들의 권리라며 ‘서머아카데미’를 추진하려다 학교 측이 제제를 가하자 혈서까지 쓰며 데모를 선동하기도 했다. 이 일로 ‘음악계의 이단아’로 낙인 찍힌 금난새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스물일곱 나이에 무작정 독일로 떠났다. 당시만 해도 여권 발급이 자유롭지 못한 때라 세계국제연맹회의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여건을 발급받은 뒤 스웨덴을 들렀다 바로 다음날 독일로 갔다.

돈키호테 정신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 위상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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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처음 찾아간 곳은 베를린국립음악대. 그곳에 지휘학과가 있다는 걸 확인한 금난새는 라벤슈타인이라는 이름의 교수 연락처를 알아내 공중전화 박스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휘를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이곳까지 찾아왔노라 얘기하자 라벤슈타인 교수는 두 말 않고 내일 낮 2시까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다음날 라벤슈타인 교수 앞에서 피아노 연주와 청음, 지휘 테스트를 받은 금난새는 교수로부터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곧장 베를린음대 입학 절차를 밟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한 달 체류만 가능한 여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길로 당장 한국에 있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어머니, 저 한국 안 가요”라고 하고는 독일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학비는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지만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했다. 금난새는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의 남성합창단의 지휘를 맡기도 했고, 아동들이 다니는 발레교습소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 그 덕분에 예술을 대하는 독일인들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비싼 연주회 티켓을 살 수 없어, 1부를 마치고 관객들이 정원으로 나와 샴페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눌 때 가만히 옆에 서 있다가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가면 묻어서 들어가는 식의 도둑관람을 했다고 한다. 그중 가장 강도가 셌던 건 ‘베를린 필하모닉 연습 관람기’.
“지휘자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연이 아닌 연습을 보는 거예요. 하지만 단원이 아닌 이상 연습실에 들어갈 수가 없죠. 그런데 저는 시도를 했어요. 필하모닉 홀에 들어섰더니 경비가 신문을 보고 있더군요. ‘좋은 아침’ 하고 인사를 하고 천연덕스럽게 걸어 들어갔더니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 거예요. 결국 너무 쉽게 연습실로 들어가 2천석 홀에 저 혼자 앉아 오케스트라 연습 장면을 감상할 수 있었죠. 그때 희열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그날 ‘불과 10m밖에 안 되는 저 자리에 나는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결국 그는 3년 반 만에 그 꿈을 이뤄냈다. 카라얀 콩쿠르에 나가 1위 없는 4위로 입상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를 얻은 것. 그때 그의 나이는 서른 살, 콩쿠르 제한 나이도 서른 살이었다. 당시 동양에서 온 지휘자에 대한 외국의 관심과 기대는 매우 컸다. 하지만 그는 세계무대를 뒤로한 채 귀국했다. 카랴안 콩쿠르 심사위원장이 그에게 한국행을 권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장은 “일본의 클래식 음악 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도 너와 같은 지휘자가 있다면 클래식 음악이 눈부시게 발전할 것 같다”며 애정 어린 조언을 했다고 한다. 몇 년 뒤 한국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KBS 교향악단에서 그에게 프러포즈를 하자 금난새는 과거 카라얀 콩쿠르 심사위원장의 조언을 떠올리며 선뜻 한국행을 택했다. 서른넷의 최연소 지휘자로 부임해 12년을 그곳에 몸담았다.
그의 파격적인 행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2년 돌연 수원시향으로 이적한 것. 당시 수원시향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기존 월급의 3분의 1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수원시향을 택한 건 자신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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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의 이단아’에서 돈키호테 정신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변신한 금난새.



그가 부임하기 전 1년에 고작 7~8회 연주회를 열었던 수원시향은 그가 퇴임하는 해에는 연 60회까지 연주회를 할 만큼 눈부시게 성장했다. 또한 금난새는 쓰레기 매립장을 야외음악당으로 바꿨고 울릉도와 소년원을 방문해 음악회를 여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됐던 건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 청소년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기획한 연주회로 티켓 가격은 2천원, 이 가격은 6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세계 유명 연주자들이 한국에 와서 공연할 때 가장 놀라는 게 바로 청중이 젊다는 거예요. 유럽만 해도 청중의 대부분이 노년층이거든요. 그만큼 우리나라의 음악에는 미래가 있어요.”
금난새는 사랑을 쟁취하는 순간에도 돈키호테 정신을 발휘했다. 카라얀 콩쿠르 객원지휘자로 활동하던 시기, 대만 공연 중 만난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와 사랑에 빠진 금난새는 여자친구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양가에 알리지 않고 교회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월세로 마련한 신혼집에는 변변한 가전제품 하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충분히 행복했다고 한다.
금난새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식어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지휘자’라고 한다. 관객을 먼저 생각하는 가슴 따뜻한 지휘자, 이미 그는 그런 사람이 돼 있다.

3 부부 불화설, 유산의 아픔 털어놓은 정준호·이하정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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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시련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일까. 탤런트 정준호(43)에게 2012년은 악몽과도 같은 해다. 2011년 드디어 노총각 딱지를 떼고 열 살 연하의 어린 신부, 이하정 아나운서(33)를 아내로 맞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이후 예상치 못한 시련들이 찾아왔다. 먼저 결혼 한 지 두 달 됐을 무렵 별거설이 돌기 시작했고, 급기야 얼마 뒤에는 정준호가 강남 재력가의 부인과 심상치 않은 관계라는 스캔들이 불거졌다. 소문이 확산되자 그는 이하정과 함께 기자들을 만나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며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불미스러운 일은 연달아 일어났다. 지난 1월 그가 운영하는 웨딩업체 (주)해피엔젤라의 감사 류모씨가 정준호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소한 것. 사건이 기사화되자 정준호는 다시 기자회견을 자청해 “고소인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안타깝다. 나를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 나를 믿고 시집온 아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결국 두 사건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들 부부의 아픔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5월 초 이하정의 임신 소식을 알리며 행복했던 것도 잠시, 10월 중순 유산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이 모든 사건에 대해 정준호는 얼마 전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해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이날 ‘몰래온 손님’으로 등장한 아내 이하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혼 후 한꺼번에 찾아온 시련, 단단한 부부애로 이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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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설에 휩싸였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해요. 이혼설로까지 번졌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인터넷을 봤더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여자 문제가 번졌을 때는 저도 사람인데 왜 속상하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제가 흔들리면 남편이 더 힘들 걸 알기에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오히려 남편한테 ‘오빠가 큰 사람이 되려고 이런 시련이 찾아오나봐’ 하고 위로를 했죠.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부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처음 깨달았어요.”(이하정)
정준호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해서 차마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이혼)까지 하려 했다고 한다. 그는 “워낙 오지랖이 넓다보니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결혼 전 여러 여자를 만난 것도 사실이기에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 연예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아내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유산 사실을 빨리 밝히지 못한 이유 역시 그동안 부부에게 찾아온 시련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임신 소식에 기뻐하고 축하해줬기에, 차마 또 불행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선뜻 꺼낼 수 없었다고 한다. 정준호는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는 3천 명이 넘는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자랑을 했다. 앞서 안 좋은 일들을 연달아 겪은 뒤 모처럼 행복에 잠겨 있는데, 이 행복마저 허락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속상하고, 또 이 소식이 기사화 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아내와 상의 후 당분간 유산 사실을 숨기는 걸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이하정은 유산을 숨기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한다.

정우성·금난새·정준호… star의 말 못할 속사정

결혼 후 끊이지 않는 구설로 마음고생을 한 정준호·이하정 부부. 모처럼 방송에서 그간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인터넷 댓글을 봐도 ‘저 부부는 결혼해서 좋은 게 하나도 없다’ ‘언제 헤어질지 궁금하다’ 식의 온갖 악플이 달려 있는데, 거기에 아이까지 잘못됐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반응할까봐 차마 사실대로 이야기를 못하겠더라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어디 가나 임신한 얘기를 하고, 아이는 언제 태어나는지 물으니까 그 역시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그러던 차에 역시나 기사가 먼저 나왔고, 언젠가는 알려질 일이었기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현재 두 사람의 애정전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동안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며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가 더욱 커졌다고 한다. 이하정은 자신에게 남편 정준호는 햇볕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꽃봉오리에 불과했지만, 결혼 후 더 좋은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비가 내린 뒤 땅을 굳게 하는 건 햇볕이잖아요. 그동안 저희 부부에게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 시련을 바탕으로 더욱 단단한 부부가 되면 좋겠어요.”
현재 정준호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가문의 영광 5: 가문의 귀환’을 통해 오랜만에 팬들과 만나고 있다. 오랜만에 본업인 연기자로 돌아온 만큼, 새로운 마음으로 2013년을 시작하길 바란다.

여성동아 2013년 1월 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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