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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코트의 ‘바람돌이’ 전태풍 가족

“가족은 어머니 나라가 준 선물, 한국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싶어요”

글·권이지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KBL 제공

입력 2013.01.16 11:16:00

위기의 순간에 등장해 상황을 역전시키는 영웅처럼 한국 농구의 인기가 시들해진 시점에 나타나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귀화 농구 선수 전태풍. 어머니의 나라를 찾아온 그에게 한국은 예쁜 아내, 귀여운 아들, 좋은 인연을 선물했다. 전태풍과 그의 아내 미나 씨, 여섯 달 된 귀여운 아들 태영을 만났다.
농구 코트의 ‘바람돌이’ 전태풍 가족


빠른 발놀림, 현란한 드리블. 농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코트 위의 그를 보면 넋이 나갈 정도로 빠져들게 된다. 한국 농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각오로 미국에서 날아온 그의 이름은 전태풍(34). 미국에서는 토니 애킨스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교 시절 미국 조지아 주 최고 고교 선수에게 수여하는 ‘미스터 바스켓볼’에 선정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조지아공대에 진학해서 4년 내내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농구 선수치고는 키가 작은 편이라(180cm) 안타깝게도 NBA 진출에 실패해 러시아, 프랑스, 터키 등 유럽 리그에서 용병 선수로 맹활약했다. 미국인 아버지(주얼 애킨스)와 한국인 어머니(전명순)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기 위해 2009년 한국으로 왔다. 첫해 전주 KCC에 입단했으며 2012~2013년 시즌부터 고양 오리온스로 옮겨 활약 중이다.

삶의 큰 변화가 찾아온 한국에서의 시간
새로운 팀과 집에서 적응 기간을 거치고 있는 전태풍을 만나러 경기도 일산의 자택으로 향했다. 6개월 된 아들 태영, 부인 전미나(33) 씨, 잠시 딸을 돕기 위해 찾아온 장모님, 포메라니안종 강아지 김치가 기자 일행을 반겼다. 인터뷰를 가진 날은 마침 경기가 없는 꿀 같은 휴식일. 그럼에도 오전에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왔다고 한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오후 훈련을 하러 갈 만큼 빡빡한 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코트 위의 모습처럼 솔직하고 장난기 가득했다.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라 영어가 더 편하지만 한국으로 귀화한 뒤 몇 년 새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어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는 편. 그의 말투를 최대한 살려 인터뷰에 실었다.
벌써 한국 생활 4년 차.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 동안 그는 국적을 바꿨고,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으며, 얼마 전에는 복덩이 아들 태영이를 얻었다. 한국을 찾으면서 그의 인생은 크고 작은 변화가 많이 생긴 셈이다.
전태풍이 나고 자란 곳은 미국이지만 그는 누가 뭐라지 않아도 피가 당기는 곳을 찾아 이곳에 뿌리내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머니의 국적을 따라 귀화 신청을 해 한국인으로 살아갈 채비를 했다. 한국 농구가 밋밋하게 느껴졌던지라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어 전태풍이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다. 전은 어머니의 성을 딴 것이다. 그가 처음 둥지를 튼 전주 KCC는 90년대 한국 농구를 주름잡던 허재가 감독으로 있는 팀이다. 당시 허재 감독은 그의 빠른 적응을 돕기 위해 통역을 붙이지 않았다. 전태풍도 우리말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작전 타임에 감독이 빠르게 지시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일쑤라 첫 시즌엔 실수도 많았다. 감독에게 혼도 많이 났다. 하지만 그에게 허재 감독은 “말은 거칠어도 속은 따뜻한 남자”였다.

농구 코트의 ‘바람돌이’ 전태풍 가족

1 한국 적응에 큰 도움을 준 허재 KCC 감독. 화가 나면 전태풍의 표현처럼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지만 사실은 마음 따뜻한 아버지 같은 존재다. 2 코트 위 1대 1 대결에서는 전태풍을 이길 수 있는 선수가 드물다. 3 ‘베스트 프렌드’ 하승진. 그가 있기에 전태풍은 한국 생활에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경기 잘 못하면 ‘이렇게 잘 해야 해. 넌 왜 그래. 못 넣어? 못 뛰어?’ 하고 막 화내요. 하지만 몸 상태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그거 다 이해해주고, 쉬는 시간을 줘요. 감독님 좋아요. 보고 싶어요.”
허재 감독과 더불어 가장 큰 도움을 준 동료는 현재 공익근무 중인 국내 최장신 농구 선수 하승진이다. 하 선수는 그의 한국어 선생이기도 했다. 어떤 말을 배웠냐고 물으니 “승진이는 욕만 가르쳐줬어요” 하고 농을 친다. 하승진이 “그냥 고기”라고 하는 바람에 속아서, 절대 먹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보신탕 맛도 봤다. 이렇듯 스스럼없는 두 사람은 코트에서도 찰떡궁합이라 KCC의 2010~2011 시즌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하승진은 2012년 7월 결혼에 골인, 올여름 아빠가 될 예정이다. 두 사람은 나중에 아이들까지 포함, 가족 모임을 할 계획이라고.



농구 코트의 ‘바람돌이’ 전태풍 가족

육아와 새 집 적응에 고생하는 전태풍과 미나 씨를 돕기 위해 미국에서 날아 온 장모님. 낯가림 하나 없는 태영이를 보면 너무 예뻐 어쩔 줄 모르겠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2012~2013 시즌부터 오리온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경기도 용인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했고 헤어스타일도 트레이드마크였던 레게머리 대신 짧게 바꿨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 건 없어요. 첫 이유가 대머리 돼서고요(웃음). (레게) 머리 하면 잡아당겨야 하는데 그러면 머리 자꾸 빠져요. 그리고 아빠가 됐으니까요. 미나가 두 시간 걸려서 머리 따줬는데 그렇게는 못해요. 시간도 없어요. 미나가 아이 봐야 해서요.”
전태풍은 결혼 후 태영이를 낳은 뒤 아내 미나 씨가 달라졌다며 투덜댔다. 재미있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심지어 함께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 일찌감치 잠들기 일쑤라는 것이다.
“아기 태어난 후에는 미나가 ‘앞으로도 술 안 마실 거야. 바깥에서 안 놀 거야. 오토바이도 안 탈 거야’래요. 재미있는 건 다 안 할 거래요. 미나 재미없어요.”(전태풍)
“저는 이제까지 많이 즐겼으니까 괜찮아요. 오히려 아주 어렸을 때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다면 더 아쉬웠을 것 같아요.”(전미나)
전태풍보다 한 살 어리지만 속은 훨씬 깊은 미나 씨는 요즘 아들 태영이와 함께 보내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고 고백한다.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데 아이에 대한 사랑이 깊어간다고. 하루하루 자라고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단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인연 맺은 두 사람
전태풍과 미나 씨는 아버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가난한 집 막내였던 전태풍의 어머니는 16세 때 미국의 부유한 가정의 수양딸이 됐다. 미시간대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어머니 전씨는 대학 농구 선수 출신 주얼 애킨스를 만나 결혼해 전태풍을 낳았다. 미국 LA에 살던 전태풍은 미나 씨 가족을 현지 한인 교회에서 만났다. 전태풍이 10세, 미나 씨가 9세 때였다. 전태풍은 미나 씨의 오빠와 친하게 지냈다. 두 가족 모두 어머니가 한국인인 점이 이들을 더 가깝게 맺어줬지만, 2년 뒤 미나 씨 가족이 다른 동네로 이사하면서 헤어졌다.
“그 뒤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어요. 15년 동안이나요. 2009년에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호텔에서 부모님과 같이 있다가 심심했어요. 장난 아니었어요. 페이스북을 하다가 친구 신청을 했는데 미나가 서울에 있었어요.”
어머니로 인해 친해진 두 사람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재회했다. 당시 미나 씨는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모습만 어렴풋이 기억났는데, 미나 씨를 보고는 한눈에 반해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서로 마음이 가서, 몇 번이고 연락을 하다 보니 묘한 유대감이 두 사람을 감쌌다. 두 사람에게는 태생에서 비롯된 비슷한 고민도 있었다.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그 중간에서 방황했기 때문.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점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러나 연락하는 만큼 얼굴을 자주 볼 수는 없었다. 딱 두 번 만나고 전태풍은 유럽 농구 리그에서 용병 생활을 하기 위해 그리스로 날아갔다. 미나씨는 그때 많이 아쉬웠다고.
“이틀 만나고 다시 유럽 갔어요. 스카이프(화상 전화 가능한 인터넷 전화)로 많이 이야기했는데, 그때 ‘조금’ 남편 생각 했어요(웃음).”

마침 전태풍에게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생겼다. 한국 프로농구 혼혈 드래프트가 열린 것이다. 그는 유럽 시즌이 끝나자마자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에 돌아왔다. 그 직후 미나 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두 사람 모두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졌고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차근차근 준비를 하게 됐다. 그리고 2010년 3월, 전태풍은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횟집에서였다. 미리 주방장에게 부탁해 회 속에 반지를 숨겼다. 다소 독특한 장소와 방법이었지만 미나 씨는 그날 무척 감동했다고 회상했다. 프러포즈 이야기를 꺼내자 전태풍은 쑥스러운 듯 말을 덧붙였다.
“아내가 생선회, 초밥 많이 좋아해요. 그래서 생각났어요. 미국에서는 큰 이벤트 별로 많이 안 해요. 하하. 저 그렇게 이벤트 잘 하지 않아요. 그런 남자 아니에요.”
같은 해 여름, 미국 LA의 한 컨트리클럽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절친인 하승진과 강병현, 당시 소속 팀 KCC 허재 감독과 단장, 코치 몇 명이 미국으로 와 결혼을 축하했다. 두 사람의 결실인 태영이는 결혼 후 2년 만에 태어났다. 태영이를 가졌을 때, 전태풍은 하루에도 수십 번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이름은 다 붙여봤을 정도. 태영이가 태어나자 전태풍은 ‘아들 바보’가 됐다. 인터뷰 내내 아들의 볼에 뽀뽀하고, 품에 껴안았다. 그는 아이를 보느라 정신없는 아내의 일도 시간만 나면 척척 도와줬다.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앞으로 한국에서 쭉 살아야 할 아들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강하게 크는 것이라고.

차별에 맞서 싸우는 진짜 한국인

농구 코트의 ‘바람돌이’ 전태풍 가족


전태풍은 귀화 즉시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 미국으로 출국하거나 입국할 때 인천국제공항에서 ‘내국인’ 창구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기쁘고 즐겁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자신을 외국인으로 여기고 있는 점은 슬프고 안타깝다고 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차별이 생각보다 심했어요. 사람들이 처음 저를 만나면 외국인이라 생각해요. 심판이나 팀메이트, 상대편 선수들, 밖에서 만난 사람들도요. 이제 4년 지났는데 그런 생각 조금 풀렸어요. KCC 있을 때 팀 사람들이 ‘태풍이 적응 도우려면 우리 모두 한국말만 해야 해’하고 많이 가르쳐줬죠.”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 농구의 불합리한 점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신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진짜 한국인’인데 혼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고 털어놨다. 특히 귀화 혼혈 선수는 한 팀에서 3년만 뛰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전태풍이 오리온스로 이적한 것도 선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런 배경에서 진행된 것이다. 전태풍뿐 아니라 삼성 썬더스에서 이번 시즌부터 동부화재 프로미로 팀을 옮긴 이승준, 그리고 2013~2014 시즌부터 팀을 옮겨야 하는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문태종 등이 한국 국적 소유자지만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조항에 묶여 있다. 실력이 뛰어난 귀화 선수가 한 팀에 오래 머물면 팀 간 전력 불균형이 우려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라지만 선수들에겐 차별 대우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한 팀에서 3년 뛰면 나가야 해요. 더 있고 싶어도 못 있어요. 그래서 오리온스 가게 됐어요. 너무 불합리해요.”
미국에서도 한국인도, 흑인도 아닌 삶을 살며 양 문화권에서 차별을 받으며 자랐던 전태풍은 자신의 아들 태영이만큼은 그런 차별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걱정했다.
“우리 아들도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걱정돼요. 제가 불합리한 점을 바꿔야 해요. 아들도 똑같은 느낌 받을 수 있으니까요. 강하게 키우고 싶어요. 약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요. 아빠처럼 강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성격, 따뜻한 마음 지닌 행복한 사람이 되면 좋아요.”
아직 몇 년은 거뜬히 뛸 수 있지만 전태풍은 은퇴 후의 계획도 벌써 세워놨다고 한다. 초등학교든 대학이든 학교에서 농구 코치를 맡는 것이다. 자신이 배운 미국 농구의 화려함을 후배들에게 가르쳐 팬들이 한국 농구를 즐기고,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바꾸고 싶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 몇 시즌 뛰다가 계약이 끝나면 자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용병 선수가 아니다. 한국인으로,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도 뛰고 싶어 이 땅으로 돌아온 것이다. 전태풍과 그의 옆을 든든히 지키는 아내 미나 씨. 아직은 한국어로 표현하기에는 다소 서툴긴 하지만 한국에 대한 그의 마음은 곧고 또 굳었다.

여성동아 2013년 1월 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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