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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있어 더 매력적인 배우 지진희

“진지한 모습 뒤에 감춰진 엉뚱함,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진짜 모험가”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김형우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12.18 10:22:00

‘대장금’ ‘동이’등을 함께한 이병훈 PD는 “지진희에게 이런 유머와 위트가 있는 줄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반듯한 외모만 보면 꽤나 무게를 잡을 것 같은 이 배우, 알고 보면 가볍다 못해 깨방정이다. ‘대풍수’의 이성계는 그런 그의 매력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 그래서 지진희는 요즘 신났다.
반전 있어 더 매력적인 배우 지진희


11월 16일 경기도 일산 SBS 제작센터에서 ‘대풍수’에 출연 중인 지진희(41)를 만났다. 사진 촬영 때문에 인터뷰에 약간 늦은 그는 “미안하다. CNN에서 갑자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 거절하고 오느라 늦었다. CNN보다 이번 인터뷰가 더 중요한 것 같아서”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던진 농담이 스스로 생각해도 재밌는지 껄껄껄 웃는다. 그 모습에서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목사 역으로 등장해 김남주의 머리를 흔들며 격한 기도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넝쿨당’ 제작진에 따르면 당시 카메오로 출연한 지진희는 개그맨 뺨치는 코믹 연기로 촬영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예사롭지 않은 입담을 보니 그 모습이 꼭 연기 같지만은 않다. ‘대풍수’에서 산과 들을 누비며 촬영하느라 고생이 많을 것 같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낸다.
“며칠 전 저희 방송 보셨죠? 대관령에서 (덕흥군의 군사들과) 전투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얼음이 얼고 눈보라가 쳐서(촬영이 힘들었어요)…. 어떤 분은 제작비 2백억원을 들여 작년 겨울부터 준비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던데, 그런 건 아니고 대관령에 일찍 눈이 온 덕을 봤죠. 정말 눈이 30cm가 쌓였더라고요(웃음). 이왕 말씀드리는 김에 비밀 하나 더 알려드릴게요. 제가 활을 쏴서 새를 잡는 장면이 있는데 그거 다 컴퓨터그래픽이에요. 보통 그런 컴퓨터그래픽 작업은 몇 달씩 걸린다는데 우리 드라마는 최고의 팀이 모여서 하루 만에 끝냈어요. 대단하죠. 하하하.”

배역을 갖고 놀다

반전 있어 더 매력적인 배우 지진희


‘대풍수’는 고려 말 풍수학자들이 이성계를 내세워 조선을 건국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그가 맡은 이성계는 극 초반 야생마처럼 거침없고 직설적인 인물에서 점차 제왕의 면모를 갖춰가는 캐릭터. 실존 인물이지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라는 점에선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대왕과 비교되기도 한다. 지진희는 “이성계란 역을 가지고 재밌게 놀고 싶다. 시청자들이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깬다는 데서 오는 희열 같은 게 있다”고 말했다.
“극 초반 얼굴에 늑대 가죽을 쓰고 독특한 분장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인 줄 몰라보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게 바로 제가 의도한 바인데 성공한 거죠(웃음). 원래는 그것보다 더 나아가 얼굴 전체를 새카맣게 칠하고 빨간 선만 그리는, 그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 양쪽으로 쓰는 뿔난 애 있잖아요? 다스몰인가? 그 친구처럼 하려고 했어요. 저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서 이용석 PD와 대화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이성계가 왕이 되는 건 누구나 뻔히 아는 사실이니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리더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려보자’고 한 거예요. 실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역사책에도 등장하지 않는 2년간의 공백이 있다고 하더군요.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시기의 이성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하는 거죠.”
지진희는 새로운 이성계 캐릭터를 만들고자 ‘대풍수’ 출연을 확정 지은 직후부터 활쏘기, 검술, 승마 등 다양한 액션을 꾸준히 배웠으며, 촬영으로 바쁜 요즘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활쏘기 연습을 하면서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활쏘기와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국궁은 엄지를 활시위에 걸어 네 손가락으로 엄지를 고정해 팔꿈치 전체의 힘으로 부드럽게 잡아당기더라고요. 그래서인지 활을 쏘았을 때 회전력을 갖게 해 명중률과 강도가 훨씬 높은 것 같아요.”
자못 활쏘기 전문가다운 포스까지 풍긴다. 지진희의 인터뷰를 듣고 있던 지성이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지진희 형이 자신에게 꼭 맞는 배역을 만나 즐거워하는 게 느껴져요. 실제로는 과묵할 것 같지만 인간적이고 말도 많고 후배들도 잘 챙겨주세요. 이러다 형과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
지진희가 이내 맞받아친다. “지성아, 너의 사랑을 바라는 건 아닌데….”
두 사람이 한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라이벌로는 한 차례 맞딱뜨린 적이 있다. 2003년 지진희가 MBC ‘대장금’에 출연할 당시 지성이 SBS 같은 시간대 드라마 ‘왕의 여자’에 출연했던 것.
“처음 만났을 때 선배가 ‘너 사극 뭐했지?’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왕의 여자를 했다. 시청률은 잘 안 나왔지만 다들 열심히 했기 때문에 좋은 작품으로 기억된다’고 하니 선배가 ‘아 그렇구나. 상대 프로그램은 뭐였는데?’라고 물으시기에 ‘대장금’이었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당시 ‘대장금’은 시청률 50%를 넘나들며 국민 드라마로 사랑받은 반면 ‘왕의 여자’는 2%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성이 아직도 그걸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걸 보면 배우도 시청률이라는 성적표에 연연해야 하는 참 고달픈 직업이다. ‘대풍수’의 시청률은 10% 안팎으로, 흥행 성적이 아직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주인공인 지진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 그에게 원인과 해결책을 물었다.



반전 있어 더 매력적인 배우 지진희

1 2 드라마 ‘대풍수’에서 ‘좌충우돌’ 이성계를 연기하고 있는 지진희. 극 중 전투 신에서 늑대 분장을 하기도 했다. 3 촬영장에서 그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후배들을 잘 챙기는 ‘엄마’ 같은 존재다.



“제가 그 답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보다 PD께서 말씀하시는 게 옳을 것 같고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배우나 제작진 모두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행히 11월 15일이 경쟁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종방일이었는데 우리 드라마 시청률이 올랐다는 겁니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죠. 앞으로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더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거고 그러면 시청자들도 ‘대풍수’에 빠져들게 될 겁니다. 원래 우리 드라마가 36부작인데 잘되면 50부작이 될 수 있으니 섣불리 안 된다고 단정 짓지는 말아주세요(웃음).”
‘연기 좀 한다’는 배우들은 보통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진희는 좀 다르다. 명지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20대 후반까지 배우가 될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고 한다. 우연히 제일기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광고 사진을 배우다 전 매니저의 설득으로 연기자의 길에 접어들었다. 1999년 조성빈의 뮤직비디오 ‘3류 영화처럼’으로 데뷔한 뒤 ‘초대’ ‘여비서’ 단 두 편을 거쳐 ‘줄리엣의 남자’로 단숨에 주연 자리를 꿰찼으니, 데뷔가 늦은 것 치고는 일찍 자리를 잡은 셈. 뒤늦은 나이에 연기자로 진로를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기에 젠틀한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지는 것 또한 가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배우가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도 ‘연기’”라고 답했다.
“배우 생활을 시작하면서 10년 후를 상상했을 때 정말 멋진 배우가 돼 있을 것 같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상상했던 것만큼은 아닌 면도 있죠. 그래도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정말 멋진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고, 감사한 일이죠.”

와인·야구·사진·암벽등반 등 다양한 취미활동 하며 인생 즐겨

반전 있어 더 매력적인 배우 지진희


지진희와 호흡을 맞춰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고 말한다. 드라마 ‘동이’에서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한효주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웃긴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의 유쾌함과 긍정 마인드는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한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가세가 기울었는데, 어머니는 잠도 못 자며 일해 집안을 일으켜 세우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는 것. 그의 어머니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자전거를 배워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송파구 올림픽공원까지 왕복할 만큼 열정적으로 산다고 한다.
지진희 역시 연기 외에도 이것저것 관심이 많다. 와인에 빠져 2009년에는 ‘이탈리아 구름 속의 산책’이라는 와인 책을 냈고, 김승우·장동건 등과 함께 연예인 야구단 ‘플레이보이즈’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처음에는 야구 규칙조차 몰랐는데 하루 1천 번씩 스윙 연습을 한 끝에 홈런을 두 방 날리고 핵심 타선에 들어갔다고 한다. 최근에는 암벽등반에 빠져 촬영이 없는 날에는 클라이밍 연습장을 찾는다. 코치가 ‘신동’이라며 프로 데뷔를 권할 정도로 클라이밍에도 재주가 있다는 후문. 특히 그는 암벽등반이 연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암벽은 욕심 내는 순간 떨어져요. 연기도 똑같은 것 같아요. 하나의 단계에서는 금방 익숙해지고 그럭저럭 따라갈 만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땐 정말 힘들죠. 한 차원 넘어가는 연기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2004년 광고 그래픽디자이너인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고, 한때 생업으로 삼을 뻔했던 사진도 꾸준히 찍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2012 SCAF(서울컨템포러리 아트스타페스티벌·11월 17~27일)에는 동료 배우 김영호, 하정우 등과 함께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지진희가 스타로서 밝게 빛나는 건 이처럼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충실하게 채워왔기 때문이 아닐까.

여성동아 2012년 12월 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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