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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 사용설명서 열네 번째 | 가슴 뛰는 선물

“장애 아들은 하늘이 준 최고의 선물”

서번트증후군 박세준·윤혜선 모자의 3가지 선물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박해윤 기자

입력 2012.12.17 18:00:00

장애아를 둔 부모에게는 보통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행복이 있다.
아이 자체가 선물이며, 아픈 아이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는 자폐성 장애아 박세준 군과 그의 엄마 윤혜선 씨는 오늘도 남들보다 더 많이 웃고 더 큰 행복을 맛보고 있다.
“장애 아들은 하늘이 준 최고의 선물”


흔히 사람들은 장애아를 둔 부모를 측은하게 여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이 아이여서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장애인 특수학교 서울 밀알학교에 다니는 박세준(13) 군의 어머니 윤혜선(46) 씨도 그런 부모 가운데 하나다. 미술 분야에서 서번트증후군(자폐증이나 지적 장애를 지닌 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보이는 박군은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장애아도 자폐아도 아닌 어엿한 화가다. 몇 시간이고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를 볼 때면 엄마 윤씨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엄마의 선물, 조금 다른 아이
세준이가 자폐 판정을 받은 건 네 살 무렵이다. 또래 아이들과 달리 엄마와 눈을 맞추거나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불안감이 엄습해왔는데 결국 불안이 현실이 됐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선천적 장애라고 했지만, 윤씨는 그렇게 된 게 마치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아이에게 늘 미안했다. 그 이유는 출산 과정 때문이다. 출산 당시 윤씨는 진통도 없고 양수도 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의 말만 듣고 촉진제를 맞아 유도분만을 시도했지만 진통은 오지 않고 양수가 다 빠지도록 아이는 나올 기미가 없었다. 결국 촉진제 과다로 전신마비까지 온 윤씨는 산모도 아이도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살려내겠다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 아이를 낳았다. 사산에 가까운 위험한 상황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아이는 힘든 출산의 후유증 때문인지 태어나자마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달 동안 집중치료실에 있었어요. 남들은 열 달 품고 있던 아이와 드디어 만났다는 행복함에 젖어 있을 시기인데, 저는 출산과 동시에 큰 충격을 받았죠. ‘나 때문’이라는 자책감 때문에 한동안 우울증을 앓기도 했어요.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헌신과 사랑으로 변했고, 남은 인생을 아이를 위해 바치는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제가 만약 세준이가 아닌 보통의 건강한 아이를 키운다면 지금처럼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윤씨는 지금도 아이가 여덟 살 때 처음 ‘엄마’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요즘도 아이가 불쑥불쑥 “어머니 예뻐요.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면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가 이만큼 발전하기까지 오랜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윤씨에게는 그 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느님이 제게 세준이를 주신 순간부터 저에게는 이 아이가 가장 큰 선물이었어요.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고, 모든 희생도 감내하게 됐죠. 사실 아이를 위한 일은 그 어떤 힘든 일이라 해도 희생이 아닌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걸요. 세준이가 카레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하면 다른 반찬이 있어도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요. 그걸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면 저도 정말 행복하죠. 남편이 제게 결벽증이라고 할 만큼 빨래를 자주 하는데(웃음), 그것 역시 내 아이에게 언제나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옷을 입히고 싶기 때문이에요. 하루에 몇 번이고 세탁기를 돌려도 전혀 힘들지 않아요.”
물론 윤씨가 처음부터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아이가 이상 행동을 보일 때면 속이 상하고, ‘왜 내 아이는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원망하는 날도 많았다. 현재 세준 군은 자폐아치고 자제력이 높은 편이지만, 어릴 때는 다른 자폐아들과 마찬가지로 강박 증상과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다. 온 집 안을 세제 거품 범벅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상 행동을 보여 윤씨를 난처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이처럼 매일매일이 아이와의 전쟁이었지만 윤씨는 그 어떤 순간에도 아이를 때리거나 아이가 수치심을 느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애아 부모에게 가장 힘든 게 바로 기다림이에요. 저 역시 세준이가 지금처럼 어느 정도 일상 생활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렸어요.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왜 그것이 잘못인지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그에 응당한 체벌도 가했어요.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도 엄마가 자신을 위해 혼을 낸다는 걸 알더라고요.”

아이의 선물, 신이 내린 재능

“장애 아들은 하늘이 준 최고의 선물”

엄마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세준 군. 여전히 엄마에게 세준 군은 보기에도 아까운 사랑스런 보물이다.





세준 군의 그림에는 주로 동물이 등장한다. 동물 중에서도 사자와 호랑이를 그리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동물원에 자주 데리고 다닌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자폐아들은 동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반면 세준이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집에서 달걀을 부화시켜 닭으로 키운 경험도 있어 가끔 세준이는 달걀을 보고 “안녕하십니까, 병아리님”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건 네 살 때 처음 알았다. 보통 발달장애나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사회성, 학습 정서 등을 익히기 위해 취학 전 조기교실에 다니는데, 세준이는 그곳에 간 첫날, 화이트보드에 사자 그림을 그려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제가 봐도 잘 그렸더라고요(웃음). 예전에 서번트증후군 강의를 들으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내 아이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날부터 집에 종이와 색연필, 물감을 상비해놓고 언제든지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할 때 마음껏 그리게 했어요. 사실 조기교실은 1년 정도 다니고 그만뒀어요. 아이에게 규율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위축되고 우울해진다면 억지로 교육에 아이를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대신 아이와 전시회, 음악회에도 자주 가고 영화도 많이 보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했죠.”
세준 군은 개인전 두 번에, 단체전 여섯 번을 열 만큼 그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윤씨는 세준 군의 재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귀한 선물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되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먼저 아이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을 테니까요. 비록 말투는 어눌할지 모르지만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예쁜 말을 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더 바랄 게 없죠(웃음).”

여성동아 2012년 12월 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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