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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SWEET HOME ①

피터 벡 & 이혜란 부부의 온기 넘치는 하우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진행 | 한여진 기자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문형일 기자

입력 2012.12.04 15:45:00

20여 년 전 배낭여행으로 우연히 방문한 한국에서 평생의 업을 찾은 푸른 눈의 외국인은 이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전문가가 됐다.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 대표와 아내 이혜란 씨, 딸 줄리아의 온기 넘치는 집으로 가보자.
피터 벡 & 이혜란 부부의 온기 넘치는 하우스




“그 사람, 재미교포야?”
피터 벡(45)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 대표를 인터뷰한다고 하자 친구가 한 말이다. 한국 성인 백과 흡사한 ‘벡(Beck)’이라는 성에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 대표라는 직함까지 붙자 착각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 벡 대표는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칼럼에서 ‘내 성은 수원 백씨처럼 들린다’라며 ‘평생 남북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내 성이 한국 성과 비슷한 건 대체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라고 썼다.

고궁과 산 있는 강북이 강남보다 좋아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앳된 목소리의 여자아이가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하곤 문을 열어줬다.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서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는데 웬걸, 푸른 눈에 금발 머리 소녀였다. 벡 대표와 이혜란 부부의 딸 줄리아(10·한국 이름 애리)다. 수줍은 표정의 줄리아는 “아빠, 손님 오셨어~” 하더니 제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벡 대표의 첫인상은 ‘키다리 아저씨’였다. 2m에 육박하는 큰 키에 놀라고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다시 놀랐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당황’한 거야 아니면 ‘황당’한 거야”라는 식으로 말장난도 친다. 속담에 은유까지, 이쯤 되면 한국어도 수준급이다.
벡 대표 가족이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인왕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도 어느덧 10개월이 흘렀다. 그는 “한국에 왔을 때 효자동까지는 알았지만, 이 동네는 몰랐다”라며 “집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계약했다”고 말했다.
“강남에도 살았는데 강북이 더 좋아요. 고궁도 있고 산도 있고, 더 한국 같다고 할까요. 한국까지 와서 미국식으로 살려고 했다면 여기 오지 않았겠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지만 ‘벡(Beck) 씨’가 아닌 ‘백씨’라고 하는 사람, 자신을 ‘85학번’ ‘미국 386세대’라 지칭하는 푸른 눈의 외국인, 처가에 가면 ‘셋째 사위’ ‘줄리아 아범’으로 불리는 남자. 벡 대표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1987년 배낭여행을 하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5차례나 한국에서 살며 역사적인 현장의 순간순간을 지켜봤다. 1988년에는 교환학생, 1989년에는 대학원생이었고 1994~1995년에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통역으로 활동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국제위기그룹 서울사무소 대표를 맡았고, 이화여대 객원교수로도 활동했다. 이번에는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재학 시절 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며 꿈꿔온 ‘드림 잡’”이란다.
아시아재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아시아 국가의 평화와 번영, 개방 증진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비정부 기구다. 한국지부는 1954년 개소했다. 한국전쟁 직후 신문 용지와 서적 용지를 지원, 교재 제작을 돕는 등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임기 동안 세계에 한국의 발전 경험을 알려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 잡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토속촌’이 유명하긴 하지만 거기는 한국 사람들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가지 않느냐”라며 “거기보다 덜 북적거리지만 삼계탕이 맛있는 집을 얼마 전 발견했다”는 벡 대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그지만 한국과의 첫 인연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피터 벡 & 이혜란 부부의 온기 넘치는 하우스




피터 벡 & 이혜란 부부의 온기 넘치는 하우스


1 핼러윈데이를 맞아 호박을 모티프로 꾸민 거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원목 테이블, 그린 패브릭 체어, 장식장과 사물놀이 모습이 그려진 액자가 어우러져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왼쪽부터 벡 대표와 딸 줄리아, 아내 이혜란 씨.
2 인왕산 자락이 한눈에 보이는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피터 벡의 집 전경.
3 주택은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있어 공간마다 독립된 구조를 이룬다. 2층 거실 문을 열면 빈티지한 소파와 테이블로 꾸며진 공간이 있다. 아늑한 분위기가 나는 이곳은 벡 대표가 주로 딸과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테이블 앞의 원목 기차는 벡 대표가 한 살 무렵에 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만들어준 장난감으로 지금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4 집 안 곳곳에 벡 대표와 아내, 딸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2층 거실 입구의 액자에서 벡 대표 부부의 어릴 적 모습부터 딸의 현재 모습까지 가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5 바닷가로 여행을 갈 때마다 하나둘씩 주워 모은 소라와 조개 껍데기를 커다란 유리병에 넣어 거실 장식장 위에 두었다. 호박 오너먼트로 장식한 트리가 앙증맞다.
6 빈티지 원목 장식장 위에는 벡 대표가 찍은 토끼 사진과 결혼식을 올린 호텔 그림, 딸의 사진 등을 걸어 가족의 히스토리를 담았다.

우연한 계기에 한국 알고 전공까지 바꿔
1987년 5월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2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이던 벡 대표. 어머니가 유나이티드항공 직원이라 공짜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는데, 원래 태국으로 가려다 “동남아시아는 위험하니 동북아시아를 여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부모의 조언에 따라 일본과 중국으로 떠났다. 배낭 하나에 손에는 ‘론리 플래닛’을 들고 여행하던 중 별생각 없이 도착한 한국. “그때는 한국이 지도상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던 그는 서울 광화문 근처 ‘대원여관’에 머물렀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 난생처음 본 거리 시위와 최루탄에 벡 대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사적 현장의 목격자가 된 그는 “평생 연구해볼 만한 나라와 국민을 찾았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은 끝났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준 강렬한 인상이 잊히지 않았다. 한국에 흥미가 생기자 한국어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모교에 한국어 수업이 있어서 무작정 수강 신청을 했다. 수업을 듣는 학생 대부분이 재미교포.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백인은 그 혼자였다. 전공도 정치학에서 아시아학으로 바꾸고 한글 공부에 열중하던 차에 당시 교환교수로 한국현대사를 강의하던 고 리영희 교수를 만났다. 이후 그와의 인연으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고은 시인 등과 교류했다. 아내 이씨는 “이 사람 학창 시절 별명이 북 웜(Book Worm), 공부벌레였다”라며 “매일 두 시간씩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했다”고 전했다. 벡 대표에게 물었다. 왜 한국이었냐고.
“첫째로는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고요. 둘째는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외교관이 되기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활동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자리에서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 양국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고 싶었죠.”
벡 대표와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부부의 딸 줄리아가 방에서 종이와 연필을 들고 와서 아빠 앞에 앉았다. 벡 대표가 인터뷰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사랑스러운 ‘살림 밑천’이다. 그는 테이블에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딸을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자연스럽게 화제가 딸 이야기로 넘어갔다.
줄리아는 서울 연희동 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다. 영어도 잘하지만, 한국어 실력도 상당하다. 일주일에 세 시간씩 한국어를 공부하고, 바이올린과 한자도 배운다. 공부방의 달력과 노트에는 또박또박 연필 글씨로 내일의 할 일을 적어놓았다. 물론 한글이다. 원래 한국 학교에 보낼까 했지만 “외국인이라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면 어쩌나” 하는 아내 이씨의 걱정에 외국인 학교에 보냈다. 줄리아는 촬영 내내 수줍어하다가도 “끝나면 아이스크림 사줄게”라는 아빠의 말에 “(배스킨라빈스31의) 슈팅스타 사줘”라며 배시시 웃고는 아역 배우처럼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줄리아는 아빠를 닮아 운동도 즐긴다. 미국에서 살 때는 태권도 도장에 다니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동성 선수에게 쇼트트랙을 배워 트로피를 받기도 했다. 한국 여행지 중에서는 “제주도가 제일 좋았다”고 “또 가서 말을 타고 싶다”고 아빠를 조르기도 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줄리아 덕에 시간이 날 때면 온 가족이 동대문 동물 상가나 어린이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간다.
칼럼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줄리아. 이유를 물었더니 수줍어하다가 영어로 “내겐 일종의 도전”이라며 “마음대로 글 쓰는 게 좋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평소에도 재미 삼아 시와 소설을 쓴단다. 이씨는 “아빠가 칼럼 쓰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보더니 자기도 하고 싶다고 했다”라며 “아빠보다 똑똑하다”고 딸을 칭찬했다. 벡 대표도 “딸이 영시를 쓴 걸 읽어봤는데 잘 썼더라”라며 딸 자랑에 동참했다. 따로 학원에 보내지는 않는다고. 이씨는 “학원에 보내고 싶었는데 학교 숙제가 많아서 갈 시간이 없더라”라고 했다. 옆에서 벡 대표가 “나도 학창 시절 한 번도 학원에 안 다녔다. 공부는 혼자서 하는 게 최고”라며 거들었다.
부부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이씨는 “이 사람은 제게 영향을 주는 데 성공했지만, 저는 실패한 것 같다”라며 웃었다.
“남편이 등산이랑 운동을 굉장히 좋아해요. 저는 원래 잘 움직이는 편이 아니었는데 남편 덕에 북한산부터 북악산, 칠보산, 인왕산까지 산을 많이 찾아다녔죠. 그래서 저도 남편에게 한국 음식에 맛 들이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했어요. 이 사람 김치나 된장찌개 같은 건 잘 못 먹고, 고기만 좋아한다니까요(웃음). 그래서 딸아이는 된장찌개로 이유식을 했어요.”
“엊그저께는 닭똥집을 먹었다”는 벡 대표는 “갈비찜과 닭볶음탕, 삼계탕도 좋아한다”며 ‘고기 마니아’임을 인정했다.

영어 학원에서 선생과 제자로 만나
인터뷰 내내 느낀 건 부부가 참 많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머리색부터 성격까지 다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이씨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다니던 영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로 강사를 하던 벡 대표를 처음 만났다. 이씨를 처음 보자마자 ‘인연’인 걸 느꼈다는 벡 대표는 “저는 그랬는데 집사람은 그렇지 않았대요”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씨는 “대학교 졸업하고 어학을 배우며 바쁘게 보내던 때라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며 웃었다. 이씨는 벡 대표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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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리아의 방은 원목 침대와 퀼팅 침구로 포근하게 꾸몄다. 벽에는 오렌지와 그린 컬러 퀼팅 패브릭을 붙여 장식하고, 침대 머리맡에는 곤충 모양 모빌을 달았다.
2 줄리아의 바이올린 연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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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미래 계획이 확실한 사람이었어요. 딱딱 정리가 돼 있는 모습이 주변 남자들에게선 볼 수 없던 모습이었죠. 그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한국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좋은 학교 가고, 성공하고, 취직 잘하고, 결혼 잘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미래에 대한 정확한 비전이 있는 사람이었죠.”
두 사람은 주말에 학원 사람들과 함께 등산을 하며 가까워졌다. 학기가 끝나고 이씨를 볼 수 없게 된 벡 대표는 한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편지를 써서 전해달라고 했다. 여기서 벡 대표의 ‘작업’ 실력이 나온다. 그는 편지에 “영화를 보고 싶은데 내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니 같이 보고 통역해달라”고 썼다. 그런데 고른 영화가 압권이다. 제목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생과 사, 선과 악, 행과 고라는 존재의 체험과 ‘생은 공하며 태어나는 것도 사멸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설법이 주어지는 1백75분짜리 불교 영화였던 것.
벡 대표는 “작품이 1989년도에 상을 많이 받았다.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한국 문화와 역사가 섞여 있는 작품이라 골랐다”고 했다. 옆에서 이씨가 “당시에 영화관을 안 간 지 10년은 됐기에 영화관은 오랜만이었다”라며 “연세대 근처 극장에 갔는데 대사가 거의 없어서 설명해줄 게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심오한 영화 감상을 마친 두 사람은 식당에서 곱창을 주문했다. 육식주의자를 자처하는 벡 대표지만 당시에는 “질깃질깃한 식감”의 곱창이 잘 넘어가지는 않았다고. 그러고는 곱창을 먹고 라이브 카페 ‘백마’에서 생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으로 1992년 두 사람은 웨딩마치를 울리고 예쁜 딸 줄리아를 얻었다.
우연과 운명. 벡 대표의 인생에서 중요한 키워드다. 그는 2월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칼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연’과 ‘운명’ 그리고 그 가운데쯤 있는 ‘인연’이란 개념은 외국인으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그중 인연은 특히 그렇다. 단순히 관계(connections)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운명도 아니니까. 대체 어떻게 우리를 엮어주는 끈들을 정의할 수 있을까.’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꿈과 평생의 반려자를 찾은 벡 대표, 그 역시도 우연과 운명 사이 어디쯤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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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벡 & 이혜란 부부의 온기 넘치는 하우스


1 아치형 입구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는 다이닝룸. 창가에 레이스 커튼을 달고 입구 벽에는 해외에서 하나둘씩 모은 접시를 장식해 유러피안 스타일로 꾸몄다. 안정감 있는 원목 벤치를 ㄱ자로 둬 아늑한 느낌을 더했다.
2 다이닝룸의 식탁 맞은 편에는 덴마크에서 구입한 장식장을 두고 여행 중 구입한 그릇과 한식기를 진열했다. 벡 대표는 어디로 여행을 가든 그릇 가게를 꼭 들를 정도로 그릇에 관심이 많다.
3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벡 대표가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커다란 창을 통해 보이는 인왕산 풍경이 계절마다 다른 그림을 연출한다. 창 아래는 고가구를 둬 한국적인 느낌을 냈다.
4 2층 계단, 침실 입구, 현관 등 곳곳에 단아한 느낌의 고가구가 놓여 있는데, 모두 벡 대표가 직접 구입한 것. 거실 소파 뒤에도 커다란 고가구를 두고 옆에 자수 액자를 달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5 1층 거실은 그레이 컬러 패브릭 소파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창가에는 다크 브라운 원목 의자, 장식장 등을 조르르 두고 음악을 듣거나 햇살을 쬐는 장소로 활용한다.
6 침실과 서재 중간에 위치한 코지코너는 유리 장식장을 두고 각국의 인형을 진열했다. 동양적 느낌이 나는 꽃 그림 액자를 위아래로 배치한 아이디어가 독특하다.

여성동아 2012년 12월 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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