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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막말 파문 6개월 만에 돌아온 김구라 반성문 쓰다

“다시 바닥을 치고 깨달은 것들, 조심스런 복귀 심경”

글 | 성영주 자유기고가 사진 | 이기욱 기자

2012. 11. 22

위안부 할머니 막말 파문으로 지난 4월 잠정 은퇴 선언을 했던 김구라가 tvN 토크쇼 ‘택시’로 복귀를 알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난 6개월, 김구라의 궤적을 따라가 보자.

막말 파문 6개월 만에 돌아온 김구라 반성문 쓰다


4월 16일 아침 7시 50분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한 김구라(42)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쳤다. 그런데 평상시와 달랐다. ‘김구라, 위안부 창녀 발언…’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도배돼 있었다. 10년 전 한 인터넷방송에서 경찰의 무차별 단속에 반발해 시위를 벌인 윤락 여성들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빗대어 “창녀들이 전세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는 것은 예전에 정신대 이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한 것이 문제였다. 심각했다. 버티기나 침묵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들어도 100% 화날 수밖에 없는 말이었어요. 지금까지도 꾸역꾸역 용서받고 넘어가고 해서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번 일까지도 ‘시간 지나면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고 버티기로 나가면 많은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 나 자신을 빨리 버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어요. ‘방송을 그만둬야겠구나, 그래야 해결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일 먼저 집사람한테 이야기했죠.”
소속사 대표를 만나 ‘라디오스타’ ‘불후의 명곡’ 등 출연하고 있던 방송에서 하차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표는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했지만 김구라는 1초도 지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곧바로 잠정 은퇴를 발표했다. 아내와 아들 동현이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우리 식구들이 무덤덤한 편이에요. 울고불고 미리 걱정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죠. 동현이에게 아빠가 10년 전에 이런 얘기를 했고, 그게 굉장히 나쁜 말이어서 아빠가 방송을 그만뒀다고 설명했더니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방송 하차 후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망설여지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좋을 것도 없었다. 방송을 그만둔 이튿날 동현이와 바람도 쐴 겸 지리산 근처에 갔다가 ‘물 좋다’는 목욕탕에 들어갔다. 손님이라고는 어르신 몇 명이 전부였는데, 그중 한 분이 다가와 알은척했다.
“어이구, 김구라 씨 아냐? TV 보니까 방송 다 관두셨더구만. 이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쯧쯧….”
시골 노인들조차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꿰고 있었다. 대중 앞에선 비밀이 없었다. 남들이 다 아는 과거, 혼자만 아닌 척 모르는 척 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잘못한 부분은 솔직하게 시인하고, 이해와 용서는 대중의 판단에 맡기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후련했다.
“저는 방송 초기부터 쭉 창피한 상황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10년 전에 인터넷방송에서 별의별 얘기를 다 했는데요. 방송국에서 여자 연예인들 만나면 ‘혹시 내가 한 얘기를 듣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괜히 창피해한 게 일상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뎌져갔지만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저의 잘못을 빨리 시인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었던 거죠.”

막말 용서하고 따뜻하게 맞아준 나눔의 집 할머니들
월요일 KBS ‘불후의 명곡’, 수요일 MBC ‘라디오스타’, 목요일 MBC ‘세바퀴’, 금요일 SBS ‘붕어빵’ 녹화 등 당시 맡고 있던 프로그램이 7~8개였다. 그러나 스케줄이 싹 정리되니 매일 ‘팽팽 노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김구라는 바쁘게 ‘놀았다’. 집중적으로 운동을 해서 몸무게를 3kg 정도 뺐다. 사람들 만나 술 먹고, 등산 하고, 영화도 봤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경기도 퇴촌 ‘나눔의 집’으로 향했다.
“처음 갈 때는 많이 긴장되더군요. 할머니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도 되고요. 이런 말씀드리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등 한국 현대사를 직접 겪어 오신 역사적 인물들이세요. 우리가 책에서, 영화에서만 봤던 어마어마한 일들을 몸소 체험하신 거죠. 그래서인지 이번 제 일도, ‘그래, 너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하며 그냥 받아들여 주시더라고요.”
그는 한 주도 안 빼놓고 할머니들을 만나러 갔다. 봉사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할머니들과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면서 편하게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들은 김구라는 물론이고 늘 그와 함께 오는 매니저와도 친해져 ‘소개해줄 좋은 처자는 없는지’ 물색 중이라고 한다.
동현이와 함께 제이슨 므라즈, 마룬 5 내한 공연도 갔다. 그리고 ‘독설에서 진심으로’(퍼플카우) 라는 책까지 펴냈다. 시간을 건설적으로 보내고 싶었다. 솔직하게, 담담하게 써내려 간 글에 사람들이 조금은 공감해주길 바랐다. 인세는 전부 ‘나눔의 집’에 기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책이 안 팔려서, 얼마 안 되는 인세 기부한다고 생색내는 꼴이 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다. 다행히 책은 어느 정도 팔리고 있다고 한다.

막말 파문 6개월 만에 돌아온 김구라 반성문 쓰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출판사들마다 책이 안 팔린다고 야단이라는데 그나마 3쇄에 들어갔으니 다행이에요(웃음).”
일에 관해서는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대중이 진심으로 자신을 용서해 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일할 때가 오겠지’ 하고 기다리던 어느 날 tvN‘택시’의 김종훈 PD에게 연락이 왔다. 방송에서 하차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김구라는 “밖에서 뛰고 구르는 예능이었으면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토크쇼가 잘 맞았다. 공중파보다 케이블 채널이라서 부담감도 덜했다. 복귀를 결정했다. 복귀 타이밍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았다.
“복귀가 너무 이르지 않느냐, 우려하는 분들이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이 있고 앞으로도 그 부담은 계속 지고갈 겁니다. 제 복귀 문제로 논란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상했고 받아들여야죠. 다만 점점 많은 분들이 저를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니까, 속된 말로 ‘돌아이’니까 그 점을 이해해주시는 날이 오겠죠.”
‘택시’에서 그는 얼마 전 KBS를 사직하고 프리랜서로 독립한 전현무 아나운서와 호흡을 맞춘다. 김구라는 전현무에 대해 “머리가 좋고, 말이 통하는 친구”라며, “인간적으로 서로 존중하기에 방송에서도 호흡이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다.



온전히 용서 받으려면 시간 더 필요해, 차차 나아지는 모습 보일 것

막말 파문 6개월 만에 돌아온 김구라 반성문 쓰다

김구라는 ‘라디오 스타’ 복귀가 무산됐지만 조급해 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라디오스타’ 복귀는 무산됐다. 이 문제에 대해 MBC는 시기상조로 보고 있다.
“아직 저를 불편해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그렇다고 이번 결정이 ‘절대 불가’가 아니니 희망은 있죠.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김구라는 이번 일을 겪으며 주변을 좀더 돌아보게 됐고 신중해졌다고 한다. 예전처럼 주눅 들지는 않지만 어떤 일이 생기면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후배 개그맨 김영철이 농담 삼아 “형, 무슨 케이블을 해요? 공중파로 돌아와야죠”라고 말을 건넸을 때 김구라는 이렇게 답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이 필요하지. 그게 어떤 브랜드의 물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이 큰 일 겪으면 문득 뜬금없는 얘기들을 하잖아요. ‘담대해져라’ ‘하늘을 봐라’ 뭐 그런 것들. ‘라디오스타’ 복귀가 불발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 동생 하는 사이인 PD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지 않겠니?’라고요. 이전의 저하고는 너무 안 어울리는 말이죠?(웃음) 그 PD도 ‘형, 무슨 그런 얘기를 해요’ 하면서 웃던데, 저는 진심이었어요. 조급해하지 않으려 해요.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겠죠.”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10년 전에는 방송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일단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PD와 관련이 돼 있거나, 뭔가 다른 배경이 있을 거다’라고 삐딱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일의 원인을 일단 자기 안에서 찾는다.
“예전에는 제가 너무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사는 게 똑같은 데 말이죠. 그래서 방송하면서 남들 늦을 거 제 시간에 가고, 일을 하더라도 PD 밑에서 고생하는 AD들한테 좀 더 관심 가져주고요. 선배들에게도 끝나면 인사를 꼬박꼬박 하고,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는 밖에서 욕만 하고, 내면의 실상은 전혀 몰랐던 거니까요. 또 알려고도 안 했던 거고. 참 많이 잘못했죠.”
김구라는 10년 전 얘기를 자주 꺼냈다. 그땐 정말이지 속된 말로 ‘개차반’으로 살았다. 일이 없어 세상에 대한 원망만 했다. 아내는 친정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나가서 일했고 보증금 5백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집에서 살았다. 그렇기에 그는 방송을 떠나 있는 동안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 상황에선 뭘 해도 그때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금 제가 앞으로 목표나 계획 같은 걸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요.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겠죠. 인생이라는 게, 유재석처럼 과거에도 사랑받았고, 현재에도 사랑받고 있고, 미래에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차선으로 저처럼 밑바닥에서 시작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잘 나가다가 고꾸라지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개차반’이라고 표현하는 10년 전 그 시절이, 김구라에게는 삶에 질병이 찾아올 때마다 삼켜야 되는 쓴 약과 같다. 입에 써도 뱉어버릴 수는 없는. 그의 말대로 그리워해서 언젠간 만나게 될 그날을 기다려본다.

헤어·메이크업 | 최수지
스타일리스트 | 최미희(이미지디자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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