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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 사용설명서 열세 번째 | 스포츠에 빠진 여자들

“우울증, 관절염 한 방에 날려버렸어요”

쉰 살에 무에타이 도전한 열혈 주부 김경자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2.11.16 11:34:00

늦었다고 시작하지 못할 일은 없다. 50대 중반인 김경자 씨는 무에타이를 통해 건강과 자신감, 그리고 행복한 미래를 얻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어려서부터 평범한 건 딱 싫었다”는 김씨의 무에타이 예찬론.
“우울증, 관절염 한 방에 날려버렸어요”


저녁 7시 퇴근 시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있는 삼산무에타이 체육관에 들어서자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로 북적댔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으니,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에 유일하게 여자인 김경자(55) 씨. 노란색 짧은 머리에 해골 모양 목걸이, 구멍 숭숭 난 밀리터리 룩까지, 외모에서부터 남다름이 느껴진다.
김씨는 이 체육관의 터줏대감이다. 운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째. 노장 중에 노장이지만 운동만큼은 10대 프로급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김씨를 지켜본 이기석 관장은 “경력이나 실력 면에서 조만간 무에타이 3단에 도전할 수 있다. 무에타이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열정 면에서 김경자 씨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평했다. 참고로 현재 국내 여자 선수 중 3단 소지자는 ‘얼짱 챔피언’으로 유명한 임수정 선수가 유일하다.
흔히 무에타이라고 하면 과격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김씨는 과감하게, 그것도 50대 늦은 나이에 무에타이를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평범한 건 딱 싫었다”는 그는 예쁘장한 걸 좋아하는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늘 옷이나 헤어스타일도 남자처럼 와일드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운동신경도 남달라 초·중·고 재학 시절 배구,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결혼 후 사는 게 바빠 운동과 멀어졌다. 더욱이 몇 해 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한 뒤 몸과 마음에 병까지 얻었다. 우울증과 관절염이 가장 큰 문제였다.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었어요. 두통약은 달고 살았고, 우울증이 심해 외출을 못한 날도 많았죠. 40대 접어들면서 생긴 관절염 때문에 무릎을 굽히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싱크대 아래 양념통 하나 집어 들려면 다리가 꺾여서 음식도 뜻대로 만들 수 없을 지경이었죠.”

“영화 ‘옹박’으로 처음 접한 무에타이, 이제는 평생 동반자”
그렇게 하루하루 무기력한 삶을 살던 김씨는 어느 날 딸의 손에 이끌려 영화 ‘옹박: 무에타이의 후예’를 보고 완전히 다른 인생을 맞게 됐다.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는 딸이 평소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를 자신의 체육관으로 불러 비디오를 틀어준 것. 당시 김씨는 영화를 보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희열이 느껴졌어요. 사실 어려서부터 저런 멋진 운동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러고 나니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무에타이 체육관이 한 번에 눈에 띄더라고요(웃음).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체육관에서 받아줄지 걱정이었는데 관장님께서 흔쾌히 일단 체육관으로 와보라고 하셨어요.”
지금도 김씨는 처음 자신이 체육관 문을 열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생동감 넘치는 고함 소리와 함께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자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김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체육관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처음 접해본 운동이 생소하고 어려웠을 법도 하지만 김씨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운동 강도가 세긴 했지만 그걸 해낼수록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행복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현재 개인 사무실에서 회계 업무를 맡고 있는 김씨는 6시 반에 퇴근하면 김밥이나 과일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들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가장 먼저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 줄넘기 등 기초 운동을 3세트씩 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무에타이를 시작한다. 그렇게 세 시간 가까이 땀을 흘리고 나면 밤 10시가 훌쩍 넘는다. 한때 술로 세월을 보냈다는 김씨는 무에타이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동시에 되찾았다.
“운동을 시작하고 가장 좋은 건 정신이 맑고 건전해진다는 거예요. 땀 흘리면서 운동하는 동안 고민거리도 다 날려버리게 되거든요. 특히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저 역시 활기차지고 젊어지는 느낌이에요. 무에타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도 우울한 생각으로 하루하루 의미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 거예요. 무에타이를 한 이후로 관절염도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어요. 관절 자체가 좋아질 수는 없어도 단단한 근육이 관절을 잡아주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죠. 제 또래 친구들도 다 부러워해요. 이제 무에타이는 죽는 날까지 저와 함께할 평생 동반자예요(웃음).”
아쉬움이라면 젊은 선수들처럼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와 대결을 펼칠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10년만 젊었어도 선수로 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다. 조만간 자신의 이름을 건 무에타이 체육관을 여는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도 있다. 현재 딸 부부가 충북 아산에서 큰 규모의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 일부를 무에타이 체육관으로 내주겠다고 한단다. 그러나 김씨는 “당장 뭔가를 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 몇 년 더 실력을 쌓은 뒤 천천히 준비하겠다. 그때는 늙은 내가 전면에 나서기보다 젊고 멋진 친구를 사범으로 내세워야 하지 않겠냐”며 빙그레 웃었다.
무에타이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김경자 씨는 운동을 두려워하는 주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몸이 건강하면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겨요. 수명은 나날이 길어지는데 아프면서 오래 살지, 안 아프고 오래 살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어요. 운동이 귀찮게 느껴지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재밌는 종목을 꼭 하나 찾아보세요.”

“우울증, 관절염 한 방에 날려버렸어요”

무에타이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김경자 씨는 행복한 노후를 위해 어떤 운동이든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동아 2012년 11월 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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