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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국 홀트아동병원 전 원장

6만 입양아의 어머니이자 주치의로 산 50여 년

글 | 성영주 자유기고가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2.11.15 15:40:00

만나자마자 양손 가득 들고 온 보따리를 푼다. 가방에는 이곳을 거쳐 간 입양아들이 보내온 사진이 가득했다.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설명하는 만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올해의 ‘비추미상’ 수상자 홀트아동병원의 조병국 박사를 만났다.
조병국 홀트아동병원 전 원장


“핏줄로 맺어진 가족의 정만 끈끈한 것은 아니다. 입양으로 맺어진 가정의 사랑은 더욱 단단하다. 그것은 혈연과 인종, 문화와 언어와 국가를 초월하고 더불어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 두려움과 수군거림, 외로움과 서러움도 뛰어넘는다.”(조병국 박사의 의료 일기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에서)
‘입양아들의 대모’로 불리는 조병국(79) 박사가 제12회 비추미여성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비추미상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 증진과 여성 문화 창달에 기여한 인사를 선발, 격려하기 위해 삼성생명공익재단에서 제정한 상으로, 지난 2001년부터 12년 동안 53명의 여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중 조 박사가 받은 ‘달리상’은 문화·언론·사회공익 부문에 기여한 여성에게 주는 상이다.
조 박사는 1958년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부시립병원, 서울시립어린이병원 등에서 소아과 전공의로 15년을 보냈다. 그 후 30년넘게 홀트아동병원에서 입양아들을 돌보고 있다.
어릴 적 조병국은 방과 후면 세브란스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을 만큼 몸이 약했다. 6·25 전쟁 때 두 명의 동생을 잃은 기억도 있다. 그 영향으로 아픈 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어린 시절 선교 여행을 다니던 할아버지가 고아들을 데려와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약자를 끌어안고 보듬는 길을 천직으로 여기게 됐다.
“1970년대 초반까지 병원에 수백 명의 고아들이 들어왔어요. 최고로 많이 들어왔을 때가 1972년인데 2천3백 명이 넘었죠. 나중에 그해에 죽은 아이들을 계산해보니까 3백70명이 넘더군요. 죽은 아이들이 워낙 많아서 사후 처리라는 게 창호지 두 장을 재봉틀로 박아 덮어주는 게 전부였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 참혹한 시절이었죠.”
그는 의사 생활 10년 만에 여의사 최초로 소아과 과장이 됐다. 과장이 되자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열정이 앞섰다. 마침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미국 기관이 있어 직접 미국까지 찾아가 시립병원 증축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 일로 그는 정부 당국에 ‘불평 많은 여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시립병원의 일을 절차 없이, 그것도 외국인에게 부탁해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이유였다. 이 일로 청와대 민정관에 가서 조사를 받고, 보안사령부에서 공문까지 날아왔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빨갱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다. “사과 껍질을 벗겨보세요. 그 안에도 빨갛습디까?” 조사를 받으면서도 당당했지만, 억울했다.
“아이들을 위해 한 거지 내가 잘난 척하려고 한 일이 아닌데…. 그 시절에 여자가 외국까지 나가서 그러니, 소위 ‘나댄다’는 취급을 받았던 거죠.”

내 자식에게 소홀했던 6만 입양아의 대모

조병국 홀트아동병원 전 원장


조 박사는 의사 일을 한 지 15년 만에, 홀트아동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해외로 떠나는 입양아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이었다. 50년이 넘는 의료 인생 동안 그를 거쳐 간 아이들만 6만여 명. 세상 일에 쉬운 게 어디 있겠는가마는, 조병국 박사가 선택한 이 길이야말로 평탄치 않은 길이었다. 박봉인 데다, 누가 시킨다고 해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단순한 의술이 아니라 마음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니지만 내 아이들이 자라는 것과 비교해보니 부모도 없고, 버려져 몸도 성치 않은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고 불쌍했어요.”
조 박사는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는데, 낮에는 조 박사의 아이들이 고아 아닌 고아가 됐다. 조 박사는 “밖의 아이들 돌보느라 상대적으로 내 자식들에게 소홀했다”며 “키우는 동안 늘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홀트 일에 매진했다. 그러나 1988년부터 해외 입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동 수출 세계 1위’라는 비난이 나라 안팎에서 쏟아졌다. 그 오명으로 조 박사는 헌신하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회의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아이 팔아서 먹고살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거죠. 그보다 속상했을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도대체 내가 걸어온 길이 뭐였는지 근본적으로 회의가 들었던 순간입니다.”
이때 생긴 마음의 상처는 지금까지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시선 때문에 힘들어 할 틈도 없이 당장 아이들을 돌볼 손이 모자랐다. 한쪽에서 아이에게 우유를 물리고 오면 다른 아이는 질식해 죽을 수도 있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조 박사는 심하게 갈등했다. 누구나 한 번 똑같은 생명으로 오는 건데 이 아이들에게 세상은 왜 이리 가혹하냐고, 이왕 이 땅에 보내셨는데 이렇게 금방 데려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신을 원망했다. 그렇게 안팎으로 받은 상처를 극복하게 해준 건, 다름 아닌 장성해서 고국으로 돌아온 입양아들이었다.
“아이들은 버린 부모를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이 죄책감 갖고 살지 않으면 좋겠다고 걱정해요. 모국 방문차 와서 3개월씩 봉사하고 가는 아이들도 있죠.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말 고맙고 마음에 위로가 돼요. 어떤 아이는 국제 회의 연설자로, 뇌성마비를 앓던 아이는 유명한 병원의 재활학과 의사로 돌아왔죠. 그렇게 살아줘서, 독립된 인간으로 커줘서 얼마나 고맙고 기적 같은지 몰라요.”
이럴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은, 그간 매스컴을 통해 받았던 비난의 상처를 덮고도 남을 만큼 컸다. 돌아온 아이들이 한번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해나갈 힘을 얻었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좋은 일을 했다, 혹은 나쁜 일이다 판단하겠지만, 그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지 못하고 그대로 국내 영아원에 있다가 죽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렇게 살아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온다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을 살리는 건 의술이 아니라 인술

조병국 홀트아동병원 전 원장

1972년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조병국 원장은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면 평생 장애인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40년 동안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왔다.



의사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단연코 ‘인술’이라고 말했다. ‘의술’이 아니냐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전 지금까지도 의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저는 요즘 돈 잘 버는 과로 의대생들이 몰린다는 말도 외부의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돈 벌겠다는 생각으로는 이 일 못해요.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요.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아픈 사람을 안 아프도록 도와주는 일인데요. 내가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명감,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환자를 보는 것이 의사예요.”
조 박사는 환자도 의사를 색안경 끼고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와 의사의 사명감이 만났을 때 비로소 병은 고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병국 박사는 요즘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보호시설 일산 홀트복지타운에 들어와 살고 있다. 무릎이 아파 서울 집에서 출퇴근하기가 힘들어 아예 거처를 옮겨왔다. 지금은 직접 진찰하는 일이 드물지만, 매일 진찰실에 나와 장애아들과 시간을 보낸다.
“제가 1972년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1년 후 전신마비가 올 것이라는 진단을 받을 만큼 큰 사고였죠. 그때 신께 빌었어요. 나를 불구로 만들지 않으신다면 제가 걸을 수 있는 그날까지 장애인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게 지금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싶어요.”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바친 세월이 어느새 50년을 훌쩍 넘었다. 인터뷰 내내 잔잔한 미소가 흐르던 조병국 박사를 보며, 지난날 그를 거쳐간 수많은 아이들의 미소가 이 할머니 의사의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죽는 날까지 아픈 아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기도에 신이 응답한 걸까. 팔순의 할머니 의사는 아직 청진기를 놓지 않았다.

여성동아 2012년 11월 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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