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열린 유방암 예방을 위한 핑크 리본 캠페인 현장.
#1 유방암 발병 후 3년이 지났다. 지금 서른하고도 한 살. 만 26세이던 2009년 유방암 2기 선고를 받았다. 전체 유방을 절제하고, 6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다. 수술 후 1년 반 만에 취직을 해 사회로 돌아왔다. 하지만 작년에 다시 재발 선고를 받고 유두까지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가족력이 있어 어머니와 언니 역시 지속적인 검진을 받고 있다.(정미진·가명)
#2 43세 여성. 30대 후반에 교원 임용고사 합격 후 교사로 생활하던 중 샤워하다가 우연히 유방암을 발견했다. 유방암 2기 선고를 받고 유방을 절제했다. 하지만 2011년 혈액 검사 결과 뼈와 폐로 암이 전이됐다. 6개월 동안의 항암 치료를 이겨내고 올해 3월 복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삶의 희망을 키워나가고 있다.(김정은·가명)
한국유방암학회가 10월 주최한 ‘유쾌(乳快)한 모녀의 PS. I Love You’ 사연 공모전에서 대상과 금상을 수상한 이들의 이야기다. 각각의 수기에는 유방암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아픔과 치료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유방암의 심각성과 함께 예방과 치료에서 본인의 의지, 가족의 사랑과 배려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도 잘 그려져 있다.(661p 박스 기사 요약본 참조)
발생 환자 수 2만 명 시대 온다!
일반적으로 유방암은 유방을 구성하는 유관과 소엽에서 발생한 암을 말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별 증상이 없다. 암이 생긴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만져질 정도가 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대체로 병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유방암의 증상은 멍울이 만져지는 것과 유두에서 비정상적인 분비물이 나오는 것, 유방의 피부 변화 등이다.
한국인 유방암 환자 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연간 유방암 환자 발생률은 1996년 3천8백1명에서 2010년 1만6천3백98명으로 증가했으며, 최근 2년 사이에만 2천5백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발생 인구수만 보면, 유방암 발병률이 높은 미국과 유럽 지역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이들 국가의 발생률은 감소 추세인 반면 우리나라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젊은 유방암 환자 절반, 25명 중 1명 발병 가능
연령별 발생자 수는 40대가 37%로 가장 높았으며 40대 이하 환자 발생 비율이 51.2%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최근 5년간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폐경 후 장년층 여성의 발병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6년만 하더라도 폐경 이전 유방암 환자 비율이 60.9%로 절반을 훌쩍 넘었지만, 2010년에는 폐경 이전 비율이 51.3%, 폐경 후 비율이 48.7%로 거의 대등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박찬흔 한국유방암학회 이사장은 “40대 젊은 유방암 환자 수가 여전히 높지만, 최근에는 50대 이상 연령대에서도 동반 증가하는 추세로 서구형 유방암의 특징을 보인다”면서, “베이비부머인 50~60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유방암 발병 위험 인자를 보유한 비율이 높아졌고, 이것이 장년층 유방암 증가의 원인일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여성이 평균 수명인 84세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했을 때,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4.2%다. 즉 여성 25명 중 1명은 살아가는 동안 유방암에 걸릴 수 있다. 이는 대장암(5.0%)을 제외한 주요 암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유방암 환자 수가 급증하고 발생 확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희망적인 신호도 있다. 유방암 검진율의 상승으로 조기 진단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0, 1기에 해당하는 조기 유방암 환자 비율이 1996년 23.8%에서 2010년에는 52.5%로 증가했다. 5년 생존율도 점차 호전되고 있다. 1993~1997년 77.6%였는데, 1998~2002년에는 82.6%로 약 5%가량 높아졌다. 최근 2005~2009년까지는 90.6%로 생존율이 지속 상승하고 있다.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가 예방의 관건
유방암은 가장 연구가 많이 진행된 암 중 하나다. 따라서 유방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킨다고 알려진 위험 인자를 피하는 생활 습관을 지켜나간다면 어느 정도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른 초경, 늦은 폐경, 출산을 하지 않거나 고령 출산을 했을 때, 또는 모유 수유를 하지 않아 에스트로겐 노출 기간이 늘어나면 유방암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하지만 에스트로겐 노출 기간 조절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다른 생활 습관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폐경 여성은 특히 비만에 유의해야 한다. 폐경 여성의 경우 에스트로겐의 주된 공급원은 지방 조직이다. 비만할수록 지방 조직이 많아 에스트로겐 수치도 높아진다. 연구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폐경 후 여성의 체질량지수(BMI)가 5kg/m² 이 늘면 유방암의 발생위험도는 8~19% 증가한다. 체중과 유방암 발병이 밀접한 연관이 있는 폐경 후 여성은 특히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운동은 유방암 발생을 억제한다. 운동이 체내 호르몬과 에너지의 균형을 잡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주일에 5회 이상 45~60분 정도 운동을 지속하면 유방암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음주 습관의 개선도 필요하다. 주종에 상관없이 하루 10g의 알코올을 섭취하면 폐경 여부와 관계없이 7~10% 정도 유방암 발생을 증가시킨다. 알코올이 체내의 에스트로겐과 안드로겐의 분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정기검진과 조기진단이 열쇠
유방암의 치료는 정기검진과 조기진단에 의해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세부터는 매월 유방 자가 검진을 해야 한다. 월경을 하는 여성은 매월 월경이 끝난 지 3~5일 후가 자가 검진의 최적기다. 자궁 제거술을 받은 여성이거나 폐경 이후 여성은 매월 일정일(예: 1일, 15일, 30일)을 정해 정기적으로 자가 검진을 한다. 방법은 먼저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 양팔을 편하게 내린 자세,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린 자세, 양손을 허리에 짚고 어깨와 팔꿈치를 앞으로 내밀면서 가슴 조직에 힘을 주고 앞으로 숙인 자세 등 3가지 자세에서 자신의 유방 형태를 관찰한다.
다음으로 검진하는 유방 쪽 팔을 머리 위로 올린 후 반대쪽 2, 3, 4번째 세 손가락 첫마디 바닥 면을 이용해 유방을 촉진한다. 촉진은 유방을 부드럽게 누르면서 비비듯이 바깥쪽부터 원형을 그리며 유두를 향해 실시하는데, 동전만 한 크기의 원을 그리듯 가볍게, 약간 깊게, 더 깊게 3번 촉진한다. 이후에 검사하는 쪽 어깨에 수건을 접어 받친 후 편한 상태로 누워 검사하는 쪽 팔을 위로 올리고, 반대편 손으로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촉진한다.
40세 이상은 보건소나 병의원을 찾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 40세 이상 여성은 국가암검진사업의 혜택을 볼 수 있다. 2년마다 유방촬영술(Mammography)과 숙련된 의사의 유방 촉진(CBE, Clinical Breast Examination)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방촬영술은 5mm 정도 크기의 종괴도 발견할 수 있고, 90~95% 정도 정확성을 보인다. 촉진되지 않은 유방암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예민한 검사로 조기에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이다.
유방초음파 검사와 MRI는 비용 부담이 있지만 더 정확한 검사를 할 수 있다. 유방 조직의 밀도가 높아 유방촬영술에서 종괴를 관찰하기 어려울 때 유용한 진단법이다. 유방낭종의 경우 90~99% 확진을 내릴 수 있다. 악성(암) 가능성이 있거나 악성 소견이 나타날 때는 조직 검사를 하고, 악성 소견이 없는 경우에는 추적 검사를 6개월, 1년, 2년씩 기간을 늘려나가면서 하는 게 원칙이다. MRI는 비용이 많이 들어 대중적인 검사는 아니지만 방사선 노출이 없고 양쪽 유방을 비교할 수 있으며 영상이 선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족이 함께해야 예방·치료 가능성 높아
일반적으로 가족은 비슷한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성 가족 구성원은 서로 유방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함께 운동하고 채소는 매끼 반찬으로 2~3가지 이상, 과일은 간식으로 하루에 1~2번 충분히 섭취하도록 한다. 하루 1~2잔 이상의 음주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에스트로겐에 민감한 유방암 환자는 금주를 한다. 생활 속에서 가벼운 운동을 통해 활동량을 늘리는 것도 좋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엘리베이터 이용 대신 계단 오르내리기 등을 실천한다.
유방암의 5~10%는 유전성이다. 어머니나 자매 어느 한쪽이 유방암에 걸렸다면 발병 가능성이 약 2~3배 높아지며, 어머니와 자매 모두에게 유방암이 있다면 약 8~12배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뚜렷한 가족력이 있거나 BRCA1 또는 BRCA2와 같은 유전자 변이가 있어 유방암의 발병 위험도가 높은 여성은 전문의와의 상담으로 검진 기간 등을 정해야 한다. 돌연변이가 발견될 때는 유방암, 난소암의 확률이 최대 60%나 증가하며, 부모 또는 형제가 유전자 돌연변이 세포를 보유하고 있을 때는 다른 형제나 자녀에게 돌연변이가 전달될 확률이 성별과 무관하게 50%에 달한다.
따라서 가족력이나 유전자 변이가 있어 발병 위험도가 높은 여성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도 유방암 검진을 받도록 해야 한다. 유방암과 난소암이 동시에 발병하거나 40세 이전에 유방암을 진단받은 경우, 양측성 유방암, 유방암을 포함한 다(多)장기 암이나 남성유방암 발병, 상피성 난소암 발병 등의 요소를 보유하고 있다면, 유전성 유방암을 의심해봐야 한다. 유전성 유방암 고위험군에 속한다면 유방암과 난소암의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야 하며, 유방암과 기타 암 검진과 가족 검진도 필수다.
|
||||||
유쾌(乳快)한 모녀의 I Love You 사연공모수상작
스물여섯에 찾아온 암, 견딜 수 있었던 비결은…
“유방암이래… 항암 치료도 해야 하고….”
엄마의 말투는 의외로 담담했지만 말끝이 흐렸고 음성은 떨렸다.
2009년 만 26세, 찌는 듯한 더위에 샤워를 하다가 오른쪽 가슴에 큰 멍울이 잡히는 걸 느꼈다. 난생처음 유방 초음파에 X선 촬영을 했다. 얼핏 봐도 검사실 앞에 나 같은 20대는 없었다. 엄마 또래 중년 여성들뿐. 젊은 나이니만큼 의료진도 암이 아닌 섬유선종을 의심했다. 태어나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던 건강한 나였기에 나 역시 암을 의심하지 않았다. 회사에 단 3일의 휴가를 내고 수술대에 올랐다.
마취에서 채 깨기도 전에 엄마는 내게 암이라고 말했다.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내다본 병실 창밖. 퇴근길의 많은 인파들….내가 저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수술 후 내 오른쪽 가슴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았다. 이어지는 복원 수술과 항암 치료.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정확히 2주 후 침대에 수북이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변화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늦은 저녁 시간에 찾은 동네 미용실에서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엄마와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적이 있을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TV에 나오는 영락없는 불치병 환자였다.
삭발을 한 후 밖에 나가는 건 더 두려웠다. 몇 주간 거울도 보지 않았다. 24시간 나와 함께했던 엄마는 그런 내 행동을 알고 계셨을 텐데 그때 엄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하지만 엄마는 한결같았다. 엄마는 나를 배려해 더 많이 웃고 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려고 하셨다. 그렇게 난 암을 견뎌내고 있었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 초기 유방암은 암도 아니라지만, 그래도 죽음의 공포가 있었다. 그런 내 곁을 지켜준 엄마가 나의 항암제였고, 의사 선생님이었다.
수술 1년 반 후, 사회인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암이 재발했다. 재발 소식을 듣고 젊고 예쁜 나이에 다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통을 생각하며 엄마와 함께 한참을 울었다. 항암 치료는 없었지만, 유두까지 절제를 하고 동시에 복원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수술을 받은 지 또 1년이 지났다.
내가 유방암 환자가 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아직 나보다 어린 환자를 본 적이 없다. 또래 친구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해 속상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힘을 내야 하는 이유인 엄마를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지켜주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내가 있기에….
유방암에서 시작해 어깨, 폐로 전이된 암 완치하기까지
2008년 30대 후반에 교사가 됐다. 장밋빛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았다. 샤워를 하다 만져진 딱딱한 덩어리. 의심스러워 받은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이 내려졌다. 꼭 하루를 울었다.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하는지 신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었다. 큰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고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유방을 잃었다는 상실감보다 살았다는 기쁨이 더 컸다.
하지만 이어진 항암 치료도 만만찮았다. 생살을 도려내고 투여된 항암제는 횟수가 누적될수록 고통이 수반됐다. 하지만 살아났다는 기쁨은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수술 후 시간은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암에 대한 생각도 무뎌져갔다. 세월 앞에서 나 또한 느슨해진 것이다. 2010년 갑자기 기침이 말도 못하게 심해졌다.
기침으로 시작된 증상은 가슴 통증으로, 또 옆구리 통증으로 이어졌다. 가족들은 병원에 가보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또 암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병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그해 9월 정기검진에서는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었다. 그때 몸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어야 했는데, 나는 또 방심했다. 괜찮겠지.
1년 후 혈액 검사에서 암 수치가 높게 나왔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처음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학교에 휴직서를 내고 걸어 나오다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운동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때 날 일으켜 세운 건 주치의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이 병은 나을 수 있어. 내가 반드시 널 낫게 해주겠다. 기적은 만들어가는 거야.”
두 번째 항암 치료는 첫 번째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부작용도 심했다. 몸에 있는 털이란 털은 모두 빠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지러워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도 주사를 많이 맞아서 손이 퉁퉁 붓기도 했고, 주삿 바늘을 꽂을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격리 병실에서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을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퉁퉁 부은 얼굴,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내 모습은 그야말로 흉했다. 자신감이 떨어졌고, 사람을 피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학교로 돌아갈 생각에 항암 치료를 이겨냈다. 항암 치료 여섯 번 만에 어깨뼈에 있던 암세포가 사라졌고, 아홉 번 만에 폐에 있던 암세포가 말끔히 사라졌다.
6개월간의 긴 항암 치료를 마치고 올해 3월에 그토록 오고 싶던 학교로 돌아왔다. 천사 같은 아이들과 하루하루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은 고마움의 표현을 앵두, 보리수 열매, 오디로 한다. 순수한 아이들 덕분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그 어떤 항암제보다 아이들이 더 강력한 항암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은 없었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얼마나 사느냐’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하고 있다. 사는 동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선생님, 부모님에게는 좋은 딸, 조카들에게는 좋은 이모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일을 꼭 해보고 싶다.
■ 도움말 | 한국유방암학회, 국가암정보센터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