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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이상만 교수 사위 이문세 기쁘지 아니한家

“장인 위해 아름다운 미수전 준비한 이문세, 더없이 좋은 사위”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10.16 11:06:00

보람된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열정과 도전으로 가득 찬 삶이 아닐까 싶다. 한국 지질학의 선구자인 이상만 교수야말로 누가 봐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얼마 전 사위인 가수 이문세는 장인의 미수(米壽)를 기념해 6개월간 공들여 기획한 서화 전시회와 자서전 출판기념회, 그리고 축하 콘서트를 열었다. 장인, 장모, 아내, 아들 그리고 그 자신까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전진하는 이문세 가족 이야기.
장인 이상만 교수 사위 이문세 기쁘지 아니한家


8월 31일, 옛 서울역사를 개조한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이상만 서울대 명예교수의 미수(米壽:88세) 기념 서화 전시회와 자서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상만 교수는 서울대 지질학과를 나와 1964년부터 1991년까지 27년간 서울대 교수로 일하면서 한국 고기 기반암 연구에 평생을 바친, 우리나라 지질학의 선구자다. 그의 아내는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육완순(79)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이고, 딸은 서울여대 이지현 교수, 사위는 가수 이문세. 이문세의 장모가 무용가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장인의 존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적이 없다.
하지만 미수전이 열린 이날만큼은 이상만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인공이었다. 지질학자가 무슨 서화전을 열었나 싶지만 이 교수는 2000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동양화 부문 특선과 서예 부문 입선을 동시에 수상한 작가다. 또 정식 문예계에 등단한 수필가이자 시인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림, 서예, 수필, 시 모두 65세 정년퇴임 후 독학으로 이뤄냈다는 사실. 자서전 제목 ‘아직도 최고의 날을 위해 뛴다’는 나이에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성취해내는 이상만 교수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전 10시부터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됐던 전시장은 오후 6시가 되자 본격적인 출판기념회 및 미수연 준비로 분주했다. 이문세는 가족들과 함께 일찌감치 행사장에 나타났다. 그동안 언론에 한 번도 노출된 적 없는 그의 아내와 현재 군복무 중인 아들도 함께 자리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호리호리한 체구의 이지현 교수는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깔끔한 양복 차림의 아들 또한 아빠와 엄마를 딱 절반씩 닮은 ‘훈남’이었다. 이문세를 비롯해 아내와 아들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하객을 맞고 안부 인사를 건네느라 분주했다.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하객들은 서서히 피아노와 스탠드 마이크가 놓인 무대로 모여들었다. 관람석 맨 앞줄에는 이상만 교수 내외가 앉았다. 미니 음악회 형식을 띤 미수연은 사회를 맡은 이문세의 등장으로 막이 올랐다.
음악회 첫 순서는 이문세와 친분이 두터운 테너 하석배의 무대로 꾸며졌다. 오늘 공연을 위해 대구에서 KTX를 타고 올라왔다는 그는, 오페라 아리아 한 곡과 가곡 ‘목련화’를 연달아 불렀다. 다음은 육완순 이사장이 준비한 무용 공연. 오로지 이상만 교수를 위해 만든 창작 공연으로 제목 또한 평생 지구와 자연을 연구해온 이 교수와 잘 어울리는 ‘돌, 바람, 물, 빛’이었다. 육 이사장은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섬세한 움직임으로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세 번째 무대는 이상만 교수 제자 3명이 급조해 만들었다는 중창단 ‘볼케이노’의 공연. 제자 중 한 명은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사위인 이문세 씨가 워낙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이렇게 무대에 서게 됐다”며 중창단 결성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이탈리아 나폴리 민요 ‘오 솔레 미오’를 열창했다.
공연이 끝나자 무대 정면 천장에서 흰 스크린이 내려오고, 이상만 교수의 지난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영상은 이문세 부부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192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1950년 서울대 지질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과 캐나다에서 석·박사를 받고 귀국해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4년 제주도 화산암을 최초로 연구했으며, 1970년에는 그전까지 식수를 용천수에 의지하던 제주도민들을 위해 지하수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 이 교수는 아폴로 11호가 달에서 가져온 월진을 한국 최초로 연구했고 유네스코 산하 위원장으로 12년에 걸쳐 아시아 지질도를 편찬했다.

장인 이상만 교수 사위 이문세 기쁘지 아니한家

이상만 교수 미수연 현장 사진. 아내 육완순 이사장은 남편을 위한 창작 무용을 선보였다(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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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교수는 서울대 정념퇴임 후 시작한 그림과 서예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이 교수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지인의 소개로 무용을 하는 아내를 만났다. 당시 육 이사장은 이화여대 강사로 출강 중이었다. 스크린에 등장한 이상만 교수는 아내와의 첫 만남을 설명하며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은 서울 무교동 다방에서 처음 만났는데 첫 대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약속 장소에 먼저 와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 교수는, 육 이사장이 만남을 주선한 사람에게 “그 남자 키는 커?” 하고 묻는 순간 불쑥 등장해 “보시다시피 키가 큽니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어 화면에 등장한 육완순 이사장은 그동안 바쁜 남편과 함께 사느라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히려 남편이 바빠서 좋았어요” 하며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구하는 남편 덕분에 나도 내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새벽까지 무용 연습을 해도 터치할 사람이 없으니 좋았죠. 남편이 장기 출장을 떠난다고 하면 겉으로는 ‘에휴, 고생해서 어떡해요’ 했지만 속으로는 좋았어요(웃음).”



장인에게 바치는 작지만 아름다운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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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 위해 의미 있는 미수연을 준비한 이문세. 공연 후 일일이 손님을 배웅하고 있다.



이상만 교수는 여든이 되던 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연수를 떠났다. 중국 장자제(張家界)에 다녀온 뒤로 중국 자연에 푹 빠진 그는, 언어 때문에 가이드와 동행해야 하는 여행이 답답하게 느껴져 그때부터 직접 중국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 교수는 “죽을 각오 없이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현재 그는 강원도 평창에 작업실을 마련해 일주일에 한 번 서울을 오가며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그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서 또 다른 도전을 모색 중이다.
다큐멘터리 영상이 끝나자 이문세는 “‘녹스느니 닳아 없어지겠다’는 아버님의 의지가 언제나 큰 가르침을 준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저희 집 가훈은 아버님이 직접 지으신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꿔라. 그러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입니다. 그렇기에 저희 가족 모두는 잠시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늘 도전하는 삶을 강조하고 몸소 모범을 보인 아버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상만 교수를 무대 위로 불러냈다.
감격 어린 눈빛으로 무대에 오른 이 교수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그는 행사에 참석해준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이문세의 요청에 따라 유엔이 2008년을 ‘지구의 해’로 선정했을 때, 그가 직접 지어 헌정한 시 ‘지구의 사랑’을 낭송했다.
마지막 무대는 이문세가 직접 꾸몄다. 이문세 밴드 연주에 맞춰 자신의 히트곡 ‘알 수 없는 인생’을 불러 관객의 흥을 돋운 뒤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애절한 목소리로 불렀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대 사랑해요~”란 가사는 아흔을 바라보는 장인에게 영원히 가족의 곁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는 말처럼 들렸다. 관객들도 조용히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했다.
밤이 깊어 음악회를 비롯한 모든 행사가 마무리 지어졌다. 이상만 교수는 이날 판매된 그림 15점의 수익금과 자서전 판매금 전액을 암석학회에 기증했다. “역시 돈보다 돌을 좋아하시는 아버님답다”는 이문세의 재치 있는 말에 하객들은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행사가 끝나고 3일 뒤, 기자는 이상만 교수의 가족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육완순무용원으로 더 유명한 이곳은 모던한 스타일의 4층 건물로 딸 내외도 함께 살고 있다. 1층 무용원으로 들어서자 마침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육완순 이사장이 놀란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인터뷰는 한사코 사양했지만 미수전 준비 과정을 비롯해 가족들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려줬다.
“2월인가 사위가 가족들에게 선포를 하더라고요. 장인 미수연을 준비할 테니 다들 협조하라는 내용이었죠(웃음). 석 달 전쯤 저한테도 작품을 하나 하라고 하기에 손사래를 쳤어요. 당시 오십견이 와서 팔을 제대로 들지도 못했거든요. 그랬는데도 사위가 작곡가 노영심에게 곡을 받아왔다며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떼를 쓰는 거예요. 결국 사위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제가 무대에 선다는 사실을 남편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날 제가 무대에 나왔을 때 깜짝 놀랐을 거예요(웃음). 우리 딸도 아빠를 위해 뭔가 하고 싶다고 해서 다큐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사위랑 스튜디오에 가서 밤새 녹음하고 고생 많았어요. 그래도 행사가 다 끝나고 나니까 참 뿌듯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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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교수의 아내이자 이문세 장모인 무용가 육완순 .



이날 집에는 육 이사장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교수는 평창으로 내려갔고, 딸은 학교에, 사위 이문세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함께 지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 했다. 현재 경기도 평택에 있는 공군부대에서 군복무 중인 손자 이종원 군은 미국 보스턴 칼리지에 재학 중으로 1학년만 마친 뒤 귀국해 군 입대를 했다. 손자 얘기가 나오자 육 이사장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중학교 3학년 때 혼자 유학길에 올랐는데 얼마나 성실한지 몰라요. 유학은 자기가 가겠다고 해서 간 거예요. 당시 딸과 사위는 ‘엄마 아빠는 대한민국에서 바쁜 사람들이니까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고 했어요. 그때 제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요. 그래도 공부를 잘해서 마음이 많이 놓였어요.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스피치 과제가 있었는데 반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다며 전화가 왔더라고요. 무슨 내용을 발표했냐고 했더니 우리 가족 얘기를 했다고 해요. 워낙 우리 가족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자’는 주의인데 손자 역시 어려서부터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 자립심이 강한 것 같아요.”

처가살이 아닌 엄연한 공동소유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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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육완순 이사장은 사위 이문세와 함께 현대무용과 대중가요의만남을 시도하는 공연을 열기도 했다.



딸 부부와 함께 산 지는 벌써 18년 정도 된다고 한다. 현재 지하와 1층은 무용원으로 사용 중이고 2~3층에는 이문세 부부가, 그리고 맨 꼭대기층인 4층에 장인 장모가 산다. 함께 살자고 먼저 제안한 쪽은 이문세. 1995년 그동안 살던 단독주택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금의 건물을 세웠는데 처음에는 2~3층은 임대로 내놓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공사장을 둘러보고 간 이문세가 아내에게 “새 집인데 남에게 주면 금방 망가질 것 같다”며 부모님도 보살펴드릴 겸 같이 들어가서 사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고. 하지만 이상만 교수는 사위의 이 같은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위도 외아들인데 처가살이는 말도 안 된다고 했죠. 정 원하면 먼저 사돈어른들에게 허락을 맡고, 만약 괜찮다고 하셔도 그냥 들어오는 건 안 된다고 했어요. 남들이 봐도 처가에 얹혀 사는 건 안 되니, 비용을 정확히 반반씩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죠. 결국 사위가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이 건물은 딸네와 반반씩 공동소유예요. 또 남자들은 빠지겠다고 해서 정확히 저와 제 딸 소유의 집이 됐어요(웃음).”

결혼 반대했지만 딸을 교수까지 만들어준 사위에게 고마운 마음
육 이사장의 사위 사랑은 대단했다. 사위 공연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빼놓지 않고 보러 다닌다. 단순히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 전 리허설 때 찾아가 문제점은 없는지 체크하기도 한다. 무용가로서 공연에 관한 한 사위보다 한 수 위인 육 이사장은 혹시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면 그 내용을 딸에게 조용히 전하고, 딸은 또 남편에게 전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는다고 한다. 사위가 이를 간섭으로 느끼진 않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육 이사장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장모의 조언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육 이사장이 사위 일에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딸이 처음 사위를 데리고 왔을 때, 남편이나 저나 엄청나게 반대를 했어요. 우리는 교수 사위를 맞고 싶었거든요. 지금이야 연예인이 최고인 세상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잖아요. 동료 교수들도 어떡하냐며 나를 위로하는데, 정말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니까요. 그런데 결국 결혼을 했잖아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이제부터라도 ‘내 아들이다’ 생각하고 훌륭한 가수가 되게끔 열심히 뒷바라지해야겠다 싶었죠. 사위가 공연 때 무용수가 필요하다고 하면 최고의 무용수로 바로 투입시켜줬어요. 2000년에는 사위와 제가 공동으로 공연을 한 적도 있고요.”

장인 이상만 교수 사위 이문세 기쁘지 아니한家


한편 육 이사장은 결혼 후 학업을 중단했던 딸이 다시 공부를 하게끔 도와준 사위가 너무 고맙다고 했다. 결혼 후 딸이 대학원 과정을 밟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네가 좋아서 한 결혼이잖아. 이제 와서 공부는 무슨 공부야” 하고 냉정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기뻤다고.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한 딸은 결혼 후 동 대학원에서 수학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결혼을 반대하면서 제가 딸한테 ‘부모 돈으로 끝까지 공부할래, 아니면 그냥 시집가서 가정주부 될래’ 했더니, 딸은 후자를 선택하더라고요. 그때 얼마나 실망이 컸는지. 그런데 결혼해서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사위한테 눈치가 좀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딸을 박사에 유학까지 보내주고 어엿한 교수까지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죠. 비록 처음에는 결혼을 반대했지만 지금은 부모한테 잘하고, 가정적이고, 자기 일도 열심히 하고, 더는 바랄 게 없는 훌륭한 사위예요(웃음).”
육 이사장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어느 순간 머릿속에는 ‘열정 가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같은 건물에 살아도 얼굴 보기 힘들고, 식사 한번 하려 해도 일주일 전에 약속을 잡아야 하지만 서로에 대한 존경심만큼은 어느 가족보다 두터워 보였다. 육 이사장은 “가족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하느냐보다 얼마나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성동아 2012년 10월 5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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