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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제대로 스펙 쌓는 법

‘교육의 달인’ 심옥령 교장 조언

글 | 허운주 자유기고가 사진 | 이기욱 기자, REX 제공

입력 2012.09.05 11:09:00

요즘 초등학교 최고의 스펙이 ‘영훈초등학교 졸업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찌감치 ‘영어 몰입 교육’을 시작했고, 삼성을 비롯한 재벌과 유명 인사 집안 자녀들이 줄줄이 이 학교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훈초교에서 31년 동안 재직하다가 지난 6월 달튼 외국인학교로 옮긴 심옥령 교장은 초등학교의 가장 좋은 스펙은 ‘차근차근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눈앞의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그의 ‘열린 교육’ 이야기를 들어보자.
초등학교 시절 제대로 스펙 쌓는 법


인천 청라지구에 자리 잡은 달튼 외국인학교 심옥령(60) 초등교장은 교문에서 교장실로 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화장실 쓰레기통을 치우고, 빈 교실 에어컨을 끄고, 지나가는 학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언제나처럼 즐겁고, 열정적이다.
31년간 서울 영훈초등학교에 재직했던 그는 3년 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포부를 안고 학교를 떠나 청심초등학교준비위 교장을 맡았다.
경기 가평군에 들어설 예정이던 청심초교는 그의 교육 철학에 따라 설계됐다. 똑같은 창문은 하나도 없고, 도서관을 통해 학교의 모든 시설로 갈 수 있도록 했다. 심 교장은 자신이 꿈꾸던 열린 교육을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틈이 존재한다. 경기교육청은 ‘입학할 학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개교를 허락하지 않았다. 행정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초등학교 설립은 좌초했지만 그는 아직 열린 교육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2011년 개교한 달튼 외국인학교로 옮겨온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나이도 있고, 마냥 준비만 하고 있기에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어요. 조금 더 늦어지면 다시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이곳으로 오게 됐죠.”

열린 교육, 차이와 개성을 존중하라

초등학교 시절 제대로 스펙 쌓는 법


그가 31년간 재직한 영훈초등학교는 1996년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이머전(immersion: 몰입) 교육’을 도입해 수학·과학·사회 등 전체 과목 중 절반을 주당 15시간씩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영어 몰입 교육이 알려지자 이 학교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심 교장은 영훈초교의 영어 교육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조할 뿐, 학원 영어 레벨을 높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 것은 맞지만 성적에 급급하지 않고 아이마다 개인 차를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했다는 것.
심 교장은 교사의 책무는 아이들이 자신이 정한 목표에 도달하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학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을 서로 비교하지 않는 순간 아이들은 경쟁보다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영훈초교 아이들은 종소리가 나지 않아도 수업에 몰두했고, 학교 규칙을 누구나 스스로 열심히 지켰다고 회상했다.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법을 익혔다고. 영훈초교가 영어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문화’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는 지적인 아이로 키우는 데 교사의 능력이 결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를 시험 치는 기계로 만들지 않으려면 교사를 교육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아들 외에도 수많은 재력가와 유명 인사의 2, 3세들이 영훈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보통이 아닐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만 심 교장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부모가 학교의 교육 철학에 동의하고 학교의 권위를 인정하는 순간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학교는 삼성가 자녀가 입학 원서를 낸 줄도 몰랐어요. 그분들 나름의 교육 철학과 소신대로 학교를 선택한 것이죠.”
심 교장은 이재용 사장의 아들이 입학할 당시 삼성에서 어떤 청탁을 한 적도 없고, 찾아온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도 1천 개가 넘는 입학 서류에서 일일이 명문가의 자녀를 걸러낼 수도 없다. 엄마 임세령 씨는 입학 추첨부터 오리엔테이션, 행사 등 모든 면에서 학교의 지시대로 따랐다. 학교 행사에 지각이나 결석은 물론 바쁘다며 먼저 일어나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심 교장은 부모의 태도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삼성가 자제 입학이 당시에 화제가 됐을지 몰라도 부모와 아이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어쩌면 훨씬 더 엄격하게 학교의 규칙을 지켰다.
그는 이처럼 부모가 학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를 선택할 때는 부모의 교육 철학과 학교의 교육 철학이 맞아야 한다. 그래야 120%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어민 선생님과 의사소통이 어떨지, 카펫이 깔린 교실에서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한지 등 세세한 것을 부모가 고려해야 합니다.”
그는 부모가 욕심을 부려 학교를 잘못 선택하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고 조언했다.



초등학교 시절 제대로 스펙 쌓는 법

심옥령 교장은 교육은 아이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품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건 쉽지만 사람을 만드는 건 어렵다
심 교장은 강릉교육대학 69학번이다. 전공은 국어교육. 영훈초교로 오기 전 강원도 공립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도록 하는 법이요? 문제 많이 풀고 외우고 또 외우면 되는 거죠. 하지만 그걸 활용하고 논리적으로 조합하는 능력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 건 어렵죠.”
심 교장이 2년 차 교사였을 때 일이다. 누구나 열정이 넘치는 시기. 당시에도 요즘과 비슷한 독서 퀴즈대회가 열렸다. 아이들과 함께 기출 문제를 만들고 외우고 또 외웠다. 학교 대표로 도 대표로 전국 대회에 나가 입선을 했다. 부상으로 청와대까지 구경했다.
“좋은 경험이었던 것은 맞아요. 이렇게 단박에 무언가를 해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품성과 태도 같은 것은 오랜 훈련이 필요해요. 오늘 외우고 내일 잊어버리는 지식은 사실 교육이 아니에요.”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심 교장이 바깥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던 시절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도움으로 컸다.
“큰아들이 과학대회에 나가면 최우수상을 받아왔어요. 수학도 선행 없이 척척 풀고. 하지만 자기 자식을 객관화해서 보기는 어렵나봐요.”
심 교장의 큰아들 박헌기(35) 씨는 외고에 진학했다. 당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적성에 관계없이 외고로 몰렸고, 심 교장도 당연히 아들을 외고에 진학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 때문에 아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이 갈 길을 가더군요.”
성균관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큰아들은 현재 외국계 회사에서 3D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엄마도 아들도 초기에 진로 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돌고 돌아 제자리로 간 것. 그래서 심 교장은 자식 교육과 관련해 부모는 섬세한 기획자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달튼 외국인학교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12학년제를 운영하며, 학부모 중 1명 이상이 외국인이거나 학생 본인의 해외 체류 기간이 합산해 3년 이상이어야 입학할 수 있다. 연간 등록금은 초등생 1천9백30만원, 중학생 2천1백20만원, 고등학생 2천2백30만원이며, 학생 정원은 총 1천5백60명이다.
대부분의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가 글로벌 리더 양성을 슬로건으로 내건 데 반해 달튼 학교는 올바른 시민을 만드는 교육에 주력한다. 심 교장이 역설해온 ‘열린 교육’과 맥을 함께하고 있다.
“외국인학교로 오면서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영훈에서 느낀 바지만 외국인 교사들은 우리와 가르치는 방식이 많이 다르죠.”

초등학교 시절 제대로 스펙 쌓는 법


그는 한국식 교육이 암기와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에 집중한다면, 외국 교육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중점을 두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한다.
“원어민 선생님은 읽기, 쓰기, 토론 수업을 한꺼번에 진행하지 않아요. 절대로 무조건 쓰라고도 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선생님의 수업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듣고 읽고 토론하고 충분히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러고는 비로소 쓰지요. 우리는 국어 수업 시간에만 쓰지만 외국 교과는 전 과목에서 쓰기를 해요. 수학·과학·음악·미술 모두요.”
그의 마지막 꿈은 교사들을 위한 교육 봉사다. 현장 교사들과 함께 수업 내용을 디자인하고 가르치는 방법을 토론한다. 그는 지금도 후배 교사들과 ‘교실수업연구회’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를 잘하기 위해,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이 학교에 왔다는 사명감을 잊지 않는다.
심 교장은 교육이란 아이가 성장하면서 바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9월 학기가 시작되면 심옥령식 달튼 1기가 시작된다.
“1년 후에 또 놀러 오세요. 창의교육와 시민교육으로 변화된 우리 아이들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여성동아 2012년 9월 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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