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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Global edu talk

중국의 장원(壯元) 열풍

글·사진 | 이수진 중국 통신원

2012. 09. 04

중국의 장원(壯元) 열풍


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있고 시험에는 1등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인생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대입 시험의 1등은 본인의 기쁨이자 ‘가문의 영광’이다. 중국 대학 입시인 가오카오(高考)의 1등인 장원(壯元·수석)은 학교는 물론 지역사회의 자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갈수록 장원을 둘러싼 입시 산업의 이상 과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도 입시철이면 교문에 고득점자 및 명문대 합격생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시골에서 서울대 합격자라도 나오면 경운기에 태워 한 바퀴 돌고 마을 잔치를 벌이던 시절도 있었다. 수시 입학이 늘어난 요즘에야 좀 잠잠해졌지만 한때는 대입학력고사 수석이나 수능 시험 만점자의 사연이 신문 1면을 장식하곤 했다.
요즘 중국은 과거의 한국 못지않게 장원 취재 경쟁이 뜨겁다. 31개 성(省), 시(市)별로 시험이 다르고, 문·이과별로 과목이 다른 까닭에 장원이 전국에 1명이 아니라 60여 명이라는 것만 다르다. 언론은 한 발 앞서 장원을 알아내고자 갖은 수단을 동원하며, 이 학생이 평소 즐기는 음식부터 생활습관까지 시시콜콜히 보도한다. ‘일등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따라 정부에서는 2004년 이후 공식적으로 장원 발표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 같은 취재 공세 앞에서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올해는 엉뚱한 희생자가 나오기도 했다. 린하오란(林浩然) 군에게 올해 가오카오는 쓰라린 해프닝이었다. 린군이 6백82점을 받아 쓰촨 성 가오카오 장원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취재진이 집과 학교로 몰려들었다. 본인과 가족은 물론 선생님, 친구, 친척, 이웃들에게까지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36시간 만에 오보로 밝혀지면서 뜻밖의 잔치는 허무하게 끝났다. 린군의 점수는 6백15점으로 쓰촨 성의 1본(本) 대학(교육부 및 각 성 지정 중점대학) 합격선보다 1백여 점 높은 점수였지만 만족감은 커녕 실망과 분노에 휩싸였다.

장원 열풍의 배후는 일등 지상주의와 입시 학원 이해관계

중국의 장원(壯元) 열풍

1 수석을 차지한 학생의 노트는 고액에 거래되기도 한다. 2 대입에서 수석을 한 학생이 거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장원 열풍의 종착역이 지나친 상업화라는 점이 여러 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장원 열풍의 배후에는 이해관계가 줄줄이 얽힌 입시 산업이 있다. 장원을 배출한 고교는 모처럼 잡은 기회를 통해 학교의 명성을 높이려 한다. 손쉽게 인재도 확보하고 홍보 효과도 보려는 대학은 거액의 장학금을 내걸고 장원 유치 경쟁을 벌인다. 학원은 각 구별 장원까지 뒤져 이들이 자기 학원에서 공부했다며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 전단을 뿌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에 ‘가오카오 장원’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무려 7천5백여 건의 관련 물품이 뜬다. 전문가들은 과목별 핵심 포인트나 공부 비결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학생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심리적인 자극 이상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도 이런 물건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또 장원 학생들은 수백만원대의 돈을 받고 학원 등의 CF에 동원되거나 강연회에 불려 다닌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 아니냐는 염려는 뒷전이다.
그런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 보이는 이들 장원 역시 결국 입시 산업의 ‘광고 모델’일 뿐이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이제 막 초반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때 이른 줄 세우기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완주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격려하는 것 아닐까.



이수진 씨는…
문화일보에서 14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 2010년부터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로서 인민화보 한글판 월간지 ‘중국’의 한글 책임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중1, 초등6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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