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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파기 환송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피해자 아버지 “딸아이 억울함 풀어주고픈 심정뿐”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08.16 13:36:00

지난해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만삭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일명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1·2심에서 남편 백씨의 살인 혐의가 인정돼 징역 20년이 선고됐던 이 사건이 6월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됐다. 피해자의 아버지를 만나그간의 심경을 들었다.
대법원 파기 환송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지난해 1월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 욕조에서 만삭의 임신부 박모(당시 29세)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옷을 입은 채 욕조에 누워 있었고, 목이 꺾인 상태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백모(32) 씨가 아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졌다. 박 씨의 사인은 ‘목 눌림에 의한 질식’이었다.
검찰은 부부싸움 중 남편이 아내를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봤다.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1·2심에서는 백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6월 28일 대법원은 증거가 충분치 않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7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피해자의 아버지 박씨를 만났다. 그는 “숨진 딸의 동생들이 ‘(부모님에게는) 우리도 있지 않느냐’라고 딱 한마디 하더라”며 인터뷰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그는 “아이를 떠나보내고 소송에 휘말려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진실 밝혀야
“처음 죽은 아이를 발견했을 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딸이 누워 있는 자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죠. 사위의 이마에도 상처가 있었고요.”
그는 경찰 초동수사부터 지금까지 모든 현장에 함께했고 재판에도 참여했다. 답답했다. “제가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학 상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딸의 죽음 이후 15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술도 늘었다.
“세상에서 자식 잃은 부모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다고 하잖아요. 건강한 딸이 갑자기 죽었어요. 구천을 떠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그냥 생물학적 한계가 끝났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차라리 일반 사고였다면 평생 가슴에 묻고, 절대자가 운명을 결정지었겠거니 생각하며 살았겠죠. 그런데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요. 딸의 영혼이 평생 구천을 떠돈다면 부모 마음이 어떻겠어요. 국가적 차원에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 쟁점에서 ‘사망 원인’과 ‘사망 시각’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1995년 발생한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과도 자주 비교된다. 대법원에서 고등법원으로 사건이 파기 환송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처럼 미궁으로 빠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은 7년 넘게 재판이 진행되며 1심 유죄, 2심 무죄, 3심 유죄 취지 환송, 2심 무죄, 3심 무죄 확정 선고를 받았다. 그는 “사건이 ‘미제’로 남지 않을까 우려하는 전 국민의 트라우마 같다”며 재판 경과에 대해서는 “아직 진행 중이라 혹여 내 말 한마디로 인해 딸의 억울함이 풀리지 않을까봐 겁이 난다”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누군가를 의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죽었는데, 범인이 누군지는 나와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딸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을 안긴 건 사위의 태도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딸과 사위 모두 잃었다.
“어떻게 보면 한때는 가족이었잖아요. 그런데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렸죠. 볼펜을 돌리고 턱을 괴는 등 재판에 성의 없이 참여하는 모습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어요. 오죽했으면 재판장에서 백씨(사위) 측 사람들에게‘슬퍼하는 척이라도 해봐라’라고 그랬겠어요. 사위가 분향소에서 판타지 소설 30권을 읽었다는 이야기에 아연실색했죠. 지루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했든 사랑하지 않았든, 아내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7월 8일은 죽은 딸의 생일이었다. 그는 경기도 분당 메모리얼파크를 찾았다. 답답할 때면 가족들 몰래 찾는 곳이다. 딸의 유골함에는 딸의 친구들이 ‘보고 싶다. 생일 축하해’라고 쓴 메모와 꽃을 가져다 놨다. 울컥했다. 그는 “딸 친구 중에 결혼한 아이들이 아기를 낳았더라”며 “그걸 보니까 더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는 느낌이다”라며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기자의 네일아트를 보더니 “우리 딸도 저런 거 좋아했는데…”라며 탄식했다.
“항상 손톱을 예쁘게 잘 관리하는 아이였어요. 한 번은 집에 왔는데 손톱을 예쁘게 했기에, ‘곧 있으면 아이도 낳을 건데 그러면 안 되지’ 했더니 ‘내일모레가 학부모 간담회라 곧 지울 거니 걱정 마세요’라며 웃더라고요. 여자들이 뱃속에 자기 아이를 가지면 본능적으로 얼마나 몸을 조심하겠어요. 얘가 임신은 했지만, 재즈댄스도 잘 추고 굉장히 날렵했죠. 사건이 있기 며칠 전에도 산부인과를 다녀오더니 ‘아기 체중이 많이 늘어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라며 굉장히 좋아했어요.”
유치원 교사였던 박 씨는 영어 유치원에서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는 등 아이들을 활발하게 지도했다.
“부모로서 딸이 항상 어리게만 보이고, 과연 직장과 사회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우려했어요. 그런데 사건이 일어나 딸아이가 출근을 안 하니까 선생님들이 걱정하고, 놀라서 집에 찾아오고 그랬죠. 장례 기간에도 30여 명이 되는 선생님들이 매일같이 와서 빈소를 지켜줬어요. 그걸 보고 ‘아, 우리 딸이 잘못 살지는 않았나 보다’ 싶었죠. 그렇게 부모보다 먼저 가려고 열심히 살았나 싶고.”

진실 규명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인터뷰 내내 그는 몇 번이고 “차라리 교통사고였으면…”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상황은 딸을 두 번 죽이는 처사라는 것. 사건 발생 전후로 딸이 처해 있던 상황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날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했다.
“다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라고 하는데, 자식이란 게 말이죠. 평소에는 늘 공기처럼 있으니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언제든지 전화하고, 얼굴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이래서 인터뷰를 잘 안 한다”라며 다시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인터뷰하면 자꾸 생각해야 하고, 그럴 때는 어차피 간 아이니까 아예 멀리 시집갔거니 하고 편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영원히 볼 수 없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굉장히 힘들어요. ‘내가 죽어서야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참담해지죠.”
유죄든 무죄든 재판 결과가 나온다고 딸이 살아 돌아오지않는다는 걸 아버지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단지 진실이 규명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비로서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대법원 판결문 살펴보니…

대법원 파기 환송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대법원은 6월 28일 1·2심에서 아내 박씨를 살인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은 백씨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본지에서 입수한 대법원 판결문을 통해 사건이 파기 환송된 이유를 살펴봤다.
우선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범죄 사실의 인정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정황 증거만으로는 유죄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피해자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백씨가 피해자를 살해했는지 판단하려면 피해자의 사망 원인이 단순 질식사가 아닌 액사(縊死)라는 점이 먼저 확정돼야 한다는 것. 그를 위해서는 단순히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의 소견이 관찰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액사에서만 발생하는 소견이 확인돼야 한다고 밝혔다.
부검의 맹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체 부검을 한 부검의가 어떤 것을 유력한 사망원인으로 지시하더라도, 그 밖의 다른 사인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검 결과를 살해의 증거로 보려면 더욱 치밀한 추론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던 백씨의 심리나, 평소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 있어 피해자와 다툴 여지가 있었던 점에 대해 부부싸움의 동기는 될지언정 살인 동기로서는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객관적 증거와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는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결이다.
남편 백씨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더펌의 이정훈 변호사는 이번 ‘파기 환송’에 대해 “유죄로 볼 증거가 부족하니 재판을 다시 하라는 것 아니겠느냐”라며 “무죄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아버지 박씨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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