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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민이 품은 김한석·박선영 부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글 | 진혜린 자유기고가 사진 | 지호영 기자

입력 2012.08.16 10:04:00

참 복도 많은 남자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완벽한 데다가 웃는 얼굴이 예쁘기까지 한 당신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금이야 옥이야 할 수밖에. 거기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 민이까지 태어났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2008년 푸드 스타일리스트 박선영 씨와 결혼한 방송인 김한석의 이야기다. 딸 민이의 백일을 맞아 웃음이 넘치는 그의 집을 찾아가봤다.
딸 민이 품은 김한석·박선영 부부


실례를 무릅쓰고 ‘오, 탐나는구나’ 하며 이곳저곳 카메라를 들이댔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그릇 컬렉션과 잘 꾸며진 주방은 물론 깔끔한 아이 방까지. 실용적이면서도 이토록 예쁠 수가 있구나!
여자들의 로망을 집대성한 인테리어를 완성한 것은 다름 아닌, 이 집의 가장인 김한석(40)이다. 30년 된 낡은 아파트를 때 빼고 광내 아내와 딸, 민이를 위한 스위트홈을 완성했다. 그렇다고 집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며 완전 개·보수를 한 것도 아니란다. 천장, 바닥, 몰딩까지 예전 것을 최대한 이용해 새집처럼 꾸며놓았다.
“집이라도 지을 사람이에요(웃음).”
생각과 실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남편의 급한 성격에 아내 박선영(40) 씨도 혀를 내두른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엄청난 기운이 솟아나는지 불편한 것, 필요한 것을 완벽하게 구분짓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남편이다.
“성격이 너무 급한 게 탈이에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눈앞에 뿅 하고 나타나거든요. 오늘 아침에 싱크대에 콘센트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당장 만들어주겠다며 정비사 출장 예약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남편 흉을 보는가 싶은데 듣고 나면 묘하게 부러워진다. ‘형광등도 안 갈아주는 남편’이 어디 한둘인가. 그런데 이 집은 남편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단다. 쉬는 날 하루 없이 일하면서도 집에 있을 때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는다. 아내 손이 닿지 않는 집안 구석구석을 닦는 것도 남편의 몫이다.
사실 김한석 본인 입으로 결혼 전에는 ‘나쁜 남자’ 축에도 못 끼는 ‘나쁜 놈’이었단다. 지금의 아내를 울리기도 많이 울리고 상처도 많이 줬다. 그런 ‘나쁜 놈’을 ‘1등 남편’으로 대변신시킨 것은 아내였다. 박선영 씨에게 25년간 ‘나쁜 놈’ 안에 숨어 있는 ‘괜찮은 놈’을 꿰뚫어본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의 연애담을 들려달라고 했더니 김한석은 “정말 오래전 일이라서…” 하며 말끝을 흐린다. 결혼 4년 차 된 부부의 연애담이 뭐 그리 고릿적 일일까 싶은데, 말마따나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으니 25년을 훌쩍 뛰어넘는 옛날 일이다.

내 눈엔 너만 보여, 너는 내 눈에만 보여

딸 민이 품은 김한석·박선영 부부

결혼 4년 만에 힘들게 얻어 더 소중한 딸 민이를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이 행복에 넘친다. 아기의자는 한샘 티파니 키즈 체어.



모범적인 여학생과 날라리 남학생으로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마음을 거절한 여학생에게 남학생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멋있는 남자가 돼서 널 거절하겠다’는 유치한 복수. 하지만 그로부터 13년 후인 2000년 남학생은 연예인으로, 여학생은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KBS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재회했을 때 남학생은 자신이 꿈꾸던 ‘멋진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감히 그녀에게 다가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하지 못했던 남자. 주저하는 그에게 손을 먼저 내민 사람도 아내였단다.
“너무 좋다는 마음은 아니었고요(웃음). 왜 유난히 계속 마음이 쓰이는 친구가 있잖아요. 또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까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참 열심히 사는 친구라 잘되면 좋겠는데, 아픔도 겪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에 늘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고 있었죠.”(박선영)
“1년에 한두 번? 잊을 만하면 전화가 왔어요. 그렇게 한 2년쯤 지났을까, ‘2002년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을 때 소위 ‘월드컵 커플’로 잠깐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아내에게 정말 큰 상처를 줬죠.”(김한석)



두 사람은 연인 사이라고 못을 박지는 않았지만 연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러다 김한석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지자 ‘욕심 낼 수 없는 여자’에게 시간을 쏟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앞뒤 설명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렸다.
“아버지가 한동안 직장암으로 고생하셨는데 그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들여다보지도 못했어요. 그게 한으로 남아 있다가 아버지가 또 폐암 수술을 하신다니 연애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갑작스런 헤어짐에 아내가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좋은 남자 만나라고 해’라고 말하면서 가슴이 아프지만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또 시간은 흘렀다. 가끔 아내의 전화를 받을 때도, ‘나와 인연이 돼서는 안 되는 여자’라는 생각에 차갑게만 굴었다.
드문드문 연락만 주고받던 두 사람의 만남에 도화선이 된 것은 2006년 MBC ‘찾아라! 맛있는 TV’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한석이 MC를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 아내가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고정 출연을 하게 된 것이다. 특별한 인연인 것 같아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그녀에게 냉랭하게 대했다.
“나 같은 놈을 안중에도 두지 말라는 거였어요. 세상에 좋은 남자 많으니까 나보다 괜찮은 사람 만나라고요. 근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마지막 지방 촬영 때, 그 마음이 허물어졌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힘든 일이라곤 없을 것 같았던 아내에게 의외의 고민이 있음을 알고는 더 각별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몇 년 만에 자신 앞에 다시 성큼 다가온 그녀를 냉큼 잡을 수는 없었다. 이미 한 차례 상처를 준 그녀를 잡을 생각도, 또 잡을 수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가 전화를 해서 또 유학을 가겠다는 거예요. 프랑스, 태국 등을 돌며 공부할 만큼 한 거 같은데 또 간다기에 ‘이제 그만 공부하고 돈이나 벌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어요. 그런데 곧바로 전화가 다시 걸려오는 거예요. 전화를 받으니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쏟아내며 울분을 터트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죠. 그렇게 또 전화를 끊고는 ‘왜 나한테 욕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아! 붙잡아달라는 뜻이구나.”

하늘이 준 기쁨, 민이

딸 민이 품은 김한석·박선영 부부

젖살이 올라 포동포동 귀여운 민이. 김한석은 민이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고 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뒤돌아볼 것도 없었다.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그에게도 그녀의 사랑이 들렸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이 와 닿았다. 그는 한걸음에 그녀의 집 앞으로 달려갔다. 지금 당장 나오라고,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마주한 그녀에게 그가 한 말은 그동안 미안했노라고, 나도 사랑했노라는 말 대신 “내 아내 시켜줄게”였단다.
“얄미울 정도로 무뚝뚝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차가운 남자라도 평생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마음고생을 시킨 남자와 왜 결혼을 했느냐?”고 캐물었더니 그녀의 사랑은 ‘무엇 때문에’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친정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었고 친한 친구들도 결혼을 결심한 그녀에게 “정말 신중하게 생각한 거니?”라고 물을 만큼 남자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남자 안에 숨겨진 내면이 보였다.
“한번 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해요.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하거든요. 심지가 굳건하다고 해야 할까요? 저를 사랑한다면, 그래서 결혼을 한다면 그 마음이 변치 않을 것 같았어요.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남편, 헌신적인 아빠가 될 거란 믿음이 있었죠.”
그 믿음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담배만 안 피우면 1백 점짜리 남편이에요. 무뚝뚝한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애교도 많고요. 자상하고 가정적이에요. 무엇보다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울 뿐이에요.”

딸 민이 품은 김한석·박선영 부부


그림 같은 주방에서 부부가 다정하게 커피를 타는 풍경은 보기 좋았다. 남편은 “제 것도 만들어주실 건가요?” 하고 물었고 아내는 “그럼요” 하고 응수한다. 그래도 “이건 제가 할게요” 하며 “여기다 우유만 넣으면 되나요?” 하는 남편은 다정다감하고 곰살맞다. 동갑내기 동기동창이 서로 존칭을 쓰는 것이 독특하면서도 듣기에 좋았다. 남편이 아내를 챙기는 일이 비단 존칭이나 커피뿐이랴. 무슨 일이든 아내가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물며 아내의 전공인 요리조차도 가만히 앉아 받아먹질 못한다.
“밥상 차린다고 하면 TV 보면서 기다려도 될 것을 그게 안 돼요. 주방에 서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애잔한 마음이 들거든요. 도와줘야 할 것 같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결국 옆에서 거들고 설거지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요.”
그것은 사랑을 넘어선 아내에 대한 애틋함에서 비롯된다.
“‘무뚝뚝한 남자랑 살 각오가 돼 있다’는 아내의 말이 그 긴 시간 나에게 받은 상처 때문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렸어요. 그래서 결심했던 것이 아내에게만큼은 남자의 자존심을 세우지 말아야겠다는 거였죠. 아내가 늘 웃고 살면 좋겠다고, 늘 웃게 해주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그래서 아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왜 나를 만나 고생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애틋함이 커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순도 높은 애틋함으로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허니문 베이비로 가진 아이가 유산된 후 4년간 임신이 되지 않아 애를 태웠다. 물론 남편의 마음도 타들어갔지만 불임클리닉과 병원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대신해줄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걱정이 됐어요.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아내도 저에게 이렇다 할 표현을 잘 안했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애쓰는 아내에게 또 애잔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모두 다 알 수는 없다.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아내가 겪을 좌절감은 남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다.
“임신에 실패할 때마다 괜찮다며 다독여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마저도 서운할 정도였어요. 해볼 수 있는 것은 전부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시험관 아기를 하자고 하던 찰나에 정말 하늘이 주신 선물처럼 자연임신이 된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가 많으니까, 또 유산을 경험했으니까 지레 겁을 먹은 탓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결혼 4년 만에, 금쪽같은 딸 민이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딸을 누구보다 제일 먼저 만나고 싶어 한 아빠였지만 민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다. 하필 그 시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MBC ‘기분 좋은 날’에 출연하고 있었다. 방송 도중 아내의 출산 소식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몽실몽실하게 잘 자라준 민이는 요즘 한창 옹알이 중이다. 낯선 기자를 보고도 방실방실 잘 웃는다. 그런 민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얼굴에 함박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에는 기쁨과 함께 그만큼 책임도 뒤따르는 법. 김한석은 아이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우울증에 시달렸다’며 하소연을 한다.

“4년 동안 단둘이만 살다가 모든 것이 변한 거잖아요.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 변화가 싫다는 게 아니라 그런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아이를 직접 낳은 여자들보다 더 오래 걸린다고 해야 할까요? 더구나 민이가 저만 보면 울고, 제가 안아주기만 하면 불편해하니까 저도 불안해지는 거예요. 설거지, 청소, 빨래 다 해줄 수는 있어도 아기 안는 것만은 제가 실수라도 할까봐 겁이 많이 났어요.”
초보 아빠는 모든 게 서툴렀다. 한 번은 민이에게 젖병을 물리다가 아이가 잠깐 숨을 쉬지 않아 크게 놀란 적도 있었다. ‘이러다가 잘못되는 것 아닌가’ 싶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도와줘야 할 일은 더 늘었는데,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민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뭐든 척척 해주던 사람이 육아는 전혀 도와주지 않는 거예요. 서운함은 둘째치고 이상했어요. 손에서 아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오히려 아이 안는 것도 무서워하니까요. 그런데 남자들에게 아이 보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쉬는 날에는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바람도 쐬라고 권하곤 해요. 아기 안는 게 불안하다고 하면서도 뽀뽀는 또 얼마나 자주 하는데요. 물고 빨고 예뻐하다 몸살을 앓는다니까요.”

매사에 긍정적인 아내를 닮아가는 남편

딸 민이 품은 김한석·박선영 부부


박선영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녀처럼 모난 구석 없이 둥글둥글하기도 쉽지 않겠다 싶었다.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마흔으로는 보이지 않는 절대 동안에다 유난히 미소가 예쁜 그녀는 매사에 긍정적이기까지 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꼽자면 남편이 아내 모르게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봐도 부부싸움 한번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울컥 화가 나기도 해요. 그럴 때는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더라고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싶으면 며칠이 지나든, 몇 주가 지나든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편안하게 말하는 편이에요.”
김한석도 아내가 지금껏 잔소리한 적도 없고 바가지 한번 긁은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많은 산모들이 아이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로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이 보통인데 그마저도 그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아이 보느니 일한다던데 요즘 많이 힘드시죠?” 하고 물으니 명쾌하게도 “육아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라고 해 묻는 이가 머쓱해진다. 다만 육아휴직이 끝나는 다음 달부터 민이와 떨어져 있을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단다.
최근 김한석은 20여 년 전 못다 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예대 1학년만 마치고 휴학을 한 뒤 지금껏 졸업을 하지 못했다.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고 있던 그를 학교로 돌려보낸 이는 아내였다. “공부를 더 하라”고 말로 표현하는 대신 아내가 먼저 대학원에 등록하면서 남편의 학업을 장려했다.
“그때 아내가 민이를 갖기 전이어서 회사 생활을 하며 대학원에 다녔죠. 학교에 데려다줄 때마다 ‘아내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난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시작했죠. 학교에 다니니까 예전에 품었던 꿈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고 있어요.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고 다시금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났죠.”
결혼 후 아내의 긍정적인 성격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는 그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기자를 김한석이 꽤 큰 종이 상자를 하나 들고 따라 나선다. 사이즈를 잘못 선택한 기저귀를 교환하러 간단다. 기저귀 박스를 어깨에 떡 하니 걸친 그가 그토록 늠름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하도 저더러 결혼을 잘했다고 하셔서 요즘에는 아내에게 ‘당신도 남편 잘 만났다’고 세뇌시키고 있어요(웃음).”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김한석의 얼굴은 한없이 평온하다. 단란한 가족을 만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을 만나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으니 말이다.

제품협찬 | 한샘(02-3430-6900)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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