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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대선 출마 선언한 손학규, 뇌종양 투병 사위 향한 애틋한 사랑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손학규 미니홈피, 연합뉴스 제공

2012. 08. 14

지난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에게는 딸이 둘 있다. 모두 결혼해 가정을 일궜는데 맏딸인 원정 씨의 남편이자 연극 연출가인 김동현 씨가 몇 년째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안타까운 사실이 확인됐다. 대학로에서 가장 신뢰받는 연출가로 꼽히는 김동현 씨는 암세포와 싸우면서도 얼마 전 ‘그을린 사랑’을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았다.

지난 6월 14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손학규(65)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7월 1일 부인 이윤영(66) 씨와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다. 연극 ‘그을린 사랑’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비서관조차 동행하지 않은 조용한 발걸음이었다. 이 작품을 연출한 김동현(47) 씨는 손학규 상임고문의 맏사위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도 연극계에서도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권 도전이라는 험난한 여정에 나서며 사위의 공연장을 찾은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투병 중에도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 담은 작품으로 호평받는 사위

대선 출마 선언한 손학규, 뇌종양 투병 사위 향한 애틋한 사랑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위 김동현 연출가(오른쪽)의 든든한 언덕이 돼주고 있다.



극단 코끼리만보 대표이기도 한 김동현 씨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 꼼꼼한 연출, 차분하고 선량한 성품으로 연극계에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2009년 김씨가 연출한 ‘33개의 변주곡’ 제작을 맡았던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그에 대해 “연극계 원로 손진책 선생의 추천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33개의 변주곡’도 그렇고, 이전 작품을 봐도 세심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친구다. 좋은 연출가라는 강한 인상이 남아 있다. 그와 다른 작품도 함께해 보고싶다”고 평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김동현의 연출이 연극계에서 두터운 신뢰를 받는 더욱 큰 이유는 그가 뇌종양 투병 중임에도 꿋꿋하게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2008년 초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후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암과 싸우는 과정에서 2008년 ‘하얀 앵두’로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을, 2009년 ‘다윈의 거북이’로 제11회 김상열연극상 등을 잇달아 수상했다.
이런 김동현 연출가 뒤에는 묵묵히,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뜨겁게 사위를 끌어안은 손학규 상임고문 내외가 있었다. 손 고문의 맏딸 원정(37) 씨와 김동현 씨는 2004년 웨딩마치를 울렸다. 서강대 영문학과 출신인 원정 씨는 요즘 연극평론가 겸 드라마트루거(희곡을 구성하는 사람)로도 활동하고 있다. 당시는 손 고문이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시절이라 얼마든 좋은 혼처를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원정 씨는 가난한 연출가와의 사랑을 택했고 부모도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당시 손 고문의 심경은 2007년 출간된 ‘대한민국, 손학규를 발견하다’(랜덤하우스)에 자세히 나온다.
“연극이란 낭만적으로 볼 때는 멋있지만, 딸과 사위가 전부 연극을 하니까 가난이 물밀 듯이 좍 들어와요. 우리 딸이 연극을 공부하다가 사위를 만난 거야. 딸아이가 마누라한테 ‘연극 하는 사람한테 시집 간다’ 그러니까 마누라가 한심해 가지고 말이지. 내 한 번 그놈에게 물어봤다. ‘그거(연극 연출) 얼마나 받나?’ 잘하면 한 건당 1백만원 받는대. 조금 뭐하면 50만원도 받는대. 동호인이 하면 그건 못 받고. 간혹 무용 연출을 하면 한 2백만원 받는대. 내가 그걸 전부 계산해봤지. 6백50만원이 되는데 그걸 12로 나누면 얼마야?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야. 야! 참 한심하더라고. 하지만 자기들 좋다는 걸 어떡합니까? 그래서 ‘여보! 요새 세상에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돈은 못 벌어도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 되지’ 그랬죠.”

딸 바보 손학규 고문, 투병 중인 사위에게 든든한 언덕이 되다
손 고문은 인터뷰 때마다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망설임 없이 “맏딸이 태어났을 때”라고 답하곤 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손 고문과 이화여대 약대 출신인 부인 이윤영 씨는 대학시절 만나 7년간 열애 끝에 1974년 결혼했다. 하지만 당시 손 고문은 민주화운동을 하느라 수배와 도피를 반복했고, 신혼생활을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 중에 태어난 딸이니 애틋함이 더할 수밖에 없다. 수배 중 딸의 얼굴이 못 견디게 보고 싶을 땐 친구들이 손 고문의 아내와 연락해 약속 장소를 잡아줬다. 그러면 손 고문은 변장을 하고 나가 딸을 만나곤 했다고 한다.
그가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 부인 이윤영 씨가 약국을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손 고문은 종종 자신을 ‘등처가’라고 표현하곤 했다. 아내에게 생계를 맡긴 미안함이 담긴 말이다. 그가 가난한 연극인을 기꺼이 사윗감으로 맞은 데는 그 자신이 오랫동안 경제력이 없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딸이 좋아하는 사람을 내친다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대선 출마 선언한 손학규, 뇌종양 투병 사위 향한 애틋한 사랑

1 손학규 상임고문이 수배 중이던 1976년 어린이대공원에서 맏딸 원정 양을 만나 우유를 먹여 주고 있다. 2 198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하던 시절 가족과 함께. 3 2004년 맏딸 결혼식에서 손을 잡고 들어가며 눈물을 훔치는 손 고문.



손 고문의 둘째 딸 원평(33) 씨는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2005년 제4회 미장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제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한 유망주다. 하지만 손 고문의 딸들은 자신이 ‘누구 딸’이라는 이야기를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이름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손 고문도 마찬가지. 그는 지난해 원평 씨 결혼식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렀다. 둘째 사위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손 고문은 딸, 사위들과 종종 포장마차에서 예술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인다. 손 고문이 연극에 조예가 깊은 덕에 대화가 더 잘 통한다. 그는 경기고 시절 밴드부와 연극부에서 활동했고 그런 경험을 살려 경기도지사와 국회의원 시절 여러 편의 연극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맏사위 김동현 씨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을 때도 손 고문은 딸 부부에게 든든한 언덕이 돼주었다. 손 고문 자신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님(2011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시 재산 신고액 1억8천8백여 만원)에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대권 도전 출마를 선언하던 날, 조용히 ‘그을린 사랑’ 공연장을 찾은 것도 대권에 도전하는 공인이 아닌 아버지로서 그리고 장인으로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딸과 사위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였다.
손학규의 새로운 저서 ‘저녁이 있는 삶’(폴리테이아) 출간 기념회가 열리던 7월 5일 김동현 연출가와 전화통화를 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그는 “장인어른께 감사한 건 사실이지만 (손학규 고문의 사위로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했다. 손원정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쪼록 김동현 연출가의 빠른 회복을, 그리고 다시 좋은 작품으로 그를 만날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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