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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꽃, 아네모네가 우리 집 마당에 피었습니다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 | 유디트

입력 2012.08.08 11:48:00

아버지의 꽃, 아네모네가 우리 집 마당에 피었습니다


나의 고향은 독일 괴팅겐(Gottingen)이다. 괴팅겐은 작은 도시지만 크고 오래된 괴팅겐대학교가 있다. 괴팅겐 시내에는 2백50년 전 이 학교에서 만든 식물원이 있다. 식물원은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과 시내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는 시내에 가실 때 빠른 자전거 대신 식물원을 거쳐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식물원은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온 꽃, 관목, 허브 등이 가득 있다. 참 예쁜 공원이라 고향 사람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나도 괴팅겐에 갈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거의 매일 식물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다양한 꽃을 구경한다. 식물원의 꽃들에 대해 거의 알고 있는 아버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꽃구경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산책길 바로 옆에 피어 있는 꽃 하나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꽃이 산들바람에 맞춰 즐겁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무슨 꽃이냐고 물으니“가을 아네모네인데 실은 여름에 피기 시작하지”라고 하셨다.

이 아네모네가 올여름 강원도 산골, 나의 꽃밭에서도 피었다. 바로 며칠 전에 우리 집 꽃밭에서 아네모네 봉오리를 발견했다. 며칠 안에 꽃이 활짝 필 것이다. 아~ 아네모네가 피길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다.

나는 강원도 산속으로 이사 오자마자 바로 마당에 꽃을 심고 정원을 만들었다. 당연히 아네모네도 심고 싶었다. 그러나 아네모네를 한국에서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꽃가게 여러 곳을 방문했지만, 가을 아네모네를 아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에 가을 아네모네 씨앗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즉시 씨앗을 주문했고 좋은 땅을 골라 씨앗을 뿌렸다. 첫해 봄에는 아주 자그마한 잎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일 년 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네모네가 조금 더 크게 자랐지만, 여전히 꽃은 피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꽃봉오리가 올라왔다. 드디어 나의 아네모네 꽃을 대한민국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네모네는 새로운 환경에 충분히 익숙해져서 마침내 꽃을 피우기로 결심한 것 같다.


아버지의 꽃, 아네모네가 우리 집 마당에 피었습니다




아네모네의 망설이기, 나는 이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한국에 와서 오랫동안 망설였다. 낯선 나라의 환경에 익숙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나는 계속 망설이기만 했다. 다행히 강원도 산속으로 이사 온 후에야 망설임을 그만둘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머물 곳을 결정했다. 나는 힘을 되찾았고 서서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한국에 살면서 가을 아네모네는 ‘나의 꽃’이 됐다. 가을 아네모네는 나와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아네모네는 ‘아버지의 꽃’이기도 하다. 가을 아네모네가 ‘아버지의 꽃’이 된 까닭은 단지 아버지와 함께 산책하다 알게 된 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네모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꽃을 피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독일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지켜본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가을 아네모네는 ‘아버지의 꽃’이 된 것이다. 이 꽃을 볼 때마다 나는 지난 10년의 한국 생활을 회고하게 된다. 아네모네는 내가 한국 땅에 더 깊이 뿌리 내릴수록 ‘아버지의 꽃’으로 함께 뿌리 내릴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한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남편과 함께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간다고 말했을 때 기뻐하지 않으셨다. 무거운 표정을 지으시며 차분히 생각해보라는 조언만 하셨다. 내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딱 한마디만 하셨다. 아버지는 그저 “정말 가야 돼? 음, 알았어”라고만 말하셨다. 어머니의 반응은 아버지의 조언과 정반대였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셨다. “오히려 한국으로 안 가면 후회할 수 있지. 만약 한국 생활이 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돌아와.” 어머니의 조언은 내 마음을 조금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는 나에게 필요한 조언과 함께 지지를 보내주는 반면, 아버지의 조언은 결정을 더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가 아버지 곁을 떠나 먼 나라로 가는 것을 싫어하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꽃, 아네모네가 우리 집 마당에 피었습니다


아버지의 반응을 이해하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낯선 나라에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어머니와 전혀 다르게 반응하셨다. 어머니에게 전화 걸어 한국에서 사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외국에서 사는 것 힘들지? 한국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생하지 말고 독일로 돌아와! ”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조언은 또다시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반면 아버지는 나의 고생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독일로 돌아오라”는 말 대신 “유디트, 아직도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지?”라고 물으셨다.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 네게 제일 중요해. 불평하지 말고 한국 생활이 힘들어도 한국말을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해. 한국에서 살고 싶으면 한국 사람이 돼야 하는 것 아니니?”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충고를 들었을 때 나는 기분이 조금 나빴다. 내가 원하는 말을 아버지가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버지의 사고방식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버지도 내가 독일로 돌아오는 것을 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뒤로 감추고 나의 상황을 살피셨다. 아버지는 내가 한국에서 앞으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주셨다. 외국에서 잘 살고 싶으면 그 나라의 사는 방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셨다. 언어, 일상생활, 음식 등 모든 것이 낯설더라도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내가 독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그런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내게 일깨워주셨다.

한국으로 온 지 1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안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려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생활방식을 포기해야 한다. 낯선 문화에 자신을 양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외국에서 살 수 있다. 지나간 어려운 시절을 뒤돌아볼 때마다 아버지의 조언이 정말로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네모네 봉오리를 보면서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되새기고. 아버지의 조언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네모네를 볼 때마다 나는 고마운 아버지 얼굴을 본다. 내가 이곳 강원도 산골짜기에 핀 아네모네 봉오리를 지켜보는 바로 이 순간, 아버지도 독일 고향에서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아네모네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면 나는 행복해진다. 외롭지 않게 된다. 아네모네를 바라보면 먼 독일에 있는 아버지가 당장 내 옆으로 날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행복해진다. 지금까지는 힘들어했지만 결국 꽃을 피우며 적응한 아네모네를 볼 때마다 나를 멀리서 후원해주시는 아버지가 있다는 생각에 외롭지 않다.

아버지의 꽃, 아네모네가 우리 집 마당에 피었습니다

1 괴팅겐 식물원을 즐겨찾는 아버지. 2 아버지는 내가 꽃구경을 마칠 때까지 벤치에 앉아 기다려 주신다.



아버지의 꽃, 아네모네가 우리 집 마당에 피었습니다


유디트(41) 씨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러스트 | 한은선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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