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금요일 오후였다. 한가로운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장실로 갔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교장실에는 작은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책상 뒤에는 책에 대한 신문 기사, 칼럼, 강연 자료가 잔뜩 붙어 있었다.
“아이들 책 읽는 모습부터 보시죠.”
서울 마포구 아현동 소의초등학교 심영면(48) 교장을 따라 도서실로 갔다. 계단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벽화가 시원하게 그려져 있다. 널찍하고 시원한 도서실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심 교장은 아이들 옆으로 가더니 책 한 권을 술술 읽어준다. 아이들이 귀를 쫑긋하며 듣는다.
소의초교는 4학년이 1학년에게, 5학년이 2학년에게, 6학년이 3학년에게 책을 읽어준다. 여기에 교사와 학부모도 동참한다.
“같은 반에서 공부해도 독서 수준이나 흥미도는 모두 다릅니다. 처음에 읽어주면 집중하는 아이들이 절반이나 될까요? 하지만 점점 몰입도가 높아져요. 한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즐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책 많이 읽었는데 공부 못 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배경 지식이 튼튼하고 책을 독파하는 집중력과 성실성이 있는데 왜 못하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그런데 수학, 영어에 악기, 운동까지 배우다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부모들은 하소연한다.
“학교 공부로 충분합니다. 학원은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초등학교에서는 별 필요가 없습니다.”
심 교장은 학교 수업과 약간의 복습으로 아이가 90점대 점수를 받으면 매우 우수한 학생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머지 10점을 가지고 등수를 매기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라고.
“10점의 격차를 줄이려고 학원에 보내는데,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에 비춰보면 초등학교 때 10점 차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여유를 가져야죠.”
심 교장은 90점을 100점으로 끌어올리려는 기술적인 노력보다 100점을 넘어서는 90점을 만들어주기 위해 부모는 아이에게 책을 읽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뿐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두 딸 지연(18), 혜연(13) 양도 학원에 보내지 않고 책을 읽고 뛰어놀게 했다.
두 딸이 확인시켜준 독서의 힘
지연 양의 독서 능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방송국 독서 퀴즈 프로그램 우승으로 검증됐다.
“한국사 시리즈를 쭉 읽더니 초등학교 6학년 때 별다른 준비 없이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4급을 통과했어요. 4학년 때 ‘해리포터’ 한국판을 열심히 읽더니 영어를 잘 못하면서 영문판도 사달라는 거예요. 원작에 대한 욕구가 있었나 봐요.”
초등 시절 지연 양은 문자 중독처럼 한국사를 독파한 후 중국사, 러시아사, 일본사, 프랑스사 등을 잇달아 독파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매일 한 권씩 책을 읽었다. 독서의 양이나 질에서 지연 양을 따라갈 친구는 없을 듯하다.
“하하하. 공부요? 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내공이 나오고 있어요.”
공부도 기술이다. 전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연 양은 독서하는 것처럼 그냥 좋아서 열심히 공부했다. 1등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건 한참 후에 깨달았다.
“책 읽듯이 공부하니 구멍이 생기더군요. 그걸 깨달은 후 방법을 약간 바꿨습니다. 문제집을 풀고 유형을 분석했어요.”
현재 고교 2학년인 지연 양은 얼마 전 모의고사에서 수학 2등급을 제외하고는 모두 1등급을 받았다.
“공부 방법을 수정했을 뿐인데 성적이 빠른 속도로 올랐어요. 모두 독서의 힘입니다. 사회탐구, 과학탐구는 별 공부 없어도 1등급 문제없더라고요.”
심 교장은 독서가 스펙도 만들어준다고 귀띔했다.
“대학 입시에서 수시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생들도 각종 스펙 만들기로 바쁘더라고요. 지연이는 그냥 교내 독후감 대회에 자주 나가요.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교내 독후감 대회에서 최우수상은 보통 3학년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얼마 전 지연 양이 대하소설 독후감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받아왔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10권이 넘는 대하소설에 도전하는 독서 내공을 가진 학생이 얼마나 될까. 그걸 독후감으로 제출하는 학생이 있을까.
“독서 능력이 지연이에게 준 선물이자 행운인 셈이죠.”
독서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심영면 교장은 교사나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아이의 몰입도가 높다고 말한다.
심 교장은 직접 학생들에게 자주 책을 읽어준다. 고학년 교실에 들어갈 때는 책 4권을 들고 들어간다. ‘말놀이 동시집’ ‘수호의 하얀말’ ‘마지막 강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그것. 쉽게도 보이고 어렵게도 보이는 책들이다. 그림, 동시, 동화, 소설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 한 시간 수업 안에 모두 읽어 줄 수 있을까.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구절만 읽어주고 책 소개를 마칩니다. 다 읽어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책과 첫 만남을 시켜주는 것이죠.”
심 교장이 책을 읽어주고 나면 아이들에게 이 4권의 책은 ‘아는 책’이 된다. 그다음에 아이들이 다시 이 책들을 읽든 읽지 않든 그건 선택 사항인 것이다.
“사과가 맛있다고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조각 먹어보라고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은 아시죠?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당장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세요.”
심 교장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독서 강연도 자주 한다. 그가 늘 강연에 앞서 묻는 질문.
“독서는 생각보다 ○○○○다! ”
학부모들은 “쉽다” “어렵다” “다양하다” 등의 많은 답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심 교장이 원하는 대답은 ‘만만치 않다’다.
그는 독서 능력이 후천적인 훈련과 연습을 통해 길러진다고 강조했다. 많이 안 읽으면 읽을 수 없다고. 그래서 오늘 읽은 책이 자신의 미래고, 내일의 토대라고 말했다.
“독서는 유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만이 빨리 읽을 수 있고, 반복해 읽을 수 있고, 꾸준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소의초교 학생들의 과제물은 ‘독서 릴레이’다. 매일 읽은 책 페이지 수에 따라 거리를 이동, 전국을 일주할 수 있도록 한 가상의 프로그램. 독서 마일리지와 비슷한 것으로 아이들은 여행이라는 테마와 연결시켜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심 교장은 방학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이 시기를 절대 놓치지 말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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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도서 | 초등 독서의 모든 것(꿈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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