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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IN HOKKAIDO

인간과 동물이 친구가 되는 ‘나브의 집’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글·사진 | 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입력 2012.08.06 17:22:00

카페 ‘나브의 집’을 둘러싼 숲에는 1백여 종의 새들이 찾아온다.
카페 주인이자 목공예가인 야마구치 씨는 예쁜 새집을 만들어 나무에 걸어주고 먹이를 주었다.
그렇게 하기를 2년, 이젠 새들뿐만 아니라 숲 속 동물들이 친구처럼 야마구치 씨네를 찾아온다.
인간과 동물이 친구가 되는 ‘나브의 집’

시베쓰에 있는 목장 ‘양과 구름의 언덕’.



한국인들이 홋카이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매년 겨울 낭만적인 눈축제가 열리는 삿포로와 운하 주변의 창고를 운치 있는 카페로 개조해 유명해진 오타루(小樽)일 것이다. 그리고 일반 가정까지 온천수가 들어갈 만큼 온천이 널려 있는 노보리베쓰(登別), 가장 홋카이도다운 자연환경을 만끽할 수 있는 비에이(美瑛), 여름이면 라벤더 꽃이 절정을 이루는 후라노(富良野)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아사히카와(旭川) 시로부터 가까운 비에이와 후라노 지역은 일본인들조차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만큼 독특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우리 가족도 홋카이도로 이주해 처음 이 지역을 방문한 뒤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돼 직장까지 차로 2시간 이상 걸리는 이곳에 정착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곳의 여름은 섬나라 일본의 후텁지근한 여름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시원해서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방영된 장근석과 소녀시대 윤아 주연의 드라마 ‘사랑비’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최근 아예 이곳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의 슬픈 역사 새겨진 슈마리나이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비에이초(美瑛町)다. 비에이초는 홋카이도 중앙에 있는 아사히카와와 후라노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 아름다운 자연과 목가적인 풍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여행 때마다 항상 그렇듯이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몇 차례 외도를 했다. 먼저 나요로에서 아사히카와로 가는 길에 슈마리나이(朱鞠內湖) 호수를 찾았다. 슈마리나이는 도쿄돔 30개가 들어갈 만큼 큰 인공 호수로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다. 대도시 주변이라면 이맘때쯤 여름 피서객들로 북적거릴 테지만, 우리 가족이 찾아간 날 호수에는 낚시꾼 몇 명이 눈에 띌 뿐 적막하리만큼 한가로웠다. 메밀 산지인 이곳은 1978년 2월 17일 기온이 영하 41.2℃로 떨어져 일본 최저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슈마리나이 호수의 심연에는 한국인으로서 가슴 숙연해지는 역사가 잠겨 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강제징용으로 이곳에 끌려와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눈 속에서 쓰러져 죽었다. 최근에야 징용 희생자들의 유골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슬픈 역사를 알고 난 후 이곳을 찾을 때마다 아름다움에 마냥 도취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숙연한 마음을 뒤로하고 숲길을 달려 시베쓰(士別) 시에 접어들었다. 그곳에는 광활한 대지에서 양들을 방목하는 목장‘양과 구름의 언덕’이 있어서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이 목장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언덕 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칭기즈 칸 요리(양고기)를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의 하나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비에이초를 향해 고속도로를 탔다. 고속도로라 해도 한국에서처럼 차가 많아서 길 위에서 지체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너무 한산해서 심심할 정도다. 몇 년 전 도쿄에 사는 지인이 찾아와 이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왔는데 그가 볼멘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 시간을 달려도 차 몇 대가 안 달리는 이 고속도로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내 세금이 쓰인다니 아까워 죽겠어.”
이곳에서는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반 도로도 대부분 이렇게 한산해서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우리 가족 전용 도로’라고 큰소리를 치곤 한다. 어느새 비에이초에 들어섰다. 비에이초 동쪽으로는 홋카이도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대설산(大雪山)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대설산 입구 쪽에는 아오이케(靑池)가 있는데, 지명 그대로 코발트 빛과 에메랄드 빛을 발하는 연못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이제 우리의 진짜 목적지인 ‘나브의 집’을 찾아갈 차례다.

인간과 동물이 친구가 되는 ‘나브의 집’

1 이맘때면 온갖 꽃으로 뒤덮이는 후라노. 2 슈마리나이 호수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사람들. 3 비에이초에 있는 아오이케. 코발트 빛과 에메랄드 빛 연못으로 유명하다.



비에이 숲에 사는 야마구치 씨 부부와의 인연
비에이초에 들어서자마자 서쪽 편, 고즈넉한 언덕에 그림 같은 집이 서 있는데 이곳이 야마구치 유타카(山口裕) 씨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나브의 집’이다. 야마구치 씨는 자연 속에 파묻혀 목공예를 하는 평범한 예술가였지만 동물과 교감하는 그의 삶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어느새 유명 인사가 됐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연이 자신을 지금의 자연인으로 만들었을 뿐 자신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란다. 이곳에 와서 살다 보니 숲이 좋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온갖 동물들과 친구가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도 그가 “리~스” 하고 큰 소리로 부르자 다람쥐가 그의 손바닥까지 와서 경계심 없이 먹이를 먹었다. 동물들과 마음이 통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느냐고 묻자 2년 정도라고 한다. 야마구치 씨는 모든 동물들을 형제라 부르며 개미조차 밟지 않으려 조심하던 성인 프란체스코를 연상케 했다. 또 소녀 같은 청순한 미소로 손님을 반기는 부인과 나란히 서면 부부가 아니라 오누이같이 빼닮았다.
‘나브의 집’을 둘러싼 숲에는 연간 약 1백 종류의 새들이 찾아든다. 야마구치 씨는 조류도감을 펼쳐 보여주면서 열심히 그들의 모양과 노랫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주변의 풀과 나무, 꽃과 동물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그의 순수한 열정 앞에서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아사히카와 시내에 살던 야마구치 씨 부부가 인적이 드문 숲속으로 이주해온 이유는 단순했다. 야마구치 씨의 작업실이 주택가에 있어 소음 때문에 이웃 사람들의 불만을 산 것. 그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적한 곳을 찾다가 지금의 카페 자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야마구치 씨와 자연의 교감은 복잡한 도시와 메마른 인간관계가 준 선물 같은 것이었다.
야마구치 씨 부부는 15년 전 애완견 샘을 데리고 이사를 하면서 지은 지 50년이 넘은 건물을 개축해 살림집과 작업실로 써왔다. 2006년에는 새로 카페를 열면서 ‘나브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리처드 포드의 소설 ‘Quest for the Faradawn’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 ‘나브(Nab)’에서 따왔다고 한다. 소설은 어느 겨울 눈 쌓인 숲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오소리 부부와 다른 동물들이 데려다 키우면서 친구란 뜻의 ‘나브’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시작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이 소설을 읽은 야마구치 부인의 제안으로 카페는 ‘나브의 집’이 됐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동경할 때는 이미 자신 안에 그런 요소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브 소년 같은 심성을 지닌 야마구치 씨 부부가 이 소설에 빠져든 이유를 이렇게 짐작해본다.
우리 가족은 나요로에 ‘카페 닛싱’을 열기 전까지 한 달에 두서너 차례 비에이를 방문할 만큼 이곳을 사랑했다. 그렇게 비에이 언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나브의 집에 들르면서 야마구치 씨 부부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 나브의 집에 들어섰을 때 받은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나브의 집을 처음 찾아간 손님들은 두 번 놀란다. 먼저 카페 주변 나무마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으로 칠한 새집이 앙증맞게 걸려 있는 동화 같은 분위기에 놀라고, 다음에는 이들을 맞이하는 야마구치 씨 부부의 온화한 인상에 놀란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평안한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나 역시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부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카페에서는 야마구치 씨가 만든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일상용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무 테이블과 의자, 신문과 잡지 거치대, 벽에 걸린 액자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지난 호에 소개한 홋카이도 출신 조각가 스나자와 빗키의 작품과는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빗키는 작품을 만들면서 나무가 지닌 본래 모양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면 야마구치 씨는 마음이 가는 대로 대담하게 새겨나간다. 어쩌면 그것이 나무가 원하는 궁극적인 아름다움 혹은 멋일지도 모른다. 나무를 대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나무가 지닌 아름다움을 형상화하려는 두 예술가의 뜻은 일치했다.



인간과 동물이 친구가 되는 ‘나브의 집’

1 야마구치 씨가 숲 속 새들을 위해 만든 게스트하우스. 2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아주는 야마구치 유타카 씨 부부. 3 야마구치 씨의 작업실(왼쪽)과 카페‘나브의 집’.



새집은 숲 속 친구들을 맞이하는 게스트하우스
숲 속에 자리 잡은 야마구치 씨의 작업장과 카페, 거기에 걸려 있는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모든 것이 닮은 듯하나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 마치 인간의 한 뼘 남짓한 얼굴이 수십억의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듯. 손도끼로 쪼개 만든 어린아이의 피부결과 같은 목조각과 함께, 강렬한 삼원색으로 채색한 새집들이 야마구치 씨의 작품 세계를 특징 짓는다.
야마구치 씨는 새집과 새 둥지는 다른 의미라고 말한다. 둥지(巢箱)는 해충을 잡아먹는 새를 번식시키는 상자이고, 새집은 날개가 있는 친구를 맞아들이기 위한 게스트하우스 같은 것이란다. 그가 집 주변 숲 속에 수많은 새집을 만들어 걸어놓은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숲 속 새들에게 그는 친구인 것이다. 숲 속 새들은 그가 지어준 집에 들어와 편안히 쉰다.
며칠 전 야마구치 씨 부부가 형형색색의 새집을 선물로 들고 우리의 카페 닛싱을 찾아왔다. 곧바로 새집을 포도나무 넝쿨 속에 매달았더니 제라늄이 만개한 무인역을 배경으로 제자리인 듯 어울린다. 새벽녘 창밖을 보니 평소보다 많은 새들이 새로 마련된 그들의 맨션을 구경하느라 분주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연구실 밖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빨간 지붕이 더욱 강렬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봄날 카페 유리창을 부리로 쪼아대던 아기 새가 어느새 어미 새가 돼 빨간 지붕의 새집을 찾아왔을 것만 같다. 빨리 달려가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인간과 동물이 친구가 되는 ‘나브의 집’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는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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