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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 사용설명서 아홉 번째 | 죽기 전에 꼭 한 번

“장님이 눈 뜬 기분이 이런 걸까요”

50대에 초·중·고 검정고시 합격 유복희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입력 2012.07.17 14:12:00

1993년부터 경기도 평택에서 검정고시반을 운영해온 평택시민아카데미 상록수야간학교.
이곳에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 중에는 쉰이 넘어서 초·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유복희 씨도 있었다.
“장님이 눈 뜬 기분이 이런 걸까요”


‘손가락 빨던 아이.’
고향 사람들은 유복희(56) 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유씨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새어머니가 동생 셋을 낳기 전까지 1남5녀 중 막내로 귀여움을 받았지만 어릴 적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한 게 늘 한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동창회에서 고향 친구들과 재회했지만 유씨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행복한 삶이었다. 성실한 남편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풍족하진 않아도 낮은 곳에서 열심히 살았다. 요구르트와 신문 배달을 하고 가사도우미로 일해 두 아들을 반듯하게 키웠다. 그러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남편이 간경화 말기로 6개월밖에 못 산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충격을 받아 술이 늘더니 끝내 병을 얻었다.
“남편이 직장을 잃고 몸이 아파 병원을 들락거렸는데 결국 시한부 선고를 받았죠. 큰아들이 그때 아직 학생이었는데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을 떼어주겠다고 했어요. 그 덕분에 남편은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죠.”
그가 사는 송탄에는 미군 부대가 많았다. 유씨는 남편의 병수발을 들며 외국인 가정의 가사도우미로 일했다. 어머니의 공부에 대한 열망을 안 아들들은 언제든 다시 공부를 시작하길 바랐지만, 유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외국인 가정에서 일할 때 영어를 못하니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고 힘들었죠. 그래서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파트를 오가며 게시판에 붙어 있는 영어 공부 전단지를 봐도 일하느라 일정이 안 맞아 못하던 차에 알게 된 곳이 상록수야간학교예요.”
2008년 1월 유씨는 평택시민아카데미 부설 상록수야간학교(교장 이한칠)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한 것. 매일 세 시간씩 공부하고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에 남아 복습했다. 작은아들이 학생일 때도 안 샀던 책상을 사서 집에 들여놓고 공부 삼매경에 빠졌다. 2008년 8월, 초등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해갈의 순간이었다.
“너무 좋았어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죠. 똑같이 보던 사물인데도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다르게 보였어요. 자신감도 얻었고요.”
내친김에 도전한 중학교 검정고시. 중학교 과정은 조금 더 어려웠다. 두 번 만에 합격.
“선생님들이 ‘돌아오기 어려웠을 텐데 힘든 결정을 하셨다’고 했죠. 중학교 검정고시는 처음엔 점수가 모자라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요즘 젊은 아이들 말로 ‘빡세게’ 공부해서 재도전했죠. 3백60점이 커트라인이었는데 3백61점으로 아슬아슬하게 합격해서 배로 기뻤죠.”
그렇게 공부해 지난해 2009년 8월,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봤다. 유씨의 합격 비결은 복습 또 복습이었다. 수업을 들을 때는 아는 것 같아도 막상 돌아서면 어렵더라고. 안 외워지는 내용은 달력이든 광고지 뒷면이든 가리지 않고 쓰면서 암기했다. 자꾸 틀리는 문제는 갖고 다니며 공부했다. 친어머니가 낳은 6남매 중 고등학교 과정까지 밟은 건 유씨가 유일하다. 그는 “언니 중 한 명이 ‘우리 형제 중에 네가 제일 성공했다’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장님이 눈 뜬 기분이 이런 걸까요”

유복희 씨의 초·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증서(위). 유씨는 앞으로는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더 배우고 싶다고 한다.



컴퓨터, 요리, 드럼… 배울 게 너무 많아서 행복
요즘도 유씨의 학습열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최근에는 컴퓨터에 재미를 붙였다. 올여름에는 요리도 배울 생각이다.
“컴퓨터도 ‘왕기초’ 단계는 벗어났어요. 타자 연습을 하고 있죠. 조만간 ‘한글2007’이랑 인터넷 활용법을 배우려고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요. 하나 배우면 또 도전할 게 생겨요. 저녁 때 상록수야간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어요. 음식에 쓸 재료를 살 때마다 나를 발전시키면서 남을 즐겁게 해줄 일이 무얼까 생각했죠. 그러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입학에 도전할 생각은 없냐고 묻자 그는 “대학 가기 전에 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했다.
“그전에 실생활에서 필요한 걸 많이 배우고 싶어요. 18세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어요. 한글은 교회에서 찬양하며 자연스럽게 터득했죠. 제가 다니는 교회에 드럼이 있거든요. 원래 다른 분이 연주하던 건데 그분이 떠나고 지금은 먼지만 쌓여 있어요. 수강료가 비싸서 못 배우던 차에 3개월에 6만원으로 드럼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배워서 할까 싶어요(웃음).”
배우지 못해서 서러웠던 아이는 이제 배울 게 많아 행복한 여인이 됐다.
“공부하다 힘들어 할 때 작은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처음에는 뇌를 쓰지 않아서 어렵지만, 그 시기를 벗어나면 입력이 잘될 거라며 계속하면 된다고 격려해줬어요. 뭐든 처음에는 힘들지만 고비를 이겨내면 제 것이 되는 것 같아요. 주변에 감사한 분이 많아요. 공부를 가르쳐주신 분들, 남편이 아플 때 도와준 분들, 무엇보다 목숨을 걸고 아버지에게 간을 떼어준 큰아들과 늘 착한 작은아들, 성실한 남편까지…. 저는 여러모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여성동아 2012년 7월 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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