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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5백년 전 신라 토우의 꼬리 없는 개 ‘동경이’의 부활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사)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제공

입력 2012.07.04 14:57:00

진도의 진돗개(천연기념물 제53호), 경산의 삽살개(천연기념물 제368호)에 이어 세 번째로 우리나라 토종견 경주의 ‘동경이’가 천연기념물이 된다. ‘삼국사기’에도 등장하는 동경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1천5백년 전 신라 토우의 꼬리 없는 개 ‘동경이’의 부활

1 동경이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일등공신 최석규 교수와 동경이.



쫑긋 솟은 귀, 영민해 보이는 두 눈, 쭉 뻗은 네 다리. 얼핏 “진돗개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몸집은 그보다 작고 더 날렵하다. 털이 하얀색, 황토색, 검은색과 섞인 것까지 다양해서 이것만으로는 금방 특징을 잡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던 눈은 꼬리에서 딱 멈춘다. 꼬리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노루처럼 꼬리가 엉덩이에 붙어 있다시피 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뭉뚝한 꼬리는 길어야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이 개는 ‘동경(東京)이’ ‘경주개’ ‘댕견’이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동경은 경주의 옛 이름이다.
1930년대 일제는 이 독특한 생김새의 개에 대해 꼬리가 없어 불길한 짐승이라고 소문을 퍼트려 모조리 잡아들였다. 동경이는 진돗개, 삽살개와 함께 보이는 대로 포획당해 가죽이 벗겨졌다. 당시 총독부 산하 조선원피주식회사는 1년에 많게는 50만 장까지 견피를 수거했다. 광복 이후에도 불길한 개라는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1천 년 넘게 경북 경주 일대를 뛰놀던 동경이는 1백여 년에 만에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일제시대에 ‘재수 없는 개’로 몰살
200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개최한 ‘신라 토우전’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전시된 유물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최석규 교수(55·동국대 사회교육원 객원교수)였다. 5~6세기경 만들어진 토기에 붙은 개의 형상이 의아했다. 토우가 부서진 것도 아닌데 유독 개꼬리 부분이 뭉툭했다. 당시 경주 서라벌대 애완동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대학 애견테마파크에서 실습용으로 키우던 개들 중 꼬리 짧은 개를 사육사들이 토종견이라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괄시받던 꼬리 없던 개가 혹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역사 기록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경이에 관한 옛 문헌이 예상 외로 많았던 것이다. 자료를 토대로 ‘토우전’에서 봤던 그 개가 신라시대부터 이 땅에 살아온 토종개임을 확신했다. 최 교수는 동경이를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에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같은 학과에 재직 중이던 성기창(질병관리), 이은우(유전학), 박순태(훈련) 교수가 뜻을 함께했다.
우선 동경이의 개체 수 확보가 시급했다. 떠돌이 개처럼 살다 보니 순수 혈통의 동경이를 찾기 어려웠다. 2006년 최 교수는 경주시의 지원을 받아 각 농가에서 사육 중인 개 1백21마리를 모았다. 엑스레이 분석과 유전자 검사 등으로 잡종을 걸러낸 후 73마리를 대상으로 혈통 보존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서라벌대에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를 만들고 연구를 거듭해 그간 학계에 발표한 논문만 30여 편. 또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1차 혈통 고정화사업으로 동경이의 표준형이 정립됐다. 현재 등록된 최고령 동경이는 새터라는 이름을 가진 수컷으로 올해로 열한 살이다.
동경이는 키 44~49cm에 길이 49~52cm, 몸무게는 14~18kg 정도이며 크기로는 중형견에 속한다. 색상은 4종류로 백구, 흑구, 황구, 호구(호피 무늬처럼 노란색과 검은색 털이 섞여 있음)로 나뉜다. 눈은 동그랗고, 귀는 삼각형으로 쫑긋하게 앞으로 서 있으며 코는 보통 검은색을 띠지만 백구나 호구는 적갈색을 띠는 경우도 있다. 꼬리는 짧거나 아예 없는 것이 특징이다. 동물의 꼬리는 이동 시 균형을 잡는 기능을 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빨리 뛸 때 좌우로 움직이기 힘들다. 경주개동경이훈련학교의 박순태 교장은 “동경이가 꼬리가 없는 대신 뒷다리의 대퇴부가 잘 발달돼 있다. 그래서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이 없다”라고 말했다.

1천5백년 전 신라 토우의 꼬리 없는 개 ‘동경이’의 부활

2 동경이 황구와 백구. 3 쫑긋한 두 귀에 밋밋한 꼬리는 동경이의 트레이드마크다. 4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인터내셔널도그쇼에 출전한 동경이. 5 경주 황남동 출토 토기에 있는 동경이 토우(5~6세기 추정).6 꼬리가 없다고 수난을 당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 토종견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등록된 동경이는 최초 연구 시점으로부터 6대가 이어져 3백20마리에 이른다. 동경이는 교배부터 출산까지 철저히 관리된다. 보통의 개들이 생후 6개월 이후면 임신이 가능하지만 동경이의 경우 성견이 된 뒤 1년이 지나야 교배를 시키며, 가장 먼 핏줄의 동경이끼리 교배시켜 근친으로 인한 유전적 위험을 방지한다. 태어난 동경이는 마이크로칩 시술뿐 아니라 귀 끝에 고유번호를 문신으로 남겨 이중으로 관리된다. 동경이는 경주 양동민속마을과 일부 농가, 서라벌대 사육장,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사육장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경주시민을 대상으로 퍼피워킹(친화 훈련 목적으로 일반인에게 위탁 사육하는 제도)을 진행하고 있는데 경쟁률이 20대 1에 이를 만큼 치열하다.
동경이 보존을 위한 노력이 인정을 받아 드디어 2012년 5월 문화재청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에서는 예고 기간 동안 중간조사를 하고 그간 별 문제가 없으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다.



키울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개
따사로운 햇살 아래 개들이 신나게 바람을 가른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 경주시 북천 일대에서 열리는 ‘동경이 훈련의 날’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박순태 교장의 교육으로 시작된다. 경주 각지에서 온 동경이들은 주인 옆에서 ‘앉아’ ‘일어서’ 등의 명령에 반응하는 속도를 시합하는 등 단체 훈련을 받았다. 행사에서 만난 동경이 주인들은 한결같이 “키울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인의 말귀를 잘 알아들어 몇 번만 가르치면 바로 습득할 뿐 아니라 점잖은 성격이어서 다른 개들과 함께 있어도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인터내셔널도그쇼에서 동경이는 그 진가를 발휘했다. 동경이들이 몇 시간 동안이나 짖지 않고 차분히 있는 모습을 보고 독일에서 온 셰퍼드협회 회장이 “대단하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개인가?”라며 극찬할 정도였다. 박 교장은 동경이의 이런 성격과 아담한 체구 때문에 토종개 중에서는 가정에서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개라고 했다.
“요즘은 마당 있는 집이 드문데 동경이는 중형견이라 아파트에서도 키울 수 있습니다. 공동주택에서는 아무 때고 짖거나 사람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면 키우기 어렵죠. 개 훈련을 시킬 때도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동경이 훈련의 날’은 동경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잔칫날이다. 전에는 일면식도 없던 이들이 동경이를 분양받아 키우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자식 자랑하듯 동경이 자랑을 하죠. 다른 집에서는 어떻게 배우는지 유심히 살펴볼 기회도 돼요(웃음). 동경이 이야기에시간 가는 줄 몰라서 한 달에 한 번 이날만 기다린다니까요.”(김두호 씨)
개가 인간과 함께한 역사는 1만 8천년 전 빙하시대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개와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것. 버림받은 개에서 천연기념물이 된 동경이는 경주시민의 넓은 품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있다.

여성동아 2012년 7월 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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