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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와 보낸 하루

‘위풍당당’ 발표하고 유유자적 나들이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입력 2012.06.18 10:04:00

거침없는 입담과 해학의 소설가 성석제. 그가 팬들과 함께 유유자적 선유도공원을 걸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유쾌한 소풍에 동행한 기자는 그의 신록과 자전거 예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소설가 성석제와 보낸 하루


한국 문단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소설가 성석제(52). 그가 나무 해설가로 깜짝 변신했다. 5월 7일 문학동네가 주최한 독자와의 봄나들이 현장에서였다. 그가 9년 만에 발표한 장편 소설 ‘위풍당당’의 출간 기념 봄 소풍에 동행한 독자는 5명.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지방에서 올라온 열성 팬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 선유도공원. 일행이 다 모였는데 정작 주인공 성석제가 보이지 않는다. 출판사 담당자가 전화를 걸자 “자전거 타고 오는 중”이란다. 공원 내 선유정에서 그를 기다리며 빈둥거리는데 먼발치에서 작가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 자전거는 보이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오는 중.
“선유도공원은 자전거를 타고 오면 입장을 안 시켜줘요. 매번 거절당해서 그냥 가곤 했는데 이렇게 걸어서 들어오는 건 처음이네요(웃음).”
자전거는 입구에 세워놓고 난생처음 선유도공원에 들어온 작가와 팬들의 나들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일 나무 해설가로 깜짝 변신

소설가 성석제와 보낸 하루


“저는 제비꽃같이 작은 꽃이 좋아요. 갓 태어난 돼지 본 적 있어요? 저는 그만큼 예쁜 동물은 본 적이 없어요. 돼지도 작으면 예쁘구나 생각했죠. 꽃도 작으면 예뻐요. 이건 열매가 까매서 쥐똥나무라고 불려요.”
일일 자연 해설가가 된 성석제. 따로 설명이 붙어 있지 않았지만, 얼핏 보고도 어떤 나무인지 알아채고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독자가 “식물도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하자 “작가 수업 측면에서 식물을 공부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2005년에 평양에서 남북작가대회가 열렸어요. 남쪽에서 1백여 명, 북쪽에서 1백여 명이 모여서 회담을 하고 백두산 쪽으로 올라갔죠. 우리가 묵었던 호텔 로비에서 어릴 때 식물채집 하듯이 북한 식물 표본을 말려 싸구려 공책에 붙인 것을 팔더라고요. 우리 돈으로 5백원쯤? 나중에 보니까 다들 그걸 샀더라고요. 작가들이 식물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게 제일 먼저 동났죠.”
계속 걷다 보니 메타세쿼이아 길이 펼쳐졌다.
“이천에 작업실이 있을 때 메타세쿼이아를 많이 심었어요. 한 20~30그루쯤 심었나? ‘로빈슨 크루소’에 보면 나무를 심었는데 무성하게 자라 울타리가 되는 바람에 사다리를 놓고 드나들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걸 좀 본받으려고. 굉장히 빨리 자라지요. 한 5년 자라니까 너무 커져서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나무가 넘어지면 집을 덮칠 것 같았어요.”
“메타세쿼이아는 담양이 유명하죠?”(독자)
“예, 맞아요. 잘 자라는 나무라서 많을 거예요. 지금 보니까 (선유도공원에) 잘 자라는 나무들을 심어놨네요.”
숲길은 모두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늘을 채운 초록빛에 감탄하며 걷는 동안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한 독자가 “여기 정말 예뻐요,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라고 제안했다. 그는 흔쾌히 응했다. 이날만큼은 도시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소설가 성석제와 보낸 하루


“이건 검다는 뜻에서 현사시나무라고 합니다. 가지도 잎도 많아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부들부들 떨어요. 보시면 알겠지만 별로 단단하지 않아요. 집에서 이 나무 묘목을 키운 적이 있어요. 묘목 끝에 못을 박아 썰매 스틱으로 쓸 생각을 했죠. 그런데 나무가 물러서 못이 자꾸 안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어쨌든 한 그루를 베서 스틱으로 썼는데 어른들이 ‘그게 다 돈인데 무슨 짓을 했느냐’고 했죠. 그래서 ‘스케이트를 사주면 이런 짓을 안 하겠다’고 했어요.”
유년 시절 성석제는 꽤 개구쟁이였던 듯하다.
“미루나무는 원래 우리 어릴 때는 미국에서 온 버드나무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미류나무라고 불렀어요. 이 나무에 송충이가 되게 많거든요. 그게 엄청 커요. 지나가다가 머리 위에 떨어지면 머리가 울릴 정도였죠. 초등학교 때 그걸 옷에다 집어넣는 장난을 많이 쳤었죠. 특히 좋아하는 여학생들한테. 하하.”
“기억력이 좋으신가 봐요. 메모 같은 건 안 하시나요?”(독자)
“기억력은 별로고, 메모에 의지하죠. 소설에도 그런 대목을 썼는데, 애벌레를 옷에 집어넣고 그걸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으니까 ‘네 옷에 들어갔다’고 얘기를 해줬거든요. 그랬더니 한 번은 상대가 기절해버렸어요.”
“어떡해!”(독자)
“그래서 더 좋았지요. 하하.”

느릿하지만 구수한 말투의 이야기꾼
길을 가다 그는 “나무 팻말이 잘못 붙어 있다”고 바로잡기도 했다. 회화나무 앞에서도 소설처럼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잎이 아까시나무처럼 가지런하게 나란히 나죠. 이것도 콩과 식물이에요. 나중에 콩처럼 까만 열매가 달려요. 가지가 지저분하고 멋대로 뻗어 있잖아요. 옛날 선비들의 제멋대로인 사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상징한다고 해서 선비가 있는 집에 심었대요. 장원급제한 집에 기념으로 심기도 했고요. 대표적인 곳이 강릉 선교장인데 뒤꼍에 아주 큰 나무들이 있어요. 일산에선 가로수로도 많이 쓰여요. 일산엔 선비들이 많이 사는 모양이죠?(웃음) 뿌리에 박테리아가 있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줘서 환경적으로도 중요한 나무죠. 선비들과는 다르게.”
한 독자가 “이번 소설에서도 거름 만드는 장면이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소설 ‘위풍당당’은 궁벽한 강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접수하러 간 전국구 조직폭력배와 일전을 벌이는 내용을 다뤘다. 독자가 말한 건 조직폭력배들이 마을 사람들이 모아둔 분뇨에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시골 사람들이라고 얕잡아봤다가 예상치 못한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하는 조폭,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한마음으로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마을 사람들. 작품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작가 특유의 위트가 느껴진다.
“거름을 생산하려면 인이 필요한데 식물에서는 잘 안 나와요.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 뼈나 내장에 많죠. 친구가 허브 농사를 짓는데, 물려받은 땅이 3만 평 정도 있었어요. 다른 식구가 그걸 팔아먹으려고 덤프트럭으로 흙을 긁어다 팔아버렸어요. 낮아진 땅만 남았는데 표층을 싹 걷어가서 거름기가 하나도 없어 작물을 키울 수가 없었죠. 고민하다가 거름을 뿌려야겠다며 인근 축사를 헤매더라고요. 거름이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까 맛을 보면 안다네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동시에 ‘으웩’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맛을 봐서 짭짤하면 못 쓴대요. 염분이 있으면 삼투압 때문에 식물에서 물이 빠져나와 말라버려요. 치명적이거든요. 축사에서 소나 돼지의 배설물에 톱밥을 섞어 거름을 만들죠. 우리나라는 나무가 부족해서 목재를 수입하는데 나무가 썩지 말라고 인천 앞바다에 오랫동안 띄워둡니다. 그걸 건져서 켠 톱밥을 쓰니 짤 수밖에 없죠.”
‘거름’이라는 한 단어가 나왔을 뿐인데도 이야기는 술술 이어졌다. 모두가 궁금해하며 뒷이야기를 기다렸다. 소설을 읽으며 다음 장이 궁금해지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느릿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친구가 좋은 거름을 찾아낸 건 파리 덕분이었다”고 했다.
“어느 축사 문을 열었는데 껌껌하더랍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갑자기 환해졌대요. 수많은 파리 떼가 거름 덩이에 앉아 있다가 한꺼번에 날아오른 거죠. 그건 그 거름이 생명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거거든요. 그걸 구해서 땅에 뿌렸죠. 그 땅에서 나온 캐모마일 같은 걸 제가 매년 먹고 있습니다.”

“달밤에 술 마시고 자전거 타본 적 있나”

소설가 성석제와 보낸 하루

소설가 성석제(맨 오른쪽)가 5월 7일 팬들과 선유도공원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선유도공원 순회를 마친 독자들은 선유정에서 작가의 사인을 받고 퀴즈를 맞히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행사를 진행한 출판사 관계자는 소설 ‘위풍당당’을 읽으면 다 맞힐 수 있는 문제라며 “책을 펼쳐보고 커닝해도 된다”고 귀띔했다. 열성 독자들은 문제가 나오자마자 바로 맞혀 작가를 감탄하게 했다. 성석제는 “팬들과의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라며 “마침 날도 선선하고 좋다”며 웃었다. 저녁에는 함께 막걸리를 한잔 걸치자고 했다. 가지고 온 자전거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그제야 생각난 듯 “음주 운전 할 건데, 안 됩니까?”라며 씩 웃었다.
“‘너도 어른이니까 술 마셔도 된다’라고 해서 마신 게 고등학교 졸업 직전, 본고사 치른 뒤였어요. 사촌형이랑 둘이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가서 생맥주에 메뚜기볶음 안주를 시켰죠. 그렇게 마시고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데 기분이 아주 좋은 거예요. 자전거 바퀴의 불을 밝히는 ‘윙윙’ 소리에 달이 따라오고 땅에 붙은 조그마한 내 그림자가 따라오는 느낌이 기가 막혔어요. 환상적이었죠. 그 첫 경험이 깊이 각인돼서 음주 자전거를 자주 감행하게 되는데, 옛날 같은 느낌은 안 나더라고요.”
성석제의 고향은 경상북도 상주. 자전거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도 한 집에 자전거가 두 대 이상은 있었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전거는 인간이 만든 도구 중 가장 인간적인 도구 같다고.
“화석 연료도 쓰지 않고, 몸을 건강하게 해주고 차비를 절약하게 해주는 경제적인 물건이잖아요. 그래서 자전거를 좋아할 수밖에 없죠.”
2001년에는 인터넷에서 구입한 14만원짜리 자전거를 1만원 주고 개조했다. 바퀴를 탈착식으로 바꾸고 뒤에 짐 싣는 시렁을 달아서 장거리 투어링용으로 개조한 것. 그리고 이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상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내려갔다.
“길가에 익은 앵두를 따 먹은 기억이 나니까 아마도 이맘때였을 거예요. 죽을 뻔했죠. 그때는 도로에 자전거가 나선다는 것을 자동차 운전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때예요. 얼마나 혼을 내는지. 그때 저는 조선시대 영남대로를 가보고 싶었어요. 소설에 조선시대 선비가 한양을 어떻게 오갔는가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거든요. 걸어가려니까 힘들 것 같고, 말하고 비슷한 게 자전거라 타고 갔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저녁에 자려고 하면 코 안이 먼지로 꽉 차 있었어요. 하도 먼지를 많이 먹어서 (담배를 피울 때인데) 담배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한번은 문경새재를 넘는데 비가 와서 바닥이 굉장히 질었어요. 흙탕물이 튀어서 졸지에 흙 인간이 됐죠. 박물관 관리인이 저를 보더니 물 호스를 가져와서…. 하하, 그 아저씨 참 고맙데. 그런 강렬한 경험에 중독됐달까요? 그 후로 자전거를 탄 지 10년 정도 됐네요.”
소년처럼 해맑게 웃는 성석제. 그의 소설에서는 고향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묻어난다.
“태어나서 처음 지각한 냄새, 감각, 햇빛, 만난 사람들, 감촉, 먹은 것이 전부 거기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머리로는 기억 못하지만 각인이란 게 있습니다. 기억의 실체는 없지만, 몸은 기억하는 거죠. 처음 고스톱 쳐서 땄을 때의 기쁨, 그것 때문에 계속 치게 되지 않나요? 그런 것처럼 고향에서 그런 느낌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까 글에도 들어가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제 소설의 절반 가까이는 고향이나 그와 비슷한 환경, 농촌을 다뤘죠.”
그는 “농촌을 무대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내 또래엔 거의 없다”라며 “농촌엔 대부분 노인이라 그들의 터전을 배경으로 글을 쓰는 걸 아는 사람도 많이 없을 것”이라 했다. 그는 “그런데도 계속해서 쓴다”며 또다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위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예민한 감성 때문에 인터뷰할 때 날이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공원 주변을 돌아달라는 요청에도 ‘허허’ 웃으며 몇 번이고 응해주는 그의 모습은 흡사 시골에서 맛보는 구수한 숭늉 내지는 장터 막걸리 같았다.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몰아 유유히 사라지는 뒷모습에는 ‘자연친화적’ 소설가라는 호칭을 붙여도 부족함이 없을 것만 같았다.

여성동아 2012년 6월 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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