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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세 가지 인생 코칭

2천만 명이 모아준 3백60조원 굴리는 남자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입력 2012.06.15 11:37:00

국민연금 가입자가 2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는 최근 몇 년간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큰 몫을 차지했다. 탁월한 위기 관리 능력과 리더십으로 국민연금의 새로운 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국민연금공단 전광우 이사장의 인생 코칭은 건강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새겨들을 만하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세 가지 인생 코칭


전광우(63) 이사장과 서울 송파구 국민연금공단 본사 회의실에서 마주했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에도 냉방이 되지 않아 결국 장소를 옮겨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기분은 오히려 상쾌했다. 우리의 노후를 맡긴 국민연금공단이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에어컨을 틀어댔다면 내심 불편했을 것이다. 전광우 이사장은 늘 웃는 얼굴이다. 별명도 ‘Mr. 스마일’. 성우 같은 중저음의 목소리도 인상적이다. 그가 쌓아온 이력은 외모와 목소리 이상으로 매력적이다.

#첫 번째 키워드 … 긍정
전 이사장은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미국과 세계은행에서 훈련된 국제 금융 전문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대에서 경제학과 경영학 석사,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시간주립대 교수를 거쳐 14년 동안 세계은행(IBRD) 수석 이코노미스트, 국제금융팀장 등을 지냈다. 금융 전문가로 세계를 누비던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계기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요청을 받고 세계은행 종신직을 뒤로하고 미국 영주권도 포기한 채 귀국했다. 이후 재경부 장관 특보,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2009년 12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위기 국면’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여왔음을 알 수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효과적인 초기 대응으로 위기 탈출을 견인했고, 금융위원장에 오른 뒤에도 리먼 사태로 촉발된 국제 금융 위기에 신속하고 과감하게 대응했으며 국민연금 수장 취임 후 유럽 재정 위기 속에서도 기금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였다.
전 이사장은 이런 위기 관리 능력의 원천을 어린 시절 좌절의 경험에서 찾는다. 그는 당시 경기중학교 입시에서 한 과목의 답을 밀려 쓴 탓에 떨어졌다. 주위에서 “수석도 기대할 만하다”고 할 만큼 공부라면 자신이 있었던 터라 낙방의 충격은 더욱 컸다. 자존심도 상했다.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검정고시. 중학교를 건너뛰고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들이 중학교 교복을 입고 다닐 때 저는 검정고시 학원 교복을 입고 다녔어요(웃음). 굳이 안 입고 다녀도 됐을 텐데, 나름 오기가 발동했던 거죠. 입시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이 약이 돼 6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해 최연소 고등학생으로 신문에도 나고 TV 인터뷰도 했어요. 그런데 그 후 건강이 나빠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또 한 번 시련을 겪었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위기에 내성이 생겼어요. 요즘도 위기를 맞으면 ‘또 어떤 기회가 오려나’ 하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크고 작은 롤러코스터를 만나기 마련인데, 긍정적 사고와 열정이 있다면 그것을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부친에게서 물려받았다. 그의 부친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지만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이른 나이에 사업으로 자수성가를 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그가 기억하는 부친의 모습은 항상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쳤으며 재치가 있었다.
“저희가 다섯 남매인데 어느 날은 ‘방이 좁고 각자 책상도 없어 공부하기 힘들다’고 불평을 했더니 아버님께서 ‘각자 자기 방과 책상이 있는 환경에서는 누가 공부를 못하겠느냐, 부족한 환경에서도 잘 하는 게 진짜 잘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우리 형제들은 종종 예전에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웃곤 해요. 공부를 많이 못하셨기 때문에 지식은 제한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혜가 풍부하셨죠.”

#두 번째 키워드 … 정도
현재 국민연금의 규모는 3백65조원 정도로, 세계에서 4번째로 꼽히는 큰손이다. 불경기 속에서도 2010년과 2011년 두 해 연속 1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가 취임한 후 기금 운용으로 벌어들인 수익만도 64조원에 이른다. 국내 채권 중심의 소극적인 투자에서 벗어나 해외 부동산과 인프라 등으로 투자 대상을 다변화했는데, 이것이 수익률을 높이는 데 주효했다.
“국내 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에는 국민연금의 규모가 너무 커졌어요, 채권 시장에 국민연금 비중이 15%가 넘고, 주식 시장에서도 5%가 넘죠. 연못에 있는 작은 물고기가 어느덧 고래가 된 셈인데, 연못에 계속 있으면 고래도 죽고 생태계도 망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해외 투자를 확대해나가는 것입니다. 2년여 전 8~9%에 불과하던 해외 투자 비율이 현재는 14% 수준까지 높아졌지만 다른 나라 연기금에 비하면 아직도 낮은 수준이에요. 중장기적으로는 20% 선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세계 곳곳의 랜드마크와 산업 인프라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베를린의 소니센터, 런던의 HSBC 타워, 시드니 오로라플레이스, 파리 근교 오파리노 쇼핑몰 등이 바로 그곳. 국민연금이 지난해 PEF(사모펀드)와 부동산을 포함해 해외대체투자에서 올린 투자 수익률은 12%에 달한다.

이처럼 운용 성과가 좋아지고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는 수급자가 늘면서 신뢰가 쌓여 임의가입자가 증가하고 기금이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이 시작됐다.
이런 탁월한 경영 능력에 반해 그의 인생 철학은 소박하다. 그는 ‘정도가 왕도’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금융 당국의 수장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전문성과 도덕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한눈팔지 않고 정도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원장으로 발탁돼 인사 검증을 받을 때 아파트와 예금 통장이 전부일 정도로 재산 내역이 간단해 관계자들이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 있으니 노후 대책을 많이 물어보시는데, 욕심인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청춘’이란 생각으로 맡은 바 소명을 다하는 것이 최선의 노후 대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부지런하기로도 유명하다. 보통 오전 7시 이전에 출근하는 ‘슈퍼 얼리버드’다. 세계은행에서 근무할 때부터 오전 4시면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그는 마음 같아선 더 일찍 출근하고 싶지만 ‘직원들 고생한다’며 아내가 집에서 놓아주지 않아 뜸을 들이는 것이 그 정도라고.
“아침 몇 시간이 저한테는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죠. 주변이 조용하고, 정신도 가장 맑은 시간이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하기 좋아요. 오전 9시부터는 회의다, 전화다 해서 사실상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죠.”

#세 번째 키워드 … 사랑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세 가지 인생 코칭

‘슈퍼 얼리버드’ 전광우 이사장은 아내와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자상한 가장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 하정화 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요즘도 해외 출장이 잦지만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던 시절엔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1년 중 3분의 1도 안 됐다. 한 해 동안 쌓인 비행기 마일리지가 지구를 7바퀴 돌 정도였다고 한다. 전 이사장이 빛의 속도로 지구를 누비는 동안 그의 아내는 종종 이웃들로부터 “남편이 항공사 파일럿이냐 ”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자녀와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이니 자녀 교육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자녀들이 늘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여긴 비결은 편지와 엽서를 통한 소통이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더욱 긴밀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했어요. 출장 갈 때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엽서를 썼죠. 우리 아이들이 그걸 다 모아놨더라고요.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엽서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서로 진심을 느낄 수 있어서 좋더군요.”
그의 취미는 아내와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다. 하루 중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가장 많이 주고받는 사람도 아내다. 남다른 아내 사랑을 실천하게 된 계기가 있다고 한다.
“미시간대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 그 지역의 로널드 하우크라는 목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는데 사무실에 ‘아버지로서 당신이 당신의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길은 그 아이의 엄마를 사랑하는 일입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더군요. 부부가 살다 보면 의가 상하는 일도 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이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아내를 사랑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해요.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죠. 미국에서 생활할 때도 퇴근하면 꼭 문밖까지 나와서 맞아주곤 했어요.”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는 지금도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고, 특히 자녀들 앞에서는 좋은 이야기만 하려고 노력한다. 부모의 작은 행동 하나가 자녀의 성품과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님이 며칠 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아기 이불을 만드신 적이 있어요. ‘우리 집엔 아기도 없는데 왜 그러세요’ 했더니, 산동네에 사는 가난한 산모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집에 갖다 주려고 만드신다고 하더군요. 어머니 자신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저희 형제들에게 배려라는 가치를 가르쳐주신 거죠. 요즘 자녀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님들이 많이 계신데,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꾸중보다는 칭찬으로 이끌고, 공부라는 일률적인 잣대가 아니라 각자의 재능을 발견해 키워준다면 어떤 어린이도 능력과 따뜻한 품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여성동아 2012년 6월 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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