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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신은경

“그간의 부침과 상처, 오히려 나를 지켜준 건 아픈 아들”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입력 2012.05.16 10:23:00

배우 신은경의 인생은 유난히 굴곡이 많았다. 아역배우로 데뷔해 톱스타가 됐지만 경제적 압박감은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다. 그간의 숱한 소송과 루머도 돈과 관련된 것이었다. 여기에 이혼의 상처와 뇌수종을 앓고 있는 아들까지, 어쩌면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이 더 많았을 것 같은 그가 최근 방송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신은경


배우에게는 저마다 ‘이미지’가 있다. 엄밀히 따지면 연기력과 이미지는 무관하다. 이미지가 좋고 나쁨은 CF 출연 유무로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연예인들이 그토록 ‘이미지 메이킹’에 연연하는 이유도 이미지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배우 신은경(39)의 연기력은 흠잡을 데가 없다. 언제나 새로운 캐릭터로 기대 이상의 연기를 선보였고, 작품 흥행에 견인차가 됐다.
하지만 배우가 아닌 인간 신은경의 이미지는 연기력에 비례하지 못했다. 16년 전 벌어진 무면허 음주운전, 이혼, 전 남편과의 소송, 전 소속사와의 소송 등 부정적인 소식이 줄을 이었고 신은경은 그 모든 짐을 혼자 떠안고 아파했다. 그래서인지 신은경은 연예계에서도 인터뷰를 극도로 꺼려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속내를 쉬 드러내지 않던 신은경이 얼마 전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 출연해 처음으로 인생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그동안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빚이라는 올가미였다. 아역배우 시절부터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온 신은경은 지난 몇 년간 크고 작은 송사에 휘말리면서 출연료 압류까지 당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드라마 촬영장으로 빚쟁이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방송가에는 “신은경이 빚이 많다”는 소문이 퍼졌고 제작사, 연출가들 눈에 달갑지 않은 연기자로 비치면서 4편의 드라마 출연이 무산됐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해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 열연을 펼치며 배우로서 자리를 굳건히 지켜나갔고 그 덕분에 채권자들도 이제는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려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는 ‘힐링캠프’에서 “아직도 빚이 많이 남아 있느냐”는 MC의 질문에 “앞으로 50부작 드라마 하나만 하면 될 정도다. 방송을 보시는 감독님들 계시면 이제는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웃음으로 넘겼다.

빚쟁이들 촬영장까지 찾아와
1995년 드라마 ‘종합병원’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은경은 당시 밤을 새워가며 CF 촬영을 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럼에도 그가 젊은 시절부터 빚에서 허우적대야 했던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그가 고스란히 채무를 떠안은 것. 당시 신은경은 수면 부족으로 호르몬 이상 증상이 생길 만큼 강행군을 했지만 결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은경은 인생 최대의 오점으로 기록될 사건에 휘말렸다. 1996년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것이다. 그 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지금껏 음주운전과 관련해 한 번도 속내를 고백한 적 없었지만 ‘힐링캠프’에서 신은경은 사건 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는 드라마 ‘종합병원’을 끝내고 그의 인기가 절정일 무렵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팬 두 명을 도와주고 싶어 그는 부모님께 조심스레 돈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까지 신은경이 번 돈은 모두 아버지가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 빚을 갚는 데 돈을 다 써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배신감과 반발심에 무작정 집을 나왔다. 그러고는 평소 친하게 지낸 언니를 매니저 삼아 사글셋방에서 맨몸으로 다시 시작했다. 내야 할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해 출연하기로 약속돼 있는 영화 제작사 대표에게 출연료를 선불로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를 위해 마련된 술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대표님을 기다리면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남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는 게 참을 수 없이 싫었죠. 결국 대표님이 오기도 전에 술을 마셨고, 돈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취해버렸어요. 기억도 안 나는데, 매니저 언니한테는 먼저 가라고 하고 술김에 제가 대표님을 차로 모셔다 드리겠다며 운전대를 잡았죠. 결국 지하철공사장 앞을 지나다 앞차와 접촉사고가 났고 경찰서로 연행됐어요. 곧바로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치소로 송치됐죠. 처음 조서를 작성할 때 제대로 해야 했는데 건방지게 행동하다가 괘씸죄까지 걸린 것 같아요. 그 사건 후 운전을 안 하다가 6개월 전 처음 면허를 땄어요.”
음주운전으로 이미지가 추락한 신은경은 1997년 영화 ‘창’으로 복귀했다. 당시 그는 노출이 심한 창녀 연기로 또 한 번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신은경은 영화 ‘조폭마누라’로 재기했다. 당시 6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여배우로선 드문 액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어 출연한 ‘조폭마누라 2’에서 위험천만한 사고도 있었다. 액션 연기 중 각목 파편이 눈에 튀어 실명 위기에 처한것. 다행히 실명까지는 아니지만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한동안 생활에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쪽 시력이 나빠진 덕분에 연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혼으로 이어져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신은경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인생 풀스토리를 들려준 신은경.





재기에 성공한 신은경은 2003년 자신의 소속사 대표 김모 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그는 결혼 4년 만에 이혼했다. 그 과정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이미 세간에 알려진 대로 신은경은 2007년 전 소속사가 제기한 대여금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뒤 돈(4억원)을 돌려줄 책임이 자신이 아닌 전남편에게 있다고 항소한 데 이어 이듬해 전남편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 출신인 김씨가 영화를 제작하면서 금전적으로 어려워지자 신은경의 인감도장을 임의로 이용해 돈을 빌렸다는 주장이었다. 이제 신은경의 이혼 사유가 경제적 문제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하지만 ‘힐링캠프’에서 신은경은 꼭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을 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면 이혼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 인감도장을 말없이 사용한 것도 어찌 보면 가족이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 전남편과 저는 소속사 대표와 연기자 관계였는데 제가 드라마 출연을 확정한 뒤 돈을 떼먹고 도망갔다는 기사가 났어요. 남편에게 아니라고 해명하고 막아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그걸 안 해줬어요. 남편이 나를 버렸다는 원망이 커지면서 결국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럼에도 그는 전남편이 재능이 많은 사람인 만큼 반드시 재기에 성공할 것이라며 응원의 말을 전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전남편 측에서 양육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게 아이는 참으로 가슴 저린 존재다. 생후 10개월 때 뇌수종 판정을 받아 현재 아홉 살임에도 세 살 지능을 갖고 있다. 신은경은 처음 2년 동안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를 했지만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한 달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1년에 한 번으로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고백한다. 아이는 이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괜찮아지면 좋겠다.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긍정적으로 하루하루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며 눈물을 보였다.

뇌수종 앓고 있는 아들 하루빨리 데려오고파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신은경


아이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방송가에 떠돌았지만 그가 직접 밝힌 건 2008년 드라마 ‘하얀 거짓말’ 제작발표회에서다. 당시 그는 극 중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다섯 살배기 아들이 뇌수종을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을 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작심한 듯 “오히려 아픈 아이가 나를 살렸다”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현재는 제 거처가 일정하지 않은 상태라 아이가 아빠한테 있지만 빨리 잘돼서 아들을 데려오고 싶어요. 처음 뇌수종이란 사실을 알았을 땐 남편 사업도 어려워서 주체할 수 없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이 아빠와 항상 이야기해요. 우린 너무 모자란 사람들인데 최소한 자식한테 원망을 듣지는 않는다고. 저한테는 너무 다행스런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앞으로 아이에게 뭔가 해줄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결국 제 아들이 저를 지켜준 거예요. 앞으로는 자랑스러운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라죠.”
그가 얼마 전 양악수술을 강행한 이유도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보통 관상학에서 이마를 초년 복, 볼·광대를 중년 복, 하관을 말년 복이라고 하는데, 신은경은 얼굴 비율상 중간 부분이 긴 편이라 중년 불행을 줄여보자는 생각에서 양악수술을 결심했다고 한다. 평소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난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만큼 강한 인상이어서 연기를 하는 데 제약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예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을 갖고자 양악수술을 선택했다. 하지만 수술 후 찾아온 고통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었다. 수술 후 3~4주 동안 말을 할 수 없어 필담으로 대신하고, 음식을 먹지 못해 물만 마셔야 하는 등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아침에 수술 준비에 들어가 한밤중이 돼서야 의식이 돌아왔을 정도로 위험한 선택이었다. 심지어 수술 후 호흡곤란 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럼에도 자신의 사례가 일반인에게는 양악수술을 권장하는 걸로 비쳐 죄책감이 든다는 게 신은경의 솔직한 심경이다. 방송에서 신은경은 “얼마 전 목욕탕에 갔더니 한 아주머니가 ‘언니가 예뻐져서 그 병원 가서 상담을 했는데 2013년도에나 예약을 할 수 있대’란 말을 듣고 겁이 났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경규 씨가 ‘남자의 자격’ 강연에서 하신 말 중 ‘벼랑 끝에 나를 던져라’라는 말이 무척 가슴에 와 닿았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도약의 기회도 없는 것이고 (양악수술이) 잘못되면 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최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두려움도 없어지더라고요.”
지금껏 흔들거리는 다리 위를 건너듯 위태롭고 불안정한 인생을 살아온 신은경. 그동안 병원에 갈 여유조차 없이 힘겹게 살았다는 그는 자살충동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 때 생기는 것으로, 자신은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꽤 오랜 세월, 친구 대신 술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난해 술을 끊고 비로소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행복한 마음에 울컥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또 양악수술 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는 그는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드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아역 시절까지 포함해 올해로 25년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그는 다시 태어나도 연기자가 되겠다고 한다.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 ‘남들처럼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어떻게 꿈을 이루냐’는 대사가 있었어요. 저도 그 말에 공감해요. 지금까지는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게 오히려 연기에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연기자이기 때문에 어쩌면 외로운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어요.”

여성동아 2012년 5월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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