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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요 조태권 회장 못 말리는 한식 사랑

“음식은 문화 수준 가늠하는 잣대, K팝보다 한식이 더 많은 국부 창출할 수 있어”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입력 2012.05.15 15:22:00

한식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재 6백억원을 쏟아부은 남자.
어떤 이들은 무모하다고 손가락질하지만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다.
한식이 세계 최고이며, 한식의 부가가치가 대한민국의 국부를 끌어올린다는 믿음이다.
“잘살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광주요 조태권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광주요 조태권 회장 못 말리는 한식 사랑


‘된장녀’라는 말이 있다. 식사는 값싼 된장찌개로 때우면서 밥값과 맞먹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고, 비싼 명품으로 치장하는 여성을 이른다. 사치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지만 동시에 한식도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또 외모 가꾸기에 치중해 내실을 다지는 데 소홀한 우리 자신의 모습 같아 들을 때마다 씁쓸하다.
우리에게 한식은 5천~6천원에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다. 싸고 푸짐해야 하고 1만원이 넘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잘 차려 먹어야 할 땐 서양식 레스토랑이나 호텔 뷔페를 찾는다. 광주요 조태권(64) 회장은 그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20년 전부터 제대로 된 한식 문화를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간 쏟아부은 개인 돈만 해도 6백억원에 이른다. 2007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 ‘나파밸리 만찬’은 한식을 알리려는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게 한다. 당시 조 회장은 세계 미식 문화를 이끄는 나파밸리 와이너리 주인들과 관계자들 60여 명을 저녁 만찬에 초대했다. 테이블 세팅을 위해 백자 사발, 백자 사각 테이블 매트, 청자 접시, 불고기 내열 자기, 4단 찬합, 밥그릇과 도자기 1천여 점을 따로 구워 비행기에 실었다. 홍삼 달인 물과 닭 육수, 초고추장, 간장, 후식으로 나갈 밤초, 꿀과 약초를 넣고 60시간 달인 약차 등 핵심 음식 재료도 한국에서 들고 갔다. 저녁 한 끼 행사의 경비만 1억6천만원, 1인당 3백70만원짜리 식사였다. 이 이벤트는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됐으며, 한식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근본 없는 벼락부자
그런 조 회장이 최근 ‘조태권의 문화보국’(김영사)이라는 책을 냈다. 그의 열정과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성북동 자택을 찾았다. 현관에 들어서자 왼쪽은 주방, 오른쪽은 응접실이다. 주방엔 광주요에서 생산되는 자기들이 정갈하게 진열돼 있고 응접실엔 족히 20명은 앉을 수 있을 만한 너른 식탁과 고가구들이 배치돼 있다. 집안 어디서나 도자기와 음식 관련 책이 눈에 띄었다. 그는 이 집에서 1998년부터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자신이 개발한 한식을 대접하는 ‘화요만찬’을 열었다.
예술가나 배우처럼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살아온 사람에게서는 그만의 기가 뿜어져 나온다. 조 회장은 선이 굵고 호탕하며 달변이다.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막힘이 없다. 한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두루 공부한 덕분이다.
조 회장이 이끌고 있는 광주요그룹은 전통 자기 전문기업인 광주요, 고급 증류주 전문기업 화요, 전통 벽지 전문 브랜드 자비화 등으로 이뤄진 전통문화 전문 그룹이다. 그가 한식 세계화를 부르짖게 된 계기는 도자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
“그릇 만드는 사람이 그릇만 잘 만들면 되지, 오지랖도 넓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결국은 보았기 때문이죠. 도자기 강국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균형 있게 발달한 선진국이라는 걸 실감했고 그릇과 음식, 술 등이 등급별로 만들어져 어울리는 ‘명품’을 보게 됐던 겁니다.”

광주요 조태권 회장 못 말리는 한식 사랑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만찬에서 조태권 회장이 선보인 메뉴. 1 어회샐러드 2 삼색전 3 바닷가재 떡볶이 4 등심구이 5 홍계탕죽 6 밤초와 약차.



스시의 고가 전략과 엘불리의 스토리텔링… 지금 한식에 필요한 건 창의력

그가 세계 각국을 돌며 느낀 한식의 현주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CNN에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정,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한식은 하나도 없었다. 조 회장은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13위인 반면, 국가 브랜드 지수는 33위다. 이는 세계 무대에서 우리가 근본 없는 벼락부자로 취급받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일갈했다.
“한식의 수준을 높이려면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이 이뤄져야 해요. 박세리 선수가 1998년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수많은 ‘박세리 키드’가 생겨났고 이들이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골프 강국으로 키운 것처럼 한식을 슈퍼스타로 키우는 거죠. 최고가 되기 어려워 그렇지 한번 최고가 되면 좀체 내려오지 않습니다. 10만원짜리 밥이 있어야 5만원, 3만원짜리도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광주요 조태권 회장 못 말리는 한식 사랑


그는 일본의 스시를 예로 들었다. 일본은 세계에 스시를 선보이면서 고가 전략을 썼다. 상류층을 위해 한 접시에 50만원 하는 스시를 내놓자 대중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이 다양한 가격의 스시를 내놓은 건 대중의 관심이 어느 정도 올라왔을 때다. 스시로 먼저 공략한 다음에 돈가스·라멘·덮밥 등 다른 음식도 전 세계에 퍼뜨렸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한데 묶여 ‘일식’이라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14년 동안 미슐랭 가이드 최고 등급을 받은 스페인의 고급 레스토랑 엘불리의 사례도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1년에 6개월만 문을 열고 6개월은 레시피 개발을 위해 문을 닫는다. 이곳에서 식사하려면 평균 1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2013년까지는 아예 문을 닫겠다고 선언해 미식가들을 안타깝게 했다. 조 회장은 한식에도 그런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도 우리만의 철학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하루아침에 누가 깃발 들고 ‘오늘부터 나를 따르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음식에도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소재가 있습니다만, 더 창의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그걸 자랑스러워하고 즐기려는 자세가 필요하죠.”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마당에 ‘음식에도 사치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자칫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 그럼에도 조 회장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앉아서 천 리를 보는 장사꾼의 머리로 계산해보건데, 한식 세계화는 우리 국민이 모두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것이다.
“한식이 고급화되면 그에 따른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민과 어민들이 풍요로워질 것이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어요. 또 2030년에 세계 중산층 인구가 약 20억 명이 될 텐데 그중 절반인 10억 명이 최저 20달러짜리 한식을 한 달에 한 번씩만 먹어도 연간 2천4백억 달러짜리 시장이 열려요. 그렇게 되면 K팝보다 한식이 더 많은 국부를 창출할 겁니다(웃음). 지난해 영국에서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이 있었죠. 당시 누구도 초호화 웨딩을 비난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파티장에서 보인 음식, 케이크, 그릇 등은 영국 문화다운 것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고, 영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큰 몫을 했죠. 제가 꿈꾸는 한식 세계화도 그런 겁니다.”
그의 한식 실험은 아직까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조 회장은 2003년 명품 한식을 표방하며 서울 도산공원에 한식당 ‘가온’을 냈다. 밑반찬에서 주 메뉴까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 광주요의 고급 도자기에 담아낸 ‘명품 한식’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조 회장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온은 매달 2억원 이상 적자를 내다가 결국 2008년 12월 폐업했다.
“부자들은 호응을 해줄 줄 알았어요. 그들도 전 세계를 다니며 체험을 하고 공부를 했을 테니, 한식의 수준을 높이는데 공감을 하겠거니 기대했던 거죠. 그런데 아직까지 그들도 외국 음식은 고급으로 치고, 한식은 집에서 먹는 음식이란 인식을 갖고 있더군요.”
자신과 뜻을 함께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도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조 회장은 가족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그의 아내 성복화 여사는 2년 동안 일본을 오가며 테이블 세팅을 배워 ‘아름다운 식탁전’을 열고 식기 디자인에도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등 남편 못지않은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돈은 나가지, 매일 집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니 몸도 힘들지…, 집사람이 고생이 많았죠.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당신 말이 다 맞긴 한데 왜 꼭 당신이 해야 하느냐’라며 반대도 많이 했어요. 제가 그랬죠. ‘이게 운명이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도망가는 건 비열한 일이다. 나는 그런 비열한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고요. 세계에서 안 가본 곳 없고, 좋은 음식이란 음식은 다 먹어봤고…. 이만하면 저나 집사람이나 호사를 누릴 만큼 누리지 않았습니까.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 다시 문화 사업에 투자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도 잃고 고단했지만 함께해준 아내와 딸들에 대한 고마움

광주요 조태권 회장 못 말리는 한식 사랑

한식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앞장서 온 조태권 회장과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둘째 딸 희경 씨.



그는 슬하에 윤경, 희경, 윤민 세 딸을 두고 있다. 그중 둘째 딸 조희경 광주요 이사가 그의 열정을 쏙 빼닮았다. 조 이사는 미국 시카고에서 아트와 MBA를 전공하고,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음식을 공부했으며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2007년 나파밸리 만찬도 조 이사가 현지 세팅을 총괄했다. 조태권 회장이 모든 것을 스스로 터득하며 하나하나 쌓아올렸다면, 조 이사는 그 기반 위에서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조 이사는 아버지를 최고의 멘토로 여긴다.
“어딜 가든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많이 보고 밑바닥부터 다지게 하고 싶었거든요. 이젠 음식에 관해서는 워낙 전문가라서, 한 번 맛을 보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금방 감을 잡고 그대로 만들어내요. 요즘은 오히려 내가 물어보는 게 많죠.”
그는 1988년 부친의 타계로 광주요를 물려받기 전 대기업 직원으로, 무기 거래 사업으로 제법 큰돈을 벌었다. 그 일을 계속했더라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한식에 쏟은 정도의 열정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다.
“암, 물론이에요. 나는 무슨 일을 했더라도 성공했을 거예요(웃음). 난 절대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해요. 그런데 이 일을 안 했더라면 사람은 덜 됐을 것 같아. 우리 문화를 공부하면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에 감사해요. 인간의 근본, 순수함, 타인을 배려하는 삶…, 우리 민족성을 공부하니 내 마음이 그렇게 되더라고요. 젊을 때는 더러 독선적인 면도 있었는데, 이젠 남의 말도 옳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면에선 인생을 거꾸로 사는 거죠(웃음).”
조 회장은 조만간 가온을 다시 열 계획이다. 그의 머릿속은 벌써 가온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두 번째 실험에 나서는 조태권 회장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동아 2012년 5월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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