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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아름다움, 평창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 | 유디트

2012. 05. 04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아름다움, 평창


강원도에서 산 지 5년이 됐는데 스키장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어렸을 때 오스트리아에서 스키를 탄 경험은 있지만, 겁이 많아서 스키 타는 재미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스키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결정됐을 때, 동계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겨울 친구가 용평으로 놀러가자고 제안해 마침내 나도 스키장 구경을 하게 됐다. 스키를 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새로 지었다는 스키장은 꼭 한 번 구경해보고 싶었다. 평창을 가기 위해 대관령에 올랐을 때는 태백산맥의 아름다운 풍광에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우리 집도 백두대간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태백산의 아름다움은 잘 알고 있지만, 스키장 주변은 우리 집 주변과는 또 다른 경관이었다. 나는 관심을 가지고 이곳저곳 열심히 구경했다. 우연히도 그날 눈이 아주 많이 내렸다. 눈이 많이 내리니 왠지 동계올림픽도 잘 치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스키장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덩달아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나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리조트 입구에 ‘알펜시아’라고 적힌 표지판을 봤을 때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알펜시아’라는 이름이 독일어 단어 ‘알펜(Alpen=알프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더구나 표지판 위의 ‘알펜시아’ 글자는 에델바이스 꽃잎 모양을 본뜬 글씨체로 써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이곳까지 와서 에델바이스를 떠올리게 되니 반갑다기보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리조트 중심부에 도착해서도 또 한 번 놀랐다. 모든 건물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전통적인 집들과 아주 닮았다. 알펜시아리조트를 둘러보면서 나는 어렸을 적 엄마 아빠와 함께 알프스로 놀러갔던 때가 떠올랐다. 알프스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를수록 기분이 점점 더 나빠졌다. 나는 “여기가 알프스야?”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분명히 알프스가 아니다. 알프스는 해발 4000m 정도의 높은 산들이 많지만 태백산맥의 산들은 그렇게 높지 않다. 태백산맥과 알프스의 모습 역시 확연히 다르다.
알프스와 태백산맥을 비교하다 보니, 삼척에 있는 우리 집 꽃밭이 생각났다. 우리 집 꽃밭에는 예쁜 꽃들이 참 많다. 나는 이 예쁜 꽃들을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원추리와 장미, 또는 코스모스와 아네모네 중에서 어떤 꽃이 더 예쁠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가 아닐까? ‘아네모네는 작은 코스모스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아네모네의 아름다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심지어 아네모네를 얕보는 것은 아닐까? 이번 봄에는 우리 집 마당 구석에 할미꽃도 피었다. 나는 태백산맥에 핀 이 예쁜 할미꽃을 알프스에 핀 에델바이스와 비교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태백산의 리조트에 왜 알프스의 이름을 붙였는지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다. 태백산맥만이 지닌 아름다움은 다른 곳과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아름다움, 평창


나는 태백산맥이 알프스와 다르다는 것이 장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몇 년 전 겨울방학 때 독일 고향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비행기 옆자리에는 오스트리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출장 가는 길인데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내가 한국 칭찬을 너무 많이 했는지, 그 남자는 갑자기 오스트리아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한국에도 오스트리아의 알프스처럼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멋진 산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한국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예쁜 산이 많다고 말하자 그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랑스러워하는 말투로 한국의 산도 오스트리아의 산처럼 높고 멋지냐고 물었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한국의 산은 알프스의 산처럼 높진 않지만, 아주 아름다운 해안에 접해 있다고 대답했다. 사실 그때 나는 그에게 ‘해안 바로 옆에 1000m 이상 높은 산들이 솟아 있는 경치를 가진 나라가 전 세계에 몇이나 될까요?’라고 묻고 싶었다. 이른 봄에 강릉 경포해수욕장에 서서 바다를 즐기다 고개만 돌리면 저 멀리 대관령의 흰 눈을 볼 수 있는 행복, 나는 그 외국인에게 이런 행복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오스트리아 남자도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출장 기간 동안 시간이 나면 서울을 벗어나 한국 경치를 구경해볼게요.”



4월 초부터 나는 꽃밭에 열심히 꽃을 심기 시작했다. 매년 쑥쑥 자라는 꽃을 보고 있으면 꽃들도 왠지 이 아름다운 곳을 좋아하는 듯하다. 나는 꽃 씨앗을 뿌리면서 꽃이 만발한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모든 씨앗이 활짝 꽃을 피우기를 기대한다. 각각의 꽃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따로 떼어 감상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이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꼈으면 좋겠다. 이 지역에 머물면서 강원도의 산을 왜 알프스와 비교하면 안 되는지 직접 느끼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좀 더 자신감 있게’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평창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알프스 지역에 사는 이들이 평창에 와서 스키를 즐길 때 알프스를 완전히 잊도록!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평창에 그리고 강릉에 사는 여러분, 우리부터 먼저 알프스를 완전히 잊읍시다.”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아름다움, 평창


유디트씨(41)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러스트 | 한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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