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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 김도훈 PD 비하인드 스토리

시청자 마음 훔친 명품 드라마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MBC 제공

입력 2012.04.18 09:35:00

‘해를 품은 달’이 방영되는 시간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탄탄한 스토리,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예쁜 배우들과 명품 조연들의 열연까지,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해품달’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때.
흥행의 숨은 공신 김도훈 PD와 그 여운을 함께 했다.
‘해를 품은 달’ 김도훈 PD 비하인드 스토리

‘해품달’을 통해 스타로서 입지를 굳힌 김수현이 종방연에서 김도훈 PD에게 감사의 뜻으로 큰절을 하자 김 PD도 맞절을 했다.



지난 몇 달간 대한민국은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 공화국이었다. 학교나 사무실, 스포츠센터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해품달’로 이야기꽃이 피었고,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서점가에서는 2005년 출간된 동명의 원작이 다시금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최고 시청률 42.2%(20회)를 기록했으며 본 드라마 20회, 스페셜 4회, 재방송까지 광고도 완판됐다.
‘해품달’의 인기 비결은 ‘성균관 스캔들’로 이미 검증받은 바 있는 정은궐 작가가 쓴 원작의 힘이 크다. ‘액받이 무녀’라는 신선한 소재에 로맨스와 정치적인 암투가 얽히고설키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제작사인 팬 엔터테인먼트는 일찌감치 원작의 흥행 가능성을 높게 보고 2008년부터 출판사와 드라마 판권 협의를 진행해왔다. 또 여진구, 김유정, 이민호, 임시완 등 아역과 김수현, 한가인, 정일우 등 성인 연기자들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김영애, 정은표, 전미선 등 베테랑 연기자들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줬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에 ‘연우 낭자의 뇌 구조’ ‘차도남’ 같은 웃음을 주는 발랄한 현대적 요소를 배치한 것은 화룡점정. 이토록 센스 있는 캐스팅과 연출력으로 카메라 뒤에서 온 국민을 울리고 웃긴 주인공 김도훈(42) PD를 드라마 종영 다음 날 만났다.

‘땜빵’용으로 준비한 드라마의 반전

‘해를 품은 달’ 김도훈 PD 비하인드 스토리


훤칠한 키에 모델 같은 패션 감각까지 김도훈 PD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눈에 띄는 외모다. 그런데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새카맣게 탄 얼굴이 안쓰러울 정도다. 선글라스도 망가진 피부를 가리기 위한 소품이란다.
“얼굴이 말이 아니죠? 드라마 촬영 한번 하면 제3세계 난민 몸매가 돼요. 피부는 새카맣게 그을리고, 살은 빠지는데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으니까 배만 볼록하게 나오거든요(웃음).”
‘해품달’은 MBC에서 준비해온 수목드라마가 갑자기 중단돼 급히 제작한 소위 ‘땜빵’용이었다. 그런 탓에 통상 사극은 1년 이상, 현대극은 6개월 이상 준비해야 하는데 ‘해품달’의 준비 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김 PD는 전작 ‘로열패밀리’를 끝내고 지중해 등으로 휴가를 다녀오자마자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해품달’ 연출을 떠안았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회사 내부 사정이 너무 촉박해 불평할 겨를도 없었다.



▼ 촬영하는 동안 인기를 실감했나.
“경기도 이천, 경북 문경 같은 곳에서 고립되다시피 있으면서 촬영했기 때문에 바깥 분위기를 잘 몰랐다. 12회 정도 되니 용인 민속촌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진행을 못하겠더라. 그 무렵 낼모레 칠순인 어머니도 ‘도저히 못 참겠다. 훤과 양명 얼굴 좀 봐야겠다’며 친구분들과 함께 촬영장으로 찾아오셨다. 드라마 연출 시작한 지 15년인데 어머니가 이처럼 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신 게 처음이다(웃음).”
▼ 시청률 40%면 국민 드라마 수준이다. 이렇게 잘될 줄 알았나.
“처음 기획안을 봤을 때 재미는 있지만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부분이 있어서 드라마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또 사극은 ‘미술’이 중요한데 당시 MBC에서 ‘계백’을 하고 있었고, ‘무신’도 준비 단계에 있어서 하나 더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괜찮은 대본 갖고 제대로 못 만들어 민폐 끼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 시청률 40%는 요즘 같은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수치라 꿈도 못 꾸고, 잘하면 15~20% 정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있었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비슷한 분위기로 간다면 20~30대 시청자는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여기에 좀 더 보태 10대부터 50대 시청자까지 아우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진수완 작가와 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순수한 사랑을 떠올렸다. 30대와 40대는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반면 10대와 50대는 순정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다. 10대는 아직 때가 묻지 않아서, 50대는 향수 때문이다. 이걸 잘 풀면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적중했다.”
▼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게 바로 그런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현실에서도 그런 사랑이 가능하리라고 보나.
“불가능하다(웃음). 과거는 폐쇄적인 사회여서 사랑에 대한 경우의 수가 많지 않았다. 그런 만큼 눈앞에 느낌이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꽉 잡아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화상 채팅을 하다가 사귈 수도 있고, 트위터에서 만나 결혼을 할 수도 있다. 사회구조적으로 이 사람 아니어도 상관없는 세상 아닌가.”
▼ 드라마 초반에 아역들이 제 몫을 톡톡히 해줬다. 아역 비중을 늘려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캐스팅의 힘인 것 같다.
“‘해품달’의 아역은 다른 드라마의 아역이 지니는 감성과는 차이가 있다. 성인들의 풋풋한 어린 시절이 아니라 서로 죽고 못사는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 선수들이어야 했다. 또 ‘나이 감(몇 살인지 딱 봐도 알 수 있는)’이 명확하면 (사랑의) 정서가 전달이 안 될 것 같아서 미소년과 성인의 중간 느낌이 나는 연기자들을 골랐다. 하늘에서 꽃가루 날리는데 남자 배우가 수컷 냄새 물씬하면 몰입이 되겠는가. 시청자들이 ‘내가 왜 어린아이한테 빠지지’ 하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훤 역의 여진구와 연우 역의 김유정을 제일 먼저 캐스팅했고 이후 민화 공주 역의 진지희와 설 역의 서지희를 확정했다. 어린 양명 역은 유연한 연기력이 필요했다. 훤이 캐릭터에 무게를 뒀다면 양명은 에너지를 창조해내는 역이어야 했다. 이민호 군이 나온 드라마를 봤는데 연기를 참 편하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소속사에서 아역을 고사한다고 거절해왔다. 결국 본인에게 대본을 보냈는데 읽어본 뒤 하겠다고 했다.”

▼ 염과 운은 신인을 캐스팅 했다. 모험이 아니었나.
“그 둘은 끝까지 적역을 찾지 못해 조연출과 ‘3D로 만들어서 넣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농담까지 했다. 혹시 아이돌 중에 그런 이미지가 있을까 해서 ‘제국의 아이들’을 만나봤는데 그중 임시완이 눈에 띄더라.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데 요구하는 대로 대본을 곧잘 읽어 세 번째 만남에서 캐스팅을 확정했다. 어린 운 역의 이원근은 이병헌 씨 소속사에서 가져온 프로필을 우연히 보다가 알게 됐다. 연기 경험이 없어서 걱정됐지만 역시 느낌이 좋아서 밀어붙였다.”

김수현은 대한민국 최고 연기파 배우감

‘해를 품은 달’ 김도훈 PD 비하인드 스토리


드라마는 캐스팅이 반이다. 아역 캐릭터들이 비교적 순조롭게 임자를 찾은 반면 성인 배우 캐스팅은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남자 배우를 찾았다 싶으면 상대 여배우가 맞지 않았고, 여배우에 맞추자니 마땅한 남자 배우가 없었다. 한가인과 김수현은 그렇게 수많은 조합 속에서 탄생한 커플. 제작진도 처음엔 여섯 살이라는 두 배우의 만만치 않은 나이 차 때문에 망설였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상의 카드였다고 한다.
▼ 여성 시청자들이 김수현의 매력에 ‘미혹’됐다. 아름다운 얼굴에 수컷 이미지까지 보여줬다.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드라마 최고 수혜자는 김수현이 아닌가 싶다. 감독님께 절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실제로 드라마 종방연에서 김수현은 김도훈 PD에게 큰절을 했다).
“하하하. 내가 한 건 별로 없고 그 친구가 워낙 뛰어났다. 김수현은 처음부터 이 드라마 주연으로 거론됐던 배우다. 대본을 일찍 받았기 때문에 작품 분석을 완벽하게 하고 각종 디테일을 많이 준비했다. 김수현의 장점은 모델이나 뮤직 비디오로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딘 그 또래 다른 배우들과 달리 연기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카메라에서 어떻게 하면 멋져 보일까’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이것을 표현할 때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나’에서부터 접근한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때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고 연극반에 들어갔다고 하더라. 기초를 잘 닦은 거다.
처음 만났을 때도 자기가 먼저 작품에 대해 말을 했다. ‘내용을 보니까 훤이 사랑의 상처도 있고, 시니컬하기도 하고, 약간 사이코적인 면도 있어 다크서클을 그리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의외였다. 주인공이 다크서클 그리겠다니. ‘너무 진하게 그리면 판다 같아지니까 조금만 연하게 그리자’며 오히려 달래야 했다. 워낙 재미있는 디테일을 많이 준비해서 나도 연출하는 재미가 있었다.”
▼ 김수현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 배우가 될 게 확실하다. 일단 그 친구는 장르를 안 가릴 것 같고, 얼굴 생김새가 어느 한쪽으로 강하지 않아서 모든 배역을 다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재능도 있고, 성실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 반면 한가인은 끝까지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해를 품은 달’ 김도훈 PD 비하인드 스토리

‘해품달’이 시청률 40%를 넘는 국민 드라마로 등극한 데는 여진구·김유정 등 아역과 김수현·한가인 등 성인 연기자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이 큰 몫을 했다.



“올해 사극에 처음 도전하고 영화까지 출연한 걸 보면 연기자로서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난 광고 많이 찍는 여배우들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다. 속을 잘 안 내보이고 디테일보다 이미지로 승부하려고 하고. 그래서 처음엔 ‘이 친구가 과연 이걸 왜 하려고 할까’ 궁금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앞서 말한 여배우들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사람이었다. 털털하고 개구쟁이 같은 면도 있고, 이제껏 해온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어서 도와주고 싶었다.
현장에서 그렇게까지 자길 내던지는 여배우는 처음 봤다. 얼굴에 숯검댕도 칠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 연기가 조금이라도 못마땅하면 속상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우는 연기를 하고 나면 그 감정에 빠져 촬영이 끝나도 얼마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다가 연우가 기억을 되찾는 장면에서 뭔가 확 터지는 게 느껴졌다. 화면으로 그걸 보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번 작품은 연기자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 김영애, 김응수, 정은표, 전미선 같은 훌륭한 연기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기분은 어떤가.
“TV 화면이 커지면서 배우들이 더 예쁘게 가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시청자들은 화면이 커진 만큼 연기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얼굴보다 연기력이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김영애 씨는 우리나라에서 대비 역을 그만큼 소화하는 배우가 없을 것 같아 삼고초려 했고, 김영애와 기(氣) 대결을 할 수 있는 배우도 전미선 씨 외에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응수 씨와 정은표 씨 모두 기대보다 훨씬 잘 해주셨다. 명불허전이다.”
▼ 촬영 기간 가장 힘들었던 점은.
“추위다. 백만 년 만의 추위라고 하더라. 촬영장이 있는 산 속은 더 춥다. 스태프들은 이 드라마 아니었다면 절대 입을 일이 없는 히말라야 등반 복장을 하고 촬영을 했다. 배우들은 옷 속에 핫팩을 많이 붙였다. 정은표 씨는 핫팩 붙이는 데 달인이다. 보통 30개 정도 붙인다. 핫팩을 붙이면 몸과 발에 땀이 차기 때문에 신발에 생리대를 붙인다. 땀을 흡수해야 하니까.”
▼ 파업으로 하루 동안 제작을 중단했을 때도 힘들었을 것 같다(김도훈 PD는 MBC 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3월 6일 촬영을 접었고, 그 주 방송 분량은 스페셜로 대체됐다).
“드라마의 경우 제작이 중단되면 막대한 손실을 입기 때문에 노조에서도 관례적으로 메인 PD의 경우 파업 불참을 용인해준다. 그런데 이번엔 드라마 PD들도 촬영을 접자는 결정이 내려졌고, 나도 노조원이어서 대의를 따른 것이다. 하루 만에 촬영장에 복귀했던 건, 드라마는 내 것이 아니라 시청자와 국민의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또 촬영이 더 미뤄지면 배우들의 스케줄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파업에 참가한 사실 자체를 비난하는 분들도 있고, 복귀한 걸 두고 뭐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노조도 그런 상황을 이해해줬고, 비난하는 분들보다 지지해주는 분들이 더 많아서 고맙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파업으로 인해 스페셜 편이 4회 방송돼 광고 매출이 더 늘었다는 점이다. 회사로선 더 득이 됐다.”

첫 드라마 실패가 오히려 약이 돼

‘해를 품은 달’ 김도훈 PD 비하인드 스토리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해품달’의 광고 수익은 1백30억원, 여기에 판권 수출비와 DVD 판매 수익을 더하면 매출액은 3백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제작비는 98억원 선. 방송사와 제작사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 덕분에 김도훈 PD는 방송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자가 됐지만 그의 전적을 살펴보면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신입 PD 시절 단막극에서 특이한 시도를 많이 하는 탓에 선배들로부터 “너는 아무래도 이 일이 안 맞는 것 같다.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동기들 중에 ‘입봉’이 가장 늦었고, 2008년 첫 작품인 ‘스포트라이트’가 죽을 쑤는 바람에 연출과는 전혀 상관 없는 부서로 좌천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이 드라마 PD로 성장하는 데는 오히려 약이 됐다.

▼ 홀가분할 것 같다. 이제 뭘 할 생각인가?
“다음주부터 파업에 참여해야 하고, 감독판 DVD에 대한 요구가 많아서 그 작업도 해야 한다.”
▼ PD들은 보통 한 작품을 끝내면 여행을 하던데.
“6개월 꼬박 일하면 대휴가 엄청나게 쌓인다. 그것도 소진해야 하고, 또 여행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게 드라마 PD의 현실이다. 드라마 한 편 연출하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연출을 한다는 것은 방송사, 제작사, 배우 등 모든 관련자들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그들이 직접 싸울 수는 없으니까 나를 통해 싸우는 거다. 그런데 시청률이 잘 나오면 ‘꼼짝 마라’다. 다들 감독 말 잘 들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나 보다(웃음). 이번엔 전작 ‘로열패밀리’가 잘돼서 그 덕을 좀 봤고, 초반부터 시청률도 잘 나와서 비교적 순탄했던 것 같다. 어쨌든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사람이 싫어져서 철저히 낯선 곳에서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그렇게 한 달쯤 있으면 다시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러면 현장으로 돌아오는 거다. 드라마는 사람 이야기고,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사람이 싫어지면 만들 수 없다.”
▼ 김 PD의 작품은 경계에 있는 것 같다. ‘해품달’도 판타지 사극이고, ‘로열패밀리’도 재벌가 이야기였지만 그 바탕에는 종교와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깔려 있다.
“신인 시절부터 그런 특이한 드라마를 많이 만들었다가 데스크에게 혼이 많이 났다. 최근 2~3년 사이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취향이 많이 바뀌어서 선호하는 드라마 장르도 다양해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혼, 불륜 같은 소재가 아니면 시청률이 안 나왔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는 판타지 미스터리물 같은 걸 계속 만들다가 무능한 PD로 찍혔다. 동기들 중에 제일 늦게 ‘스포트라이트’로 입봉을 했는데 죽을 쒔다. 의욕 과잉이었고, 대중과의 접점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후 좌천돼서 주조종실 MD로 근무했다. MD는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방송이 제대로 송출되는지 보는 일을 담당한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진짜 안 되는 사람인가,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란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 그래서 얻은 결론은 뭐였나?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PD들은 자기 드라마 만드느라 바빠서 다른 방송은 잘 못 본다. 그런데 주조종실 MD를 하는 1년 동안 모든 방송을 다 봤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왜 실패했는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감을 잡았다. PD는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드라마를 만들면서 자아실현을 했던 것이다. 그다음부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방송 송출이 끝나고 다시 시작할 때까지 남는 시간에 블로그를 했다. 영화 리뷰도 쓰고 여행기나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이 거기에 댓글을 달아줬다. 그걸 통해서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무엇을 끌어내야 하는지를 배웠다.”
▼ 그럼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야 할지도 감을 잡았겠다.
“그 부서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키워드를 세 가지 정도로 정리했다.”
▼ 그중 하나가 ‘로열패밀리’에서 했던 재벌 이야기인가?
“그렇다. 재벌이라기보단 돈 이야기다. 나머지 두 개는 영업 비밀이라서 알려줄 수 없다(웃음).”

여성동아 2012년 4월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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