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군 다압면 섬진강 줄기에 있는 매화마을. 사람들은 매화꽃길을 거닐며 봄에 취한다.
동풍이 건듯 불어 쌓인 눈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피었어라
가뜩 날은 찬데 암향(暗香)은 무슨 일꼬?
황혼에 달이 쫓아 베개맡에 비치니
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꺾어 내어 임 계신 데 보내오자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기실까?
-송강 정철(1536~1593) ‘사미인곡’에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마다 꽃동네. 동구 밖, 논둑길 밭둑길, 동네 고샅길이 환하다. 강 둔치에도 꽃, 강물 속에도 꽃잎이 어린다. 하늘의 흰 구름조각마저 꽃잎을 닮았다. 사람들은 꽃그늘에 앉아 ‘혈압 오르는 것’을 식힌다. 꽃에 델세라 들숨날숨을 고른다.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머릿속이 맑아진다. 벌들이 잉잉대며 꽃 속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가슴이 뻐근하다. 터질 것 같다. 저마다 발걸음에 신바람이 인다. 꽃피는 곳마다 ‘사람 꽃’도 만발한다. 발 디딜 틈이 없다. 꽃 구경 사람 구경에 관광버스, 자가용까지 뒤범벅이다.
꽃 잔치는 제주 휴애리자연생활공원 매화축제(7천여 그루, 3월 17일~4월 4일)로 벌써 시작됐다. 뭍에서는 섬진강 청매실농원 주변의 광양매화축제(10만여 그루, 3월 17~25일), 해남 보해매실농원 땅끝매화축제(1만5천여 그루, 3월 24, 25일), 낙동강 경남 양산 원동매화축전(1백년 고매 50여 그루 포함 8백여 그루, 3월 24, 25일)이 떠들썩했다. 구례 산동 산수유꽃축제(15만 그루, 3월 23~25일)도 빠질 수 없다.
꽃놀이는 4월에도 계속된다. 화사한 벚꽃이 주인공이다. 진해군항제(4월 1~10일), 화개장터벚꽃축제(4월 6~8일)를 시작으로 점점 북상한다. 산수유꽃은 이미 경기도 이천 백사(4월 6~8일 축제)까지 올라왔다.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왕벚꽃이 양쪽 길가에 화르르 다발로 핀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시오리길은 경을 치게 해맑고 아름다워, 도무지 길 멀미가 나지 않는 곳”이라 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자동차도 시끌벅적하다. 아예 이른 새벽이나 한밤에 두 발로 걷는 게 상책이다. 마침 4월 5일이 음력 3월 보름날이다. 달빛 아래 벚꽃은 눈이 부시다 못해 황홀하다. 십리벚꽃이 진 4월 하순쯤 지리산 발치에 산벚꽃이 필 때 가는 것도 좋다. 지리산 산벚꽃은 저잣거리 벚꽃보다 훨씬 기품 있다.
선암사는 조선 매화의 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종류의 매화가 심어져 있다. 사진은 선암사 홍매.
은은한 향, 꽃 중의 꽃 토종 조선 매화
‘꽃의 우두머리’는 매화다. 그래서 매화는 ‘화괴(花魁)’라고 불린다. 매화는 ‘선비의 꽃’이다. 청아하고 속기(俗氣)가 없다.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선비의 삶은 가시밭길이다. 춥고 배고프다. 그렇다고 뜻을 저버릴 수는 없다. 추위가 한바탕 뼛속 깊이 사무치지 않고서는 어찌 매화의 그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매화라고 다 매화인가. 매화에도 격이 있다. 벌 떼처럼 핀 매화는 ‘양계장 닭’ 같다. 섬진강변 농원매화는 매실을 따기 위해 ‘대량 양식’하는 꽃이다. 꽃이 가지에 덕지덕지 붙는다. 매화나무라기보다는 매실나무인 셈이다. 고고한 맛이 덜하다. 향기도 오래가지 않는다. 우르르 피었다가, 바람 한 번 건듯 불면 힘없이 진다. 벚꽃을 닮았다.
토종 조선 매화는 꽃이 작다. 꽃도 띄엄띄엄 성글게 돋는다. 향이 은은하고 오래간다. 일본 개량 매화는 향이 덜한 대신 열매가 실하고, 조선 매화는 향이 기가 막히지만 열매가 부실하다.
조선 매화는 숨어 있다. 오래된 서원이나 정자에 수백 년 동안 홀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곱게 늙은 절집 한 모퉁이에 가부좌를 틀고 있다. 애초에 매화는 홀로 피어야 품격이 있다. 매서운 추위를 견딘 매화는 향기도 그윽하다. 깊은 산속에 저만치 홀로 핀 늙고 수척한 조선 매화 한 그루.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어도,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었다 진다.
조선 매화에도 등급이 있다. 우선 어린 것보다 늙은 것이 귀하다. 살찐 것보다 마른 것을 더 친다. 매화뿌리가 만수산 드렁칡처럼 서로 얽혀야 좋다. 둥치는 껍질이 트고 구불구불 틀어져야 한다. 나무껍질은 검고 푸른 이끼가 수염처럼 늘어져 있어야 으뜸이다. 늘어진 이끼는 바람이 살랑거리면 마치 푸른 실이 너울거리는 것 같다. 나무껍질은 비늘 주름이 많은 게 최고다. 나뭇가지는 듬성듬성 해야 운치가 있다.
매화꽃은 다소곳이 오므린 것이 귀하고 활짝 벌어진 것은 덜 친다. 법정스님도 “매화는 반개, 벚꽃은 만개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매화 향기는 진한 것보다 맑고 은은한 게 으뜸이다. 이른바 ‘암향(暗香)’이다. 동터오는 여명의 향기가 가장 은은하고 그윽하다.
제일 늦게 피는 조선 고매에 반하다
그래서 매화의 으뜸은 조선 고매(古梅)다. 한적한 곳에 저만치 고고하게 홀로 피어 있는 늙은 매화. 만고풍상의 구불구불 늙고 검은 가지에서 어느 날 듬성듬성 화르르 등불처럼 토해낸 꽃. 바로 그런 꽃이 조선 고매의 품격이다. 꿈틀꿈틀하면서도 딸깍발이 같은 고집이 엿보이는 꽃.
내로라하는 조선 고매는 대부분 4월 10일 전후로 꽃이 핀다. 섬진강 주변의 농원 개량 매화보다 한참 늦다. 요즘 조선 매화 마니아들 중 성미 급한 사람은 1, 2월쯤이면 벌써부터 달뜬다. 안절부절못한다. 결국 매화 분재를 찾는다. 곁에 두고 감상할 수 있고 향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1501~1570)도 매화 마니아다. 매화에 관한 시가 무려 1백 수가 넘는다. 자신을 ‘참으로 매화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의 ‘진지매자(眞知梅者)’라고 칭하기도 했다. 매화를 끔찍이 여겼다. ‘매형(梅兄)’이나 ‘매군(梅君)’이라고 부르며 마치 친구처럼 대했다. 때론 신선으로 여겨 ‘매선(梅仙)’이라고까지 했다. 눈 내리는 겨울밤엔, 매화 화분을 앞에 놓고 “너도 한잔, 나도 한잔”하며 술벗을 했다. 말년에 병들어 눕게 되자 “매형(梅兄)에게 누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게 했다. 그는 섣달 초순 어느 아침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하고 눈을 감았다. 안동 도산서원엔 지금도 늙은 매화가 해마다 꽃을 피운다. 그 매화는 후손들이 이황 선생을 기려 심은 것이다.
산중 밤이 고요하고 사방이 비었는데/흰 매화 서늘한 달, 선옹이 짝했구나/앞 여울 높낮은 가락은/굽이굽이 음악 일다 -이황 ‘도산 달밤에 매화를 읊다’에서
1 안동 도산서원의 매화. 퇴계 이황은 매화를 사랑해 매화 관련 시만 1백여 수를 남겼다. 서원의 매화는 후손들이 심은 것이다. 2 막 피어나는 매화. 꽃잎이 둥글게 이어지는 것이 매화고, 꽃잎 끝이 톱니처럼 갈라져 있으면 벚꽃이다. 3 전남 순천 송광사 대웅보전 앞뜰에 핀 백매.
경남의 산청 3매, 호남의 5매
전남·경남에 늙은 선비를 닮은 매화가 많다. 거의 지리산 자락이다. ‘강의 물결은 바람으로 일고/지리산 꽃들은 신음으로 핀다(최영욱 시인)’던가.
우선 경남의 ‘산청 3매’가 있다. 정당매는 강회백(1357~1402)이 젊은 날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는 매화다. 강회백은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고위직까지 올랐던 고려 문인. 강회백의 손자가 조선 초기 문신 강희안(1418~1465)이다. 현재 3개 줄기가 말라죽고, 1개 줄기에서 어렵게 꽃망울을 밀어 올리고 있다. 홑꽃 백매지만 엷게 붉은빛을 띤다.
산청 단성면 남사마을에는 고려 말 문신 원정(元正) 하즙(1303~1380)이 심은 원정매도 있다. 원줄기는 말라 죽었으나 밑둥치 옆에서 가지가 나와 연분홍 겹꽃을 피운다. 원정공이 읊은 노래비도 있다.
집 앞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한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산청에는 ‘칼 찬 선비’ 남명 조식(1501~1572)이 심은 남명매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조식 선생이 61세 때 산천재 앞뜰에 심은 것이다. 처음엔 연한 분홍빛을 띤 흰색 겹꽃으로 피었다가, 점점 뽀얀 유백색이 된다.
조식은 이황과 동갑내기다. 하지만 생각은 전혀 달랐다. 조식은 선비가 글공부를 하는 것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에게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실행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라”고 강조했다. 그의 제자 중에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운 사람이 60여 명이나 됐다. 정인홍, 곽재우, 김면 등 3대 의병장이 모두 그의 제자다.
이황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이론으로만 추구했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착한 범생이 스타일이었다. 조식은 이황에게 충고의 편지를 썼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 뿌리고 빗자루질 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말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합니다.…십분 억제하고 타이르심이 어떻습니까?”
안동 도산서원엔 이황의 제자들이 심어놓은 도산매가 해마다 꽃을 피운다. 하얀 홑꽃이다. 이황과 닮았다. 강릉 오죽헌엔 율곡 이이(1536~1584)가 직접 가꿨다는 율곡매도 있다. 연분홍빛이 감도는 흰 홑꽃이다.
호남에도 오래된 조선 매화가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단연 호남 5매가 으뜸이다. 순천 선암사는 조선 매화 전시장이다. 그 유명한 선암매가 훤칠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1백~3백 년 매화만 무려 30여 그루다. 4월 봄날, 하루 종일 매화꽃에 취해 선암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 중에서도 원통전 담장 뒤에 홀로 서 있는 6백20여 살 된 백매가 으뜸이다. 천연기념물 488호. 둘레 약 70cm에 키가 11m나 된다. 무우전 담장 가운데 서 있는 홍매도 천연기념물이다. 5백50살 나이에 키가 12m. 성보박물관 왼쪽 돌계단 옆의 수백 년 백매들과 해우소 부근의 홍매와 백매, 무우전 돌담 옆에 죽 늘어서 있는 홍매, 백매 등 어화! 온통 매화 세상이다.
전남 장성 백양사 선원 향적전 뒤의 3백50살 고불매(古佛梅)는 천연기념물 제486호이다. 밑둥에서부터 세 줄기로 갈라져 있으며 담홍색 꽃을 피운다. 고불은 ‘인간 본래의 면목’이라는 뜻. 백양사는 고불총림(古佛叢林)이기도 하다. 향적전 벽에는 중국 고승 황벽선사의 시가 붙어 있다.
생사를 해탈함이 그 어디 쉬운가/사나운 소 코 꿰어 길들이듯 하라/눈서리 찬 기운 뼛속까지 사무친 뒤라야/매화꽃 향기 코를 찌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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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62년 남명 조식이 산천재(경남 산청) 앞뜰에 직접 심었다고 하는 ‘남명매’. 2 홍매는 백매가 살구나무와 섞여서 나온 것이다. 3 매화와 산수유꽃이 어우러진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의 봄 풍경.
전남 구례 화엄사 원통전과 각황전 사이 3백~4백 살 흑매(黑梅)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토종 매화 중에서 가장 붉다. 하도 붉게 피어 해질 녘 빛에 보면 검은색이 감돌아 흑매다. 작은 홑꽃이 우산처럼 퍼져 있다. 사진작가들이 검은빛을 잡기 위해 진을 친다. 길상암 연못가 대숲의 백매(천연기념물 485호)는 은은하고 강한 향기가 일품이다.
구례는 화엄사 말고도 매화 천지다. 운조루 뒤뜰의 백매, 곡전재 안뜰의 홍매, 매천사 입구 백매도 볼 만하다. 운조루는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99칸(현존 73칸) 집이다. 雲鳥樓는 ‘구름 위 새가 사는 집’이란 뜻. 남한 3대 길지의 하나인 이곳 금가락지 명당에 지어졌다. 앞에는 너른 들판이 있고 들판 너머엔 다섯 봉우리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운조루는 각종 민란과 동학,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았다. 그것은 명문가 문화 류(柳)씨의 ‘더불어 베풀며 사는 정신’ 때문.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나무 독에 쌀을 가득 채운 뒤,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한 것이다. 지금도 그 나무 독이 남아 있다. 독 아래쪽엔 ‘他人能解(타인능해)’라고 써 있는 마개가 있다. ‘그 누구라도 필요하면 마개를 돌려 쌀을 가져가라’는 뜻이다.
운조루 부근에 있는 곡전재도 가볼 만하다. 들판 한가운데 2.5m 높이의 호박돌 담장으로 빙 둘러싸인 한옥이 특이하다. 역시 금가락지 명당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안뜰에 1백 년이 넘은 홍매가 화르르 꽃을 틔우고 있다.
호남 5매 중에서 선암매, 고불매, 화엄사 흑매 등 호남 3매는 누구나 똑같이 꼽는다. 하지만 나머지 2매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보통 송강 정철이 살았던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와 전남대 교정의 대명매(大明梅)를 꼽는다. 계당매는 3백50년이 넘은 것으로 연분홍 겹꽃의 홍매와 흰 겹꽃 백매, 흰 홑꽃 백매 등 세 그루다. 대명매는 조선 중기 학자 고부천(1578~1636)이 명나라 황제로부터 받았다는 매화다. 원래는 고부천이 살던 담양에 있던 것을 1961년 당시 전남대 농과대학장이던 그의 후손 고재천 박사가 옮겨 심은 것이다. 연분홍 겹꽃이다. 담양 오래된 정자엔 어김없이 고매가 있다. 죽림재 1백10년 홍매, 명옥헌 원림의 1백 년 홍매, 독수정의 3백 년 전씨매, 미암종가 마당의 미암매 등이 그렇다.
최고는 달밤의 월매
광양 매화마을 입구에 봄나들이 관광객을 맞아 장이 섰다.
매화는 멀리서 보는 게 좋다. 매화 속에 파묻히면 하나하나는 잘 보이지만, 꽃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작은 산에 가려 큰 산을 못 보는 것과 같다.
선비들이 제일로 친 매화는 무엇일까. 단연 달밤에 보는 매화, 월매(月梅)다. 달빛에 어린 매화는 몽환적이다. 맑고 푸르고 서늘하다. 선비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 당연히 홍매보다는 백매를 더 친다. 맑고 푸른 기운이 나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홍매보다 백매가 좋고, 겹꽃보다는 홑꽃이 더 고상하다. 백매 중에서도 꽃받침이 녹색인 홑녹매가 으뜸이다”라고 했다.
‘남은 해 몰아 봄바람 만들고자 하나/다만 남은 추위 속 몇 개 매화 만들었네/듬성듬성 남은 꽃 잡고 눈과 다투지 말라/맑고 고운 자태는 달빛 속에 숨어 있나니 -송준길(1606~1672)
옛 조선 선비들은 매화를 대부분 사랑방, 누각, 정자 부근에 심었다.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 삼아, 숨어 사는 게 선비들의 평생 꿈이었다. 달빛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밤, 사위가 쥐죽은 듯한 정자에서 매화에 둘러싸여 책 읽는 선비. 사랑방 영창 창호지에 드리워진 매화꽃 그림자. 동틀 무렵, 살며시 벙글은 매화꽃 암향. 그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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