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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 간호섭 최은석 3인 3색 크리에이터

창조적 삶으로 향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자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현일수 기자

입력 2012.03.16 14:34:00

지난해 10월 아이폰이라는 마법의 사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중독시킨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후에도 창조라는 화두는 지속적으로 되새김질되고 있다. 어떤 이는 창조적이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아이를 창조적으로 키워야 미래 세대에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두 음절의 단어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가이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 시대 최고의 크리에이터 3인이 창조적 삶으로 향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자를 자처했다. 왜, 지금 창조인가.
박웅현 간호섭 최은석 3인 3색 크리에이터


서울 종로구 통의동 골목에는 몬드리안의 검은 직선, 빨간색 면, 파란색 면 추상화를 모티프로 외벽을 꾸며 주변에 비해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현대 미술을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여는 대림미술관이다. 이곳에서 2월3일 박웅현, 간호섭, 최은석 등 우리나라 대표 크리에이터 3인의 대담이 열렸다. 3월18일까지 열리는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사진전’과 연계된 행사여서인지 크리에이터로서 라거펠트의 사례를 자주 언급했다.
KTF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SK에너지 ‘생각이 에너지다’ 등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광고 카피를 만든 TBWA KOREA의 박웅현 ECD(최고광고책임자·51),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명품 독설을 선보이는 간호섭 홍익대학교 패션디자인과 교수(43), 4D 테마파크 ‘라이브파크’를 제작한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회사인 디스트릭트 홀딩스를 이끄는 최은석 대표(38)까지 각 분야에서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세 사람이 이번 여행의 안내인 역을 맡았다. 각자에게 먼저 창조의 의미와 창조로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박웅현: 창조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는 방대해요. 우선 예술 영역에서의 창조와 산업 영역에서의 창조로 나눌 수 있죠. 산업 영역에서의 창조는 바로 디자인이에요. 이때 예술은 표현이고, 디자인은 배려라고 볼 수 있죠. 특출 난 디자인임에도 성공하지 못한 제품들이 있는 것은 그 제품에 시대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뭔가 결핍됐기 때문이에요. 배려 있는 디자인은 성공해서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주니, 창조가 돈을 만든단 말이 맞는 거겠죠.
간호섭: 예술적인 창조와 상업성 그 사이에 있던 사람이 칼 라거펠트예요. 그는 샤넬과 펜디, 클로에를 이끌면서 1년에 총 12번의 런웨이를 지휘하죠. 자신만의 하우스 브랜드가 없기에 라거펠트를 창조적이라고 보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면서 전통 브랜드를 이노베이션했고, 디렉터라는 개념을 패션에서 확립했어요. 또 다른 의미에서 창조를 한 거죠. 이를 통해 그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어요.
최은석: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에 연관검색으로 나올 단어는 뭐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노베이션’이라 생각합니다. ‘인벤트(발명)’가 아니고요.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발명하지는 않았어요. 기존 선박을 개조해서 전투에 용이하게 사용했는데, 그게 성공한 거죠. 돈이 아닌 명예를 위한 장인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발명 자체는 돈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회가 원하는 것은 ‘이노베이션’ 즉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발전시켜나가는 거예요. 사회가 원하는 것은 곧 돈이 되는 것이고, 돈이 되면 영향력이 커진다고 생각해요.

사소함에서 특별함 찾아내는 ‘촉’을 키워라

박웅현 간호섭 최은석 3인 3색 크리에이터

박웅현





창조를 통해 돈을 벌고 싶은가. 그렇다면 크리에이터가 돼라.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어떤 소양이 필요할까. 단순히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가지고는 이 시대가 원하는 크리에이터가 될 수 없다.
간호섭: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먼저 조성돼야 해요. 존중받을 경우에는 뭘 해도 신나지만, 여기까지만 가능하다고 제한을 둬버리면 원하는 결과물을 낼 수 없어요. 가둬둘수록 사고의 폭이 좁아지거든요. 두 번째로 될 수 있으면 많이 나가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저도 될 수 있는 한 여행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오지도 많이가요. 어린 시절, 특히 학생 때 여행 떠나는 게 가장 좋아요.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나이대별로 받는 자극이 다 다르거든요.
최은석: 4H가 있어야 유능한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이브리드(Hybrid)예요. 요즘 들어 통섭이니 컨버전스니 융합이니 이런 이야기가 뜨면서 인문학과 예술, 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어야 하고 세상만사에 능통해야 하며 철학도 공부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주문하죠. 한 가지만 잘하는 것보다 다방면에 능통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둘째 뜨거운 심장, 하트(Heart)죠. 햇살이 밝다고 문득 눈물 흘릴 수 있는 감성이 필요합니다. 셋째 인간성(Humanity)입니다. 인간적이어야 하고 대화도 더 잘 통해야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거든요. 마지막으로는 건강(Health)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해요. 수면욕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 결과물이 이리저리 깨져도 울지 않을 수 있는 강인한 인내력, 감기 및 기타 질병에 걸리지 않을 면역력, 50세까지 주 60시간 근무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녀야 성공한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을 겁니다(웃음).
박웅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촉수라 하는데 이게 가장 필요합니다. 시인이건 영화감독이건 누구에게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똑같잖아요. 하지만 도종환 시인은 길 가다가 담쟁이를 보고 ‘담쟁이’라는 멋진 시를 지어내 저를 울립니다. 저는 담쟁이를 보면 ‘예쁘다’ 하고 끝나는데, 시인을 통하면 담쟁이가 누구보다도 특별해집니다. 그 앞에서 더 아름답고 특별하게 보이는 걸까요? 아닙니다. 사소한 것들 사이에서 특별함을 잡아낼 수 있는 촉수를 지녀야 진정한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보고 또 보고, 본인만의 색을 찾을 때까지

박웅현 간호섭 최은석 3인 3색 크리에이터

간호섭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물로 꼽는 것은 바로 ‘촉수’. 같은 것을 다양한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면 남들보다 더 창조적이 되려면 이 촉수를, 어떻게 키우고 사용해야 하는 걸까?
박웅현: 촉수를 민감하게 하는 방법은 결국 소양을 쌓는 것밖에 없어요. 작품을 봐도 어떤지 잘 모르겠다면 ‘서양미술사’ 같은 책을 읽거나 도슨트의 도움을 받으면 좋아요. 아는 게 많을수록 보입니다. 감동은 억지로 짜내려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 박웅현씨는 ‘또래에 비해 인풋이 많다고 자부하는데 원하는 만큼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라는 스물 한 살 대학생의 질문에 소양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죠? 지금 아웃풋 할 때가 아니예요. 계속 인풋하세요. 그러다보면 기회가 분명히 와요. 재능은 스퀴즈 아웃, 즉 짜내는게 아니라 흘러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다 짜내고 일찍 죽을게 아니라면 아웃풋을 생각지 마세요.”
간호섭: 인생을 다이아몬드에 비유하곤 해요. 다이아몬드의 품질을 결정하는 4C를 통해서요. 첫 번째가 캐럿(Carat),
바로 중량입니다. 그 다음이 컷(Cut). 어떻게 연마를 했냐는 거죠. 깎지 않은 10캐럿과 잘 연마된 1캐럿 중 어떤 것이 더 가치 있을까요? 스스로 다듬으면 그만큼 더 빛이 난다는 말과 같죠. 세 번째로 컬러(Color)예요. 다이아몬드도 블루, 화이트, 옐로, 핑크 등 여러 가지 색이 있죠. 본인만의 색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투명도(Clarity)예요. 저는 창조의 출발이 순수라고 여겨요. 이는 인간성의 순수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협업이 중시되므로 더더욱 자기 자신에 대한 순수를 찾는 것이 곧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과정인 거죠.
최은석: 저는 아이디어를 짜낼 때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막혀요. 그럴 때마다 제가 행한 것들은 바로 앞서 박웅현님이 말씀했던 소양과 비슷해요. 저는 잘 안 될수록 지쳐 나가떨어질 만큼 벤치마킹을 해요. 설치미술이건 사진이건 영상이건 3천 개 가까이 쭉 보면서 머리에 저장하죠. 무언가를 집어넣어야 새로운 것을 꺼낼 수 있으니까요. 그 다음에는 자신을 깎아요. 생각이 날 때까지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밤을 새요. 직원들이 할 일 없는데 왜 야근하느냐고 투덜거리긴 하지만, 데이터를 앞에서 바라보고 돌려보고 하면서 제 영혼을 반추하다 보면 새벽녘 ‘아?’ 하고 어렴풋이 생각이 떠올라요.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해요. 스태프랑 회의를 할 때 주제를 갖고 하기보다는 어떠한 키워드를 툭 던져요. 그럼 그들의 대화에서 나오는 몸짓, 눈빛이 제 영혼을 툭툭 건드리는 거죠. 그리고 본질적인 ‘촉’이라는 것이 그 나머지를 차지하죠. 크리에이터로 살려면 지속적으로 나를 깎고 수련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자신만의 본질과 변신에 대해

박웅현 간호섭 최은석 3인 3색 크리에이터

최은석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해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헤매지 않는다. 이 여행길에서 우리가 찾고 또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목적. ‘어떻게 남들과 달리 창조적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간호섭: 칼 라거펠트의 특징이 뭘까요? 백발을 뒤로 묶어 만든 꽁지머리와 몸에 딱 달라붙는 까만 슈트죠. 유명 디자이너인 장 폴 고티에 역시 스트라이프 세일러복을 고집해요. 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유는, 디자이너는 내면뿐 아니라 외면 역시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죠. 칼 라거펠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이란 여기에서 출발해요. 샤넬의 진주와 퀼팅 백, 클로에의 모던한 여성 이미지, 펜디의 럭셔리한 퍼 자체는 각 브랜드의 고유 가치입니다. 하지만 이들 브랜드를 진두지휘하는 칼 라거펠트는 자기 중심이 있는 디자이너로 이들의 고유성을 간직한 상황에서 어떠한 브랜드나 아이템이 와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고 자신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거죠.
박웅현: 그게 바로 본질입니다. 에르메스가 옛날에 냈던 광고 문안인데, 패션 브랜드에서도 이런 문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기억에 남더라고요. ‘Everything changes, Nothing changes.’ 모든 것이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단지 그 포장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자신만의 본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박웅현 간호섭 최은석 3인 3색 크리에이터

창조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강연에 녹아들었다.



최은석: 본질 뒤에 나올 단어는 변화와 변신이라고 봐요. 최근 요구되고 있는 것이 바로 본질을 통한 끊임없는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시대 흐름이 빠르지 않아서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틀을 바꿀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압축성장하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세상에 대한 메시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를 말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가 원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봅니다.

세 사람의 안내는 여기까지다. 아직도 방향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박웅현씨가 팁을 더했다.
“후회는 또 다른 잘못의 시작일 뿐입니다. 답은 내 앞에 있습니다. 아니면? 없습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속에서 멋진 답을 찾으면 뭐합니까? 저는 죽어라고 광고에서 답을 찾을 겁니다. 이 시간 제 앞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찾을 겁니다. 자존을 지키고, 내 앞에 답이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2월20일 미국 LA 출장 중이던 최은석 대표가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크리에이티브와 열정으로 달리던 그의 명복을 빈다.

여성동아 2012년 3월 5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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