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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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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의 고향에 대한 애매한 정의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 | 유디트

2012. 03. 09

한국 사람의 고향에 대한 애매한 정의


1_ 설에 시댁에 다녀온 후 어느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조용히 일어났다. 남편은 계속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두꺼운 오리털 점퍼를 입고 마루에 걸터앉아 집 맞은편 산 위에서 해가 뜨는 것을 바라봤다. 일출이 아름다웠다. 그 순간 세상에서 나만 저 태양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해가 우리 집 건너편에 있는 육백산 위에 떴을 때,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하는 듯했다. 태양이 고향을 멀리 두고 떠나온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해가 점점 더 높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나는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한국에 온 지 11년 됐고, 영동 지역으로 이사 온 지도 거의 5년이 됐다. 처음 한국에 와서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았을 때는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시끄럽고, 매일 정신없이 바뀌는 서울은 나에게 무서운 괴물 같았다. 그러나 이곳으로 이사 온 후부터 이 나라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육백산 위의 일출, 산 위에 펼쳐져 있는 넓은 하늘, 소나무의 상쾌한 향, 이 모든 것들이 매일 아침 나를 환영해주었다. 내가 앞으로도 영원히 여기에 머물러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끔 독일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해도 이젠 독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 ‘나의 미래의 고향’을 찾은 것이다. 머지않아 나는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영동 사람이다.”

한국 사람의 고향에 대한 애매한 정의

육백산이 보이는 유디트 삼척 집 풍경.



2_ ‘나의 미래의 고향’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독일에서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한국 친구를 소개해줘 한국 문화와 음식 그리고 사고방식에 대해 점차 알게 됐다. 한국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 무렵이어서 한국 사람과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번은 한국 학생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유학생도 있었다. 남편이 그 사람과 인사를 나누다가 갑자기 눈에 띄게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당시 나는 한국말을 전혀 못했으므로 남편이 그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물어봤다.
“그 사람 누구야? 아는 사람이었어?”
“아니, 오늘 처음 만났어. 원주에서 온 사람이야.”
“원주는 어디야?”
“강원도. 나와 같은 고향이지. 좋은 사람인 것 같아. 한번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면 어떨까?”
“그래, 좋아.”

남편은 나와 처음 연애할 때부터 ‘강원도 고향’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남편은 독일에 있을 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살고 싶은 곳은 내 고향 강원도야. 강원도는 나의 영원한 고향이야. 그러니까 나는 강원도 사람이지.” 남편은 자기의 고향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여러 번 자랑했다. 고향은 높은 산이 많고 산 위에 펼쳐진 하늘이 유난히 맑은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나는 ‘강원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스위스와 가까운 남부 독일에도 멋있는 산이 많은데 이상하게도 남편과 연애기간이 길어지면서 강원도에 있는 산이 독일의 산보다 예쁠 것이라 믿게 되었다. ‘강원도 전체’가 남편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나도 독일에 있을 때부터 저절로 ‘강원도’를 ‘무턱대고’ 사랑하게 됐다. 나는 독일에 있을 때부터 이미 ‘반쪽 강원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남편이 독일에서 고향 친구를 알게 된 그날, 나도 기뻤다. 남편은 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가끔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향수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고향 사람도 생겼으니까 남편이 덜 외로워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원주에서 온 강원도 사람’과 자주 만났고 점점 친해졌다.

한국 사람의 고향에 대한 애매한 정의


3_ 1년 후 우리는 한국으로 이사 왔고 나는 드디어 ‘남편의 고향 강원도’를 방문했다. 강원도를 방문한 후 나는 남편의 사고방식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이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고 삼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삼척에 갔을 때 남편은 곳곳을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도 삼척을 자세히 소개해줬다. 그런데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고향이 강원도’라는 말이 왠지 틀린 것 같았다. 삼척을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가 탄 차가 ‘원주’를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원주와 삼척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게 됐다. 남편에게 원주에 대해 물어봤다. 남편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잘 모르는데. 난 원주에 가본 적이 없어. 아? 치악산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남편의 대답을 듣고 나는 즉시 대꾸했다. “그런데 왜 자꾸 강원도가 네 고향이라고 말해? 네 고향은 삼척이잖아. 그리고 왜 원주 사람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보다 빨리 친해지지? 삼척에서 원주가 얼마나 멀어?? 완전히 다른 지역이잖아. 독일에서 원주 사람을 만나자마자 네가 그 사람을 ‘고향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난 원주가 삼척 바로 옆에 있는 줄 알았잖아….” 남편이 다시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다 강원도 사람이지, 뭐.”
그때 이후 나는 남편과는 다른 고향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 나는 ‘강원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강원도 사람’이라며 고향을 강원도라고 말하는 것이 나에게는 이상하다. 나는 강릉 사람이 경포해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산 앞바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부산 사람의 이야기는 기꺼이 듣고 싶다. 하지만 ‘경상도가 고향’이라며 경상도 전체에 대해 얘기하는 경상도 사람은 이상하다. 목포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목포 사람의 이야기는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듣고 싶다. 하지만 ‘전라도가 고향’이라며 전라도 전체에 대해 얘기하는 ‘전라도 사람’의 얘기 역시 이상하다. 고향을 서울,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의 7곳으로만 나눠 말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역사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삼척과 강릉을 오가며 살고 있는 나는 ‘영동 사람’이지 강원도 사람이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나는 삼척 사람이다. 원주나 영월은 잘 모르지만 삼척에 있는 육백산 위에 매일 뜨는 해를 내가 잘 알고 있고, 육백산 위에 뜨는 바로 그 해 역시 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의 고향에 대한 애매한 정의


유디트씨(41)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러스트 | 한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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