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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Global edu talk

‘만능 부모’ 권하는 중국 사회

글·사진 | 이수진 중국 통신원

2012. 03. 08

‘만능 부모’ 권하는 중국 사회


“지금 이 정성으로 공부했으면 하버드대에라도 들어갔을 텐데.”
아이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는 요즘 중국 부모들의 과장된 푸념이다. 오죽하면 부모 노릇 제대로 하기가 ‘18반 무예’ 수련에 버금간다는 말이 나올까. 어문, 영어, 수학 등 학과 공부는 물론 피아노, 서예, 테니스 등 각종 예체능 분야까지 아이를 가르치면서 부모도 함께 배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학창 시절에도 안 하던 노력을 뒤늦게 기울이며 애쓰는 것, 바로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 빚어낸 ‘기적’이다. 이들 부모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일단 학원이나 도장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려오고 할 바에야 ‘한번 같이 해보자’는 ‘취미형’,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 위해 배우는 ‘지도형’, ‘아이가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떡이라도 썰겠다’는 ‘동반자형’ 등이다.

‘만능 부모’ 권하는 중국 사회


장씨는 아들이 네 살 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간당 80위안(한화 약 1만4천원)인 1대 1 수업 시간 동안 장씨는 뒤에 서서 어깨너머로 함께 들었다. 수업 내용이나 선생님의 주의 사항을 메모했다가 아이가 연습할 때 이를 되풀이하던 그는 내친김에 자신도 피아노를 배웠다.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피아노 5급 시험에 통과했고 장씨는 7급을 땄다. 아이는 엄마라는 경쟁자를 의식해서 더욱 열심히 하고, 공통의 관심사가 생겨서 대화거리가 늘어났다. 최근에는 학과 수업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이가 피아노 수업을 중단하자 장씨도 피아노가 시들해졌지만 아들과 함께 배우고 연습한 시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사업가 푸씨는 다섯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자신만의 교육 철학 및 방법을 공개한 블로그가 인기를 끌면서 아마추어 교육 전문가로 떠올랐다.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주입식 교육에 실망한 그는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대신 일주일에 하루는 박물관, 하루는 과학관 및 자연 탐방, 주말에는 온 가족 교외 나들이 및 등산 등 체험 학습 커리큘럼을 짜서 교육시키고 있다.

아이와 예체능 함께 배우고 과외교사 노릇에 숙제 도우미까지



‘만능 부모’ 권하는 중국 사회

중국의 한 학부모가 아이들을 오토바이에 앞뒤로 태워 등교시키고 있다.



직접 커리큘럼을 짜거나 ‘페이스메이커’ 수준을 넘어 아예 아이의 몫을 대신 해주는 부모도 있다. 안쓰러워서 혹은 아이가 서툴러서라는 이유로 숙제나 과제를 대신 해주는 것이다. 천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의 숙제를 돕다가 자신의 손재주를 깨닫게 된 경우다. 자신의 땀이 밴 작품이 아이 이름으로 유치원에 버젓이 전시되자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전시회에 다녀온 뒤로 더 분발하게 됐다. 다른 집 아이들 작품이 더 근사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 솜씨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법한 선생님들은 누구 작품이 더 멋진지 품평하면서 오히려 이를 은근히 방조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딸을 영어 학원에 보낸 천씨는 이제 만들기에서 손을 떼고 영어를 배워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 중이다.
열한 살 샤오위(小雨)는 숙제를 마치고 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매일 한자 베껴 쓰기, 수학 시험지 2장 풀기 등 기본 숙제 외에 시험 점수 90점 이하는 시험지를 통째로 한 번 베껴 쓰고 다시 한 번 풀어야 하고, 받아쓰기 틀린 것은 집에서 한 번 더 해봐야 한다. 중학교 교사인 엄마가 안쓰러운 마음에 조금씩 숙제를 대신 해준 것이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쓰고 아이가 베껴 쓰게 하던 것이 지금은 엄마가 아들 필체를 흉내 낼 정도로 발전했다. 샤오위의 엄마는 아이가 선생님에게 칭찬받으니 이제 숙제를 대신하는 것을 멈추기 어렵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를 돕는 듯 보이는 일이 결국은 아이를 망치는 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아이는 실제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감을 키울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런 부모일수록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 하는 보상 심리도 강하다. 결국 한시도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하는 ‘헬리콥터 부모’가 되기 십상이다. 아이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생활을 보고 배운다. ‘책 읽어라’ 하는 소리보다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 백 번 옳다. 다만 부모가 아이와 반드시 같은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부모가 부모의 삶에 충실하고 열심인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닐까.

이수진씨는…
문화일보에서 14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 2010년부터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로서 인민화보 한글판 월간지 ‘중국’의 한글 책임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중1, 초등6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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