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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Global edu talk

자식 위해 눈물겨운 희생, 보더맘을 아시나요?

글·사진 | 김숭운 미국 통신원

2012. 03. 08

자식 위해 눈물겨운 희생, 보더맘을 아시나요?


‘그는 보더맘이다. 주중에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달려가서 (국경 검문소) 맨 앞에 줄을 선다. 오전 5시가 돼서 딸이 도착하면 그는 딸에게 줄의 순서를 물려주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비로소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출근 준비를 한다.’
이는 1월17일자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한 ‘보더맘(Border Mom)’의 이야기다. ‘보더맘’이란 말 그대로 미국 국경과 접한 멕시코에 사는 엄마들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미국에서 출산했으나 경제적 이유 혹은 불법체류를 하다가 발각돼서 멕시코로 추방당한 사람들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인 티후아나와 시우다드후아레스에 몰려 산다.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국경 도시마다 수백 명 이상의 보더맘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식 위해 눈물겨운 희생, 보더맘을 아시나요?


보더맘들은 미국 시민권자인 자녀들을 멕시코가 아닌 미국의 학교에 보낸다. 교육 여건이나 시설, 대학 진학 등 모든 면에서 미국 학교가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통과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도 까다롭다. 학생들이 제시간에 국경을 넘어 학교에 가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엄마들이 그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엄마의 희생에 힘입어 아침 6시에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딸은 걸어서 국경을 건너고, 버스를 두 번 이상 갈아타야 학교에 도착한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는 절차도 비슷한 과정과 시간이 걸린다. 보통 아이들 통학에 소요되는 시간은 5~6시간. 자식들이나 부모나 처절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새벽 2시 국경 검문소에 줄을 서는 멕시코 엄마들



자식 위해 눈물겨운 희생, 보더맘을 아시나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티후아나 국경 검문소에 길게 줄 서 있다.



보더맘들의 고통은 이런 육체적인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 보더맘의 아이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은 불법이다. 아이들이 미국 시민권자라고는 하지만, 미국의 공립학교는 국가가 아닌 마을 단위의 타운에서 걷는 세금으로 운영된다. 각 타운에서는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재산세의 일부로 교육세를 부과하고 그 돈으로 공립학교를 운영한다. 타운 거주자가 아닌 학생들이 다니면 교육위원회는 그만큼 더 많은 교육 예산이 필요하고 결국 재산세가 늘어난다. 주민들은 부동산의 1.5~2% 선에서 부과되는 교육세 증감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각 타운에서는 가짜 거주자(학군 위반자)를 찾아내기에 혈안이 돼 있다. 결국 보더맘들은 미국에 사는 친척들에게 돈을 주고 주소를 빌리거나 방 한 칸을 얻어 자신의 이름으로 전기와 가스 시설을 개설하고 요금을 지불하는 등 편법까지 동원해 아이들을 미국 학교에 보내고 있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것이 적발되거나 비거주자인 것이 밝혀지면 그동안 혜택을 봤던 학비 전액을 납부해야 하는 위험 부담도 안고 있다. 가끔 조기유학을 온 한국 학생들이 학군이 좋은 뉴저지나 롱아일랜드에서 비거주자로 간주돼 벌금을 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줄을 서는 멕시코 보더맘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부모의 마음은 세계 어디서나 다 같은 모양이다.

김숭운씨는…
뉴욕시 공립 고등학교 교사로, 28년째 뉴욕에 살고 있다. 원래 공학을 전공한 우주공학 연구원이었으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전직했다. ‘미국에서도 고3은 힘들다’와 ‘미국교사를 보면 미국교육이 보인다’ 두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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