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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낭창낭창 휘적휘적 가고 싶은 길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글 | 김화성 동아일보 전문기자 사진 | 김종식(강진군청) 제공,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03.05 17:40:00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활짝 핀 동백. 2 천연기념물 제151호인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봄꽃의 북상 속도는 하루 20km. 가을 단풍의 남하 속도는 하루 25km. 봄은 더디 오고 가을은 쏜살같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한순간. 해마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금세 더워지기 시작한다. 봄이 오면 쉬이 갈까 두렵고, 봄꽃이 피면 곧 질까 또 걱정스럽다.
도대체 봄은 언제부터 봄인가. 입춘(올 2월4일)부터인가. 아니면 양력 3월부터인가. 입춘은 왜 한자로 ‘들일 입(入)’의 入春(입춘)이 아니고, ‘설 립(立)’의 立春(입춘)일까. 그렇다. 입춘은 그저 ‘봄기운이 들어섰다’는 뜻일 뿐이다. 결코 ‘봄이 시작되는 날’이 아니다.
24절기는 고대 중국 황허 강 주변인 화베이(華北)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화베이 지방은 위도가 북위 34.8도로 우리나라 제주도(33~34도)와 부산(35도) 사이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전라남도 강진·해남과 경상남도 남해·통영과 비슷한 위치다. 한참 북쪽에 사는 서울(37.6도) 사람들이 입춘에 봄을 느끼기는 힘들다. 봄이 와도 도무지 봄 같지 않은 것이다(春來不似春).

하루 평균 기온 5도 넘어야 진짜 봄
기상학적으로 봄은 ‘하루 평균 기온이 5도가 넘을 때’를 말한다. 우리나라 최근 30년간(1981~2010) 하루 평균 기온이 5도가 넘어선 날은 3월12일이었다. 입춘 지난 뒤 무려 36~37일이나 걸렸다. 서울은 입춘 뒤 39~40일 지난 3월15일에야 5도를 넘었다. 이에 비해 부산은 입춘 뒤 7~8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올해 경우 부산보다 아래인 강진·해남 통영은 2월10일 이전에 이미 봄이 상륙했다는 계산이다.
지난 30년간 입춘 날 평균 기온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남한) 전체로는 영하 1.5도, 서울은 영하 2도를 기록했다. 중부 지방인 청주(-1.9도)와 비슷했지만 광주(0.7도) 강릉(1.0도) 부산(3.1도)보다 훨씬 추웠다. 입춘 날 봄 날씨를 보인 것은 제주(5.2도)가 유일했다. 제주엔 진작부터 봄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다.
봄은 한반도 아랫도리에서부터 온다. 전남 강진·해남과 경남 통영이 바로 그렇다. 그곳은 한반도의 튼실한 밑동아리다. 질펀하고 너른 갯벌이 악착같이 바다에 뿌리박고 있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 차르르? 차아~ 철썩?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닷 물소리, 끼룩대는 갈매기 떼, 눈부시게 부서지는 은빛 햇살…. 그곳은 생명 가득한 이 땅의 자궁이다. 꼬물꼬물 까르르 웃어대는 ‘아기들의 궁전’이다.

/ 강 / 진 /
뻘밭에 봄 내음 질펀하구나
월출산은 우뚝우뚝 뼈로 서 있다. 너른 벌판에 홀연히 자리 잡고 있다. 전남 나주·영암에선 우람한 월출산 등짝이 보인다. 씨름 선수 등판 같다. 어깨 등뼈가 완강하다. 봉우리 암벽이 고기비늘처럼 반짝인다. 밤새 얼었던 바위얼음이 봄 햇살에 파드닥거린다. 강진에서 월출산은 앞가슴 쪽이 보인다. 영암에서 보는 등 쪽이 굵고 뭉툭하다면, 강진에서 보는 앞쪽은 선이 가늘고 화려하다. 바위 봉우리가 왕관처럼 뿅뿅뿅 솟았다.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천황봉(809m)은 그 정점이다.

제주 유배를 떠나는 이들이 넘던 누릿재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강진에는 ‘월(月)’자로 시작되는 동네가 많다. 신월, 상월, 월남, 월하, 월송, 대월마을이 그렇다. ‘월(月)’은 월출산을 뜻한다. 월출산 남쪽 마을이 ‘월남’이고 월출산 아래가 ‘월하’다. 월남마을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던 천년이 넘는 동네다. 월남사 터엔 3층석탑이 묵묵히 서 있다.
1801년 겨울, 귀양길에 나선 다산 정약용은 누릿재(황치·黃峙)에 닿았다. 누릿재는 영암과 강진을 가르는 황토고개. ‘강진 귤이 누릿재 넘어 영암에 가면 탱자가 된다’는 바로 그 고개다. 1840년 9월 추사 김정희도 바로 누릿재를 넘고 강진·해남을 거쳐 제주 유배를 떠났다. 강진·해남 선비들이 한양 가는 길도 그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정약용은 죄인 신분이었다. 발아래 강진 읍내 초가집들이 굴 딱지처럼 닥지닥지 엎드려 있었다. 짭조름하고 알싸한 겨울 바닷바람이 얼굴을 아프게 때렸다. 문득 오른쪽을 보니 월출산의 바위 봉우리가 보였다. 마치 한양에서 보는 도봉산 만장봉 자운봉 봉우리 같았다. 그때 이 시를 썼다.

누리령 산봉우리는 바위가 우뚝우뚝/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게/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은지

현재 누릿재는 우거진 나무와 풀로 지워졌다. 옛 서낭당 자리도 사라졌다. 월출산국립공원 야생화단지에서 흔적을 더듬어 올라가야 한다. 요즘은 동네 촌로들만 운동 삼아 넘나든다. 고개는 가파르지 않고 밋밋하다.

누릿재~월남마을~월하마을~성전삼거리 15km
누릿재에서 내려오면 신월, 상월마을이다. 그 아래가 바로 천년이 훨씬 넘은 월남마을이다. 큰 절집 월남사가 있었던 곳이다. 월남사 터는 월출산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자리다. 정약용도 누릿재에서 월남마을을 지나 무위사~월하마을~성전삼거리로 내려갔다. 누릿재~성전삼거리는 약 15km 거리.
무위사(無爲寺)는 화장기 없는 절이다. 육자배기 주막집 주모처럼 선하게 웃으며 맞는다. 극락보전(국보 제13호)도 소박하고 단아하다. 절 마당 매화 꽃망울은 탱탱 불어터져 금방이라도 벙글 듯하다.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이 유난히 풍만하다. 섹시하다. 봄바람이라도 난 걸까. 마치 콧노래를 부르는 듯, 차림새가 날아갈 것 같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봄을 가득 품고 있는 강진의 너른 들판.



남포마을~해창마을 강진만 둑길 따라 4km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강진만 서쪽 해안도로인 23번 국도 끝에 있는 마량항.



강진의 봄은 색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황토는 촉촉이 젖어 더욱 붉다. 연둣빛 보리들이 우우우 종주먹질을 해댄다. 누런 강진만 갈대 숲이 바람에 뒤척인다. 파릇파릇한 마늘밭이 싱그럽다. 강진만 넘어 겹겹이 이어지는 산과 산들이 아슴아슴하다. 검은 갯벌과 그 너머 바다가 뿌옇다. 논두렁 마른풀 타는 냄새 고소하다. 저녁밥 짓는 냄새도 구수하다. 강진만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가슴을 흔들었다. 상큼한 매생이 냄새가 묻혀 있다. 검고 차진 뻘흙이 잔뜩 버무려져 있다.
남포마을 입구~해창마을까지 강진만 둑길을 따라가는 길(4km)은 온몸으로 봄바람 샤워를 하는 곳이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철새들이 갯벌에 코를 박고 있다. 고니 떼들이 한낮 갯벌에 엎드려 죽은 듯이 자고 있다. 보초 한 마리만 눈을 뜨고 경계를 편다. 해 질 녘이 되면 일제히 일어나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난다. 육지는 늘 바다에 발을 적신다. 그리고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엔 만(灣)을 만든다. 강진만도 발가락 틈새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봄은 바로 그 발가락 틈새로 흠뻑 젖어온다.

다산초당 앞바다~동쪽 18번 군도 24km
다산초당 앞바다에서 시작하는 동쪽 해안도로(18번 군도)는 어찔어찔 멀미 나는 ‘봄길’이다. 길이 24km. 길은 바다 옆구리에 바짝 붙어 있다. 관중석과 경기장이 붙어 있는 축구 전용 경기장 같다. 이 길 따라 땅끝마을 해남이 나온다. 연둣빛 바다, 연둣빛 아기보리밭, 파릇파릇 마늘밭, 아릿한 푸른 하늘, 노란 갈대 숲. 강진만 넘어 겹겹이 이어지는 산과 산들의 아슴아슴한 능선. 느릿느릿 걸어도 4~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걷다 보면 봄 바다의 여린 숨소리가 들린다. 새콤 달착지근한 바다 냄새가 난다. 나른한 봄볕에 눈꺼풀이 한순간 무거워진다.
강진만 서쪽 해안도로는 23번 국도다. 칠량~고려청자도요지~마량으로 이어진다. 칠량은 바지락과 전통 옹기가 유명하고, 마량(馬良)은 제주도에서 말을 실어 내린 곳이다. 서울로 말을 보내기 전에 살을 찌운 곳이라 해서 마량이라 불렀다. 앞바다엔 까막섬이 있다.
이 길도 봄빛 가득 연두색이다. 언뜻언뜻 푸른 보리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은빛 바닷물이 눈부시다. 하지만 번잡하다. 자동차들이 수시로 오간다. 길도 맞은편 18번 군도처럼 바다에 바짝 붙어 있지 않다. 승용차 드라이브 코스로 괜찮다. 먼발치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저물녘 황금빛에 물든 바다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설움이 울컥 쏟아진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동백꽃의 꿀을 먹으며 수정을 해주는 동박새. 2 다산 정약용은 유배 시절 백련사의 혜장과 교류하며 학문과 시와 차를 논했다. 3 무위사의 봄을 알리는 홍매화. 4 다산초당 가는 길에 있는 두충나무 숲길.



다산초당~백련사 오솔길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17년여를 살았다. 그중 읍내에서 7년, 다산초당에서 10년을 살았다. 처음엔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동문 밖 주막집 할머니만 그를 따뜻하게 대했다. 다산은 그 주막집에서 4년 동안 얹혀살았다. 춥고 쓸쓸했지만 할머니의 정을 듬뿍 느낀 세월이었다.
다산이 숨통을 튼 건 1806년 강진읍 뒷산 암자 보은산방(고성사)에 묵을 때부터였다. 당시 해남 대흥사의 큰 학승이었던 혜장선사의 배려였다.
다산과 혜장의 사귐은 다산이 1808년 봄 다산초당에 있을 때부터 절정을 이뤘다. 혜장이 그곳에서 800m 떨어진 백련사에 거주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수시로 백련사 동백 숲을 지나 다산초당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오갔다. 학문과 시를 논하고 삶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기간은 3년이 채 되지 못했다. 1811년 곡차를 너무 좋아했던 혜장(39세)이 병으로 쓰러졌던 것이다.
백련사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들은 지난해 섣달부터 꽃을 피웠다. 이미 땅바닥엔 통꽃째 떨어진 핏빛 꽃잎들이 낭자하다. 푸른 잎사귀마다 윤기가 자르르하다. 동박새가 그 이파리 사이를 촉촉 조르르~ 분주하게 오간다. 앙증맞다. 3월 중순이면 피보다 붉은 수천수만 송이의 꽃들이 우르르 피어날 것이다. 윗녘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들은 4월 중순이나 돼야 슬슬 기지개를 켜고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다.
다산초당~백련사 오솔길엔 봄빛이 가득하다. 솔바람 솔솔 불고, 대숲 바람 삽상하다. 산새들도 부산하다. 다산과 혜장은 그 오솔길에서 길을 찾아 헤맸다. 그들은 과연 길을 찾았을까. 봄은 말없이 익어간다.
백련사 아래엔 대안학교 ‘늦봄문익환학교(2006년 개교 중·고통합형)’가 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라는 돌비석이 눈에 띈다. 고성사에서 영랑생가까지 가는 길도 봄 냄새가 물씬하다. 귤동리는 다산초당 아랫마을이다. 곽재구 시인은 그 귤동리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벽에 붙은 빛바랜 지명수배자 전단을 본다. 문득 다산 정약용이란 사내를 떠올린다.

정다산 1762년 경기 광주산/깡마른 얼굴 날카로운 눈빛을 지님/전직 암행어사 목민관/기민시 애절양 등의 애민을 빙자한/유언비어 날포로 민심을 흉흉케 한/자생적 공산주의자 및 천주학 괴수 -귤동리 일박.

유배지에서 부자 상봉한 정약용
고성사 보은산방과 다산초당에 깃든 사연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고성사 보은산방.

1805년 겨울, 정학연이 동문 밖 주막집에서 살고 있던 아버지 정약용을 찾아왔다. 꿈에 그리던 5년 만의 부자 상봉. 아들은 앙상한 새끼 당나귀에 의지해 천리 남도길을 내려왔다. 수염은 더부룩했고, 옷은 황토 범벅이었다. 정약용은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가 물었다. “올해는 무슨 농사를 지었느냐?” 아들이 대답했다. “밤나무 옻나무를 심고, 배추와 겨자도 심었습니다. 마늘 몇 이랑 심었는데 풍년이 들어 그걸 시장에 내다 팔아 그것으로 노자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그는 죄인의 몸. 우선 당장 아들 숙식부터 해결해야 했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귀양객에게 식구 하나 보태졌으니/내 재주로는 굶주림 구할 수 없어/…기구하게 절간에 찾아들어/구걸하는 안색이 비굴하네/다행히 반 칸짜리 방을 빌려/세 때 종소리를 아들과 함께 듣노라

정약용은 그해 겨울 고성사(高聲寺) 보은산방에서 큰아들과 함께 보냈다. 혜장선사의 배려였다. 혜장은 나이가 다산보다 열 살이나 아래였지만 학문 교류엔 나이가 문제 되지 않았다. 정약용은 겨우내 큰아들에게 ‘주역’과 ‘예기’를 문답으로 가르쳤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승암문답(僧庵問答)’이다.
둘째 아들 학유는 1808년 4월20일 정약용이 다산초당에 있을 때 찾아왔다. 7년 만의 만남이었다. 귀양 당시 15세였던 학유는 수염이 덥수룩한 22세 청년이 돼 있었다. 학유는 술을 좋아해 강진에 있던 다산이 늘 걱정을 했다. 작은아들은 후에 ‘농가월령가’를 지어 이름을 날렸다.


찾아가는 길
KTX : 서울 용산~광주(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버스), 서울 용산~목포(목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버스), 서울 용산~나주(나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버스)
고속버스 :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하루 6회(5시간20분 소요)
승용차 : 서울~서해안고속도로~목포~영산하구둑~영암방조제~77번국도~강진, 서울~호남고속도로~광주광산나들목~13번 국도~나주~영암~강진
먹거리
강진 이슬식당(해물탕, 자연산 장어 061-432-5181), 병영 수인관(연탄불고기백반·주꾸미 전문, 4인 한 상 2만4천원, 061-432-1027), 버스터미널 앞 해태식당(061-434-2486), 명동식당(한정식, 4인 한 상 10만원, 061-434-2147)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해남 땅끝마을. 2 땅끝 전망대. 3 해남 마늘밭.



/ 해 / 남 /
오메! 땅끝마을에 봄이 와부렀네!!
연초록 봄은 이미 땅끝 해남에도 상륙했다. 앞 섬들이 힐끔힐끔 뭍을 바라보는가 했더니, 한순간 우르르 떼를 지어 밀려왔다. 땅끝 전망대에서 좌우 해안 따라 이어진 77번 도로는 이미 봄의 점령군에 무너져 나른하게 맥이 풀렸다. 마늘밭은 초록으로 가득하다. 보리밭도 검푸르다. 아지랑이 떼들은 해남 읍내 벌판 논두렁에서 꼼지락거린다.
요즘 해남 땅은 새물내가 물씬 난다. 갓 빨래한 새 옷 냄새가 새록새록 우러난다.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면 손에 잡힐 듯 올망졸망한 섬들이 점점이 횡대로 떠 있다.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당일도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아뿔싸? 섬들은 이미 파릇파릇 봄이다.

땅끝 전망대 좌우로 77번 해안도로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해남 땅은 온통 붉은 황토다. 보리밭과 마늘밭이 그 붉은 황토밭에 굳게 뿌리를 박고 있다. 가녀린 연초록 싹들이 칼칼한 바닷바람에 이를 앙다물고 맞서고 있다. 바닷바람은 겨우내 아기보리, 아기배추, 아기마늘을 ‘검푸른 억센 풀’로 단련시켰다. 해남은 황토 흙의 부드러움과 꼬리뼈 같은 달마산의 강골이 버무려져 있다. 두륜산 대흥사는 아늑하다. 달마산 미황사는 소박하고 호방하다.
땅끝은 끝이 아니다. 바다의 시작이다. 아니다. 바다의 끝이자, 땅의 시작이다. ‘끝의 끝은 다시 시작(오세영 시인)’인 것이다. 땅과 바다가 그어놓은 ‘출렁 금’이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가슴이 울렁인다. 어찔어찔 머리가 어지럽다. 발바닥이 간질간질, 귓속이 우렁우렁 젖어온다.

땅끝에/왔습니다./살아온 날들도/함께 왔습니다./저녁/파도 소리에/동백꽃 집니다 -고은 ‘땅끝’ 전문

77번 해안도로를 따라 강진 쪽으로 걷다 보면, 전복 김 파래양식장이 햇살에 자글자글 빛난다. 통통배 어부들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해안 등성이 마늘밭 농부들은 황토 땅에 코를 박고 호미질에 바쁘다. 마을 어귀 당산나무 아래에선 동네 개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왁자하게 씨름판을 벌인다.
해남의 봄은 어느 길이든 다 좋다. 달마산(489m·송촌마을~송촌저수지~수정골~임도~관음봉~작은 바람재~미황사 3시간 코스)에 오르면 한쪽에선 남해 바다가 출렁이고, 또 한쪽에선 정갈한 해남 벌판이 눈을 반짝인다. 달마산은 남해바다와 평행으로 칼금을 내며 우뚝우뚝 늠름하게 서 있다. 작은 월출산이다. 팔짱을 낀 채 바닷바람을 완강하게 막아준다. 도솔암은 달마산 어깻 죽지에 새집처럼 매달려 있다.

명필 전시장인 대흥사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추사가 쓴 무량수각 현판.

추사는 1840년 제주 유배길에 대흥사의 초의를 찾았다. 추사가 물었다. “저 ‘大雄寶殿(대웅보전)’ 현판 글씨는 누가 썼는가?” 초의가 대답했다. “원교 이광사일세.” 추사는 “쯧쯧, 어떻게 글씨를 좀 안다는 자네가…”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초의에게 ‘无量壽閣(무량수각)’이라는 현판 글씨를 써줬다. 초의는 곧 이광사의 글씨를 떼어내고 추사의 글씨를 달았다. 추사는 1840년 9월27일 바로 해남 이진(梨津)에서 배를 타고 제주 유배길에 올랐다.
1848년 12월 추사의 귀양살이가 풀려 다시 대흥사를 찾았다. 추사가 초의에게 물었다. “저번 원교 이광사의 글씨는 어디 있는가?” 초의가 대답했다. “창고에 보관해뒀네” 추사가 말했다. “내 글씨를 떼어내고 그의 글씨를 다시 달아주게. 내가 그때는 잘못 보았네.”
8년여의 귀양살이가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추사를 부드럽고 넉넉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에는 원교 이광사의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왼쪽 승방에는 추사의 ‘무량수각(无量壽閣)’ 현판이 걸려 있다. ‘千佛殿(천불전)’ ‘枕溪樓(침계루)’도 이광사의 글씨다. 또 있다. 추사 당대 3대 명필 중 하나인 창암 이삼만의 ‘駕虛樓(가허루)’ 글씨도 있다. 정조대왕이 쓴 ‘表忠祠(표충사)’ 편액도 빼놓을 수 없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말한다. “원교의 글씨는 획이 가늘고 빳빳하여 화강암의 골기(骨氣)가 느껴진다. 손칼국수의 국숫발 같다. 추사의 글씨는 획이 살지고 윤기가 난다. 탕수육이나 난젠완쯔를 연상케 한다.”


대흥사의 구림장춘 십 리 길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대흥사 전경.



대흥사 주차장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길은 ‘오래된 숲길’이다. 이른바 ‘아홉 숲’에 ‘긴 봄’이라는 ‘구림장춘(九林長春)’이다. 4km에 가까운 십 리 길이다. 늙은 나무들이 아치형으로 나무 터널을 이룬다. 여름이면 햇볕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다. 두륜산(706m)은 대흥사를 품고 있다. 매표소~장춘동~대흥사~삼거리~북미륵암~천년수~만일재~두륜봉~~진불암~물텅거리골~표충사~대흥사 코스는 천천히 걸어도 4~5시간이면 충분하다.
두륜산은 영락없이 ‘누워 있는 부처님 형상’이다. 일지암은 부처님 머리 바로 아래에 목침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1786~1866)가 1824년 서른여덟 때 손수 짓고 42년 동안 머물렀던 암자다. 초의가 동갑내기 추사를 만난 것은 1815년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였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엔 5번이나 그를 찾아가 위로했다. 초의와 추사의 관계는 각별하고 허물이 없었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백수 늙은이가 가소롭게도 한때 절연할 생각까지 품었음을 고백하네. 나는 스님은 물론 스님의 글까지도 보고 싶지 않네. 다만 차와의 인연을 끊어버릴 수 없으니… 두 해나 쌓인 체납세를 보내시게.’

봄동은 ‘봄의 똥’인가
문득 풋것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봄동 배추.

봄동은 ‘봄의 똥’인가? 그렇다. ‘봄 강아지가 쪼르르 길가다가 눈 똥’이다. 금방 눈 연둣빛 강아지똥이다. 겨우내 한뎃잠을 잔 ‘노숙 배추’를 그렇게 부른다. 어떤 배추든 노지(露地)에서 추운 겨울을 나면 모두 봄동이다.
봄동은 늦가을 찬 서리와 겨우내 눈발을 뒤집어 쓴 채 보낸다. 얼었다 녹았다 온 몸이 녹작지근 풀어진다. 잎이 옆으로 펑퍼짐하게 벌어진다. 넉장거리로 땅에 바짝 누워 ‘나 잡아먹어라’며 헤프게 웃는다. 속이 꽉 차지 않아 영 볼품이 없다. 그나마 계란 프라이처럼 가운데가 노랗다는 게 다행이랄까. 봄동엔 된서리 한줌, 함박눈 한줌, 칼바람 한줌, 살얼음 한줌이 각각 들어 있다. 성질이 차서 열 많은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입에 넣으면 “사각사각! 아삭아삭!” 사과 먹는 소리가 난다. 혀끝이 파르르 떨린다. 새콤하고 풋풋하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상큼한 향이 새록새록 나온다. 물기가 많고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에도 좋다.
봄동 겉절이의 레시피는 간단하다. 양념장으로 봄동을 살살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양념장은 참기름, 참깨, 매실액, 멸치액젓,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다. 봄동 된장무침은 일단 봄동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야 한다. 봄동줄기는 약간 긴 시간, 잎은 조금 짧은 시간 따로따로 데친다. 데친 봄동은 찬물에 한번 헹군 뒤, 손으로 살짝 물기를 짜낸다. 그 다음엔 깨소금, 된장, 매실액, 대파, 마늘 등의 양념장으로 조물조물 뚝딱 무쳐내면 끝이다. 들큼하고 구수하다. 김 펄펄 나는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온몸의 실핏줄이 달뜬다. 듬뿍 들어있는 비타민 C와 칼슘은 덤이다.


찾아가는 길
KTX : 서울 용산~광주역(광주버스터미널에서 해남행 버스), 서울 용산~목포행 열차 나주역 하차(영산포터미널에서 해남행 버스). 해남에서 땅끝까지 가려면 버스로 40~50분쯤 걸린다(해남교통 061-533-8825).
고속버스 :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해남(5시간10분 소요), 서울 동서울터미널~해남(5시간30분 소요)
승용차 : 호남고속도로→광주 비아나들목→나주→영산포→해남, 서해안고속도로→목포나들목→2번 국도→113번 국도→해남
먹거리
땅끝바다횟집(송지면 땅끝마을 061-534-6422), 남도음식경연대회 대상 용궁해물탕(해남읍 061-536-2860), 전복구이 전문 웰빙전복(목포시 상동 061-284-7845), 한성정(한정식, 해남읍 061-536-1060), 진일관(한정식, 해남읍 061-532-9932), 천일식당(떡갈비, 해남읍 061-535-1001)
쌈밥 : 정든보리밥(삼산면 061-534-4774)
숙박
대흥사 경내 한옥 유선관(遊仙館 061-534-3692) 2인 4만원, 4인 7만원. 한끼 1인 7천원.
가볼 만한 곳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송지면 061-535-2110). 전 세계에서 수집한 2천7백여 종, 4만여 점의 해양 생물 전시. 140kg이 넘는 식인 조개, 8m에 이르는 고래상어, 대형 철갑상어, 1억 년 넘는 어패류 화석을 볼 수 있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통영 미륵섬의 미륵산 정상에 이르는 케이블카.



/ 통 / 영 /
미륵섬에 꽃이 피었네
통영 미륵섬에 꽃이 피었다. 붉디붉은 동백꽃이 피었다. 봄은 도둑처럼 왔다. 시린 바다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왔다. 서호시장엔 도다리 쑥국에 미역, 파래무침, 쪽파무침…. 봄이 한 상 가득하다. 돌미역으로 싸먹는 회에선 갯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통영 앞바다엔 1백50여 개의 섬들이 떠 있다. 누군가 물수제비를 뜬 듯, 바다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섬들은 봄빛에 취해 아득하다. 아지랑이가 끊임없이 꼬물대며 올라간다. 미륵섬은 ‘섬 중의 섬’이다. 육지와 통영대교, 충무교, 해저터널로 연결돼 있어 ‘육지와 다름없는 섬’이다. 이 섬은 그 몸통 자체가 미륵산으로 이뤄져 있다. 꼭대기(461m)에 오르면 수많은 섬들이 아련하다. 수평선 언저리에도 작은 섬들이 걸쳐 있다. 저 멀리 일본의 대마도가 떠 있고, 가까이엔 한산섬이 마주하고 있다. 섬 밖으로는 사량도~추도~두미도~욕지도~연화도~소매물도~매물도~거제도가 빙 둘러싸고 있다. 봄기운이 뻐근하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봉수대도 미륵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낮엔 연기로, 밤엔 횃불로 왜군의 동정을 전했다. 때론 연을 날려 급보를 알렸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섬 통제영에 머물렀다. 봉수대를 통해 적의 동정을 손금 보듯 알았다.

미륵산 정상 느릿느릿 1시간
미륵산 오르는 길은 ‘소걸음’으로 걷는 게 좋다. 느릿느릿 올라도 1시간이면 정상에 닿는다. 가령 용화사를 출발해 ‘관음사~도솔암~미륵재~정상~미래사~띠밭등’을 거쳐 다시 용화사로 돌아오는 코스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나이 드신 분들은 케이블카를 이용해도 된다. 하지만 미륵산은 걸어서 올라야 제맛이 난다. 산행이 아기자기하고 재밌다. 꼭대기에 서면 섬과 바다, 하늘의 어우러짐이 황홀하다.
작은 산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꿈틀꿈틀 용틀임하는 늙은 소나무들,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 제법 경사가 심한 깔딱 고개도 있다. 산 아래 쪽빛 바다는 사라졌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다. 절집들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도솔암 대웅전 뒤란의 대숲 바람 소리는 “쏴아, 쏴아” 파도 소리를 닮았다. 법당 앞 동백꽃은 벌써 속절없이 지고 있다.
산양일주도로는 미륵섬 허리를 한 바퀴 도는 동백꽃길(약 16km)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의 하나다. 박경리 선생 묘소도 볼 수 있다.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 걷고 싶은 만큼만 걸어도 된다. 갯바람이 끊임없이 바다 냄새를 실어온다.
효봉스님 부도탑이 있는 미래사도 가볼 만하다. 효봉스님은 판사 출신. 한 피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뒤 밤새 고뇌하다 법복을 벗어던지고 출가했다. 만년에 좌선하던 토굴도 남아 있다. ‘내가 말한 모든 법/그거 다 군더더기/오늘 일을 묻는가/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 스님의 열반송이다.

새벽 서호시장에 가면 봄이 왁자하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도시는 선(線)이다. 길이다. 길을 따라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다 보면 도시의 얼굴이 보인다. 통영의 새벽 서호시장은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팔딱 뛴다. 도다리, 바다메기, 생멸치, 바다장어, 볼락, 털게, 갑오징어…. 생선이 지천이다. 술꾼들 속 푸는 데도 딱이다. 시장통에 있는 시락국, 졸복국집을 찾으면 된다. 시락국은 바다장어 머리를 갈아서 넣고 밤새 끓인 시래기된장국이다. 보통 새벽 3시 반부터 문을 연다. 졸복국은 통영 근처에서 많이 잡히는 졸복으로 끓인 복국. 콩나물을 넣고 맑게 끓여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오후쯤이라면 슬슬 걸어서 중앙시장도 가볼 만하다. 횟감을 싸게 산 뒤 부근의 횟집에서 자릿세와 양념값을 내고 먹을 수 있다. 요즘에는 ‘도다리쑥국’이 으뜸이다.
통영은 예술인의 고장.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작곡가 윤이상, 극작가 유치진, 화가 전혁림씨 등을 낳았다. 청마문학관, 전혁림미술관을 들러보면 ‘대꼬챙이’ 같은 통영 사람들의 얼을 느낄 수 있다. 통영엔 섬, 산, 바다, 하늘이 있고 꽃과 사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 여기에 격조 높은 문화까지 맛볼 수 있다. 통영의 길은 둥글다. 해안선을 따라 올록볼록하다. 바다를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세 꼬리를 감춘다. 통영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졸복국처럼 맑고 담백하다. 도다리쑥국처럼 상큼한 쑥 냄새가 난다. 늘 향긋한 바다 냄새가 난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고속버스 : 대전통영고속도를 타면 4시간~4시간30분 소요.
비행기 : 서울~사천행이 있지만 편수가 많지 않다.
먹거리
분소식당(055-644-0495), 터미널회식당(055-641-0711), 수정식당(055-644-0396), 한산섬식당(055-642-8021), 명실식당(055-645-2598), 동광식당(055-644-1112), 금미식당(055-643-2987), 호동식당(055-645-3138), 만성식당(055-645-2140) 등이 붐빈다.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미륵산 정상 봉수대 터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2 통영의 명물 졸복국. 3 봄철에 으뜸으로 치는 도다리쑥국. 4 활기 넘치는 통영 서호시장.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이어지는 몽돌길.



/ 소 / 매 / 물 / 도 /
통영의 새끼발톱 같은 섬이여
누님
저 혼자 섬에 와 있습니다
섬에는 누님처럼 절벽이 많습니다
푸른 비단을 펼쳐놓은 해안가를 거닐다가
소매물도 다솔커피숍에 철없이 앉아
풀을 뜯고 있는 흑염소들의 뿔 사이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봅니다
누님이 왜 섬이 되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하룻밤 묵고 갈 작정입니다
-정호승의 ‘소매물도에서 쓴 엽서’에서

산비탈엔 제비둥지 같은 집들
경남 통영 미륵섬 꼭대기에 오르면, 발밑에 수많은 섬들이 연꽃처럼 떠 있다. 아니다. 섬들은 멈춰 있다. 물길 따라 흐르다가, 한순간 얼어붙은 듯 서 있다. 그래서 ‘섬’이다. 사람들도 그 섬들처럼, 어느 날 문득 바쁜 발을 멈추고, 저 하늘의 붉은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소매물도는 손바닥만 한 섬이다. 메뚜기 이마빡만 한 땅이다. 면적 0.51㎢(약 15만4천여 평)에 해안선길이 3.8km. 11가구 주민 20여 명(2010년 4월 현재)이 산비탈에 제비 둥지 같은 집을 달고 산다. 섬마을 뒤쪽은 삐죽삐죽 바위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섬의 어깨가 미식축구 선수처럼 완강하다. 마을은 양팔 사이 가슴 아래 배꼽쯤에 붙어 있다. 오목거울 안쪽 가운데 옴팡 들어간 곳이다. 굴 딱지처럼 옹기종기 낮게 들어앉았다.
매물도는 미륵산 정상(461m)에서 보면 한산도 너머 끝자리에 엎드려 있다. 동남쪽 4시 방향, 통영에서 직선거리 26km. 매물도-소매물도-등대섬의 삼형제 중 둘째다. 주민들은 웃매미섬이라고 부른다. 소매물도 선착장에선 미륵산 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 있는 게 보인다. 미륵산은 소매물도 보고 웃고, 소매물도는 미륵산 보고 웃는다.
소매물도 동쪽엔 등대섬이 있다. 등대섬은 소매물도 등짝 해변길을 짚으며 간다. 길은 깎아지른 절벽 위를 따라 나 있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바람이 얼굴을 아프게 때린다. 자칫 두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날아갈 것 같다. 땅바닥에 떨어진 동백의 통꽃이 서로 껴안고 이리저리 나뒹군다. 파도 소리가 우렁차다. 저 멀리 고기잡이 통통배가 갈매기 떼를 한 아름 싣고 간다. “끼룩~끼룩~” 갈매기들은 지악스럽게 따라붙는다.

소매물도와 등대섬 이어주는 열목개 몽돌길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는 자라목 같은 잘록한 길로 이어진다. 길이 70m의 열목개 몽돌길이다. 열목개에는 수시로 물보라가 인다. 바닷물이 빠지면 열렸다가, 바닷물이 부풀어 오르면 지워진다. 사람들은 길이 열린 틈을 타서 등대섬으로 오른다. 일단 등대섬에 들어가면 물이 차기 전에 서둘러 되돌아 나와야 한다. 1917년 불을 밝힌 등대(16m) 불빛은 48km까지 퍼져 나간다. 주위엔 병풍바위 촛대바위 등이 우뚝우뚝 호위하듯 서 있다. 등대섬에서 소매물도 오른쪽으로 보면 영락없이 공룡을 빼닮은 공룡바위가 눈에 걸린다.
등대섬은 소매물도에서 가장 높은 망태봉(157m)에서 내려다보는 게 일품이다. 망태봉 바로 아래 해상밀수감시소 꼭대기에 올라가도 잘 보인다. 감시소는 1987년 폐쇄돼 시멘트 망루만 남아 있다. 하얀 등대와 푸른 하늘 그리고 등대에 오르는 푸른 풀밭이 그림 같다. 여기에 코발트빛 바다와 그 뒤에 점점이 서 있는 거무튀튀한 갯바위들…. 이생진 시인이 이렇게 넋 나갈 듯한 등대섬을 지나칠 리 없다.

산 하나 넘어서/물이 길을 내주면/맨발 벗고 가는 길/엉겅퀴 민들레 진달래/모두 빠져 죽는 것들의 넋/왜 이곳에서 피느냐 했더니/‘살아서 등대를 좋아한 탓’이라며/쓸쓸히 웃는다/그 ‘탓’/나도 그 탓 때문에 등대로 가는 거다 -소매물도 등대 ‘등대이야기 29’에서

섬마을 모래밭 길의 슬픈 남매바위
소매물도 섬마을 왼쪽 길은 후박나무 동백나무 숲길이다. 바람도 섬 등짝 안쪽이라 거의 불지 않는다. 아늑하고 호젓하다. 가끔 나오는 오솔길 걷는 맛도 쏠쏠하다. 군데군데 낮은 무덤들이 누워 있다. 섬에서 태어나 살다가 섬에 묻힌 사람들. 그들은 죽어서도 말없이 섬을 지키고 있다. 나무들은 마을을 향해 굽어 있다. 등으로 바람을 막아낸 탓이다. 쏴아? 쏴아? 나무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추임새로 새소리도 섞인다.
미니 해수욕장 모래밭 길도 꿈같다. 남매인 줄 모르고 서로 사랑했다가 죽었다는 슬픈 전설의 남매바위도 만난다. 소매물도에 해가 저물면 봄바람이 우당탕탕 찾아와 대문을 흔든다. 밤새 덜컹거리는 소리. 빈집 양철 지붕 밟고 지나가는 소리, 차르르 철썩! 파도가 해안 절벽에 부딪히는 소리…. 아침 해가 바람을 몰아내기 시작하면,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어디론가 사라진다. 안개는 바다 얼굴을 말갛게 씻겨주고, 새끼 섬들 사이로 띠처럼 흘러간다. 고깃배는 섬과 섬 사이에서 코를 박고 그물을 친다. 금빛 갈매기들은 어김없이 아침 바다를 떠돈다.
소매물도는 머흘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뱃길이 끊긴다. 바다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섬을 찾은 사람들도 발이 묶인다. 파도가 거품을 품으며 으르렁거린다. 섬마을은 오로지 바람만 활개 친다. 사람들은 방에 처박혀 쥐 죽은 듯 꼼짝하지 않는다. 나무들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출렁인다. 잔뜩 물을 머금은 하늘은 먹빛이다. 선착장 마을은 그렇게 며칠씩, 눈썹달처럼 휜 섬 품 안에서 비바람을 견딘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 :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
고속버스 :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나 남부터미널 통영행 4시간30분~5시간 소요
비행기 : 서울 김포공항~사천비행장(사천에서 통영행 버스 1시간 소요)
통영~소매물도 :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1시간30분~2시간 소요. 거제 저구항에선 30분 거리.

전남 강진·해남에서 경남 통영까지 ‘봄마중 가세’

1 등대섬의 등대가 보인다. 2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뱃길이 끊기는 소매물도의 거센 바람. 3 왼쪽 큰 섬이 매물도, 오른쪽이 소매물도다.



여성동아 2012년 3월 5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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