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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 말하지 못하는 친절한 한국인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 | 유디트

입력 2012.01.31 16:56:00

NO라 말하지 못하는 친절한 한국인


1_ 독일에서 교사로 일하는 독일 친구는 오래전부터 다른 여교사 두 명과 함께 살며, 가족같이 친하게 지낸다. 독일에서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집을 빌려 사는 경우가 많다. 각자 개인 방을 가지고, 거실과 주방, 욕실 등은 함께 쓴다. 독일 사람들은 이런 주거 형식을 ‘WG(Wohngemeinschaft)’라고 부른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나이 든 이들도 이렇게 사는 경우가 꽤 많다. 요즘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가족 대신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한다. 집세는 나눠서 내고 시장 보는 것도 서로 돌아가며 한다. 요리도 같이 하고,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많은 얘기를 주고받는다. 가끔 여행도 같이 하고, 취미생활도 함께 즐긴다. 친구는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계속 ‘WG 가족’과 함께 산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있어도 자기의 WG를 떠날 생각이 없다. 이 집은 편안하고 자유롭고 아늑한 분위기가 나 나는 독일에 갈 때마다 친구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의 친구들도 나를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준다. 만약 남편을 안 만났다면 나도 친구와 함께 WG에서 살았을 것 같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상생활을 나누고 걱정도 나누고 재미도 나누면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은 혼자 외롭게 사는 것보다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2_ 지난주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는 다음 달에 WG 친구 한 사람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돼 새로운 하우스메이트를 찾고 있다고 했다.
“어제 한국 여학생이 집 보러 왔어. 한국 사람에 대해 잘 모르니까 네 조언을 듣고 싶어. 한국 여학생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내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니? 한국 사람이라고 다 똑같진 않잖아. 사람에 따라 다르지.”
“하긴. 근데 난 그 여학생 인상이 좋더라. 처음 만났는데도 우린 금방 친해졌어. 무슨 말에도 항상 웃고, 얘기도 재밌게 해! 참 친절한 사람인 것 같아. 그녀도 우리 집이 마음에 든대.”
“다른 독일 사람도 집 구경하러 왔니?”
“응, 유치원 선생님도 왔어. 그 사람도 괜찮지만 난 한국 학생이 더 마음에 들어. 거의 두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는데 우리 집에서 살고 싶은 것 같아. 난 이 학생으로 결정하려고 해. 유치원 교사에게는 잠시 후 전화할 거야.”
내가 항상 한국이 좋다고 하니 친구도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친구가 룸메이트로 한국 사람을 선택하게 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한국 학생이 좋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한 집에서 가족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 친구는 같이 살 사람의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NO라 말하지 못하는 친절한 한국인


3_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친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내 친구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제 그 한국 여학생 말이야! 오늘 오전에 문자가 왔어. 내가 읽어줄게. ‘다른 방을 찾았어요. 미안해요.’ 이럴 수 있는 거야? 우리 집이 좋다고 수십 번 얘기하는 바람에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생각했단 말이야. 내가 오해한 거야?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어.”
“응. 나도 이해가 안 된다.”
그 학생이 독일 사람이었다면 내 친구는 분명히 크게 화를 냈을 것이다. 독일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다면 내 친구는 그 사람이 책임감 없고 약속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학생이 외국 사람이라서 친구는 혹시라도 자기가 오해하는 것일까 싶어 나에게 전화한 것이다.



4_ 전화를 끊은 후에도 친구의 황당해하는 음성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왠지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또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물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든 많다. 한국에도 있고 독일에도 있다. 그리고 내가 모든 한국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를 다 알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와는 달리, 나는 그 학생의 행동에 화가 났지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한국에서 이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왜 그 한국 유학생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그 한국 유학생은 방을 얻기 위해 나의 친구에게 ‘친절하다는 인상’ 혹은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그 학생은 면전에서 ‘화려한 서비스’를 최대한 제공하려 한 것이다. 나중에 지켜야만 하는 중요한 약속과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을 얻기 위해 일단 ‘좋은 사람 되기’에만 온 힘을 기울인 것이다.
둘째, 어쩌면 그 한국 유학생은 차마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도 차마 ‘No’라고 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녀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No’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 사람은 대부분 거절을 잘 못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거절할 줄 아는 사람만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다. 독일 사람은 한국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No’라고 잘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것을 못 한다’ 또는 ‘이것을 하고 싶지 않다’와 같은 말을 독일 사람은 자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 나는 ‘사랑해요!’나 ‘우리 사이에 인연이 생겼다’라는 식의 말을 많이 접했다.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당황했지만, 한국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 독일 사람들은 사람을 처음 만나면 경계심이 많고 냉정해 보인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친해지고 인연을 맺는 것 같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다!”라고 말한다. 정이 많은 것은 좋지만, 단지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거절을 하지 않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내년에 친구 집에 가면, 친구에게 ‘한국식 친절 서비스’에 대해 길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길게 설명을 늘어놓긴 하겠지만, 내 독일 친구에게 ‘한국식 친절 서비스’에 익숙해지라고 조언하지는 못할 것 같다.

NO라 말하지 못하는 친절한 한국인


유디트씨(41)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러스트 | 한은선

여성동아 2012년 2월 5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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